게임은 언제 죽을까. 업데이트를 멈췄을 때? 더이상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없을 때?
인간의 생체 신호를 숫자로 보여주듯 게임에도 생존을 보여주는 숫자들이 있다. 유저들이 얼마나 유입되는지, 얼마나 머무르는지, 매출은 얼마나 나오는지. 지표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게임의 생명력을 측정하는 기준도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여기, 그 기준에 따라 모두가 망했다고 생각한 게임이 있다. 국민 게임 IP를 등에 업고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쿠키런>의 후속작 <쿠키런: 오븐브레이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게임은 출시 후 두 달만에 고꾸라졌다. 보통 게임들은 출시 직후에 마케팅 등 론칭 전략이 집중되므로 세 달 정도는 상승 지표를 이어간다. 그런 상승 추세도 끝까지 누리지 못한 것이다. 2016년 12월. 매출 특수라는 연말을 맞았지만 개발팀은 우울하기만 했다.
그러던 게임이 어느 시점부터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부터 하강곡선을 그리던 지표가 바닥을 찍고 점차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12월엔 오히려 출시 당시보다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모두가 <쿠키런: 오븐브레이크>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문의가 쏟아졌고, 새로 합류한 직원들도 영문을 궁금해 했다. 데브시스터즈 배형욱 운영/사업 총괄이 이번 강의를 준비한 이유다.
배형욱 총괄이 <쿠키런: 오븐브레이크>가 걸어온 지난 1년 6개월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들려준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 ‘우린 안 될거야...’ 패배주의가 만연했던 팀
누가 봐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일본의 유명 유튜버와 특집 방송을 하고, 한국에선 인기 웹툰을 이용한 마케팅을 했다. 덕분인지 무료 게임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그때까진 다 좋았다. 유저들은 콘텐츠를 빠르게 소모했고, 개발팀도 짧은 간격의 업데이트로 응답했다.
출시 후 3개월. 게임의 지표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하락하고 있었다. 출시 전 일정에 쫓겨 크런치를 이어온 탓에 팀원들의 피로도 누적돼 있었다. 게임이 잘 안 되고, 다들 지쳐있으니 자연스레 기획과 개발에 대한 불신이 싹텄다. 개발팀 내에 패배주의가 만연했고, 누군가는 남탓을 하기도 했다.
배형욱씨는 바로 그 시점, 운영/사업 총괄직을 맡았다. 그리고 게임에 생명을 불어 넣으려는 8개월간의 분투가 시작됐다.
배 총괄은 다가오는 2017년 상반기 계획을 세웠다. 이리저리 뜯어본 결과 게임의 전체적인 뼈대가 취약하다는 결론을 냈다. 유저들도 과금 시스템이나 업데이트 내용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2017년 상반기엔 이 뼈대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일단 개인, 팀, 유저로 검토 대상을 세분화 했다. 개인과 팀을 먼저 들여다 봤다. 힘든 길이 예정돼 있으므로 ‘좋은 동료’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이건 비교적 쉬웠다. 좋은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계해야 할 상황이었다. 주변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나쁜 얘길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못하는 동료들을 비난해 팀의 에너지를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배 총괄은 비교적 심플한 방법으로 이 상황을 90% 가까이 해결했다. 바로 ‘솔직하게 말하기’다. 배 총괄은 “솔직하게 말하면 많은 상황들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도 알고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한 선택도 필요하다. 설사 누군가 이탈하더라도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 조직이 개선됐으니, 이제 서비스를 개선해 보자
이번에는 서비스 견고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서비스 개선은 약 6개월의 긴 일정으로 진행됐다. 특히, 과금 시스템 개편은 라이브 게임 특성상 신중해야 했다. 분명 누군가는 업데이트 전날 가챠를 뽑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100만 원의 가치를 가졌던 아이템이 오늘 1만 원짜리가 되어서는 안 됐다. “과금 시스템 개편은 신중하게, 추가 콘텐츠를 함께 업데이트하면서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배 총괄은 강조했다.
여전히 지표는 안 좋았다. 10개월째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배 총괄은 “서비스 견고성을 보강하지 않았다면 잠깐 반짝했더라도 또 떨어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서비스를 다듬고 나서는 약 4개월간의 성숙기를 거쳤다. 당시 MAU(한 달 서비스 이용 유저 수)는 최고점 대비 1/6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차트에서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팀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큰 목표를 세웠다. “MAU는 300% 증가, Top Grossing 차트는 30위권을 탈환하자.”
일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 3가지를 정리했다. 신규 유저를 유입시키고 /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도록 하고 / 구매 만족도를 올리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모바일게임 서비스의 기본이 되는 얘기지만, 기본을 잘 하는 것이 성공을 좌우했다. 그만큼 이 기본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지속성 있는 신규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게임에 경쟁 모드만 존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쟁을 잘 하지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탈하는 요인이었다. 경쟁 말고 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쿠키런>의 핵심 요소인 ‘쿠키’ 수집 콘텐츠를 추가했다.
전작을 겪어본 다음 후속작을 하는 유저들이 많았기 때문에 ‘새롭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비부터 바꿔야 했다. 게임에 처음 진입했을 때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유저들은 모두 이탈할 거라 여겼다.
로비의 구성요소도 신중하게 고려했다. 기존의 로비는 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 할 수 있도록 심플하게 구성돼 있었다. 바뀐 로비에는 수집한 쿠키들을 배치할 수 있는 기능을 넣고, 유저들이 계속 게임에 접속하도록 무료 크리스탈(재화)을 받을 수 있는 상자도 배치했다. 의도가 녹아 있는 개편이었다.
신규 모드 ‘떼탈출’이 추가된 것도 그 시점이었다. 떼탈출은 쿠키 20마리가 동시에 달리는 모드였다. 유저들은 함께 달릴 더 많은 쿠키를 모아야 했다. 24개 스테이지를 떼지어 이어달리는 쿠키들. 떼탈출은 기존 런게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주는 콘텐츠였다.
‘새롭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 콘텐츠를 플레이를 할 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배 총괄은 말했다. 게임은 스테이지 변경에 따라 달리는 쿠키들을 줌인, 줌아웃 하도록 카메라워크를 바꿨다. 단순히 스테이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맵이 좀 더 새롭게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지루하니, 챕터마다 유물을 수집할 수 있는 콘텐츠도 넣었다.
# 유저가 원할 때, 만족스럽게 돈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과금 모델 개선도 필요했다. 어린 유저가 많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무과금 유저들도 배려한 개편을 구상했다. 공짜 뽑기에서도 구매 만족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처음 변화를 준 것은 쿠키와 펫이 각각 다른 상자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쿠키와 펫이 같은 상자에서 나왔다. 같은 돈을 썼는데도 쿠키를 얻는 경우가 있었고, 다소 보조적인 역할의 펫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유저들의 과금 만족도를 해치는 부분이었다. 가챠에서 염증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마일리지 뽑기도 추가했다. 상품 패키지의 전면적인 리뉴얼이 이루어졌다.
이벤트 운영을 강화하고 좀 더 효율적인 마케팅 방안을 실행하기도 했다. 글로벌 통합 서버는 시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벤트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모든 나라에서 일과 시간에 이벤트를 즐기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매주 신규 업데이트에 따른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 어떻게든 유저들의 ‘재미’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했다.
마케팅의 모토는 ‘최소 금액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업데이트를 알리자’로 정했다. 우선 <쿠키런>의 SNS 팔로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초반에 게임을 다운로드 한 1,000만 명을 대상으로 리타게팅 UA(유저모객) 광고를 집행했다. 초대/복귀 유저들에게 큰 보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배 총괄은 “초대 인원은 너무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된다. 각 게임에 맞는 ‘매직 넘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케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알리고 싶은 것(업데이트 등)을 마케팅 시점에 바로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업데이트 마케팅을 업데이트 2~3주 이후에 진행하면 의미가 없다.
또한, 마켓 피쳐링은 엄청나게 파워풀하다. 적게는 수천 만, 많게는 수억, 수십 억의 매출을 좌우한다. 어느 위치에, 어느 국가 마켓에 걸리느냐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피쳐링이 한 번 되면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켓 측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조율해야 한다. 보통 업데이트 4주 전 정도부터는 준비해야 한다.
# 작지만 큰 성과, 전월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한 지표
절치부심한 덕분인지 시즌2 업데이트를 진행한 이후 모든 지표들이 2배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매출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배 총괄은 고민했다. 유저들의 구매를 한번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일단 유저들을 과금액별로 구분해 가로축에 놨다. 유저에 따른 과금액이 획기적으로 바뀌진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이번 달에 1만 원 과금한 유저가 다음 달에 10만 원 과금할 것 같진 않았다.
세로축에는 유저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놓았다. 게임 초기, 20렙 인근, 업데이트 직후, 50렙 이후 정도로 분류했다. 그리고 각 과금액별 유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품을 필요로 할지 지금 상품을 기준으로 칸을 채웠다. 거기에 구멍이 있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상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겹치는 상품은 제거했다. 유저들이 선택 장애를 겪어서는 안 됐다.
상품 개편이 이뤄졌으니 유저들에게 알려야 했다. 상점에 쭉 진열해 놓는 방식을 쓰지는 않았다. 유저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상품이 노출되도록 개인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9월 업데이트 이후, 10월/11월에는 지표가 또다시 전월 대비 2배 증가했다. ‘여기서 더 증가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으나... ‘한 번 더!’
한 끗 차이로 목표 달성에 실패한 팀은 이벤트를 다시 돌아봤다. 그동안의 이벤트는 업데이트와 무관하게 진행돼 온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속한 랜드가 아닌, 다른 랜드에 가서 달리기를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이벤트였다. 한 마디로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 이벤트를 하면 색다른 재미가 추가돼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팀은 업데이트와 유관한 이벤트를 해 보기로 했다. 만약 아보카도맛 쿠키를 출시했다면 그 쿠키와 우정쌓기 이벤트를 한다거나, 신규 보물이 추가되면 그걸 장착하고 달리기를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유저들의 기존 플레이 방식에 강제로라도 변화를 주게 된다. 변화가 생기면 게임에 색다른 재미가 추가된다.
12월. <쿠키런: 오븐브레이크>팀은 목표를 초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심지어 출시 1년이 지난 시점에 1일 최고 매출을 갱신하기까지 했다. 많은 걸 의미하는 대목이다. 출시 초기, 유저들이 몰릴 때보다 더 많은 걸 해 내야 가능한 수치였다.
그래프는 완연한 U자가 됐다. 유저 수는 초기에 비해 절반이었지만, 유저 수 대비 매출은 두 배였다. 구매 만족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구매만족도가 높으니, 유저들이 들어와 주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을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팀에 생겼다.
배 총괄은 끝으로 8개월 간의 시간을 통해 얻은 교훈을 전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포함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끝났다고 생각한 서비스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표가 떨어지면 게임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자고 하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끝났다고 여겨지는 서비스도 살아날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