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진출’ 의 꿈
지난 1998년,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MMORPG <리니지>를 서비스하면서 일약 대한민국 굴지의 대표 게임사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리니지>의 성공 이후 한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치고 엔씨소프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불어 엔씨소프트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게임 시장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북미와 유럽 게임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는 데 성공한 게임사다. 게임스컴이나 PAX 같은 관객 중심의 게임쇼에서도 여러 번 대규모의 전시 부스를 설치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그들이 선보인 <길드워>, <길드워 2> 같은 게임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참고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이사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나 간담회를 통해 엔씨소프트의 창업 이념은 “도전정신이 가득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며,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게임사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의 글로벌 시장 도전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역사를 살펴 보면 실패와, 도전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순탄치 않았던 시작. 리차드 개리엇의 영입으로 주목 받는 개발사로 발돋움하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00년 5월, 아직 히트작이 <리니지> 하나밖에 없던 시절에 다른 게임사들보다 한 발 빠르게, 북미 지사인 ‘엔씨 인터렉티브’(NC Interactive, Inc)를 설립하며 북미 시장 진출의 닻을 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북미 시장 진출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다르게 북미나 유럽에서는 게임사에 대한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선 한국과 대만에서 큰 성공을 거둔 <리니지>가 2001년 4월, 미국 시장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 게임부터 다른 나라와 다르게 북미에서는 실패의 쓴 맛을 보고 말았다.
참고로 당시 잘 나가던 <울티마 온라인> 같은 작품이 한 달에 평균 10달러 내외의 요금을 받을 때,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이용료로 한 달에 15달러를 채택했다. 그만큼 <리니지>의 성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하지만 엔씨의 기대와 다르게 <리니지>는 실패했다. 단순히 게임성이 북미 유저들과 맞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보다는 '생소한 개발사'의 '생소한 게임' 이라는 점으로 인해 북미 유저들의 관심 조차 받지 못했다.
게임의 서비스 뿐만 아니라 유망한 개발사를 인수하고 싶어도, 괜찮은 작품을 퍼블리싱하고 싶어도, ‘엔씨 소프트’라는 이름은 당시 북미/유럽 게임 시장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철저하게 ‘듣도 보도 못한’ 게임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엔씨 인터렉티브 관계자들은 현지 관계자들과 약속을 잡고 싶어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적이 부지기수고, 심하면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던 엔씨소프트가 북미 게임 시장에서 일약 주목 받는 게임사로 발 돋음 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바로 지난 2001년, <울티마>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로드 브리티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리차드 개리엇’(Richard Allen Garriott)을 영입한다.
리차드 개리엇의 영입은 그저 이름 높은 개발자 한 명을 영입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엔씨소프트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장 ‘리차드 개리엇을 영입한 개발사’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엔씨소프트의 북미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메인 스트림에 합류했다고 할까?
그리고 리차드 개리엇이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나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의 경험은 고스란히 엔씨소프트의 자산이 되었다. 그 결과 엔씨소프트는 1년 후인 2002년. 시애틀에 위치한 게임 개발사 ‘아레나넷’(ArenaNet)을 약 187억 원에 인수해 자회사로 합병하기에 이른다.
이 인수에는 리차드 개리엇이 많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로도 리차드 개리엇은 엔씨소프트가 크립틱 스튜디오의 <시티 오브 히어로>(City of Heroes)를 퍼블리싱하는 것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이후의 북미 시장 공략 및 전략 수립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 <길드워>로 전 세계적인 히트작 메이커로 발돋움하다
엔씨소프트는 이렇게 자회사로 편입한 아레나넷이 2005년 4월, PC 온라인 게임인 <길드워>(Guild War)를 선보이면서 일약 북미 게임 시장에서도 ‘히트작 메이커’로 급부상하게 된다.
<길드워>는 철저하게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준비한 타이틀이었으며, ‘PVP 중심’의 독특한 게임성이 북미 유저들에게 제대로 먹혀 들어가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실제 <길드워>는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을 시작으로, 확장팩인 <길드워 팩션>(깨어진 동맹), <길드워 나이트폴>, <길드워 아이 오브 더 노스>를 모두 합쳐 6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그리고 <길드워>의 성공은 7년 후인 2012년, <길드워 2>의 ‘열풍’으로 절정을 이루게 된다. MMORPG로 개발된 <길드워 2>는 전 세계적으로 1100만 카피를 판매할 정도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주요 게임 미디어로부터 ‘올해의 PC 게임’, ‘올해의 MMO’ 등 각종 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 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런 <길드워>와 <길드워 2>의 대성공 덕분에 이제 엔씨소프트는 북미나 유럽에서도 어느 정도 ‘알아주는’ 개발사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 실패와 부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는 도전
이렇게 <길드워>와 <길드워 2>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엔씨소프트가 사실 북미 시장 진출에서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엔씨소프트라는 브랜드를 북미와 유럽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당사자인 리차드 개리엇의 야심작. <타뷸라 라사>가, 지난 2007년, 게임성으로는 나름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정말 처참할 정도로 실패를 기록한다. 이로 인해 리차드 개리엇은 결국 지난 2008년, 엔씨소프트와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리차드 개리엇의 퇴사 여파인지, 엔씨소프트는 <타뷸라 라사> 이후 2012년 <길드워 2> 출시 사이의 5년간, 이렇다할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며, 침체기를 겪는다. 야심 차게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좋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조직은 비효율적으로 분산되어 방대해졌고, <시티 오브 히어로>(2004년) 이후 이렇다할 퍼블리싱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적자도 해가 갈수록 누적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길드워>와 함께 엔씨소프트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초기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워해머 온라인> 등 세계적인 유명 MMORPG 제작자들을 대거 합류시켜 차세대 주력 MMORPG로 육성하려고 했던 <와일드스타>가 2014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실패를 기록한다. 이 게임은 길어지는 개발기간과 수차레의 콘셉트 변경, 그리고 정작 나온 결과물이 지나치게 어렵고 마니아 지향적이라는 것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실패한다.
엔씨소프트는 2012년, 윤송이 글로벌 CSO(최고 전략 책임자)의 주도로 북미/유럽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기존 엔씨 인터렉티브 위에 ‘엔씨웨스트 홀딩스’(NC West Holdings)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 보다 빠른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었다. 윤송이 CSO는 엔씨웨스트의 대표이사로 부임해서 이 모든 것을 지휘했다.
그 결과 엔씨소프트는 2012년 <길드워 2>를 성공적으로 런칭하게 되었으며, 이후 3년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등 한층 더 나아진 모습으로 북미/유럽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 세계 다양한 개발사와의 파트너십과 신규 개발사 설립에도 다시 나서게 되었는데, 일례로 2015년에는 동년에 캐나다 소재의 모바일 게임 개발 스튜디오 ‘디스게임스튜디오(This Game Studio)’에 투자하기도 했다. 또 동년에 미국 실리콘밸리 산마테오 지역에서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스튜디오인 ‘아이언 타이거 스튜디오(Iron Tiger Studios)’를 직접 설립해, 현지시장에 최적화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플랫폼 상관없이 ‘세계 시장에 먹힐’ 타이틀을 개발하라
현재 엔씨소프트는 온라인 게임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 심지어 PC/콘솔 게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통할만한’ 타이틀의 연구 개발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엔씨소프트의 투자와 도전은, 점점 하나 하나 결과물들이 나오면서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쪽에서는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전략적으로 노리는 작품인 <아이온 레기온즈 오브 워>(AION: Legions of War)’가 서비스를 준비중이며, 이밖에도 위에서 언급한 디스게임스튜디오가 개발하는 <리니지2: 다크 레거시>(Lineage II: Dark Legacy) 역시 발매를 눈 앞에 다가온 상태다.
그리고 엔씨소프트는 아직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무시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콘솔 게임’에 대한 도전 또한 이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북미/유럽 시장은 콘솔 게임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그렇기에 엔씨소프트는 수년 전 부터 콘솔 게임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자체 개발이나 퍼블리싱 등 여러 방면으로 콘솔 게임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음악ㆍ리듬 장르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하모닉스 뮤직 시스템즈(Harmonix Music Systems)’의 신작을 퍼블리싱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에는 <블레이드 앤 소울>의 콘솔 버전을 개발한다고 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00년 이후 근 18년 동안 북미와 유럽 게임 시장의 진출에 많은 도전을 이어갔다. 어려움을 겪은 것도 많고, 중간 중간 실패를 기록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2018년 현재는 어느 정도 해외에서도 인지도 있는 게임사로 자리잡은 상태로, 또한 모바일이나 PC 온라인, 콘솔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하나하나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미래가 기대되고 있다.
과연 엔씨소프트가 이후 세계 시장에서 어떠한 게임사로 발돋움하게 될지. 이후의 행보를 기대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