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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확률형 아이템, 해외는 어떻게 규제하고 있을까?

안정빈(한낮) 2015-04-13 15:30:56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해결방식을 놓고, '업계의 자율적인 규제'와 '법에 의한 강제적인 규제'가 맞붙어 있다. ‘가능하다면’ 자율규제가 낫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유저와 개발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지적도 있다. 구체적으로 공개의 범위는 어디까지, 공개한 이후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키지 않았을 경우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이 문제를 겪은 일본의 자율규제 사례를 디스이즈게임에서 살펴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현재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가진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 중국은 2014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의를 처음 시작했고, PC/패키지게임 위주의 북미와 유럽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자체가 한국이나 일본, 중국만큼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일본의 확률형 아이템은 소셜게임들을 위주로 발전했다. GREE와 DeNA 등의 개발사는 확률형 아이템을 뽑고, 여기서 나오는 아이템을 모두 모으면 더 좋은 보상을 주는 콤프가챠(수집형 뽑기 아이템)를 내세웠고, 폭발적인 성장을 거둔다.

 

하지만 2012년 1년에 150만 엔 이상을 소비한 40대 주부와 며칠 만에 10만 엔을 사용한 중학생의 이야기 등이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등 논란이 계속되자 소비자청은 콤프가챠가 카드조합을 금지하는 경품표시법을 위반했다는 견해를 발표한다.

 

동시에 사행심을 극도로 조장하는 일이 좋지 않다는 마츠하라 소비차정 장관의 발언이 이어지고,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에서는 ‘온라인게임의 비즈니스모델 기획설계 및 운영 방침’과 ‘랜덤형 상품 제공방식의 표시 및 운영지침’ 2개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콤프가챠의 모든 경우를 들며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가이드라인. JOGA가 콤프가챠 논란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 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 일본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온라인게임의 비즈니스모델 기획설계 및 운영 방침’은 콤프가챠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기사에서는 ‘랜덤형 상품 제공방식의 표시 및 운영지침’을 살펴보겠다. 

 

‘랜덤형 상품 제공방식의 표시 및 운영지침’은 크게 확률형 아이템의 표시방식과 가격 및 내용설정, 운영책임자 구성, 금지사항, 내부감사 등으로 나뉜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무료 아이템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유료 아이템과 대부분 중복되는 만큼 따로 다루지는 않겠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내용표시


1.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아이템. 아이템을 윤곽이나 그림자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가능하면 해당 아이템을 직접 표시한다.

2. 결과물 중 레어아이템이 있다면 이를 따로 표시한다.

3. 중복된 아이템을 입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와 그 조건 등을 표시한다.

4. 특정 확률형 아이템이나 캠페인에서 레어아이템의 제공비율을 변경할 경우 이를 사전에 표시한다. (증가와 감소 모두 포함)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설정


1. 특정 레어아이템을 취득하기 위한 기대값이 50,000엔 이내일 것. 특정 레어아이템을 취득하는데 필요한 평균금액이 50,000엔이 넘는 경우 그 확률을 표시한다.

2. 레어아이템을 취득할 수 있는 확률의 이론상 상한선은 해당 확률형 아이템의 100배 이내 금액이어야 한다. 그 상한선을 넘는 경우는 추정금액이나 배율을 표시한다.

3. 레어아이템 확률의 상한과 하한선을 표시한다.

4. 모든 아이템의 종류별로 그 확률을 표시한다.

 

 

확률형 아이템 가격설정


1. 확률형 아이템 이용 시 제공되는 아이템 가치는 소모한 비용 이상이어야 한다. 

2. 확률형 아이템에서 어떤 아이템도 제공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 운영책임자


1. 운영책임자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기 전에 그 확률을 연구하고 해당 사실을 서면 등으로 기록해서 보관해야 한다.

2. 운영책임자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설정한 대로 가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결과 등을 서면 등으로 기록해서 보관해야 한다.

3.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쉽게 바뀌지 않도록 시스템 설계에 유의해야 한다.

 

 

금지사항


1. 확률형 아이템의 이용조건이나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표시하거나 사용자가 실제보다 유리하게 오인하도록 표시해서는 안 된다.

2. 카드 맞추기(콤프 가챠)를 해서는 안 된다.

 

 

내부감사에 대한 사항


1. 가이드라인이 적절하게 운용되도록 감사한다.

2. 감사는 오직 내부 감사를 위해 설치된 조직이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나, 해당 조직이 없는 경우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운영하는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조직이 감사를 실시한다.

3. 감사결과 부절적한 사실이 발견된 경우 각 사업자의 책임을 묻고 빠르게 개선을 도모한다. 

 

 

 

■ ​확률 1% 이상이면 가이드라인 따르더라도 공개의무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의 자율규제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공개’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확률을 공개하는 경우는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희귀한 아이템의 확률이 1% 이하일 때’와 ‘가장 희귀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5만 엔 이상을 지불해야 할 때’뿐이다.

 

평균 모바일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가격이 500엔 이하인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희귀한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1% 이상인 확률형 아이템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더라도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여기서 ‘가장 희귀한 아이템’은 특정아이템이 아닌 최고등급의 아이템 모두를 통틀어서 해석하는 개발사가 많다. 예를 들어 <세븐나이츠>에서 최고급 카드인 6성 죽음의 군주 델론즈를 뽑을 확률이 1%가 되지 않더라도, 6성 영웅이 나올 확률만 1%를 넘는다면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다.

 

물론 특정아이템 하나하나의 확률을 따로 계산해 공개하는 개발사도 있지만,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오는 최고등급의 아이템이 40~50개씩 되는 게임들은 각각 1%의 확률을 매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최고등급의 아이템을 통틀어’ 1% 이하일 경우에만 확률을 공개하는 편이다.

 

<프로야구 드림나인>(왼쪽)과 <전국염무 긴자>(오른쪽)의 확률 표시. 1% 이하 항목이 포함돼있다.

 

 

■ ​전체 목록 확인 가능해야 하고, 운영책임자 둬서 기록 남기고

 

확률공개와 별개로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목록은 빠짐없이 공개해야 한다. JOGA의 가이드라인에서는 특별한 페이지를 통해 모든 확률형 아이템을 한 눈에 보여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만 게임의 재미를 위해 특정한 아이템을 ‘실루엣’으로 숨기는 수준은 허용한다.

 

JOGA에서 내세운 가이드라인의 흥미로운 점은 운영책임자와 내부감사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은 모두 운영책임자에 의해 관리돼야 하고 운영책임자를 이를 사내에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기획부터 운영 결과까지 모든 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사실상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모든 기록을 남기라는 뜻이다.

 

여기에 확률이 변동될 때는 하루 전에 고지하고, 내부감사를 둬서 가이드라인이 적절하게 운용되도록 했다. 만약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할 경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대부분의 논란이 사라지는 셈이다.

 

<러브라이브>의 확률표시. 1% 이상만 있는 데도 공개하는 개발사도 많다.

 

 

■ ​강제성 없지만 절반 이상이 확률 공개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의 효력은 어떨까? 현재 일본에서 실제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개발사는 절반을 웃돈다. 4월 10일 기준으로 일본 애플 앱스토어의 매출순위 30위까지의 게임 중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한 게임은 총 26개. 그 중 14개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컴투스와 라인 코퍼레이션 등 해외에 기반을 둔 개발사를 제외하고, 애당초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게임까지 포함하면 절반 이상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셈이다. JOGA가 강제성을 지니지 않고, 회원사가 43곳, 준회원사가 21곳에 불과한 점 등을 감안하면 뛰어난 성과다.

 

특히 확률공개는 게임과 상관없이 회사 단위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콤프가챠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GREE와 DeNA는 자율규제 이후 ​모든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있으며, 세가와 스퀘어에닉스, 반다이남코 등은 JOGA의 회원사가 아님에도 확률을 공개 중이다. 반면 코나미와 코로프라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소비자청의 압박으로 인해 업계에서도 자율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각 개발사에서 자체적인 판단을 내린 결과로 보인다.

 


 

 

■ 자율규제 이후로 법적인 추가 규제 없어. ​유저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개발사가 늘어나면서 콤프가챠 이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추가적인 법적규제는 없었다.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율규제를 안착시킨 셈이다. 그리고 그 일등공신은 유저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확률공개였다.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코로프라와 코나미 게임 등에서는 확률을 공개하라는 유저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공개된 확률과 체험에 따른 실제 확률을 비교하거나 수 천 번의 반복을 통해 직접 확률을 찾는 유저도 있다.

 

일단 확률을 공개한 만큼 실제 확률이 이와 크게 다를 경우, 유저가 직접 소비자청에 신고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확률공개를 통해 유저의 직접적인 감시가 가능해진 모양새다. 아래는 낮은 확률로 논란이 됐던 <마법사와 검은고양이 위즈>의 확률형 아이템을 한 유저가 5,000번에 걸쳐 직접 확인한 영상이다.

 

다만 개발사에서 공개한 확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으냐와 현실적인 내부감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등의 비판도 여전히 남아있다. 

 

확률 확인을 위해 <마법사와 검은 고양이 위즈>의 5천 연속 뽑기에 도전한 유저의 영상

■ 한국과 일본의 자율규제, 그 차이는?

한국과 일본에서 내세우는 자율규제안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목적과 구체적인 항목들이다. 일본과 한국의 자율규제는 모두 청소년 보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다르다.

일본은 청소년보호를 위해 결제금액의 상한선을 별도의 법안으로 정해놓은 후, 가이드라인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과 기회에 초점을 맞췄다. 확률형 아이템 자체에 어느 정도 손을 댄 셈이다. 반면, 한국의 자율규제는 전체이용가 게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특정 아이템을 실루엣으로 처리할 수 있다거나, 100배 이내, 5만 엔 이내로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수 없는 게임이라면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항목은 일본의 자율규제가 안착될 수 있던 계기가 됐다.

단순한 모니터링이 아닌, 확률형 아이템의 구체적인 기록들을 남겨야 한다는 항목도 일본 자율규제에서 배울 부분이다. 단순히 담당자를 정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개발사에는 부당한 행위를 막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형개발사들을 필두로 하는 업체들의 선도도 필요하다. 실제로 2012년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후 스퀘어에닉스와 세가, GREE, DeNA 등의 대형개발사들은 확률공개에 앞장서서 참가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넷마블과 4:33, 컴투스, 게임빌, 넥슨 등이 앞장선 셈이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는 지난 8일 강신철 회장 취임 이후 보다 강화된 새로운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에서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신뢰가 낮은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 개발사가 신뢰를 얻기 위해 만드는 새로운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은 최소 일본 가이드라인의 단점을 보완한 수준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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