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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카드뉴스] 3주. 학계가 10년 고민한 문제를 게이머들이 푸는데 걸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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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다미롱) 2016-03-23 14:55:49

게임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간 게임이 발전시켜 온 '재미를 위한 장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설령 그 대상이 지루하고 따분할 것만 같은 '학문'이더라도요. 


 


 

믿을 수 있으신가요? 게임이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요.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 이곳엔 수만 명의 게이머가 저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학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처럼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입니다. 허나 이들은 어떤 효소의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프로테아제 효소: 에이즈, 암 등 각종 난치병 치료의 열쇠. 그리고 10여 년간 과학자들을 괴롭힌 난제.

 

이것만 해독할 수 있으면 각종 난치병 치료도 시간문제건만, 어떤 최신 기술을 동원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첨단 현미경을 들여봐도 단백질 구조는커녕 뭉개진 스파게티 같은 1차원적 모양만 보여 도움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로 3차원 구조 시뮬레이션을 하려 해도 단백질 ‘종류’만 10만 개가 넘는 것을 AI에게 맡기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한 연구진이 독특한 생각을 떠올립니다. “컴퓨터의 단순 계산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사람들의 '직감'에 기대어 보면 어떨까?”

 

사람들에게 단백질 구성원리를 알려주고 그들이 만든 가상의 단백질 구조를 모아 프로테아제 효소 구조를 더듬어 보자는 아이디어. 

 

“이런 재미 없는 ‘노가다’를 누가 할까”라는 우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진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죠. “과정 자체가 게임처럼 재미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탄생한 퍼즐 게임 <폴드 잇>(fold it). 유저에겐 실제 단백질 구성원리에 따라 퍼즐(아미노산 사슬)을 배열하고 뒤틀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집니다. 보상이라곤 효율•안정적인 구조를 만들 때마다 높아지는 점수, 그리고 이 점수를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있는 점수판 뿐이죠.

 

하지만 이 단순한 장치가 만든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3주. 게이머들은 불과 3주 만에 학자들이 십여년 간 분석하지 못한 프로테아제 효소 구조를 파헤쳐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2011년 9월, 네이처 지에 ‘온라인게임을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 논문으로 등재됩니다. <폴드 잇> 유저 5만 7천여 명은 ‘공저’로 기록됐죠.

 

이 결과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게임이라는 틀, 재미라는 장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구나.” “이 열정을 돋보기처럼 모아 불씨를 피울 수 있구나” 그리고 이 영감은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2014년, 신경 지도를 그리는 퍼즐 게임 <아이 와이어>는 출시 2년 만에 망막 신경세포 95개의 구조를 밝혀냅니다. 2015년, 유명 SF 샌드박스 게임 <이브 온라인>은 게임 안에 인간 세포를 비교/분석하는 미니게임을 추가, 서비스 하루 만에 약 40만 개의 데이터를 확보합니다. <이브 온라인>과 세포 분석 프로젝트 컬래버레이션을 주도한 MMOS는 아예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를 다수 만들 예정이라고 하고요.

 

어떤 이들은 이야기합니다. 게임은 도피다. 현실엔 쓸모 없는 시간 때우기라고요. 

 

하지만 이들은 이야기합니다. 즐기는 것만큼 멋진 동기가 어디있냐고, 왜 이 멋진 장치를 배척하기만 하냐고요. 

 

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10년 고민을 게이머들이 3주 만에 해결했듯이 게임이야말로, 재미야말로 세상을 가장 빨리 변화시킬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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