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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스타 인디 개발자의 좌절: 게임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기획 의도를 무시한 퍼블리셔의 부분유료화 요구와 그 치명적 후유증

임상훈(시몬) 2014-11-12 17:59:59

그와 그의 게임은 비운을 겪었다. 퍼블리셔나 투자자에 의해 그런 비운을 겪는 게임이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에게는 씁쓸한 경험이었겠지만, KGC 2014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접한 건 나에게 행운이다. 한국의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화 나누기를 기대한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Intro - 김종화와 <룸즈>에 관해


김종화. 그는 한국 인디 게임계의 기린아(麒麟兒)다.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2006년 그가 만든 <룸즈>(Rooms: The Main Building)는 대한민국 인디게임 공모전 대상을 탔다. 이듬해 샌프란시스코의 IGF(독립게임 페스티벌) 학생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전해 출품한 <팔레트>도 IGF의 파이널리스트였다. 두 게임 모두 퍼즐 장르였다.


IGF 파이널리스트(최종심)는 전 세계 출품작 중 약 1~5% 정도만 뽑힌다. 역대 IGF에서 수상한 우리나라 게임은 2001년 넥슨의 <택티컬 커맨더스>(Shattered Galaxy)와 이 두 작품 밖에 없다. 학생 부문에서 수상한 이는 김종화가 유일하다. 그것도 2년 연속이었다.

 


2013년 5월 LA에서 만난 김종화. 그는 당시 <룸즈 2>의 부분유료화와 USC 졸업작품 <스페이스 마에스트로>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룸즈>. 한국 인디 게임의 경이(驚異)였다. 플레이는 간명하다. 방을 옮겨 저택의 출구를 찾으면 된다. 방 안의 각종 사물을 이용해 이리저리 뒤섞인 방들로 이루어진 저택을 탈출해야 한다. 저택 깊숙이 들어갈수록 다양한 사물이 나타난다. 퍼즐을 더 복잡하고 흥미롭게 해준다.


세계 양대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 IndieCade)에서 얻은 명성은 상업적 성과로 이어졌다. 2008년 미국 Big Fish Games를 통해 PC 다운로드 시장에서 판매됐다. 2010년 허드슨 소프트와 닌테도 유럽를 통해 NDS와 Wii로도 나왔다. 모두 국내 인디 게임 최초의 사례였다. 전 세계 약 40만 장이 팔렸다.

 


 

김종화는 더 큰 세상을 꿈꿨다. 한국은 인디 게임이 성공하기 너무 척박한 땅이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인터랙티브 미디어&게임즈 대학원 과정에 들어갔다.


미국 생활에 적응할 즈음, 한국의 콘솔게임 개발사로부터 제안이 왔다. 모바일게임으로 <룸즈 2>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게임이 어떻게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는지.

  

 

룸즈 2의 제작과 의도치 않은 퍼블리싱 계약


김종화는 애초 <룸즈 2>를 개발할 생각이 없었다. 퍼즐은 두 번 연속했으면 됐다.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쿠노 쪽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USC 선배였다. 2011년 7월, 태평양을 왔다갔다하는 공동 개발이 시작됐다. 기획과 디렉팅은 김종화가 잡고, 그래픽과 프로그램은 쿠노인터랙티브(이하 쿠노)가 맡았다.


2012년 11월 <룸즈 2>(Rooms: The Unsolvable Puzzle)가 나왔다. LG 스마트월드 마켓에 출시됐다. 나온 첫 주 1위에 올랐다. 세계적 호응을 얻었던 <룸즈>의 저력을 확인했다. 다만, 시장이 작았다. LG 휴대폰 사용자만 대상이었다. 게임의 인지도는 바닥이었다. 3개월 독점 계약 기간 동안, 다른 마켓에는 갈 수 없었다.


발 빠르게 컴투스가 접근했다. 게임을 글로벌하게 퍼블리싱하기에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쿠노는 컴투스와 계약했다. 1년 동안 우여곡절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2013년 10월, iOS와 안드로이드 버전이 출시됐다. 컴투스의 요구대로, 무료(F2P, 부분유료) 모델로 나왔다. 제목도 <더맨션>(The Mansion: A Puzzle of Rooms)으로 바뀌었다.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출시 첫 달 iTunes에서는 166곳에서 피처드(featured)됐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추정) 다운로드가 발생했다. 모든 애플리케이션 기준, 다운로드 1위에 오른 국가가 4개나 됐다. 그 해 한국 구글 플레이를 빛낸 15개의 게임 중 하나로 선정됐다.

 

 선전했던 다운로드 국내 순위.


 돈은 벌리지 않았다. F2P 버전의 한계였다. 한국에서는 11월 24일 전체 게임 중 6위, 앱 중 8위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같은 날 매출 순위는 게임 중 320위, 앱 중 503위였다. 다른 나라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암울했던 매출 순위.


 수익모델에 문제가 있었다. 수익모델을 설계해선 안 될 게임이었다. 수익모델이 들어갔다. 잘못이었다.

 

  

게임이 망가지던 과정 1 - 억지로 들어간 부분유료화 요소들


김종화는 “애초 계약은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개발 진행 과정에서 ‘두 버전으로 나오기는 어렵다’는 퍼블리셔 의견이 나왔다. 스리슬쩍 유료 버전은 없어졌다”고 밝혔다.


<룸즈>나 <룸즈 2>는 퍼즐 게임이다. 퍼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캔디크러쉬사가>나 <애니팡> 류는 랜덤성 게임이다. 무한대의 변수가 발생한다. 완벽한 공략이 불가능하다. 어드벤처 풍의 <룸즈 2> 같은 게임은 전혀 다르다. 정답 해결책이 있다. 요리조리 보며 그 해결책을 찾는 게 게임의 핵심 재미다.


김종화는 게임의 특성 상 유료 버전이길 원했다. <룸즈>도 이미 40만 카피가 팔린 경험이 있었다. 컴투스는 달랐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대세인  부분 유료를 밀어붙였다.


쿠노는 이미 계약금을 받았다. 출시해야 추가 수익이 가능했다. 부분 유료화 버전이 안 나오면 출시할 수 없었다. 김종화는 결국 퍼블리셔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이템을 팔아야 했다.

 

핸드메이드게임은 김종화가 세운 개발사다. 

 

 

고민하며 방을 옮겨 저택의 출구를 찾는 퍼즐에 여러 유료화 모델이 추가됐다. “퍼즐의 특성 상 다음 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리저리 실험해 보기를 권장한다. 재시작은 게임의 일부”라는 김종화의 기획 의도는 무시됐다. 억지로 들어간 주요 부분유료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플레이 수를 제한하는 ‘열쇠’(<애니팡>의 하트)

다음 맨션 언락(Unlock, 열기)
이동 횟수 늘리기 & 이동 횟수 제한 없애기

퍼즐 쉽게 풀어주는 1회성 아이템

아이템 영구 효과를 주는 코스튬

잘못된 판단이었다. 게임의 기획 의도와 함께, ‘구글신’도 무시됐다. 유저들은 굳이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살 필요가 없었다. 구글에 검색하면 쉽게 정답이 나왔다.

 


 

플레이 수를 제한하는 열쇠는 론칭 이후 유저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1차 업데이트 후 사라졌다.

 

 

게임이 망가지던 과정 2 - 의미없는 경쟁 요소의 도입


일단 무료 버전으로 게임을 뿌린 퍼블리셔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찌됐건 매출을 올리려면 인게임 아이템을 팔아야 했다. 아이템이 안 팔리면, ‘아이템을 사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다른 게임들에 있었던 ‘유저 간 점수 경쟁 시스템’ 도입이 요구됐다.


김종화는 “애초에 남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혼자 퍼즐을 푸는 성취감과 스토리를 알아가는 재미를 주는 게 핵심인 게임”이라고 저항했다.


퍼블리셔의 논리는 간단했다. ‘사람들 경쟁 좋아한다.’


어거지로 플레이 점수를 환산했다. 방 이동 횟수, 캐릭터 이동 횟수, 아이템 사용 횟수를 점수로 카운트했다. 스코어보드(점수표)와 리더보드(순위표)가 들어갔다.

 


 

“터치 한 번 더 하는 게 치명적인 약점인 모바일게임에서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리더보드를 꾸준히 처음에 보여줬다. 레벨 선택 화면, 레벨 시작 전, 게임오버 화면 등 곳곳에서 리더보드를 계속 나왔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쟁심을 부추켜야 한다’는 퍼블리셔의 의지를 따른 것이었다.


결과는 퍼블리셔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유저는 경쟁을 위해 아이템 대신 구글을 이용했다. 공짜인 최적의 솔루션과 유료인 아이템의 대결 결과는 뻔했다.


퍼블리셔는 이 문제를 풀 방법을 원했다. 또 다른 ‘아이템을 살 이유’가 추가됐다. 아이템을 쓰면 최적의 솔루션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사태가 나타났다. 1, 2, 3등 다들 점수가 똑같다.

 


 

유저들이 아이템을 사지 않자 퍼블리셔는 두 가지 더 강력한 요소를 넣기를 원했다. 구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시간을 점수 요소로 넣기

아이템을 사야 깰 수 있는 레벨 넣기


다행히 이런 요소는 들어가지 않았다. 김종화는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런 요소는 사기행위다. 모든 레벨은 아이템 없이 깰 수 있어야 한다. 이건 퍼즐 게임으로서 유저와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게임이 망가지는 과정 3 - 완전히 달라져버린 게임


본래의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게임은 바뀌었다. 게임의 주요 요소부터 세부 사항까지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게임의 본질은 바뀔 수 없었다. 머리를 굴려가며, 솔루션을 찾고, 스토리를 즐기는 퍼즐 게임의 뼈대 위에 덧붙여진 이런저런 부분유료 모델들은 제대로 구실을 하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시스템을 구겨 넣었다. 구겨 넣은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이를 ‘땜빵’하기 위해 더 억지스러운 시스템을 구겨 넣었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됐다. 추가로 들어가는 애셋, 메뉴, 기능들이 불어났다. 게임은 지저분해졌다. 간명하게 이해하고 집중하는 게임에서 설명할 게 많은 복잡한 게임이 돼버렸다. 부차적인 추가요소들 때문에 본질적인 재미가 가려져버렸다.


아예 사라져버린 것도 있다. 1달 여간 쿠노 측 아티스트가 작업한 3D 맨션 UI(유저 인터페이스)가 폐기됐다. 이 UI에는 추가되는 각종 요소들을 다 집어넣을 수 없었다. 계속 추가될 테마의 확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김종화는 “공들여 작업한 아티스트 분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래, 그 영상을 넣었다.

 

 

[새 창에서 영상보기]


게임을 고치는 과정에서 개발 기간은 늘어났다. 개발비도 불어났다. 유저에게 가르칠 것도 많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위에서 익히 봤듯이, 답이 나올 수 없는 과정이었다.


<더맨션>은 게임을 시작할 때와 끌날 때, ‘Helpful Items’을 친절하게 보여줬다. 유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저의 반응은 달랐다. “현질 유도와 게임 사칭 1~9는 아이템 없이 못 깬다. <룸즈>라는 PC게임 사칭했다.”

 


 

게임을 수정할 당시 김종화는 USC 졸업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낮에는 졸업작품을 만들고, 밤에는 <룸즈 2>에 매달리고 있었다. 기획 의도와 배치되는 수정 작업은 스트레스는 더욱 쌓여갔다.


“솔직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론칭하기 전부터 이미 이 게임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개발자들이 같은 생각이었다.”

  

 

반성과 교훈 - 기획자로서 지켜야 할 선을 지켜라


김종화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룸즈 2>는 <더맨션>이 되었나’는 KGC 강연을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그의 인트로는 다음과 같았다.


“엄청 실패한, 제대로 말아먹은 게임 이야기다. <더맨션> 나온 지 딱 1년이 지났다. 적기라고 생각했다. 특정 회사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담당자의 문제지, 회사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퍼블리셔의 요구에 의해 프로젝트가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 망가지는 과정을 기획자 입장에서 밝히고 싶었다. 디렉터로서 이를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의미도 있다.”

 


 

처음 강연을 하기로 했을 때는 그는 ‘빡침’ 상태였다. 강연을 준비하고, 검토하면서 원작자와 디렉터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쨌든 디렉터로 들어간 작품에 대해 까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에 나섰다.


“퍼블리셔나 투자자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산으로 간 게임이 얼마나 많은가. 이 사례를 통해 ‘이렇게 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중요한 게임의 방향은 윗사람들이 다 결정했고, 그 하나가 결정되자 모든 것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바뀔 수 밖에 없었다.그럼에도 ‘나를 밟고 가라’고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만 돌아갔다. 이 게임을 통해 현실적으로 얻은 건 없다. 2년 반의 시간과 유, 무형의 재산을 투자했지만, 오히려 물질적으로는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그도 그 과정을 통해 게임 크리에이터로서 성장했고, 값진 교훈도 얻었다.


그가 강조하는 교훈은 기획자로서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면 끝까지 지키라는 것.

 


 

“게임 기획자로서, 게임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갔을 때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 선을 넘어오려는 압박이 있다면, 위 사진의 사람처럼, 땅바닥에 드러 누워서라도 지켜야 한다.”

 

  

새로운 시도 - 룸즈: 불가능한 퍼즐, 스팀 버전으로 내년 2월에


김종화는 <룸즈 2>를 버리지 않았다. <룸즈: 불가능한 퍼즐>(Rooms: The Unsolvable Puzzle)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2월 1일 스팀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물론, 게임 내 아이템은 모두 삭제된다.


게임은 출시 전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도쿄게임쇼 인디스트림 어워드에서 ‘베스트 아트상’을 받았다. 스팀에 등록한 지 53일 만에 그린라이트를 통과(Greenlit)했다. (관련기사)

 

 

김종화는 “원래 이렇게 나왔어야 했던 것이 좀 늦었지만, 이제 나오게 됐다. <룸즈>의 진정한 버전은 내년 2월 1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맛보기 영상을 아래 공개한다.

 

 

 

[새 창에서 영상보기]


컴투스는 여전히 부분유료 버전의<더맨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올해 봄 김종화와 쿠노 측은 컴투스를 찾아갔다. 스토어에서 게임을 내리거나, 무료 버전을 다시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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