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과 규제, 그리고 게임의 예술성에 대해 논하는 ‘게임, 중독인가 예술인가?’ 행사에서 도발적인 질문이 제기됐다. 예술성 없어 보이는 대중게임도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느냐는 방청객의 반문이다.
행사의 사회를 담당한 게임인연대 김정태 교수는 논의가 길어질 것을 우려해 질의를 행사 뒤로 미루려 했지만, 오히려 패널들이 적극적으로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게임의 예술성에 대한 방청객과 패널들의 솔직한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
“너무 예술적인 사례만 말하는 것 아닌가? <리니지>같이 중독적인 게임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애니팡>을 하며 예술성을 느끼지 못했다”
질문이 처음 제기된 것은 패널들이 게임의 예술성 사례 제시와 이에 대한 의견 발표가 끝난 후였다. 패널들이 사례로 돌고 나온 것은 <마인크래프트>의 거대 구조물이나 <퐁>에 대한 헌정 영상. 게임의 재미기법을 활용한 각종 게이미피케이션 사례였다.
질문자는 이러한 사례에 대해 “문제시되는 게임은 빼놓고 예술성 있는 사례만 꼽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오히려 게임중독으로 문제시되는 <리니지> 등의 온라인게임이나, 한때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애니팡> 같은 일반적인 사례를 꼽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게임에 대해 “게임이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예술성을 가진다고 하는데, 나는 <애니팡>을 하며 옛 경험을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리니지>의 인첸트 같은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대부분의 게임에 예술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반문했다.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영화는 ‘포르노’다. 그렇다고 영화가 예술이 아닌가?”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포르노가 잘나간다고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술’의 정의에 대해 오히려 반문했다.
그는 “회화나 무용, 음악, 영화 모두를 관통하는 기준은 없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그에 합당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로 인정받은 후 그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 자리는 너무 중독이라는 시야에만 시달린 게임이 이런 가치도 잇고 이렇게 변화하겠다고 마련한 자리다”라고 답했다.
진 교수는 이와 함께 업계 종사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성을 추구하고 쟁취하라고 주문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르네상스 시절의 회화가들이었다. 당시 회화가들은 예술가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에는 원근법이 필요하고, 이것에는 기하학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앞에서 결국 예술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림쟁이’에 불과했던 이들이 어느덧 지성과 예술성을 가진 화가로 탈바꿈되었다. 그는 이런 사례를 이야기하며 모든 게임이 중독성(?)을 가지듯 모든 게임의 가치도 예술성을 가진다고 답했다.
“나는 <애니팡> 고수 플레이를 보며 ‘예술’이라 느낀다. 예술의 가치는 우리 주변에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동연 교수는 방청객의 질문에 “지하철에서 <애니팡> 고수의 플레이를 보면 ‘와 예술이다’라고 느낀다”라며 방청객의 질문에 답했다.
그의 이 같은 답변은 농담이 아니라 예술이 가진 또 다른 속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미학에서 예술이란 흔히들 생각하는 ‘예술성’이라는 정의는 물론, 사람들이 다른 이가 달성한 범상치 않은 결과물을 보고 감탄하는 무언가도 예술이라고 칭한다.
이동연 교수는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며 <리그 오브 레전드>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니지> <애니팡>과 같은 게임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팝아트의 예를 들며 “예술이 별거인가? 오늘날 대표적인 회화예술이 된 팝아트도 역으로 예술에 대한 반기가 예술이 된 사례다. 우리가 보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대중적인 게임이 예술이 아닐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중독적인 게임 규제하면 결국 예술성 있는 게임이 사라질 것이다”
류임상 뉴미디어아티스트는 중독적인 게임을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적인 게임을 규제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가 우려한 것은 게임의 중독성을 이유로 업계에 금전적인 것을 요구하는 법안 자체다.
“중독을 이유로 기금을 걷게 되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큰 회사만 살아남게 된다. 영화로 치면 작은 규모의 예술영화는 씨가 마르고,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대형 영화사만 살아남는 셈이다.” 그는 이 같은 비유를 하며 오히려 게임을 중독과 예술이라는 프레임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오히려 설사 예술성이 부족한 게임이 있을지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섣불리 규제하면 예술성 있는 다른 게임까지 위험하다는 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