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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소프트의 무기는 ‘관용’, 최우선 과제는 페리아연대기 출시”

넥슨 독립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인터뷰 시리즈 ④ 띵소프트 편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반세이(세이야) 2018-07-24 18:43:58

넥슨은 지난 4월 개발 조직에 큰 변화를 줬다. 중앙에서 통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7개 독립 스튜디오가 새 게임의 개발이나 스튜디오 운영 등에 대해 자율권을 갖게 된 것이다. 넥슨은 각 스튜디오를 매출 외에도 게임성이나 의미 있는 도전 등 여러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넥슨이 스튜디오에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넥슨의 ○○가 아니라, '○○ 스튜디오'라 불릴 정도로 각자 독자적인 색과 브랜드를 가지는 것. 즉, 넥슨은 개발사로서 기조와 미래를 각 독립 스튜디오에게 맡긴 셈이다.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의 체제 개편을 맞아, 각 독립 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를 만나 그들이 꿈꾸는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정상원 부사장은 2년 전 NDC 기조강연에서 ‘적자생존의 역설’ 이야기를 꺼냈다. 환경에 적응해 살아 남은 개체들도 환경이 바뀌면 멸종한다는 의미다. 게임업계 역시 “지금 환경에 적응해 시장을 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바뀔 때를 대비해 끊임없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날 정 부사장이 전한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정 부사장은 7개 스튜디오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조정하며 동시에 띵소프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게 됐다. 그리고 여전히 ‘다양성과 생존’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조직의 관용’을 강조했다. 디스이즈게임이 띵소프트 정상원 총괄 프로듀서를 만났다. 


정상원 띵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통일된 비전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 무기로 승부하는 조직

 

띵소프트는 어떤 게임들을 만들고 있나?

 

신규 개발로는 <페리아연대기>, 중국에 서비스할 <BnB 모바일>, 미공개 신작 2개.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은 <도미네이션즈>. 여러분이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페리아연대기>는 망할 위기를 넘기고 아직 개발 중이다. (웃음)

 

<페리아연대기>는 힘들게 힘들게 개발하고 있다. 지난번 지스타(2016) 때 충격적인 결과를 보고 한 번 크게 갈아엎었다. 다시 열심히 만들어서 이번 지스타쯤엔 저번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물을 내자는 게 목표다.

 

 

게임 단위로 팀이 나눠져 있나?

 

맞다. 근데 띵은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좀 더 팀별 색이 강한 편이다. 다른 스튜디오는 게임별로 팀이 나눠져 있지만 한 명의 총괄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공통의 비전을 가지고 간다. 띵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페리아연대기> 같은 팀을 비롯해, 회사적으로 정해진 사안에 따라 계획적으로 개발하는 팀들이 모여 있다. 

 

띵에 있는 게임 중 몇 개는 스튜디오 자체 판단에 맡길 수 없는 것들이다. 스튜디오 자체 판단으로 게임의 방향을 바꾸거나, 접을 수 없는 것들이지. <BnB 모바일>은 텐센트와 퍼블리싱 계약이 돼 있어서 스튜디오 마음대로 해 보라고 맡길 수 없는 게임이고. <도미네이션즈>도 비슷하고. 

 

이미 안정적으로 개발하던 팀들이라 스튜디오에 편입되고 나서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건물(넥슨네트웍스 띵소프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넥슨 본사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렇게 나눠져 있다.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오가고 있고. 넥슨 제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곧 서울 사무실에 합류할 예정이다.  

 

 

띵소프트는 넥슨 본사, 넥슨네트웍스 판교센터, 넥슨 제주 세 곳에 나뉘어 있다. 제주 팀은 곧 서울 스튜디오에 합류할 예정이다. (사진: 넥슨 네트웍스 판교센터)

 

 

정상원 부사장은 어떤 역할을 하나? 7개 스튜디오를 조정하는 동시에 띵을 총괄하는데.

 

말한 대로 어느 정도 하이브리드한 역할을 하고 있다. 7개 스튜디오를 서포트하면서, 띵소프트를 관리하는. 띵 내부 팀들 내가 평가하고, 궁극적으로는 7개 스튜디오도 평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예전보다 내가 프로젝트를 들여다볼 시간이 좀 생겨서 <페리아연대기>나 <BnB 모바일>, 신규 프로젝트 기획서도 보고 방향성 얘기도 같이 나누고 있다.  

 

일단 우리가 포커스 하고 있는 것은 <페리아연대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 나머지 팀들은 말했다시피 정해진 계획에 따라 개발하고 있고, 디렉터들이 워낙 잘 하고 있으니까. 나는 팀이 끼리끼리 잘 해 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 여긴 어떤 DNA나 통일된 비전을 가지고 가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것, 독창적인 것들을 하고 있고, 하려는 곳이다. 

 

 

올해 NDC 경영진과의 대담에서 ‘스튜디오 수장중에 말 듣는 사람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웃음)

 

맞다. 난 그게 되게 좋다고 생각한다. 본인들 원하는 대로 하라고 스튜디오 나눠 놓은 건데 말을 안 들어야 맞는 거지. 만약 어느 스튜디오가 ‘우린 공산주의야! 하면서 급여를 다 통일시켜버린다거나, ‘우린 출근을 아예 없애버릴 거야’ 이런다면 그런 것들은 못하게 하겠지만. (웃음)

 

말을 안 듣는 게 넥슨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오너가 결정하는 회사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자, 우리 이제부터 이 게임 할 거야’ 하면 똘똘한 사람 다 붙어서 완성해 낸다. 엄청나게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근데 넥슨은 오너가 제주도 가 있고 회사에 관심이 없다. 엔씨, 넷마블처럼 리소스 확 쏟아부어서 고퀄리티로 만들어 내는 걸 못 하는 반면 이것 저것 다양하게 한다.  

 

넷마블은 의장이 ‘자, 스타워즈!’하면 돈이 얼마가 됐든 사 오지 않나. ‘마블!’ 하면 마블 사 오고. (웃음) 우리도 예전에 마블이랑 얘기했었다. 조건이 안 맞아서 한참 얘기하다 무산됐지. 그때 내부에서 의견이 많았다. ‘그 조건으로 하면 안 된다! 디즈니랑 하면 안 돼!’ 이런 얘기들. 이러다 깨졌는데 넷마블이 <마블 퓨처파이트> 내놓더라고. (웃음) 

 

 

“최우선 목표는 ‘페리아연대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띵소프트에도 디렉터들이 있을텐데, 그들은 어떤가. 

 

그 사람들도 많이 대들지. 지금 다른 프로젝트 하나 들어가려고 얘기 중인데 내가 ‘이거 꼭 넣어야 돼’ 그러면 ‘그걸 왜 넣습니까’ 하고. 내가 ‘제발 말 좀 들어’ 이러는 상황이다. (웃음) 내가 채용한 사람은 대부분 다 그렇다. ‘이거 하자’ 하면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하는 친구들. 내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많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하려면 ‘관용’ 정신 갖춘 조직 돼야 

 

띵소프트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나?

 

일단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한다. 대여섯 명 설득이 되면 ‘우리 이거 한 번 질러보자’ 하는 형태로 올라오는 게 대부분이다. 아이디어보단 할 수 있는 멤버가 되냐는 게 큰 이슈고. 예전부터 그랬는데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 보통 프로젝트 하는 중에는 제안이 거의 없고, 하던 것 끝나고 나면 그때 많이 올라오지. 

 

옛날에 인큐베이션 활발하게 돌아갈 때는 라이브에서 개발하던 사람들 100명 가까이 신규 개발로 끌어냈었다. 결과는 별로 안 좋았지만.

 

 

결과가 별로 안 좋았다고 했지만 인큐베이션의 가치는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띵에서 계속 해 볼 생각이 있나?

 

결과가 안 좋았다기보단 돈을 못 벌었지. 가치는 당연히 있었다고 본다. 네오플 쪽에서도 그런 식으로 프로젝트 몇 개 하고 있고, 원스튜디오도 하고 있고. 띵에서도 물론 할 수 있지. 주먹구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게임업계는 애드립이 강한 동네라서 ‘이거 괜찮은 것 같애’ 하면 ‘가자!’ 하면서 가기도 하고, 필 받아서 가다가도 ‘이거 안 되겠는데’ 하면 접기도 한다.  

 

 

독특한 게임성으로 주목받은 네오플의 ‘이블팩토리’. 이와 같은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고.

 

 

구성원들이 다양한 것, 독창적인 것을 시도하게 하기 위해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프로젝트 접혔을 때 너무 세게 뭐라고 하거나, 해체 안 시키고 안 자르면 된다. 잘 했을 때는 인센티브로 커버해 주면 되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거 잘 안될 것 같아요. 잘 되는 장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사람들이 스스로 검열할 때 “아니야. 그거 해도 돼. 정말 될 거라고 믿으면 해 볼 수 있지. 네오플이 돈 벌어주고 있는데” (웃음) 이런 소리 하면서 약간의 문을 열어두는 것. 그런 거지.

 

 

실패해도 된다?

 

그런 얘긴 너무 흔하고, 눈치 보다 실패하나 마음대로 해서 실패하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마음대로 해 보고 실패하는 게 낫단 얘기지. 마음대로 해 보고 실패해야 억울하지나 않으니까. 그런 걸 옆에서 뽐뿌질(?) 하고 있다.

 

 

스튜디오 초창기긴 하지만, ‘이런 거 저런 거 하고 싶다’ 제안은 많이 하는 편인가?

 

없진 않은데, 요즘 많이 줄었다. 시장 상황이 그렇다. ‘설마 이런 걸 시켜주겠냐’라는 의식이 강하다. 어쩌다 한번씩 들어오는 것들 보고, 괜찮아 보이면 시켜주고.  

 

 

 

 

제안을 평가하는 입장인데. 평가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나?

 

오픈된 시각으로 봐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게 잘 될 것 같다고 앞에서 막 말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고, 모바일 RPG 잘 되니까 그거나 만들자’ 하면 제안이 의미가 없지 않나. 제안을 볼 때 ‘이게 정말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보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안된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길이 어렵다는 건 너도 알지? 도전해 보면 좋은데, 많이 준비해야 할 거야. 나는 이걸 열린 시각으로 보고 결정할 거야.’ 이런 시각으로 봐 줘야 독창성 타령을 해도 명분이 있지. 100%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인이나 팀의 노력도 필요하다. 왓스튜디오가 처음에 공룡 서바이벌 만든다고 했을 때 내부에선 ‘왜 하필 공룡이야?’ 했었다. 근데 왓스튜디오가 게임 비주얼로 그런 목소리 다 죽여버렸거든. 이런 건 자기들이 보여줄 필요가 있지. 티라노사우르스 나와서 물어 뜯고 난리치니까 ‘이건 공룡이지만 좀 달라’ 생각하게 되고. 회사의 기대치를 끌어올리면서 가야 한다. 

 

물론 <듀랑고>는 작은 인디게임으로 테스트 한 번 하고 검증 단계로 넘어왔지만, 난 그 팀이 자신들 역량으로 프로젝트 사이즈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듀랑고’ 프로젝트를 키운 것은 왓스튜디오 본인들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기준을 어디에 두나?

 

능력이지.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성격이 나쁜데 능력이 좋으면 데리고 있을 거냐’고. 난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격 나쁜 건 세금이라고 생각하자는 주의다. 어떤 스튜디오는 성격이 나쁘면 능력을 깎아먹기 때문에 내보내야 한다는 곳도 있는데, 난 능력 좋으면 어디든 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튜디오에도 성격 나쁜 사람이 좀 있다. (웃음) 

 

띵소프트에는 내가 계속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다. 경력도 있고, 연식도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 들어온다면 배울 점은 많을 거다. 데브캣이랑 띵이 아마 평균연령이 제일 높을 텐데 데브캣 사람들은 넥슨에 오래 있었고, 띵엔 나갔다 들어온 사람들이 많고. 

 

 

능력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실행 능력. 정말 희안한 아이디어 던지는 사람들 있다. 근데 못 만들면 꽝이다. 내 기준에선 던지는 능력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잘 조화돼 있어야 결과적으로 능력이 좋은 것이다.

 

<페리아연대기> 기준으로 말하면 지금 필요한 사람은 ‘도전적으로 해 볼 사람’, ‘남들 안 하는 거 해 볼 사람’, ‘어려운 프로젝트 해 볼 사람’이다. ‘나는 이 바닥의 RPG를 다 알아’ 이런 사람은 필요 없고, ‘RPG의 문제점이 뭔지 다 알고 있어’ 이런 사람은 필요하고.

 

 

어려운 프로젝트의 의미는?

 

성공하기 어려운? (웃음) 가능성은 낮으나 좀 특이할 것 해 볼 사람이라고 하면 적당하겠다. 

 

‘<와우>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임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우린 그렇게 안 만들 거니까. 처음에 기획자 뽑을 때 굉장히 힘들었다. 면접 보면 ‘블리자드에선 말이죠...’ 이런 얘기만 늘어놔서. 

 

그래서 처음엔 경력자 말고 신입들 데리고, ‘자, <와우>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임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시작해보자’ 했었다.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에는 퀘스트 하나도 없이 MMORPG 만들었거든. 그땐 사람들이 왜 MMORPG를 했을까? 커뮤니티가 게임을 받쳐주고 있었다. <와우>가 등장하며 콘텐츠가 쏟아졌고, 콘텐츠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던 10년이 흘렀지. ‘자, 그럼 그다음엔 뭘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게 그간 띵 내부의 주요 논의였고.  

 

 

“‘와우’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임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2016년 ‘페리아연대기’ 첫 공개, 그 후 2년


<페리아연대기> 얘길 해 보자. 궁금한 게 많다. 띵이 지향하는 ‘다양한 시도’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아닌가?

 

제일 골칫거리지. (웃음) 재작년 지스타 나갔을 때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만들다 말았냐’라고 하고. 

 

 

업계에서 소문이 많았다. 접혔다느니,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느니.

 

접힌 건 아니고 난리 났던 건 맞다. 어떻게 보면 되게 넥슨스러운 고집이었다. 넥슨스럽다고 표현해도 되려나? 우리끼리 ‘쓸데없는 장인 정신’ 하고 있었는데, 이게 제대로 평가받을지는 모르겠다. 뭐 잘 만들어 봐야지. 

 

 

처음 봤을 때 새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트도 그렇고. 

 

카툰렌더링을 오래 연구했다. 퀄리티도 굉장히 높아서 진작부터 ‘이대로 내도 될 것 같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아트팀 실력이 정말 좋고, 기술적으로 연구도 많이 했다. PC 온라인에선 카툰렌더링을 근 10년 간 제대로 한곳이 별로 없거든. 그래서 <나루토> 같은 콘솔게임 보면서 계속 연구하고. 일본은 콘솔 쪽에서 이 기술을 꾸준히 성장시켰다. 

 

 

공개 당시 유저들의 엄청난 관심을 모은 ‘페리아연대기’

 

 

문제가 뭐였나.

 

그래픽이나 아이템 조립하는 방식은 신선하긴 했지. 근데 복잡성이 너무 높아졌다. 지스타 갔을 때 제일 문제였다고 생각한 게 일단 프레임레이트가 많이 떨어져서 유저들에게 나쁜 인상을 줬고, 아이템을 바닥부터 조립할 수 있는 방식이 유저들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진 것. 

 

예를 들어 가로등을 만든다 치고 일반적인 전개도를 보면 전구, 배터리, 스위치 이런 게 있고 그런 것들을 조립해 만들지 않나. 근데 <페리아연대기> 전개도를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고, 되게 복잡한 전개도라고 느끼는 거지.

 

당시 우리는 복잡해도 차근차근 배우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UI가 좀 복잡한 건 문제가 안 될 거라 생각했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얘기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었다.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의가 안 돼 있었다고 해야 할까. 

 

  

지스타 갔다 온 뒤 한 번 뒤집어지고 우리가 집중한 건 ▲일반적인 RPG 유저가 몇 시간이라도 할 만큼의 콘텐츠를 만들고, 오픈 월드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건 그다음으로 하자. ▲ UI는 최대한 단순화해서 뭔가 만든다 하더라도 아예 바닥부터 만들게 하지는 말자. 예를 들면 ‘칩’처럼 구성품들을 모듈화 해서 좀 갖다 쓰기 쉽게 하자. 이렇게 구조적으로 내용을 많이 바꿨다. 재작년 이후로는 그런 작업들을 주로 했다.

 

지금은 게임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전투 방식도 카드 배틀 방식이었는데 그게 아닌 걸로 바뀌었고. 근데 게임의 기반인 UCC나 모드 만드는 것, 유저가 파이썬으로 코딩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게임을 좀 더 ‘게임같이’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닌, ‘게임 같아 보이는 것’?

 

<마인크래프트> 접속하면 그냥 맨땅에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근데 <페리아연대기>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본 거다. 옛날엔 거기까지 만들고 도구를 주면 ‘유저들이 알아서 월드를 만들겠지’ 했는데 지스타 갔다 오니까 유저들이 그렇게 안 할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일단 <마인크래프트> 세상이라 해도 만들 수 있는 구조물도 좀 보여주고, 즐길 거리를 좀 준 다음에 ”자, 너도 만들 수 있어” 하기로 한 거지. 

  

 

“‘마인크래프트’처럼은 안 된다고 판단했다. ‘페리아연대기’는 ‘마인크래프트’가 아니니까.”

 

 

지금 6년, 7년 정도 만들었나?

 

올해로 7년 넘어가고 있다. 엔진을 자체 제작하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 엔진에다 지형 만드는 게 오래 걸렸다. <마인크래프트>도 땅 파 내려가서 던전도 만들고 그럴 수 있지 않나. 그런 식으로 다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야 진정한 의미의 유저 창작이 가능하다고 봤다. 콘텐츠 업데이트되면 한 번 싹 소비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카툰랜더링 이용한 때깔 좋은 그래픽 같은 건 이미 2~3년 전에 작업이 끝났다. 중요한 건 알맹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을 유저들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 근데 여기 너무 집중하다 보니 게임 전체 완성도가 무너진 거다.

 

아마 지금 잡고 있는 작업들이 끝나면 올해 지스타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못 나가고 망할 수도 있고. (웃음) 예전에는 맨날 새로운 것 찾는다고 리서치만 하고 앉아 있었지. 지금은 그거 스톱하고 ‘게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독창성과 파격도 챙기면서 가려 한다. 예를 들어 레벨업 방식으로 성장하는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시도 같은 것들. 

 

 

그 구조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나?

 

RPG가 왜 재미가 없을까? 이유는 하나라고 본다. 애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인생이 재미없는 거랑 똑같다. 학교 가서 앉아있으면 시험 보지 않나. 인생은 성적순. 딱 하나의 기준에 따라 서열이 쫙 매겨지는 거다.

 

이어령 전 장관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학생이 360명이 있는데, 360명이 원하는 방향이 다 다르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겠냐. 왜냐면 360개 방향으로 각각의 방향에서 자기가 다 1등이니까. 누군가는 달리기 잘 하는 게 좋고, 누구는 화장 잘 하는 게 좋고. 근데 우리나라는 성적이라는 딱 하나의 기준. 그것도 영어, 수학 따로 매기는 게 아니라 전체 과목의 평균 점수 하나로 서열을 매기는 거지.  

 

 

RPG도 마찬가지다. 게임에 접속하면 ‘전투력’ 하나로 매겨지는 서열. 다들 거기 목을 맨다. 전투력을 올릴 수 있는 콘텐츠 외엔 모든 콘텐츠가 다 쓸데 없어진다. 책을 읽고 이해한 다음 문제를 풀고 답을 내는 게 공부지 않나. 근데 옆에 있는 애는 학원 가서 이걸 압축해서 배워버린단 말이지. 그럼 나도 학원 가야 되고. 옆에 있는 애는 더 유명한 학원 가고. 얘도 학원 얘도 학원 더 좋은 학원. 몇 자리 안 되는 곳에 앉기 위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이다.

 

RPG도 얘가 아이템 좋은 거 있네? 나도 아이템 파밍해야 하고. 모두가 아이템 경쟁하는데 정작 정해진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은 몇 안 되고. 개발자들이 준비한 퀘스트니 스토리니 아무 쓸모 없어지고. 퀘스트에서 백날 ‘얘는 술을 좋아하니까 저기 주점 가서 찾아보세요’ 해 봤자 유저들은 검색해서 좌표 찍고 퀘스트 몰아서 해버린다. 

 

<메이플스토리2>만 봐도 택시 타고 왔다 갔다 하고 집 꾸미고 이런 콘텐츠 다 있다. 근데 게임에 레벨이 있으니까 유저들이 ‘야, 왜 집 만들고 있어? 레벨업 해야지’ 하면 집 꾸미던 유저는 던져놓고 레벨업 하러 가는 거다. 왠지 자긴 뒤쳐지는 것 같으니까. 

 

‘메이플스토리2’ 건설 콘텐츠

 

레벨업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모든 게임이 <리니지>처럼 뒤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필요 경험치가 많아져서 ‘게임 10년 해도 레벨 XX 못 됩니다’ 이렇게 할 거 아니지 않나. <리니지>는 아이템 거래라도 있으니 열심히 하지. 레벨 확장되면 막 달려서 다 끝내 버리고 ‘다음 꺼 주세요’하면 개발팀은 ‘어 얘네 콘텐츠 다 깼네’하고 막 만들어서 내놓고. 그럼 유저들은 또 한달만에 끝내버린다.

 

그게 RPG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어떻게든 다양한 목표를 만드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게임에 뻔히 레벨업 있고 아이템 있는데 다양하게 게임을 하라고 해 봤자 유저들이 그걸 하겠나. 게임 시스템이 그 다양한 목표를 서포트 해야 한다. 고등학교라면 다 수능 볼 필요 없이 요리 좋아하면 쉐프하고, 체육 잘하면 운동하고. 뭘 하든 ‘성장’이라는 니즈를 해결할 수 있으면 된다.

 

그걸 깨보려고 <페리아연대기> 시작했다. 아이템 제작 개념이 들어가고, 맵 제작이 들어가고, 퀘스트를 유저가 바꿀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들어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지. (웃음) 이상적인 것들 좇다가 시간이 쫙 늘어났다. 팀 사이즈는 다른 RPG 프로젝트에 비해 훨씬 작다. 작게, 오래 끌고 온 프로젝트다. 근데 더 안 내면 기록 깰 것 같아서 이제 내야 할 것 같다. 

 

RPG에 처음 접속하면 사람들은 마치 학습된 것처럼 레벨을 올리기 시작하는데. <페리아연대기>는 그런 것들이 없다고 봐도 되나?

 

처음엔 그게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갈피를 못 잡더라. 문제를 풀러 온 사람한테 ‘문제가 없어요’ 하는 모양새가 된 거지. 그래서 문제를 풀게 하는데, A1라는 문제를 푼 사람에게는 A2, A3.. 이렇게 쭉 문제를 푸는 선택지도 있고, A1을 푼 다음 B1를 풀었다가 C1을 풀어도 똑같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이게 시간 낭비가 되지 않도록. 

 

아저씨들이 모바일게임에 돈 쓰는 것도 그렇다. 똑같이 게임 시작했는데 백날 게임 들어가서 열심히 해봐야 집에서 노는 백수건달들 따라갈 수 없거든. 하루에 2시간도 게임 못하는데 들어가서 해 봐야 계속 뒤쳐지고. 그게 짜증나니까 돈 써서 1등하고.

 

철학적으로 아예 다른 스타일의 접근을 하려 했다. 그런 허망한 생각들을 하느라 프로젝트가 많이 늘어졌지.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바뀐 <페리아연대기>에서도 말한 것들이 유효한가.

 

유효하다. 예전엔 그런 것들의 연결 부위를 간과했는데 이번에 그걸 고친 거다. 원래 한 80%는 같고 20%가 달라야 ‘오! 신선해’ 하는데 이건 90%가 달라버리니까 ‘신선해’가 아니라 ‘이상해’라고 인식해 버리더라. 그래서 지금은 ‘신선해’라는 첫인상을 주고, 뒤로 갈수록 ‘이런 세계가 있었어?’라는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

 

<마비노기>를 생각해 보자. <마비노기>에서 양털을 깎는 이유는 아이템 만드는데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근데 양털만 깎아도 던전 들어가서 사냥하는 것과 똑같은 효율을 가져다준다면 그냥 24시간 양털 깎으면 되겠지.

 

이 얘길 왜 했냐면 만약 <페리아연대기>에 누군가 맵 하나를 만들었다 치자.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이런저런 장치를 넣어서 적당한 난이도로 만들고 ‘공주를 구하라’라는 퀘스트도 만들어 뒀다. 그리고  또 누군가 와서 1번 깰 때 골드 100원, 20분 안에 깨면 만 원 준다고 규칙을 만들었다. 이걸 넥슨이 하면 욕먹는다.

 

이걸 유저가 할 수 있게 만들어 두면 누군가는 맵 만들고, 누군가는 퀘스트 만들고, 또 누군가는 여기에 돈 걸어놓고 돈 놓고 돈 먹기 하고. 유저들이 이런 쓸데없는(?) 일들을 하는데 그게 던전 가서 몬스터 패는 거랑 성장에서 큰 차이가 안 나버리면 일방향 성장 문제가 해결되는 거다. RPG에선 이런 게 잘 안 되거든. 이게 기존 RPG와 큰 방향 차이다.  

 

 


 

의도는 참 좋은 것 같은데. 유저들이 의도대로 재밌게 놀아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지. 리스크가 높다. 이렇게 만들었는데도 사람들이 레벨업 하러 달릴 수도 있다. 근데 그렇다고 다른 답이 있나. 답이 없어서 그렇다. MMORPG 콘텐츠는 뭐가 나와도 3개월이면 끝이 난다. <메이플스토리2> 론칭 하고 한 달 만에 콘텐츠 끝났다. <메이플스토리2>도 처음 기획할 때 ‘사람들이 레벨업만 하겠니, 택시도 타고 집도 만들고 하겠지’ 했는데 다 필요 없고 쫙 달려서 한 달 만에 끝내 버린 거다. 콘텐츠를 만들어서 붙이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건 한계가 있다.

 

이렇게 유저들 속도 따라 콘텐츠 붙이면서 운영하는 게 힘드니까 여러 가지 기술을 써 가며 콘텐츠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이것도 안 먹히는 날이 온다. 그럼 더 힘들어지겠지.

 

 

‘어떻게든 MMORPG의 답을 찾아야 한다’라는 것인가.

 

냉정하게 말하면 유저들이 던전 뺑뺑이 돌아봤자 유저는 지겹다 그래, 회사는 서버비 네트워크 비용 들어가, 같은 몬스터 계속 만나면 안 되니까 몬스터 또 만들어야 돼, 이게 누굴 위한 사냥이냐는 거다. 그건 그냥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고, 재밌는 사냥은 전체의 한 10%? 나머지는 그냥 노가다다.

 

그럼 그 노가다 다른 걸로 하라는 거다. 지금 모바일은 그걸 자동전투 또는 돈 내, 이걸로 해결하고 있다. 또 모바일은 PC보다 콘텐츠 빨리 만들 수 있으니까 콘텐츠 쏟아부으면서 한 달 장사하는 거고. <페리아연대기>는 이 콘텐츠 고갈 문제를 좀 다른 방향으로 해결해 보자는 시도다. 근데 잘 안될 가능성은 반 이상이라고 본다.

 

 

성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게 레벨인데. 예를 들어 <페리아연대기>에서 요리가 좋아서 요리만 열심히 한다면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요리 레벨’이 되나? 아니면 다른 개념인가?

 

천기누설인데. (웃음) 생각을 해 보자. 레벨은 어쨌든 제한이 있다. <리니지>를 제외하고는. 지금 물은 건 ‘내가 성장한 걸 보여주는 방식이 뭐냐’는 건데, 레벨의 의미를 없애버리면 된다. 그 방식을 아주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레벨에 따라 쓸 수 있는 스킬이 더 생기지 않나. 근데 레벨과 스킬이 따로 노는 거다. 레벨로 성장을 말할 수도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수,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나 레시피. 이런 것들이 다 성장의 표현이 되는 거지. 굳이 사냥을 통해 세질 필요가 없는 것. 

 

 

“레벨은 어쨌든 제한이 있다. <리니지>를 제외하고는”

 

 

그런 개념이라면 ‘세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렇지. 여기부턴 철학적 문제다. 세지는 게 레벨이냐, 아이템이냐, 공격력이냐, 가지고 있는 스킬이냐. <페리아연대기>는 스킬이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구조로 돼 있다. ‘빙의’라는 개념이다. 파이어볼을 쓴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키라나라는 소환물이 파이어볼을 쏴 주는 거고, 나는 키라나를 키우는 시스템이다. 키라나는 살아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그 능력치는 같은 레벨이라고 해서 같지도 않다. 

 

저 사람보다 이건 잘하고 저건 못한다는 걸 알겠는데, 저 사람보다 강한지 아닌지 숫자로 나오지는 않는 거다. 1:1로 비교할 수 없게 되는 거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바뀌지 않지만 빌드는 항상 바뀌지 않나. 임요한이 드랍쉽 하면 다 드랍쉽 하고. 그런 것처럼 <페리아연대기>도 내 스킬들을 조합해서 전투를 하는데 스킬을 어떻게 조합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 같은 것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 그 빌드 따라 한다고 100% 이긴다 이런 것도 아니고.

 

 

궁극적인 콘텐츠는 PVP가 되는 건가.

 

PVP와 제작자로서의 즐거움이 되겠지. 중요한 것은 성장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즐거움. 그 즐거움이 돈이 많은 것에서 올 수도, PVP 승리에서 올 수도, 키라나 갯수를 늘리는 것이나 더 똘똘한 키라나를 만드는 것에서 올 수도 있다. 성취감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콘텐츠는 PVP라고 보는데 그거랑 많은 방향의 성장 과정을 연결시켜 주는 거지.

 

파이어볼 레벨이 3이라면 보통 대미지가 다 같지 않나. 근데 우린 같은 레벨의 파이어볼이라도 대미지는 다르게 할 생각이다. 왜냐면 파이어볼을 쓰는 키라나는 생명체니까 성장 단계에서의 변수가 있는 거지. 뭔가 완벽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되게 하드코어 하게 할 게 많아지는 거고. 미친 듯이 파는 사람한테는 팔 만한 걸 만들어 주고, 적당히 하는 사람들은 사냥도 할 필요 없이 적당히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다. MMORPG에서 레벨업 하고, 만렙 찍고 던전가서 아이템 파밍하는 걸 사람들이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 <페리아연대기>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풀고 있는 것 아닌가.

 

원하지 않지. 동감한다. 어려우니까 몇 년째 이러고 있는 거고. 블리자드조차 신작 RPG 안 만들고 있지 않나. 그들도 ‘MMORPG는 처음이자 끝이 <와우>였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끽해야 그래픽 좋은 와우 만들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나으니까.

 

답이 없고, 어렵지만 해 보고 있는 거다. 안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블리자드조차 RPG 안 만들고 있지 않나. 그래픽 좋은 와우 만들바엔 안 하는게 낫고”

 

 

너무 앞선 생각들을 현실화하는 작업 중, 더 늦어지지 않을 것

 

<페리아연대기> 팀은 인원이 얼마나 되나. 

 

60명 조금 안 된다. 이 상태로 계속 몇 년째 지지고 볶고 있다. 처음에는 아마 다들 이런 철학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지금 워낙 늘어지고 있다 보니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듀랑고>는 어쨌든 냈지 않나. 저 집도 되게 힘들었는데. (웃음) 

 

이런 건 있다. 아까 말한 3개월 RPG. 그건 답이 없다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다. 

 

아트 스타일은 아주 독특하고 퀄리티가 좋아서, 아트팀은 굉장히 자신있어 하고 있고, 프로그램이나 기획팀은 RPG 일반론을 따라가지 않으니까 잘 될 거란 기대를 갖고 있고. 내가 죽일 놈이지. 처음에 괜히 이런 얘길 꺼내서. (웃음) 카툰렌더링 예쁘게 해서 양산형으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길을 삐딱하게 타는 바람에.

 

 

지금은 빨리 내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그동안은 우리 이것도 할 수 있어, 저것도 할 수 있어 하고 보여주는 거였다면 그건 이제 됐고, 게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니네 그거 할 수 있는 건 알겠는데, 그거 어디에 쓰는데?’라는 물음에 직면한 거지. 

 

<마인크래프트>의 경우도 그렇다. 막 이것저것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오오오 하지 않나. ‘우리도 저거 할 수 있는데 왜 우린 아니지?’ 생각해보면, 우린 아닌 거다. <마인크래프트>는 싱글게임이고, 들어가서 하다가 나오면 그만인데 우린 온라인 RPG니까. 유저가 만든 게 그 세계에서 효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번 지스타 때 내고 싶다고 했는데, 진척은 어느 정도 됐나? 

 

꽤 높은 확률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부분 다듬으면서 유저가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싱글 스토리 라인을 지금 만들고 있어서. 더 못 내면 <듀크 뉴캠 포에버>처럼 Forever가 되는 거라...(웃음) 

 

 

“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번 지스타에 플레이 버전 내는 것이 목표”

 

 

<페리아연대기>는 정상원 부사장이 개발을 주도하나.

 

넥슨에 인수되기 전 ‘띵소프트’ 시절에는 내가 열심히 했지. 지금은 디렉터가 따로 있다. 나는 이런 뜬금없는 얘길 하고 다닌다. ‘성장은 여러 방향이어야 하지 않겠니’ 같은 얘기들. (웃음) 이런 얘기들을 서로 오래 해 와서 싱크는 잘 돼 있다. 옛날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깊게 갔고, 지금은 어디까지 깊게 갈 건지 정돈하는 분위기다. 

 

 

<듀랑고>도 기존과 다른 것에 도전했는데. 같은 입장에서 <듀랑고>를 보며 느끼는 것도 있었겠다.

 

<듀랑고>도 지형 만들고, 절차적 생성으로 생태계 만들고 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는데, 막상 론칭해보니 유저들이 그런 것보다는 다른데 더 관심이 많았지. <듀랑고>가 흥행 부분에서 더 잘 됐으면 우리도 “야! 걱정하지 마! 우리 계속 이렇게 하면 돼!” 했을텐데. (웃음) “아 사람들이 빨리 돌아서는구나, 곤조를 부리기보다는 유저들이 받아들이는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더 게임스럽게. 덜 낯설게. 

 

 

<페리아연대기>를 기다리는 유저들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있겠나.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 “도대체 니네 뭐 하냐, 내가 이거 나온다고 할 때 군대 갔는데 지금 직장 다닌다.”

 

많은 부분 고쳤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대충 만들어서 내놓을 생각은 없다. 레벨업, 전투력이 깡패인 그런 건 아닐 거니까 이 부분은 기대를 하셔도 좋을 것 같고, 때깔은 예전보다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진 않았다. 다만 제작이나 UCC같은 데서 너무 약을 팔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웃음) 너무 앞선 생각들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다린 보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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