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게임계 최고의 이슈는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4대 중독법’(이하 중독법)이었다.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질로 규정한 중독법은 지난 10월 7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4대 중독’ 발언과, 같은 달 30일 열린 중독법 공청회를 시작으로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사회적 이슈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정기국회가 끝났기 때문일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중독법 이슈는 수그러든 듯하다. 중독법은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걸까? 공청회를 시작으로 중독법 논란의 최전선에 나섰던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의 의견은 다르다.
그가 알고 있는 중독법은 ‘게임중독’이라는 단어가 생겼을 때부터 이어온 큰 흐름의 첨병이고, 지금의 고요함도 숨 고르기일 뿐이다.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 김 대표를 만나 그가 겪어온 중독법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잠깐의 휴식기? 아직도 입법 의지는 확고하다”
만나서 반갑다. 간단히 자기 소개부터 부탁한다.
김종득 대표: 게임개발자연대의 김종득이라고 한다. 최근 연대 설립과 중독법 관련 행사로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청회 이슈가 있었던 10월~11월에 비하면 최근엔 이슈가 많이 잦아들었다. 게임업계 사람 중 가장 활발히 중독법 이슈에 대응해온 입장에서, 앞으로 중독법이 어떻게 흘러갈 것 같은가?
지난 10일 정기국회가 끝났다. 11일 임시국회가 시작되긴 했지만, 처리안건에 중독법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큼직한 이슈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찬반 양측 모두 숨 고르기 상태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독법이 흐지부지될 것 같지는 않다. 법안을 발의한 신의진 의원이나 “4대 중독” 발언을 한 황우여 대표나 입법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중독법 이슈의 양상이 달라질 것 같다.
두 의원의 어떤 점을 보고 입법의지가 확고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얼마 전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윤준희 차기 회장과 함께 한 시간 정도 두 의원(황우여, 신의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당 대표가 중독법을 위해 한 시간이나 할애했다는 것 자체가 중독법에 대한 의지를 알려준 것이 아닐까? 또한 신의진 의원은 중독법을 발의한 당사자이자, 중독법 통과를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직접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의지가 확고하더라. 두 의원이나 우리나 현상에 대한 접근은 같았다. 양측 모두 과몰입(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은 존재하고, 이를 해결할 필요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접근 방법은 정반대였다. 우리는 사회적 맥락에서 신중히 접근하고 해결도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두 의원은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장이 확고한 만큼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물론 두 의원의 마음에 선의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중독법이 공유하고 있는 커다란 흐름 때문에 법안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4대 중독 척결’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중독법을 발의한 신의진 의원(중앙).
혹시 중독법이 갖는 규제 요소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신의진 의원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중독법이 규제의 성격을 가진 법이라고 생각한다. 법안의 내용에도 그런 조항이 들어 있고, 신 의원도 아이건강국민연대의 김민선 사무국장이나 놀이미디어교육센터의 권장희 소장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사람은 ‘게임중독’과 ‘게임규제’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만약 중독법이 정말 규제 법안이 아니라면 이들 대신 논리를 앞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문제다. 나는 중독법, 그리고 그 이전에 발의된 손인춘 법이나 셧다운제 등 지금껏 나온 ‘게임중독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한 모든 법이 하나의 흐름에서 비롯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독법은 계속된 게임 규제의 최종진화형”
게임을 규제하는 법안 대부분이 ‘게임중독’을 이유로 삼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닌가?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미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은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를 잡았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 게임 이용 시간 제한 ▲ 폭력 게임 실명 인증 장치 마련 ▲ 자녀 게임 정보 부모 제공 ▲ 인터넷 게임 중독 심의 기구 이관 ▲ 테스트 게임물의 청소년 접속 금지 ▲ 청소년 아이템 거래 제한. 어디서 많이 본 조항들 아닌가?
이 조항은 과거 권장희 소장이 주로 내세웠던 주장이다. 그리고 조항은 ‘게임중독’을 이유로 삼은 각종 규제 법안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2010년 전까지는 각 조항들이 떨어져 산발적으로 발의됐지만, 2010년에는 큰 덩어리로 정리돼 지금의 강제적 셧다운제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손인춘법이나 중독법 등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과거 ‘짐승뇌’ 발언을 했던 놀이미디어교육센터의 권장희 소장.
권장희 소장이 만들어 낸 논리가 오늘날 ‘게임중독’이라는 틀을 만들었다는 뜻인가? 듣기에 따라서는 비약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물론 권장희 소장이 혼자 이 흐름을 이끌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권장희 소장의 뒤에는 종교계가 있고, 또 권 소장과 뜻을 같이하는 김민선 사무국장도 있다. 누가 주도했고,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이러한 논리를 주도해 온 것은 사실이다.
당장 권장희 소장과 김민선 사무국장 모두 게임규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특히 권 소장은 2010년 ‘청소년 인터넷게임중독 예방법’ 공청회에서 현재 게임규제 법안들의 핵심 조항이 담긴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의 논리는 ‘게임중독’이라는 것을 다룬 몇 없는 연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게임을 규제하기로 결정했다면 자연히 이들의 논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피로도’의 경우 최초 취지와 달리 게임 과몰입을 유발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지만, 아직도 ‘게임중독’을 막아야 한다는 이들은 모든 게임에 피로도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조차 되어 있지 않는 탓에 기존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회가 현상의 원인을 파악해 규제하는 대신, 규제의 목표부터 지정하고 그 이유를 찾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맞다. 종교가 원하고 학부모들이 원한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 기독교 분파는 이전부터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한때는 록 음악도 악마의 음악이라고 매도됐고, 만화나 TV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대상이 게임이 되었다.
부모 세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게임을 두려워한다. 게임은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무엇이고, 그것이 아이들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부모는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원인 중에 사회나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스템은 혼자서는 바꿀 수 없다. 설사 시스템이 잘못된 줄 아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아이만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 ‘사’ 자가 붙는 직업을 갖는 ‘정석’ 코스를 밟기를 원한다. 그런 이들에게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게임이 어찌 긍정적으로 보이겠는가?
그렇다면 대중의 지지를 원하는 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까? 나는 국회의원들이 한국의 문제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려면 사회 전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의원 개인의 힘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대신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때리는 것은 쉽다. 현상을 고치려 한다는 액션을 할 수도 있고, 힘도 적게 든다. 결국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게임중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일부 종교계의 혐오와 학부모의 공포, 그리고 정치권의 이익이 합쳐진 결과다.
‘게임은 문화다! 대토론회’에서 중독법에 대해 “정치권이 부모의 공포와 종교의 혐오를 이용해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낸 발작”이라고 평한 진중권 교수.
그리고 중독법은 이 삼각형에 정신의학계가 이권을 이유로 개입한 결과물이라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시발점이 된 강제적 셧다운제부터 정교한 논리로 통과된 법은 아니다. 오히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학부모들이 가진 공포라는 감정이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 이후를 보라. 강제적 셧다운제가 통과되자 법안에 ‘중독’이라는 말이 점점 많이 등장하기 시작됐다. 강제적 셧다운제라는 법안이 하나의 지표이자 근거가 된 셈이다.
나는 중독법이 통과되면 이와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을 인정했고, 이를 위해 통합관리센터를 만들었다. 그러면 이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통합관리센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법안이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법안은 크든 작든 의학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뉴미디어 탄압의 역사를 끊으려면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
정리하자면 각기 다른 것을 이유로 하는 4개의 집단이 ‘게임규제’라는 수단으로 뭉친 셈이다. 저마다 이유가 다른 만큼 이를 뚫고 나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맞다. 각기 다른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뭉친 만큼, 딱 떨어지는 해결책보다는 각각의 목적을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학부모 단체의 경우 게임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넓히는 방향이 될 것이고, 정치권이나 종교계 같은 경우는 당분간은 힘 싸움밖에는 수가 없지 않을까?
모두 지금 당장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취해야 할 조치들뿐이다.
‘게임중독’이라는 이데올로기부터가 부정적 인식을 통해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준비부터 길게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 5일 발효된 법 중 모든 학교에서 ‘인터넷 중독’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는 ‘국가정보화기본법’이라는 것이 있다. ‘게임중독’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중독’으로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중독법이나 다른 게임 규제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해로우니 이를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부터 게임업계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독법과 논리가 똑같다. 얼마든지 다른 뉴미디어로 바뀔 수도 있고, 거기에는 인터넷 중독이 인터넷 게임중독으로 되었듯 게임이 될 가능성도 크다. 더군다나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한 만큼 파급도 크다. 때문에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뭉친 중립적인 위원회가 마련돼야 한다. 우호적인 강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게임이나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객관적인 인식만 심어줘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먼 이야기를 해보자. 중독법 등 게임규제 이슈에 대해 학부모와 종교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이지 못해 시작된 일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할 때마다 반복될 이 ‘역사’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좋은 지적이다. 록 음악이 그랬고 만화, TV가 그랬다. 지금은 게임이 그 타깃이고 앞으로 구글 글래스나 오큘러스 리프트 같은 새로운 기기가 확산되면 이들이 타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은 간단하다. 기침한다고 기침약만 먹지 말고, 왜 기침을 하는지 알아내고 감기약이든 폐렴약이든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는 1차적인 문제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맞닥뜨리는 문제의 원인이 게임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게 전가되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육아나 생활, 경제와 같이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다. 실제로 게임도 교육 문제와 연관돼 이슈가 된 것 아닌가?
하지만 게임이 문제가 된 것은 아이들이 게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게임을 탓하기보다는 꽉 막힌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중독법이라는 위기에 맞서 문화계가 ‘공대위’라는 틀로 뭉친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문화계가 뭉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 위기가 게임계가, 문화계가, 나아가 사회 전체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나아갈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중독법을 계기로 문화계가 규제 개혁 및 인식 개선을 위해 뭉친 공동대책위원회.
게임개발자연대도 공대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힘쓸 계획인가?
공대위 차원에서의 일을 내가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대의 입장이라면 하나뿐이다. 게임개발자연대는 업계 종사자들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모든 것’과 싸우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이는 중독법처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법안뿐만 아니라, 업무환경이나 사회구조 같은 큰 틀에서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개발자와 업계 종사자,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사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
다만 아직 게임개발자연대의 힘이 미약하다 보니 그러기 위해선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 회원 참여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만약 게임개발자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은 분이 있다면 ‘국민은행 924502-01-2701932’ 계좌로 후원을 부탁 드린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