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14>의 국내서비스 과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미친 짓'이다. 사실 속사정을 들어보면 미친 짓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남는데, 그래도 명색이 인터뷰니 용어를 조금 순화해 '괴짜'정도로 하자.
난다 긴다하는 국내 온라인게임도 맥을 못 추는 시기에 흥행전례가 없던 일본 온라인게임을 (예상컨대 비싼 가격에) 들여왔고, 목표치는 동시접속자 10만 명을 내세웠다. 사업팀에는 다른 것보다 게임부터 '하드코어 유저수준으로' 즐길 것을 주문했고, 그 결과 사업팀장은 진짜로 글로벌서버에서도 내로라하는 레이드팀에서 활동 중인 유저가 됐다. 어?
사업팀 전부가 게임을 도가 틀 정도로 알다 보니 글로벌서버의 콘텐츠를 들여올 때도 밸런스부터 콘텐츠 구성을 하나하나 손보고 있다. 그런데 유저들은 그걸 또 '아이덴티티모바일이 아무것도 손을 대지 않은 덕분에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어?
뭔가 이상하지만 결국 올해 여름시장에서 살아남은 게임은 <메이플스토리2>도, <애스커>도 아닌 그런 괴짜들(?)의 게임 <파이널판타지14>였다.
"누구 공으로 보이든 결과만 좋으면 됐죠. 뭐" 이제 막 살아남은 한 달. 그리고 앞으로 다시 헤쳐나가야 할 오랜 시간. 성과도 숙제도 확실해졌다. 최정해 사업팀장을 만났다. 앞에 말한 레이드팀원이자 <파이널판타지14>의 국내서비스를 이끄는 괴짜들의 '부두목' 정도 되시겠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오늘의 인물! 최정해 사업팀장
■ 프롤로그
<파이널판타지14>의 국내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오랜 과거로 돌아간다. 2014년 <파이널판타지14>에 '꽂힌' 아이덴티티모바일(당시 액토즈게임즈)의 배성곤 부사장은 사업팀 전원에게 게임을 '달리라'는 명령을 전한다. 일단 게임을 잘 알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판단은 적중했다. 그런데 너무 적중했다(...) 사업팀 전원이 만렙을 달성하고 스퀘어에닉스를 감동시키며 퍼블리싱을 따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일부는 그 이상을 노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최정해 사업팀장이다.
사업팀장이라는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정말? 진짜?) 그는 어느새 당시 최종 콘텐츠인 바하무트 진성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국내 서비스가 시작될 시점에는 마지막 던전인 진성편 4층까지 클리어하며 아이템레벨 130을 맞추고야 만다. 그것도 5개 직업으로(...)
그리고 최정해 팀장은 유저와 개발사와의 실시간 방송인 '레터라이브'에서 이 사실을 당당히 밝히며 '글로벌 폐인'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과 사업팀장으로는 얻기 어려운 유저들의 신뢰를 동시에 획득한다. 왠지 모를 약간의 동정 어린 시선도 함께...
"진짜 재미있어서 하는 거라니까요" 그렇단다. 믿어주자.
■ 아는 만큼 과감했던 대응
아무튼 짧은 시간에 사업팀 전원이 게임을 달리다 보니 여러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하루 종일 달려도 콘텐츠에 부족함이 없더라는 점, 의외로 라이트 게이머들한테도 잘 어울린다는 점, 반면 최상위 난이도는 (<WOW>부터 레이드는 닳고 닳은 그들에게도) 너무 끔찍했다는 점. 그래서 전략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글로벌서버에서는 세 달이 넘게 걸렸던 업데이트가 국내에서는 한 달 사이에 이뤄진다. 그만큼 콘텐츠 소비가 빨라도 된다는 건데, 이미 쌓여 있는 콘텐츠까지 감안하면 더 과감해도 괜찮았다. 그래서 세세한 밸런스까지 모두 아이덴티티모바일에서 조절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난이도를 낮췄고, 아이템 습득을 높였고, 육성 속도를 더 높일 방법들을 도입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곧 추가되는 2.3 업데이트에서는 원래 '라무'라는 토벌전(레이드)에서 전멸 시 능력치를 높여주는 초월하는 힘이 발동되지 않는다. 2.4 업데이트 이후에나 들어가는 시스템이지만 한국은 2.4 업데이트까지 걸리는 기간이 두 달 내외로 짧은 만큼 빠른 공략을 위해 곧바로 추가했다.
고대무기는 초반에 많은 유저들이 몰릴 걸 감안해서 필요한 아이템의 개수를 미리 줄이는 패치를 넣었고, 하드코어 유저들이 특정 던전으로만 몰리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일부러 뒤로 미뤘다.
심지어 상점에서 아이템을 하나 구입해서 풀세트를 맞추는 초반 퀘스트는 다들 상점을 못 찾거나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냥 아이템을 줘버리는 걸로 해결. CBT를 즐긴 유저라면 익숙할 '바지사건'이다. 이쯤 가면 과감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어렵다. 요시다 디렉터를 설득한 방법이 더 궁금할 정도다.
"다행인 점은 많은 권한을 요시다 디렉터가 갖고 있고, 그런 그가 정말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회사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귀한 이야기인지 알 거다.
■ 누가 하든 재미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다 만든 게임을, 그것도 북미에서 평가도 좋았던 게임을 이렇게까지 왜 바꿀까? 국내 유저를 못 믿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어차피 오래 못 갈 게임 그냥 빨리 뽑을 거 뽑자는 생각에? 그럴 듯한 내용도 많지만 다 틀렸다. 최정해 팀장의 간단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고난도 플레이를 원하는 최상위 유저는 매우 적다. 그리고 언제나 최상위 콘텐츠를 잘 찾아서 플레이한다. 반면 중간 유저는 숫자가 많은 반면 조금의 타격으로도 게임에서 쓰러져 나간다.
결국 아이덴티티모바일은 유저들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상향평준화보다 낙오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조금 늦더라도, 최상위 유저들의 불만이 다소 쌓이더라도 가능하면 모두를 끌고갈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거다.
초반부터 던전에만 몰릴 게 분명한 국내 유저들이 <파이널판타지14>를 너무 어려운 게임으로 보는 걸 방지하고 싶었고, 미리 이를 겪은 유저로서 충분한 적응을 마친 이후에 글로벌 서버의 험난한(?) 환경에 적응시키려는 것도 그 이유다. 덕분에 사실상의 '한국전용 버전'이 나온 거고.
결과는? 축하한다. 짝짝짝. 가장 어려운 던전 중 하나로 꼽히는 타이탄의 경우 중국에서는 그 아래 난이도인 진타이탄의 성공률이 20%가 채 안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극타이탄의 성공률이 20%가 넘는다. 각종 버프의 결과지만 그만큼 유저들이 재미를 느낀다는 결과도 나와있다.
다만 지금까지 액토즈소프트(아이덴티티모바일)의 명성과 너무도 달랐던 모습에 깜짝 놀란 유저들은 모든 공을 스퀘어에닉스와 요시다 디렉터에게 돌렸다. '아이덴티티모바일이 손을 하나도 대지 않으니까 너무 자연스럽고 좋다', '진작부터 이렇게 맡기지 그랬느냐' 등의 야속한 의견과 칭찬(?)이 잇따랐다.
"정작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게임 중에 가장 많이 손을 대고 있는 온라인게임일 텐데 말이죠" 최정해 팀장의 묘한 웃음. "그래도 좋아해주시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죠" 억울할 법도 하지만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게 좋을 지, 아니면 지금처럼 진실이 감춰진 채가 좋을 지는 기자도 잘 모르겠다.
■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유저, 그럼 우리도 따라 튀는 수밖에
물론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파이널판타지14>는 일본에서 라이트한 유저들을 잘 감싸 안은 게임이다. 아이덴티티모바일에서도 지금처럼 MMORPG가 불황이더라도 그 점을 어필하면 어느 정도 먹히리라 본 것이고. 근데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1. <파이널판타지14>는 초반이 지루하다. 그건 아이덴티티모바일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유저의 50%가 초반에 떠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레벨 15 구간을 버틴 유저는 대부분 최고레벨까지 남는다.
2. 현재 <파이널판타지14>의 유저 하루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90분으로 <리니지2>와 맞먹는다. 고대무기를 제작하는 유저의 비율은 이미 글로벌 서버를 따라잡았다. 최정해 사업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미친 플레이타임'이라고. 참고로 그가 맡았던 게임 중에는 <십이지천2>처럼 반쯤은 자동사냥을 지원하는 게임도 있다.
3. 최고난도 던전을 랜덤매칭으로 들어간 유저가 실수를 거듭할 때의 반응
글로벌 서버: 3~4차례 지켜 본 후 조용히 함께 포기버튼을 누른다.
국내 서버: 끝까지 화목하게 헤어진다 OR 초반부터 과격한 필터링의 대화를 나눈다.
우리말의 육두문자 체계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의 장을 열어주는 극타이탄 전투. 너무 끔찍해서 16비트 공식 이미지로 대체한다.
사용시간이 길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넘어가고 랜덤매칭에서 이용자간 욕설의 결론은 정말 그 답게(?) 간단했다. 어차피 극난이도 던전을 랜덤매칭으로 깰 일도 없는데 아예 1인 랜덤매칭을 막아 버리자. 와~ 해결됐다.
...아까도 말했지만 기자는 사실 최정해 팀장이 요시다 디렉터를 설득한 방법이 더 궁금하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초반전투는 레벨 20까지만 지원되는 무료 정책이나 초반부에 대한 약간의 변화 등 다양한 면에서 고민 중이라고. 최상위 난이도 랜덤매칭 삭제로 일단 시간을 번 사용자간 욕설이나 비판도 좀 더 다각도로 변화를 줄 생각이다.
팀장: 당초 생각했던 건 캠페인을 통한 자정운동인데 이게...
기자: 캠페인으로 될 수준은 아니더라?
팀장: (웃으며) 네.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겠더라고요. 던전 한 번 가보고 '아, 이건 그냥 캠페인으로 될 게 아니구나' 싶었죠. 물론 끝까지 웃으며 하는 유저가 훨씬 더 많은데 기억에 남는 건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유저가 대부분이니까요. 결국에는 해결해봐야죠. 어떻게든.
※고의 중복
■ 지금까지는 없던 따스함도 봤다. 희망이기도 하고
기자: (소곤소곤) 우리 좋은 점 이야기 좀 해봐요. 뭐, 죄다 나쁜 말이야
팀장: (소곤소곤) 그러게요. 정작 게임은 잘 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자꾸 이쪽으로...
기자: (다시 정색하며) 그럼 <파이널판타지14>의 장점은 뭐죠?
팀장: (같이 정색하며) 역시. 제품입니다.
기자: 패스.
팀장: 왜요!
기자: 사업하는 사람 중에 자기 제품 안 좋다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봐요. 그게 먼저야.
팀장: 그럼 사업하는 사람 중에 이렇게 매달 얼굴 내미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대봐요. 그것도 민감한 약속(과 시말서)까지 매번 걸면서. 게임에 자신도 없는데 대책 없이 이러고 다니다가는 칼 맞아요. 칼.
이 정도로 나오니 이야기를 들어주자. 얼굴을 내밀고 소통이 가능하다는 건 확실히 자신감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까놓고 말해서 아이덴티티모바일에 뼈를 묻을 지 아닐 지도 모르는 최정해 사업팀장이 <파이널판타지14> 하나에서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매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흔한_사업팀장의_변화.JPG
자신감의 근원은 스퀘어에닉스의 막대한 생산속도와 아직까지 남아있는 낭만이다. 지금까지의 콘텐츠는 물론이고 3개월마다 추가되는 콘텐츠도 어지간한 게임 하나 규모에 달하고, 이를 보완하는 업데이트가 툭하면 이뤄진다.
비록 게임이 100% 만든 건 아니지만 유저 사이의 낭만도 살아있다. 먼 길을 돌아와서 보상도 없이 부활을 해주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의 퀘스트를 위해 자신의 퀘스트 진행을 멈추고, 신규유저라는 이유로 몇 시간의 반복된 실수를 눈감아 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게 다 닳고 닳은 유저들이 많아서 그래요. MMORPG를 오래할 수록 뉴비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거든요. 자연스럽게 뉴비친화적이 되고요" 처절하지만 사실적인 이야기다.
■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확실한 성공, 아니 선방
정액제게임은 부분유료화게임에 비해 순위와 성적을 알리기가 조심스럽다. 유저의 숫자가 곧바로 회사의 매출공개로 이어지기 때문인데, 이런 조심스러움을 감안하더라도 <파이널판타지14>가 지난 여름 국내에 출시된 온라인게임 중 가장 잘 살아남았다는 건 확실하다.
게임트릭스 기준으로 <파이널판타지14>의 순위는 전체 12위, 비슷한 기간에 출시된 <메이플스토리2>나 <애스커>는 물론 , <리니지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보다도 높다. 물론 아이덴티티모바일에서 목표로 내걸었던 동시접속자 10만 명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일지 몰라도 내부 목표는 정말로 동접 10만이었어요" 최정해 팀장의 솔직한 이야기다. 이 사람들, 진심이었단다.
"그러기에 충분한 게임이라 생각했고, 그러기에 충분한 계획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현재 성적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진 않아요.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이 정도면 선방했구나 생각해야죠"
최정해 팀장은 그래서 '성공' 대신 '선방'이라는 비교적 얌전한 용어로 말을 바꾸길 원한다. 이 사람들, 정말 진심이었단다(2). 지금 다시 보니 조금 더 뻔뻔해 보인다. 그래도 시장상황을 고려하면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기적 같은 선취점을 거뒀지만, 솔직히 성공은 기적보다 더 멀지도 모르니까.
문제는 다 나왔다. 해외와 다른 유저 성향, 레벨 15까지의 원치않은 수면작용, 어쩌다 보니 생긴 아저씨 게임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1, 2, 3, 4만 누르면 끝인 단순한 게임이라는 인식. 쉬운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지만 자기 게임에 이 정도로 넋이 나간 사업팀장은 확실히 흔하지 않다.
다른 건 둘째치고 자기 게임에 빠진 괴짜 사업팀이, 그리고 그 팀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는 한 번 지켜봐 볼만한 일일 듯싶다.
정작 인터뷰를 작성하고 보니 이게 인터뷰인지 공격인지 모르겠어서 마지막에 붙이는 보너스 이미지. <파이널판타지14>는 현재 <파이널판타지13>의 주인공 복장을 주는 라이트닝 리턴즈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