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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타 2016에서 <페리아 연대기>를 체험하는데 필요했던 대기 시간이다. 기다림은 호평과 악평, 정확하게 둘로 갈렸다. 누군가는 예쁜 화면에 만족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완성도를 문제삼았다. 잘 알려졌던 지형 편집 외에 처음으로 선보인 전투 역시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지스타 버전은 왜 그랬나요?"
답변이 걸작이다. "게임 내 툴로만 만들어 본 거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지스타 체험버전 자체가 유저가 게임에서 만들 수 있는 마을과 던전을 보여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였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그럼 이 이상으로 유저는 더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마을은 어떻게 구성되고, 세상은 어떻게 이어질까? 그리고 <페리아 연대기>는 대체 무슨 게임이 되는 걸까?
<페리아 연대기>를 개발하는 띵소프트의 장문석 디렉터, 강진국 프로그래머팀장, 넥슨의 김병수 사업실장과 함께 <페리아 연대기> 지스타 버전에 얽힌 비화와 그들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장이슬 기자
▲ 왼쪽부터 띵소프트의 강진국 프로그래머팀장, 장문석 디렉터, 김병수 사업실장
# 지스타 버전은 왜 그랬나요?
"<페리아 연대기>는 <마비노기>보다 <마인크래프트>에 가까워요. 행동 규칙을 정하는 아이템을 조립해 마을과 던전을 꾸미고, UI도 직접 만드는 식입니다. 지스타 버전은 UI부터 던전까지, <페리아 연대기>를 플레이할 유저들처럼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조립한 버전입니다."
TIG> 우선 <페리아 연대기> 지스타 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 가지 평이 나왔는데, 어떤 평이 제일 기억에 남나요?
장문성 디렉터 : 저희가 필요한 건은 막연한 "좋아요"가 아니라 실제 내용을 이해하면서 나오는 피드백이었어요. "이 전투 방식은 내 캐릭터가 활약하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문제다." 라든지, "이런 방식에서 멀티 플레이는 어떻게 하는거야?" 라는 의문을 주셨는데요. 나쁜 이야기든 좋은 이야기든 그렇게 분석해서 주시는 평가가 좋았습니다. 또 문제점을 보고 해결책을 생각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도움도 많이 되었고요.
공식적으로 무슨 설문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플레이하셨던 분과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봤을 때 전투는 두 가지로 평이 갈렸습니다. 미리 영상을 보고 "이 게임의 전투는 TCG 방식이구나" 인지하고 온 사람은 적응도 잘 하고 재미있게 하셨던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도 유저가 만드는 콘텐츠와 TCG가 연결되었을 때 쓸만한 것이 나올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TCG임을 알고 플레이하셨던 분들은 <페리아 연대기>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TIG> 하지만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보면 당황했을 전투였어요.
장문성 디렉터 : 맞습니다. 영상을 안 보셨거나, 카툰 풍의 예쁜 캐릭터가 나오는 MMORPG. 그러니까 <마비노기> 같은 게임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전투를 보고 당황하거나 실망한 경향이 있어요. 저희가 처음 내걸었던 모토나 구호,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부분도 전투가 아니었죠. 그래서 사전에 영상도 같이 내보긴 했습니다만, 기대와 달리 실망하셨던 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적화 문제도 많이 말씀들 해주셨고요. 사실 저희가 그 동안 소식을 너무 못 드리다 보니 "개발이 접혔다더라" 같은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 지스타는 나가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말하자. 이런 결심을 했던 건데요. 개발 도중이었기 때문에 최적화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TIG> 완성도에 대한 평도 혹시 보셨는지?
장문성 디렉터 : 예, 완성도가 낮다는 평이 괴로웠습니다. 개발 도중인 것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단적인 예로 캐릭터 생성 부분을 보면 약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나요? UI가 이상하게 생겼잖아요. 사실 <페리아 연대기>는 UI도 유저가 만들 수 있습니다. 버튼, 텍스트 입력창, 제목 창까지, 전부 아이템으로 있어요.
몬스터를 죽이면 UI 아이템이 떨어지고 이걸 모아 자기만의 UI를 디자인해볼 수 있어요. 그리고 지스타 버전도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라 기획자가 클라이언트 안에 존재하는 조립 툴로 만들고 붙인 UI입니다. 그런데 기획자의 센스를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웃으며)그냥 봐서는 후줄근한 UI로 느껴졌을 거 같아요.
TIG> 음? 그러니까 임시로 만든 것이 아니었군요?
장문성 디렉터 : 유저가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에도 UI를 붙여서 팔 수 있는데, 만든 사람에 따라 UI가 예쁘게 붙을 수도 있지만 허접할 수도 있어요. 유저가 보는 모든 것이 저희가 아닌 유저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모르고 게임을 시작해서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 마을 UI가 좀 그렇다. 이러면 오해하실 수도 있는 거에요.
TIG> 게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완성도가 유저별로 달리 보인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장문성 디렉터 :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던전에 있는 구조는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하고 설명하거든요. 다만 모든 유저분들이 거기까지 다 보고 플레이하실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에서 걱정이 되긴 합니다. 유저가 제작하는 물품이나 UI의 퀄리티는 천차만별이니까요. 전체적으로 게임에 대한 인상이, 잘 모르고 봤을 땐 오해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TIG> 생각 이상으로 유저가 참여하는 부분이 많네요.
장문성 디렉터 : <페리아 연대기>는 유저가 적극적으로 뭔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게임이에요. 유저에게 제작을 학습시키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게임 개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길어야 20분 남짓인 지스타 시연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어요.
이번엔 꼭 나가기는 해야 하는데, 그렇다보니 오해가 많았던 전투 시스템과 지형 편집 파트를 먼저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영 아니다 싶으면 바꾸기도 해야 하니까요. 해보셨으면 느끼시겠지만 TCG를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여기서도 유저가 개입할 수 있는 게임이에요. 특이한 형태이기도 하고요.
TIG> 전투까지 편집할 수 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메인은 UCC군요.
장문성 디렉터 : 전투에 집중하는 게임이 아닌 건 맞아요. 주력 시스템 자체가 잠깐 배워서 시연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내부에서도 개발자들이 이 시스템을 처음 배워서 뭔가를 만들기까지 편차가 큽니다. 아주 잘 하는 사람은 2, 3일 정도면 배우지만 일주일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20분 동안 배워서 만들고, 이럴 수는 없었어요.
강진국 팀장 : <페리아 연대기>는 던전도 유저가 만드는 구조에요. 유저가 재미있는 던전을 계속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지 초점을 맞춰 개발이 진행되었고, 시연으로 나갔던 지스타 버전의 던전이 일종의 모델 하우스입니다. 다른 MMORPG 던전과 비슷하게 보이긴 했지만, 기믹이나 나오는 적들이 실제로 게임 내 아이템을 조립해서 돌려봤던 상황이에요. 저희는 던전 개발을 위해 만든 아이템을 이용해 실제로 던전을 만들었고, 어느 정도 돌아갔다는 점에서 의미를 많이 두고 있어요.
TIG> 결국 지스타 버전은 게임 시연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만들 수 있는 던전과 세상을 보여준 것이군요.
장문성 디렉터 : 그럼요. 문이 열리고 닫히고 몬스터가 나타고, 이게 전부 게임 아이템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아마 유저 중에는 이걸 똑같이 만들 사람도 나올 거에요. 참고로 아이템 로직의 버그로 문이 안 열리는 버그가 있었는데, 그럴 땐 도우미가 가서 우클릭을 해서 '문 열어주세요' 주문을 입력해 유저를 도와드리는 장면이 노출되기도 했어요.
# <페리아 연대기>에서 마을이 태어나는 방법
"저희가 만들어서 제공하는 마을도 있지만, 새로운 규칙을 가진 마을이나 던전을 만들겠다면 여럿이 모여 움직여야 해요. 처음에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고, 상황에 따라 추가나 예외 규칙을 만들며 기초부터 쌓아가는 겁니다. 다른 유저나 마을에서 사오는 방법도 있고요."
TIG> '큰 그림'에 대해서 여쭤보죠.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가요? <마비노기>처럼 콘텐츠를 확장하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임도 있고, 레이드나 스토리를 깊게 파는 게임도 있는데 <페리아 연대기>는 어느 쪽인가요? 보통 유저들은 '마비노기 2'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장문성 디렉터 : <마비노기>와 같이 이야기가 되는 점은 영광스러워요. 훌륭한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많이 다른 게임이라 걱정이 되는 면도 있어요.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되고 기대를 이쪽으로 했는데 열어보니까 많이 다른 게임이다. 이렇게 되면 실망하실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페리아 연대기>와 굳이 비슷한 게임이라고 하면 <마인크래프트>에 더 가까워요. 유저가 개발자 레벨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저가 오픈월드에서 환경, 각종 게임 시스템,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존에 있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TIG> 근데 페리아 연대기는 거기에 사회성까지 넣어야 하잖아요? 유저 입장에서도 무지 복잡할 거 같은데요.
강진국 팀장 : 최근에 영상을 올린 적도 있는데 아이템을 이용해서 던전 기믹, 경제 등을 만들 수 있는 핵심 알고리즘을 설계해냈어요. 뭔가 즐길 수 있는 기초적인 구성을 마련했다는 것이죠. 이걸 바탕으로 어떻게 조립하면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검증까지 된 상태입니다. 처음 설계할 때는 경제, 정치, 제작 모두 따로 하려 해서 어려웠는데 아이템 로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유저가 배우기도 편집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지스타 버전 던전 플레이를 하면 스위치를 조작해 문을 열어 달라, 부탁하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가 아이템 로직을 맛볼 수 있게 만든 부분입니다. 우리 로직은 외부의 주문을 들을 수 있는 아이템, 주문을 받아서 반응하는 로직이 있어요. "열려라 참깨" 라고 말하면 문 아이템은 그걸 듣고 문을 열어주는 거죠. 말을 하는 로직, 말에 반응하는 로직이 있어서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이런 로직을 다양하게 발전시켜서 여러가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핵심 로직을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장문성 디렉터 : 마을에서는 이렇게 응용할 수 있어요. 게임에서는 흡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만, 예시를 위해 금연 마을을 만든다고 칩시다. 방법은 두 가지 방식이에요. 담배을 피웠을 때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 있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법이죠.
앞서 말한 사후 제재를 선택하면, CCTV 역할을 하는 아이템을 쓸 수 있어요. 사람들의 행동을 쭉 감시해서 로그를 찍어내는 아이템이에요. 이걸 사용해서 누군가 담배를 피운 사실을 찾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거나 마을에서 쫓아내는 역할을 하는 아이템을 추가로 붙일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푯말이라는 아이템이 있어요. 푯말에 '반경 몇 미터까지 담배를 피우는 행동을 금지'하는 로직을 겁니다. 푯말에는 게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 있고, 이걸 금지할 수 있어요. 푯말에 써있는 건 그 지역 내에서 원천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지스타 버전에서도 이런 푯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PK를 할 수 없고, NPC와 특별한 상호작용을 하거나 마을을 고칠 수 없는 푯말들이죠.
TIG> 대충 이해가 가긴 하는데 이런 아이템 로직으로 어떻게 마을 경제, 정치까지 만들 수 있나요?
장문성 디렉터 : 유저가 마을을 만든다. 이론적으로는 맨땅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지형 편집이 괜히 있는 건 아니고, 이 터에 내가 마을을 세워야지, 그러면 땅을 골라서 지형 편집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방어나 멋진 풍경을 위해 완전 평지가 아닐 수도 있죠. 경사를 놓거나 공중에 띄울 수 있거나.
각종 재료를 가지고 와서 집이나 시설물도 만들 수 있고, 거기까지 하면 물리적인 마을의 형태를 갖춰지죠. 나아가 마을의 규칙, 경제, 정치는 어떻게 되고 NPC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까지 유저가 만들 수 있는 구조고요. 우리가 만들어서 제공하는 맵도 있겠지만 그런 마을이 맘에 들지 않거나 새로운 규칙을 가진 마을이나 던전을 만들겠다면 여럿이 힘을 모아 별도의 따로 운영되는 공간을 만들어 거기서 플레이할 수 있는 거겠죠.
우리 마을에서는 PK를 금지하자. 서로 싸우지 못하게 하자. 푯말을 세워서 PK를 금지시킵니다. 거래를 할 때 세금을 조금 받아서 마을 금고에 넣고, 모인 돈으로 상점을 더 만들자. 경제 규칙도 같은 식으로 만듭니다. <마인크래프트>, <바람의 나라> 등에서 유저들이 서로 약속을 하고 암묵적으로 규칙을 만드는 게임도 있지만, <페리아 연대기>는 시스템까지 유저가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도록 했어요.
TIG> 일단 '모여서 살자' 해놓고 조금씩 쌓아올리는 식이네요. 푯말 박자, 누구만 들어올 수 있게 잠금을 걸자, 이런 식으로.
장문성 디렉터 : 처음에는 유저들이 그렇게 쌓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현실에서도 법이 '8조금법'부터 시작해서 점점 두꺼워지잖아요. 예외 조항도 생기고. 저희도 예외 조항을 만들 수 있어요. "PK를 못하게 하자. 하지만 레벨 20부터는 해도 돼." 아니면 "우리 둘이 한 번 붙어보자, 서로 합의하면 우리만 PK가 되게 하자." 이런 식으로 로직을 추가면서 복잡해져요.
그러면 필요한 아이템도 많아집니다. 단순히 PK를 막으려면 푯말 하나만 두면 되지만, 추가로 로직을 붙여야 하니 아이템을 조립해서 새롭게 창조하는 거죠. 그렇게 쌓아나가면 교통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미리 여러 실험을 해보고 괜찮은 시스템의 교과서나 표본을 만들어서 프리셋을 만들 생각이에요. 유저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플레이하다가 어느 마을 푯말을 열어보니 괜찮아. 아니면 조금 수정하고 싶어. 그러면 이걸 사거나 프리셋에 덧붙이면서 수정하는 구조가 될 겁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금을 떼다 마을 창고에 전송하자. 아니면 버는 돈을 다 모으자, 혹은 세금은 걷지 말자. 혹은 관광객이 와서 마을에서 뭘 하면 면세를 해준다든지... 규칙을 덧붙여낼 수 있는 거죠.
TIG> 이걸 아이템으로 처리한다면 갯수가 상상을 초월할 것 같네요.
장문성 디렉터 : 실제로 아이템의 구조가 자잘하게 되어 있어요. 순서도를 짜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부품이 필요하잖아요? 그걸 줄여주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실제 프로그램 언어입니다. 프로그램 언어로 복잡한 구조를 줄여서 로직을 넣으면 아이템을 여러 개 조립한 효과를 낼 수 있어요.
회로, 저항, 콘덴서 같은 여러 부품을 줄여서 칩 하나로 다 모아놓잖아요?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언어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아이템을 조립해서 만들 수 있지만, 좀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면 이걸 배워서 할 수 있는 거죠.
강진국 팀장 : 물론 유저들이 자주 쓰는 패턴이 보이고, 저희 내부에서도 그걸 많이 쓴다면 이 역시 프리셋으로 묶어서 유저들에게 제공할 생각도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막을 것인가, 어떤 제재를 가할 것인가 한꺼번에 지정해주는 아이템이 있다고 하면 유저들이 조금씩 수정해서 쓸 수 있겠죠.
TIG> 정성을 들일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구조네요.
장문성 디렉터 : 그렇긴 합니다만, 실제 자동차를 만들 때를 생각해보면 완전히 못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엔진부터 시작하잖아요. 설계도라는 아이템이 있어요.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적혀 있는 문서입니다. 문서 단위로 거래를 할 수 있어요. 문서에 재료를 집어넣으면 그대로 아이템이 조립되는 장치입니다. 우리 마을에 금연 표지판을 설치해야겠어, 하면 표지판을 사서 금연 로직을 짜넣을 수 있지만 '금연 표지판' 설계를 사와서 붙일 수도 있는 식이죠.
모든 사람들이 마을의 기초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고, 잘 만들어진 부분을 떼다 그 부분만 적용한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유저가 만든 걸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연구를 하는 상태입니다. 검색해서 다운로드로 받으면 참 쉽긴 하지만, 좀 더 게임적인 형태로 구현해야 할 것 같아서 바꾸고 있습니다.
TIG> 여러 드립이 떠오르네요. "금연은 어디서 사요?" 같은 채팅 말이에요.
장문성 디렉터 : "민주주의는 어디서 사요?" 같은 거 말이죠 (웃음)
# 정말 구상대로 될까요? 서비스는 가능해요?
"지형 편집이나 마을 건설이 가능한 권한을 쓰려면 자원이 필요합니다. 개개인이 10분에 한 개씩 생산하는 '개념'이 필요해요. 개인의 개념은 힘이 없지만 한 사람이나 단체에 몰아주는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행동하면 개념을 회수해서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 있을 겁니다."
TIG> 문제는 <페리아 연대기>가 MMORPG라는 건데요.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제한된 지역에서 누가 무리를 지어 사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MMORPG와 조립식 오픈 월드의 조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문성 디렉터 : 유저가 개발자 정도의 능력을 갖는다고 하면 제일 문제가 되는건 '권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어떤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요. 시스템이라는 것도 푯말을 박는다는 것 자체가 이 주변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땅을 팔 수 있는 것도 자연에 수정과 변경을 가해버리는 거에요. 신과 신이 만나서 싸우는 느낌이 되죠.
TIG> '갓 게임'을 멀티로 하는 셈이군요.
장문성 디렉터 : <그래서 <페리아 연대기>는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생각한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설명하면서 지형 편집이나 마을 건설을 개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권한을 행사하는 힘을 자원을 모아 쓰게 돼요. <마인크래프트>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게 이 부분입니다.
개인이 자원을 10분마다 한 번씩 생산하는데 저희는 임시로 '개념'이라고 불러요. 10분에 1개념을 쌓고 30분 지나면 3개념이 있고. 그런데 땅을 판다든지 푯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많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100개념? 그러면 개인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야 개념을 얻을 수 있는 거에요.
어떤 사람에게 나의 개념을 양도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적은 개념은 큰 의미가 없잖아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개념을 몰아주면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이나 단체는 개념을 써서 마을 관리를 하는 거죠.
그런 지도자는 없겠지만, 사리사욕을 위해서 권한을 못되게 행사한다. 그러면 이 사람에게 더 이상 개념을 주지 않고 새로운 사람에게 개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도자는 개념 없는 사람이 되어서 아무 것도 못하죠. 뭐 아직 개념이란 이름은 확정된 게 아닙니다.
TIG> 나중에 새로 시작하는 유저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도 공간이 부족해지지 않을까요?
장문성 디렉터 : 이번 영상에 사실 이 내용을 넣었어야 했는데. 개념을 굉장히 많이 모으면 새로운 존을 만들 수 있어요. 아예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처음에 만든 존은 작지만, 개념을 더 많이 모아서 넓힐 수도 있고요, 포탈에 개념을 투자해서 새로운 포탈을 만들거나 다른 존과 연결할 수도 있어요. 저 던전에 좋은 재료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마을에서 바로 갈 수 있게 포탈을 파자, 마치 고속도로 뚫듯이 말이에요.
다른 존으로 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면 포탈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기게 되겠죠. 존 전체를 차지해서 양쪽 포탈을 차지한 길드나 마을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저희 예상으로는 그러기가 어려워요. 포탈은 자연포탈과 인공포탈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연포탈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또 포탈을 얼마나 사람들이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존이 있다면 그 존은 사라질 겁니다. 아무 곳에도 연결되지 않고 왕래도 적다면 그 지역은 잊혀지는 것처럼요. 포탈을 관리하는 건 조금 복잡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TIG> 제작이나 공동체 운영에 관심이 없거나 센스가 없는 유저는 소외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방안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장문성 디렉터 : 어느 정도의 유저가 마을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저는 한 1~5% 유저만 되도 좋지 않나 생각을 해요. 누군가가 마을을 좋게 바꿀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개선 요청을 하면 시장이나 왕 역할을 하는 사람이 들어주거나 표결에 붙일 수도 있을 거고요. 실제 메커니즘을 모르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형태에요.
김병수 실장 : 사실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유저가 만든 프레임에서 플레이하는 것과 개발자가 만든 프레임에서 플레이하는 건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기성 게임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때 개발팀에게 메일이나 댓글을 남기는 수밖에 없었지만, <페리아 연대기>에서는 유저 대 유저로 요청하고 개선안을 토론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TIG> 공동체에서 재미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개인으로만 한정해 생각하면 격차가 벌어지는 거군요.
김병수 실장 : 유저가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바닥부터 새로 만드는 건 건 힘든데, 이미 있는 걸 고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장문성 디렉터 : 유저가 던전 플레이를 하면 던전 제작자에게 개념이 보상으로 돌아가요. 개개인의 플레이어는 소수의 개념을 모아도 이익이 없으니 던전을 플레이하고 재화를 얻는 거죠. 그러면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작하는 유저는 재미있는 던전과 마을을 만들려고 경쟁할 거고, 비제작 유저는 놀거리가 여러 개 생길테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진국 팀장 : 사실 <페리아 연대기>를 개발하면서 제일 어려운 건 남들과 비슷한게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일상부터 전투까지 다 다르고 엔진도 직접 개발한 엔진으로 만들고 있고요. 상용으로 디자이너가 멋진 땅과 풍경을 만들어도 유저가 파버리거나 광원을 바꾸면 동적으로 계속 계산해야 하잖아요. 변수가 너무 많고, 또 유저들도 저희가 생각한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TIG> 이렇게 되면 서버 부하가 굉장히 심할 것 같네요.
김병수 실장 : 그래서 서버 개발 측면에서도 성능을 충분히 확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유저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보니 일종의 해킹이라든지 보안 이슈를 신경쓸 부분이 많아서 이런 쪽으로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TIG> 넥슨 게임 중에 UCC를 중시했던 게임이 <메이플스토리 2>였는데, 생각만큼 활성화가 안 됐어요. 만드는 유저가 적었거든요. 그 부분이 아쉬웠는데 <페리아 연대기>는 어떤가요?
김병수 실장 : 지금 당장 답은 못 드릴 것 같아요.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어요. 제작을 하실 수 있는 유저부터 차곡차곡 모여주셨으면 하는 생각은 있어요. 카페에서는 코딩을 배우는 유저도 있고요, 준비하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인게임 아이템 제작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걸 기대해주신 분들도 계세요. 저희가 그리고 있는 비전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 틀을 만들 수 있는 유저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진국 팀장 : UCC 목적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놀이 삼아 UCC를 만드는 것이나, 게임 안에서 내 삶을 바꿀 수 있고 영향을 주는 목적으로 만드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TIG>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마니악하게 가게 될 것 같네요. 일단은 코어 유저를 모은 다음 어필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김병수 실장 : 사례가 없으니 반응을 모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선 저희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저 대상으로 먼저 FGT를 진행하거나 단계적으로 오픈하는 등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일정도 변경될 여지가 있습니다.
TIG> 메인이 되는 시나리오나 퀘스트는 어떻게 되나요?
장문성 디렉터 : MMORPG라고 하면 "일단 빨리 만렙부터 만들어", 버스를 타든 뭘 하든 콘텐츠를 순식간에 소비하고 최대한 빨리 다 뛰어넘어 끝에 도달하곤 새 콘텐츠를 요구하는 경향이 패턴처럼 된 감이 있어요. <페리아 연대기> 기획을 처음 시작한 분이 정상원 본부장님인데, 이런 경향에 개탄하면서 "유저끼리 놀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라"라고 한 것이 프로젝트의 시초였어요.
개발팀에서 만들어서 주는 콘텐츠가 요즘에 나온 게임처럼 많진 않을 것이라 봅니다. 메인 스토리나 클리어하는 보상, 이런 건 있겠습니다만 방대한 시나리오나 그런 부분은 어렵습니다. 이건 <마비노기>나 다른 게임에 비하면 좀 부족한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마을을 유저가 만들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퀘스트를 만들려면 답이 안 나오죠. 어디 가서 누구 만나고 가져오세요 퀘스트를 받아서 가니까 마을이 없어. 망했어. 이렇게 되면 만들기가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종래의 게임처럼 퀘스트를 만들려면, 구조가 계속 변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가 없도록 여러 방법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핑계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가 밀도 있게 들어가긴 힘든 상황입니다.
TIG> 그렇다면 처음 하는 유저가 많이 헤멜 텐데요.
장문성 디렉터 : 퀘스트가 없지는 않습니다.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보통 MMORPG는 퀘스트가 일회적입니다. 짐 나르는 퀘스트가 있다. 내가 짐을 나르면 다음 사람을 위해 옆에 또 짐이 생깁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위화감과 허탈감이 느껴지죠. 그래서 이런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저가 유저에게 계약서를 주고 일을 부탁할 수 있는 거죠. 마을을 만들고 관리하려 하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니까요.
마을 사람이나 시장이 어떤 물건을 구해달라는 퀘스트를 냅니다. 이걸 구해주면 보상을 이렇게 줄게. 그러면 유저도 자신이 구해온 물건이 실제 마을 관리에 들어가는 걸 압니다. 직접 유저를 만나지 않아도 돼요. NPC의 AI도 아이템을 조립해서 만들 수 있거든요. 이 아이템을 소지한 NPC에게 어떤 행동을 시키는 아이템이 있어요. 설계를 구해서 그대로 아이템을 조립하면 상점 주인 역할을 하는 NPC가 생기죠.
NPC를 만들어서 퀘스트 대리를 맡길 수도 있고, 계약서를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또 잘 만들어진 설계도를 사와서 나눠줘도 좋고요. 지금 저희가 만들고 있는 계약서 아이템은 아주 단순한 구조에요. 실제 시간 몇 시까지 이 아이템을 구해오면 이 보상을 주겠다, 이 정도죠. 그런데 만약 서버가 다운이 됐다? 그런 상황까지 상정해서 계약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저가 이런 부분까지 발전시키길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잘 안 되면 저희가 만들어서 나눠줘야겠지만요.
TIG> 뭐가 어떻게 나올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게임이네요. 출시 일정은 어떻게 잡혀 있나요?
강진국 팀장 : 지금은 부품에 해당되는 아이템을 많이 만든 상태입니다. 이걸 모아서 던전과 마을을 만들고 있는 단계에요. 이제 막, 아주 기본적인 게임. "최소 이 정도는 돌아가야 해" 그런 정도로 테스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 정도는 되어야 테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년 중반 CBT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이긴 합니다만.
장문성 디렉터 : 개발팀 안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이 있긴 합니다. 배경 모델 같은 경우 집을 멋있게 원화처럼 만들면 되는 일인데 우리는 집을 벽 따로 문 따로 창문 따로, 유저가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기존 게임과 방식이 너무 다른 거에요. 만드는 사람도 난감하죠.
강진국 팀장 : 자체 엔진 게임이다보니 성능 개선과 기능 추가도 많이 있었고요. 그러느라고 또 오래 걸리기도 했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려주는 분들께서, 게임이 너무 안 나오니 "띵소프트가 배부른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굉장히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정식 서비스는 내년 말이나 이듬해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