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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TIG우리말] 싸울아비는 순우리말일까요?

머신 2012-01-25 13:17:48

 

 

제목에 대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보통 순우리말이라고 하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우리말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옛날부터 사용하던 말인데 유실됐다가 현대에 다시 찾아낸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싸울아비는 우리말로만 만들어진 것은 맞는데, 옛부터 전해져온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울아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동아일보의 1962년 11월 20일자 기사라고 하는데요. 당시 배화여고의 교사였던 김영곤씨가 대본을 맡은 '강강수월래'라는 드라마에서 옛날 무사를 '싸울아비'라는 현대어로 바꾼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합니다.

 

그 이후, 1972년에는 '고려 싸울아비'라는 소설책이 출간되고, 지속적으로 이 단어의 사용처가 늘어나면서 SNK의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가 <진 싸울아비 투혼>으로 발매되거나 캐릭터의 직업 이름으로 사용되기에 이르죠.

 

 

어린 시절 주머니의 동전을 싹쓸이하던 마성의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말이 나온 김에 '싸울아비'라는 명칭이 일본의 '사무라이'와 연관성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해 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를 侍(모실 시)라고 쓰는데요. 이는 헤이안 시대(당시 한국은 삼국시대)에 귀족들을 경호했던 무사로부터 시작된 단어입니다. 물론 헤이안 말기부터는 일반적인 무사도 모두 사무라이라고 부르게 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반면, 한국어의 '싸울아비'는 '싸울 + 아비'가 돼서 전투를 하는 남성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근본부터 다르게 출발한 단어죠. 게다가 '싸우다'라는 표현 자체가 현대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호다'라고 했다 하네요. 아무리 길게 봐도 이 표현은 조선시대 이후에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서 '싸울아비'는 순우리말이 가지는 2가지 조건 중에 하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가짜 순우리말이죠. 지금껏 '싸울아비'라는 표현에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느꼈던 분들은 여기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고, 앞으로 써서는 안되는 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꼭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표현만 써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세상에는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는데, 쓸 수 있는 표현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언어 자체가 생명력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흘러가면 언어도 흘러가야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2의 모습. 러덕을 싸울아비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말이 있을까요?

 

 

우리의 아름다운 순 우리말을 발굴하고 되살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없던 새 단어들을 만드는 것도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죠. '싸울아비'라니, 어감도 좋고 어떤 사람인지 한 번에 와닿잖아요. 무사를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면서 이보다 더 좋게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가 쓰는 좋은 표현에 반드시 역사적으로 그럴듯한 이유가 붙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싸울아비'와 함께 소위 가짜 순우리말로 논란이 되는 단어를 더 살펴보고, 우리말의 새 표현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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