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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25) - 시인의 딸,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되다

넥슨컴퓨터박물관 | 히든피겨스 (1) 로드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넥컴박 2017-04-22 17:09:56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전하는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는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영화 <히든피겨스> 포스터.

 

지난달 개봉한 영화 <히든피겨스>, 다들 관람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포 방지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히든피겨스>는 1962년 머큐리 계획이 있던 당시 NASA의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에서 일했던 실화를 다룬 마고 리 셰털리의 책 <히든 피겨스: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했던 시절, 인종 및 성 차별을 견디며 수학자, 엔지니어로써의 능력을 펼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고등 교육을 받은 ‘화이트칼라’ 남성들이 주가 되었던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및 관련 분야에서 많은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여태껏 이 여성들의 역할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마주하게 됩니다. 

 


<히든피겨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당시의 ‘컴퓨터’의 역할을 했습니다. 복잡한 숫자들을 가지고 계산을 하는 게 주된 일이었죠. 그런데 그들보다 훨씬 빨리, 더 많은 계산을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컴퓨터’ IBM 7090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론 누구보다 빨리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을 익힌 것 또한 여성 ‘컴퓨터’들이었죠.

 

IBM 7090.

출처: By ArnoldReinhold (Own work) [CC BY-SA 3.0 (//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습니다. 

 

과연 언제부터 여성이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발 딛기 시작했을까요?

 

놀랍게도 그 기록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름이 나왔습니다. 바로 Byron(바이런)입니다.

 

뛰어난 미남이자 시인. 학창시절 왜 이렇게 긴 시를 지었냐며 목놓아 부르짖던 그 이름 로드 바이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말을 남긴 그 바이런 맞습니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영미 문학계에서는 로드 바이런(Lord Byron) 또는 바이런 경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의 딸이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백작부인입니다. 

 

 

# 에이다 바이런, 천재 수학자

 

바이런은 조각같이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온 수재였으며, 집안 작위를 이어받아 남작으로 정계에도 진출했습니다. 집안과 스펙, 외모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춘 그의 유일한 흠은 바로 무지막지한 바람둥이였다는 점입니다. 영국과 이탈리아, 스위스를 넘나드는 그의 여성 편력에 질려버린 그의 아내 '안네 이자벨라 밀 뱅크'는 딸 에이다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버리고 싶어 했죠.

 

안네는 에이다가 아버지의 여성 편력에 일조한 낭만시인으로서의 자질을 행여나 닮을까 문학 대신 수학과 논리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매우 애썼습니다. 그래서 아주 유명한 과외 선생님을 한 명 붙였는데, 그게 저명한 수학자 중 한 명이 드모르간의 법칙을 정립한 오거스터스 드모르간이었습니다. 

 

드모르간이 에이다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중엔 에이다가 일류 수학자가 될 재능을 갖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에이다는 '조기교육+특급 강사 과외'를 받은 수학 영재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명석한 수학자에 집안도 좋고, (아버지를 닮아)미녀로 소문난 에이다는 당시 영국 사교계에서 유명 인사였다고 합니다. 무려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브루스터, 마이클 패러데이와 같은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습니다.

 

20살이 되던 1835년 에이다는 '윌리엄 킹' 남작과 결혼하여 남작부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38년 킹 남작이 초대 러브레이스 백작이 되었고, 이에 에이다는 '러브레이스 백작부인(The Right Honourable the Countess of Lovelace)'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5세의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 초상,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Portrait by Alfred Edward Chalon, 1840)​.

 

   

# 에이다 러브레이스,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가장 잘 따랐던 선생님 중 한 명은 18세기 과학자 '메리 서머빌'이었습니다. 서머빌 역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천문학과 지리학을 공부했으며, 천왕성의 궤도를 방해하는 가상의 행성에 대한 논문을 집필하여 해왕성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서머빌은 에이다와 영국의 수학 교수 '찰스 배비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됩니다.

 

 메리 서머빌(좌)과 찰스 배비지(우).

 

배비지는 이 시기에 기계적 범용 컴퓨터인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1837년 처음으로 발표되고 1871년 배비지가 죽기 전까지 계속된 해석기관에 대한 설계는 매우 논리적이고 현대적이었으며, 약 100년 뒤에 등장할 첫 컴퓨터의 모습을 예측했다고 평가됩니다. 에이다는 배비지에게 해석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완전히 매료되어, 종종 '철학자의 길(Philosopher’s Walk)'이라고 불리는 에이다의 여름 별장에서 이 ‘초기 컴퓨터’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에이다는 이탈리아의 과학자 루이기 메나브레아가 프랑스어로 집필한 해석기관에 대한 논문의 영어 번역을 맡아서 하게 됩니다. 이때 에이다는 논문 본문보다도 많은 주석을 논문에 추가하며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분석(Observations on Mr. Babbage's Analytical Engine)"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A파트부터 G파트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주석에서 에이다는 해석기관을 사용해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작성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며, 이에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됩니다.

 

베르누이 수 계산을 위한 해석기관의 알고리즘 도표.

 

당시 해석기관은 기술적, 자본적 문제로 개발조차 되지 않은 공상의 기계로, 해석기관의 개념에 대해 이해한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배비지는 "이 여성은 내가 발명한 기계에 대해 오히려 나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기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에이다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탁월했다."고 말하며 오직 가정과 계산만으로 알고리즘을 작성해 낸 에이다를 ‘숫자의 마술사’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히 해석기관에 대한 알고리즘 작성에서 그치지 않고,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컴퓨터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녀는 해석기관이 프로그램 입력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계산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하며, 특히 해석기관이 단순 계산을 넘어 작곡이나 그림 그리기 같은 창작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방면을 예측한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뿐만 아니라 에이다는 해석기관에 적용될 수 있는 명령어, 즉 현대 프로그래밍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개념인 ‘서브루틴(subroutine)’, ‘루프(loop)’, ‘점프(jump)’와 ‘if’ 구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고안해 내며 ‘if’구문에 의해 기계가 논리를 수행할 수 있다면 언젠가 기계가 인간처럼 지능을 갖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대 인공지능의 가능성까지 언급합니다. 

 

그러나 결국엔 "해석기관은 (아무리 발전을 거듭한다 할지라도)무엇을 새롭게 고안해 내지는 못한다. 이 기계는 인간이 이미 알고 있는, 주어진 명령만을 수행할 뿐이다(The Analytical Engine has no pretensions whatever to originate anything. It can do whatever we know how to order it to perform. It can follow analysis; but it has no power of anticipating any analytical relations or truths)"라는 결론을 냅니다. 그녀의 주장은 후에 튜링 기계를 고안한 앨런 튜닝의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의 반론(Lady Lovelace’s Objection’이라고 직접 언급 되기도 합니다.

 

 

# 시적인 과학자, Poetical Scientist

 

스스로를 ‘시적인 과학자’라고 불렀던 에이다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뜹니다.

 

그로부터 100년 뒤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에이다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고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호칭과 함께 1979년 그녀의 이름을 딴 ADA 프로그래밍 언어가 탄생합니다. 에이다의 생일인 1980년 12월 10일, 미국 국방부는 ADA를 승인하였고, 해당 군사 규격에 그녀가 태어난 해를 기념하는 숫자(MIL-STD-1815)를 차용했습니다.  2012년 12월 10일에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탄생 197년을 기념하는 구글 두들이 헌정되었으며, 영국 컴퓨터 협회(British Computer Society)는 매년 그녀의 이름을 딴 메달을 수여합니다.

 


 

뛰어난 감수성과 글쓰기 능력으로 당대 지식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아버지 바이런과 함께 “아버지는 마음의 프로그래머이고 딸은 기계의 시인이다”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초기 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에이다 러브레이스. 시대를 앞서가 150년 뒤 컴퓨터를 예견했던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후대 앨런 튜링을 비롯한 과학자뿐 아니라 현재를 살며 컴퓨터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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