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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미술관] 환상적인 섬세함으로 TOS 세계를 그리다, IMC게임즈 '마기' 안정원 AD

게임미술관 18화

김승현(다미롱) 2019-05-20 10:17:07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트리오브세이비어>를 아시나요? IMC게임즈가 만들고 넥슨에서 서비스 중인 이 게임은 독특한 직업 시스템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독특한 화풍으로 잘 알려진 게임입니다. 

오늘 소개할 안정원 아트 디렉터(AD)는 이런 <트리오브세이비어>의 세계를 만들고 그린 작가입니다. 유저들에겐 안정원이라는 이름보다 '마기'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트리오브세이비어> 이전에도 <솔리테어리그>, <그라나도에스파다>, <판타지마스터즈> 등 다수의 게임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거든요.

 

IMC 게임즈의 '마기' 안정원 AD

직접 만나본 안정원 AD는 마치 그림과 결혼한 것만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이제 다른 팀원까지 관리하고 있는 지금도(원화가이자 AD) 짬짬이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었거든요. 실제로 안정원 AD는 자신의 SNS에 수시로 (개인적으로 그린) 러프 스케치와 그림을 올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전 일 중독, 그림 중독인 것 같아요. 보통 취미가 일이 되면 취미를 잃는다고 말하는데, 전 아직도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즐겁거든요. 때로는 그림 그리고 싶어 일을 집에 싸가거나, (그림) 일로 생긴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요. 전 오히려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으면 손이 근질거려요. (웃음)"

안정원 AD의 개인작 중 일부. 참고로 오른쪽 그림은 그가 2시간 만에 채색까지 마친 스트레스 해소용 그림이다.

안정원 AD가 게임 원화가를 꿈꾼 것은 학생 시절부터였습니다. 그는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코믹월드 같은 동인행사에 참여해 자기 그림을 알렸고, 대학에선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에 들어가 그림을 공부했죠. 동기와 자취하며 '훼'라는 그림 동아리를 만들어 창작 활동과 함께 프리랜서 일을 하기도 했고요. <판타지마스터즈>를 즐겼던 분이라면 '훼'의 낙관이 찍힌 카드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이후 안 작가는 20대 초반, 넥슨에서 <아스가르드>, <엑사인>, <아스가르드> 등의 게임에 참여하며 정식으로 원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IMC게임즈에 합류한 뒤 <그라나도 에스파다>, <트리오브세이비어>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왼쪽은 안정원 AD가 <그라나도에스파다> 팀에 막 참여했을 당시 그린 '레티샤', 오른쪽은 그가 2011년경 그린 홍보 이미지



# 끊임 없는 개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 낸 '마기' 만의 스타일 


안정원 AD의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독특한 분위기와 섬세한 복식 묘사입니다. 대부분의 게임 일러스트가 애니메이션이나 연예인 같은 느낌이 강하다면, 그의 그림은 '화보 안에 있는 모델'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모델 같다'고 말할 때처럼 늘씬하고 멋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캐릭터가 완벽하게 의상·배경과 조화를 이뤄, 캐릭터 개개인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안정원 AD의 작품 대부분은 풍성한 의상의 선, 캐릭터와 의상을 둘러싼 각종 배경 장식 덕에 캐릭터와 옷과 장식이 하나처럼 느껴지죠.  

캐릭터의 얼굴이나 보디 라인이 돋보이는 대부분의 게임 일러스트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오히려 안정원 AD의 그림은 패션 화보 같은 느낌이 강하죠. 물론 여기에는 안정원 AD 특유의 세밀하고 꼼꼼한 복장 묘사, 그리고 패션 모델 같이 늘씬한 캐릭터 디자인도 한 몫 했습니다. 

안정원 AD의 개인작 중 일부. 특히 오른쪽 그림은 캐릭터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음에도, 피부톤과 비슷한 풍성한 의상과 그림 상하단의 검은 모자·깃발 덕에 캐릭터보다 그림 전체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이는 안정원 AD가 끊임 없이 자기만의 그림체를 추구하고 연구한 덕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안 AD는 학생 시절부터 자신의 그림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창작 활동을 해왔습니다. 때문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스타일을 따르기 보다는, 그걸 어떻게 자기 스타일로 바꿀 수 있을까 더 많이 고민했죠.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는 얘긴 아닙니다. <신부 이야기>에서 섬세한 의상 묘사를 보여준 '모리 카오루' 작가, <설국열차>에서 빼어난 미술적 디테일과 통일성 보여준 봉준호 감독, 대표적인 아르누보풍 화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클림트',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와 패션계의 하이 패션(*) 스타일, 심지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까지. 안정원 AD가 좋아하고 영향 받은 작가·스타일은 폭 넓고 다양합니다. 

※ 하이 패션: 디자이너의 철학이 반영된, 작품성 있는 패션 디자인 경향을 일컫는 용어. 기성복보다는, 패션쇼 등에서 볼 수 있는 '유행의 영감'이 되는 디자인에 더 가깝다. 

모리 카오루 작가의 <신부이야기> 중 한 컷. 안정원 AD는 모리 카오루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의상 묘사를 특히 좋아한다.

다만 안정원 AD는 이들의 작품을 무작정 참고하기보단, 무수히 많은 습작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로 녹이려 애썼습니다. 실제로 그가 SNS에 올리는 러프 스케치를 보면 캐릭터들의 스타일·복장 등이 매번 달라, 마치 패션 디자이너의 연습장을 보는 것 같죠. 물론 여기에는 안정원 AD의 의식적인 노력은 물론, 그림 그리고 것이 힐링처럼 느껴지는 성정도 한 몫 했죠.  

이런 방대한 스펙트럼과 긴 노력 덕에 패션 화보처럼 캐릭터와 의상·배경이 일체화된 그림, 패셔너블한 복장과 섬세한 디테일, 그림의 테마를 보조하는 각종 배경 장식 등으로 대표되는 그 만의 스타일이 완성됐습니다.  

"취향이 특이해서 게임사에서 일하는게 신기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아날로그(?) 인간이라 그런지 그런 고전들이 좋더라고요. 또 그걸 제 스타일로 녹이는게 재미있고요. 그래서 <트리오브세이비어> 작업하며 엄청 신났어요. 그림 그릴 것도 많았고, 또 캐릭터 콘셉트도 소수민족부터 시작해 중세, 아웃룩 등 다양했으니까요. 오픈 직전까지 제가 거의 다 작업했지만,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었죠" 

"'저만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보여주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그림 그릴 땐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그림을 안 보려고 노력하죠. 평소 다른 작가 분들의 그림이나 각종 자료집은 많이 보는데, 그걸 그릴 때 보고 참고하는 것은 약간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복잡한 문양 같은 것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려 해요. 아, 해결한단 표현은 너무 거창하네요. 사람들이 컬러링북에서 힐링하는 것처럼 전 복잡한 문양을 그리는데서 힐링하거든요." 

안정원 AD가 참여한 <트리오브세이비어>의 캐릭터들. 캐릭터들의 복장 콘셉트가 굉장히 폭넓은 편이다.

안정원 AD가 그린 <솔리테어리그> 카드들. 트럼프 카드는 고도의 상징이 녹아 있는 작품이지만, 안정원 AD는 다른 그림에 영향 받기 싫어 상징과 의미만 공부한 뒤 그림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해 그렸다.

 

 

# 그림에 통일성·완결성을 담기 위한 고민들 

 

안정원 AD가 그림 그릴 때 가장 신경쓰는 것은 테마와 통일성입니다. 일관된 테마와 분위기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죠. 

 

참고로 안정원 AD가 말하는 그림의 통일성이란 단순히 그림이 하나의 테마로 일관되게 그려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가 생각하는 통일성이란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하나의 목적으로 기능해, '그림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는 의미에 가깝죠. 그래서 안 AD는 통일성을 완결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를 위해 색감과 상징, 배경 장식(그의 말을 빌리면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죠. 다음은 안정원 AD가 꼽은 주요 작품들과 제작 의도,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트리오브세이비어>의 '여신 길티네'. 길티네는 죽음의 여신입니다. '죽음'이라는 스산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비석, 말뚝, 유황 같은 상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일단 길티네는 창백한 피부로 표현한 뒤 그의 옷은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 주변 배경은 어두운 무채색 위주로 채색해 캐릭터를 강조하고 '죽음의 여신'이란 단어가 주는 스산한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뱀파이어 같은 분위기를 의도했다고 하네요.

길티네 곁에 있는 십자가, 비석, 말뚝 등의 배경 장치는 (그 자체가 가진 죽음의 이미지 외에도) 차가운 직선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합니다. 또한 이 배경 장식들은 길티네를 밑에서 받춰줘 캐릭터의 성격을 더 강조하는 역할도 합니다. 또한 배경 장식들이 마치 옥좌처럼 길티네 중심으로 배치돼, 길티네 자체의 크기는 크진 않음에도 왜소하다는 느낌 없이 오히려 길티네를 돋보이게 합니다.

 


<트리오브세이비어>의 5 여신 작업 과정. NDC 15에서 '여신 아우슈리네 외'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그림입니다. 5명의 여신을 그린 작품인 만큼 고귀함과 신비로움이라는 테마에 집중한 작품이죠. 이를 위해 전반적인 색감을 은은하게 잡아 신비로운 느낌을 살렸고, 여신들 주변엔 꽃이나 베일, 날개 등의 배경 장식을 통해 고귀한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5 여신의 포즈와 이를 둘러싼 배경 장치를 통해 캐릭터 하나하나에 눈이 가기 보단, 전체적인 그림이 먼저 보이게끔 의도했죠.  

복수의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은 색감·구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자칫 불안정해 보이는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3, 4번을 보면 그림의 색감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의 무게 중심을 낮춰 더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변화죠. 완성본을 보면 최상단에 있는 아우슈리엘은 배경색과 비슷할 정도로 색감이 옅어지고, 최하단 바카리네의 색감은 더 뚜렷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최근 안정원 AD가 리뉴얼 한 그림입니다.

 

<트리오브세이비어>의 5여신 리뉴얼 버전


<트리오브세이비어> 배경 콘셉트 원화. 캐릭터 원화가 출신인 안정원 AD가 처음 작업한 배경 콘셉트 원화입니다. 전공(?)은 아니지만, 그림 전체가 일관된 테마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잘 녹아 있는 작품들입니다. 

안정원 AD는 작업 당시, 필드를 '무대'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연극이나 영화의 무대는 연출가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사물을 배치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배경 콘셉트를 작업할 때도 그 필드에서 전하고 싶은 분위기·경험 등을 설정한 뒤, 그에 맞는 오브젝트를 채워 완성했다고 하네요.  

이미지 중간 중간 보이는 캐릭터는 유저들이 필드에 실제로 서 있을 때 어떤 것을 느낄 지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그린 것입니다. 참고로 안정원 AD가 <트리오브세이비어>의 배경 원화를 그리며 목표한 느낌은 '탐험하고 싶은 세계'입니다.  

 

 

# 자신만의 화풍을 갈고 닦는 것,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 

 

안정원 AD의 꿈은 그가 할머니가 돼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삶입니다. 이는 곧 그의 그림이 꾸준히 발전해 누군가가 계속 찾아주고, 게임 개발 기술이 발전해도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끊임 없이 영감을 줘야 한다는 의미죠.  

 

이런 꿈 때문에 그는 이제 실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AD(≒ 관리직)가 됐음에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안정원 AD 성격상, 취미의 역할도 존재하긴 합니다 ^^;) 안 AD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나, 바닐라웨어의 카미타니 조지처럼 자기 색이 뚜렷하고 다양한 소재를 소화할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솔리테어리그>의 '스페이드 킹'

이런 꿈 때문인지 (물론 그의 그림 철학 때문이기도 하죠), 안정원 AD는 원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의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갈고 닦을 것을 권합니다. 

"요즘 게임 아카데미에선 당장 취업에 도움 되는 '잘 나가는 그림'을 알려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들 사정이 다를 테니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취업을 넘어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자기 그림체를 찾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것이 없다면 결국 계속 남 밑에서 일해야 하거든요.  

AD가 됐건 리드 디자이너가 됐건, 아트를 책임지는 사람은 자기와 게임을 대표하는 무기가 있어야 해요. 또 요즘은 어린 분들도 정말 재능 넘치고 잘 그리시는 사람이 많아요. 그들과 경쟁해 살아 남으려면 자기만의 무기가 필수죠.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자기 그림을 발전시키는 게 회사원들이 짬 내서 영어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직업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안정원 AD의 개인작. '코르셋과 갑옷의 느낌을 합치면 어떨까'하는 발상에서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화풍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정원 AD가 권하는 것은 무수히 많은 '개인' 창작 활동,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일에 얽매이지 않는 그림은 필연적으로 창작자의 개성, 혹은 생각이 담기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창작물은 여러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발전시키기 쉽습니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개인 작업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게임 회사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업 미술'을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상업 미술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의미를 가지죠. 때문에 개인 작업은 개인에서 끝나선 안되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동반해야죠. 

"혼자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데 혼자 그리고 혼자 만족하면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아무리 비판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보기 힘들고요. 저는 그래서 SNS 등에 계속 그림을 올리고 여러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업 미술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다양한 피드백을 듣고 자신을 갈고 닦는 게 중요하죠.  

물론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좇으라는 얘기는 아니네요.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취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 일을 '오래' 하려는 사람이라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다른 사람의 취향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해요. 저는 이게 좋은 게임 아티스트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솔리테어리그>의 하트 3과 클로버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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