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가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 2일차 키노트를 맡아 강연에 나섰다. 문득, 넥슨 행사에 엑스엘게임즈 대표가 나선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송재경 대표는 넥슨 출신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 김정주 회장과 함께 넥슨을 창업한 사람이 송재경 대표다. 그는 넥슨에서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고 이후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를 만들었다. 국내에서 MMORPG의 기본 틀을 잡은 1세대 개발자다.
많은 개발자들이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한다. 송재경 대표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경험과 도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강연에 나섰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첫 번째,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나눔
국내에서 MMORPG의 첫 삽을 뜬 인물. 온라인 게임 업계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는 확연하다. 그렇다면 그는 처음부터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그의 게임 입문은 동네 전파상에서 만난 오트론 게임기였고, 두 번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였다. 그리고 친구집에 놀러가서 우연히 보게 된 8비트 컴퓨터를 통해 개발이란 행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면서 지금의 김정주 회장과 꿈을 키웠다.
코흘리개 시절 게임과 인연을 맺은 송재경 대표.
여기까지의 강연은 이미 디스이즈게임의 스폐셜 칼럼 송재경의 게임 입문기 [원문보기]에 보다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는 카이스트 출신이다. 당시 석사과정에서 <네트핵>이라는 게임에 빠져 있었고, 박사과정에서는 <네트핵>의 단점인 멀티플레이의 부재와 단순한 그래픽을 강화한 그래픽 머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여기서 순조로웠다면 <바람의 나라>는 그가 카이스트 시절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도교수의 “그런 것을 왜 만드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 했고 꿈은 접혔다. 이후 박사과정을 그만둔 그는 김정주 회장과 넥슨을 창업했고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카이스트 시절 <네트핵>에 빠져 있던 당시를 묘사한 삽화.
박사과정에서 그래픽 머드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가 강연에서 들려준 에피소드의 한 자락. 한때 그도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미국 시장에서 팔아 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하던 오리진 시스템에 이력서를 넣었다고 한다. 이후 1997년 E3쇼에서 오리진 시스템의 스타롱이라는 개발자를 만나 “이력서를 받아 봤냐?”고 물어봤지만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4년 후 엔씨소프트에서 송재경 부사장으로 있던 당시, 엔씨소프트는 리차드 게리엇 사단을 인수해 버렸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리차드 게리엇은 ‘영입’이 아닌 ‘인수’를 했다.
■ 두 번째, MMORPG에 대한 과거의 반성
엔씨소프트를 그만둔 이후 자만 또는 오만에 빠져 있던 송재경 대표는 집에서 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봐줄 수 없었던 그의 부인은 “차라리 나가서 놀아라!”고 호통을 쳤고, 진짜로 나가서 놀기 위해 엑스엘게임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만 했다.
처음에는 그도 ‘<WoW>가 MMORPG의 완성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확장팩이 나오기 이전 티어 세트를 모두 맞춘 성기사를 키우던 그는 20대 길드장에서 구박을 받아 가면서 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뭔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엑스엘게임즈 창업 후 <WoW>에 푹 빠져 있던 당시 송재경 대표의 뇌 구조.
“내가 생각하는 MMORPG의 방향성은 무엇일까? MMORPG는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의 약자다. 리차드 게리엇이 만든 단어로 알고 있다. 김학규 대표가 인터뷰에서 MMORPG의 요소 중에서 매시브는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도 김학규 대표의 생각과 비슷했다. 매시브라는 것이 MMORPG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 개의 서버에서 몇 천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상호작용을 만들어 낸다. ‘MMORPG다운 MMORPG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게임, 96년 <바람의 나라>, 97년 <울티마 온라인>, 98년 <리니지>는 해당 장르의 첫 경험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한 재미도 있지만 아쉬움도 분명히 존재했다.
MMORPG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고, 최초의 실수와 잘못된 점을 보강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현금 거래는 귀속 시스템으로, 무분별한 PK는 같은 진영 PK 불가로, 사냥터 독점은 인스턴스 던전으로 해결해 나갔다.
■ MMORPG에 대한 방향성의 고민
문제는 이런 환경이 기본이 되면서 모든 MMORPG가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주어진 장애물을 피하고 나서 원래의 길로 들어서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피한 방향, 즉 패키지게임스러운 MMORPG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MMORPG다운 MMORPG의 요소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솔로잉보다 파티플레이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부분 지원하는 시스템이지만 최종 콘텐츠는 파티로 귀결된다. 파티플레이는 결국 같이 플레이하는 것이다. 물론 유저들이 피곤해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요즘 파티플레이가 피곤한 이유는 강요된 플레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놓은 답이다. 즉 강요된 파티플레이가 아닌 어쩌다 보니 같이하는 플레이, 예를 들어 사냥터에서 티격태격하다가 친해지고 어느새 같이 사냥하는 자연스러운 파티플레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MMORPG의 세계를 현실과 닮은 꼴의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MORPG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현실 세계와 비슷하게 예측되지 않는 예측불허의 요소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오는 즐거움이 진정한 MMORPG의 재미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콘솔 패키지처럼 주어진 결말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닌 MMORPG만의 즐거움은 여럿이 같이 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예측불허의 재미로, 이를 위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그가 지금 <아키에이지>를 만들고 있는 기본 콘셉트이기도 하다.
■ 세 번째,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반성을 바탕으로 한 도전
마지막으로 그는 <아키에이지>를 개발하고 있는 것을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반성을 통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MMORPG에 대한 또 한 번의 실험이다.
<아키에이지>에는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것 외에 유저들이 만들어 이용하는 예측불허의 콘텐츠가 있다. 문제는 단순히 이런 콘텐츠를 유저들에게 던져 놓으면 많은 유저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어려워한다.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당의정(Sugar coated)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스토리, 퀘스트, 예쁜 캐릭터 등이 당의정이다. 그런데 이런 당의정만 잔뜩 만들었다고 하면 서비스를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이를 소비하고 나면 유저들이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키에이지>는 당의정보다 그 안에 들어갈 최종 콘텐츠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공성전과 해상전 등이 <아키에이지>의 개발 초기부터 선보인 이유였다. 겉포장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의 효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당의정(Sugar coated, 糖衣錠)은 휘발성분이 날아가거나 내용성분이 변하는 것을 막고 불쾌한 냄새, 혹은 쓴 맛을 설탕 등으로 얇게 덮어서 먹기 쉽게 만든 의약품.
마지막으로 송재경 대표는 MMORPG의 재미를 위한 요소로는 ‘콘텐츠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유저들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뷔페 요리와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코스 요리가 적절한 밸런스를 잡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아키에이지> 3차 테스트(CBT)를 시작한 첫날 반응 중에 “그렇게 자랑하던 자유도가 어디 있는지 보여달라”는 유저들의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2일차, 3일차가 지나면서 점점 재미있다는 말과 MMORPG의 로망이 있다는 의견도 많아졌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강요된 플레이, 지나친 자유도만 강조하는 것보다 두 가지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노력해서 잘 만든 MMORPG를 만들어 보겠다며 그는 강연을 마쳤다.
자유도와 제공되는 재미의 밸런스가 게임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