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에이지>의 원작인 '전나무와 매' 출간을 기념하며, '전민희 작가와의 대담'이라는 이름으로 기자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아키에이지>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과 소설을 집필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민희 작가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실리에
전민희 작가님의 인기는 기자 사이에서도 대단했습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사인을 받기 위한 기자들의 행렬이 이어졌으니까요. 옆에 쌓인 책이 기자 수보다 많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되겠죠?
기자들의 물량 공세에도 친절하게 사인을 해준 전민희 작가.
간담회는 긴 테이블에 전민희 작가와 기자들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사실 간담회보다는 티타임에 가까웠죠. 내용도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가볍도 재미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지 볼까요?
■ 전민희 작가 본인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전> 앞으로 아키에이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을 쓸 것 같고 <룬의 아이들>이나 <태양의 탑>을 원하는 분도 많이 계세요. 책을 냈다고 해도 쉴 수 없이 바빠요. (웃음)
지난날을 돌아보면, 2006년에 <아키에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5년 동안 작업에 몰두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전에 <테일즈 위버>를 통해 게임과 연을 맺었는데, 이때는 소설을 써서 주는 것이 작업의 하나였어요. 소설을 어레인지해서 스토리로 업데이트하는 방식이었죠.
최근 5년은 그런 소설 작업과는 달랐어요. 많은 개발 문서가 만들어졌죠. 그리고 몇 장 되지 않는 개발 문서를 얼개 삼아 <전나무와 매>를 만들었어요. 개발 문서는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 몇 권이나 나올지 모르겠네요. (웃음) 앞으로 신작도 써야겠지만, 저에게는 소설을 몇 권이나 쓰고 얼개를 만든 것 같이 굉장히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작품에서 보면 음식에 대해 박식하신 것 같아요.
전> 음식을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전나무와 매>의 끝 부분에 나오는 요리는 쉽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상상의 요리가 아니라 레퍼런스가 있어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는 아니지만, 나름의 시대상을 반영해서 만든 것이죠.
보시기에는 창작한 것 같지만, 다 있었던 것인데 저도 만들 줄은 몰라요. (웃음)
작품에 사용한 음식 중에서 가장 <아키에이지>에 어울리는 것은 뭘까요?
전> 각 지역의 생활상에 맞는 음식을 택했기 때문에 사실 없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한 번 등장시켜 볼까요? (웃음)
배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혹시 아키에이지에서 해상전이 중요한 것과도 관계가 있나요?
전> 무관하지는 않네요. 최초에 세계관을 만들면서 지도를 그렸을 때 이 정도는 헤엄쳐서도 건너겠다거나 배를 타야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실제 역사에서도 바다를 둘러싼 국가 사이에서는 전략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죠. 그런 바다를 낭비할 이유는 없잖아요?
개인적으로 <대항해시대>를 재미있게 했고 배 박람회에 갈 정도로 좋아해요. 실제로 본 배는 상상과는 많이 달랐지만요. 밧줄밖에 없더라고요? (웃음)
패키지로 즐겼던 <대항해시대>에서 재미있었던 시스템을 아이디어 회의에서 내놓기도 했어요. 개인 탈것 정도로 나올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어마어마한 게 만들어져 있었어요. 막 해상전도 하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보니 상당히 동안이세요. 혹시 비결이라도?
전> 동안이라는 말 자체가 저에게는 생소하네요. 대학생 시절에, "재수하셨어요?"라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아~ 삼수하셨구나."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요. 실제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20대를 보냈는데, 30대에 들어오면서 이제 나이와 외모가 맞춰진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비결? 글쎄. 나이를 먹은 게 비결일까요? (웃음)
팬 서비스 차원에서 단편을 쓸 계획은 없으세요?
전> 정말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전나무와 매>도 이런 형태가 될지는 몰랐어요. 장대한 이야기인데 수십 권에 나눠서 쓰는 것보다 단편 모음으로 쓰는 것이 더 흥미롭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렇게 나오게 됐어요.
음악감독 윤상, 신해철 씨는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전> 중학생일 때 그분들이 인기가 많았던 기억이 나요. 저도 팬이었기 때문에 처음 만날 때 많이 긴장도 했어요. 사인을 받으려고 앨범도 가져갔었는데 그쪽에서 제가 쓴 책을 꺼내면서 사인을 요청하시더라구요. 그다음부터는 육아 이야기를 했어요. (웃음)
■ 게임 개발 고문으로서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엑스엘게임즈의 개발 고문으로서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요?
전> 일을 시작한 지 5년쯤 되다 보니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2007년 초쯤이었는데 그때는 송재경 대표, 김경태 기획팀장과 함께 3명이서 회의를 진행했어요. 세계관을 정하기보다는 아이디어 회의에 가까웠죠.
그러다 보니 거의 웃고 떠드는 회의를 1년 정도 진행한 것 같아요. 개발이 급진전되면서는 주로 설정과 비교해서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됐어요. 원화나 캐릭터가 만들어졌을 때 설정과 같다, 다르다 피드백을 주고, 만들기 전에 의견을 주기도 하다 보니 개발 고문이라는 직함이 붙었네요. (웃음)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관 안에서 맞는지 틀린 지는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개발이 많이 진전된 상태라서 예전만큼 의견을 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원대륙이 나오면 예전만큼 의견을 낼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의견 중에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전> 자잘한 것부터 큰 것까지 많아요. 뭐라고 딱 찍어서 말하기는 어렵네요.(웃음)
저는 보통 아이디어만 던지고 그것을 발전시켜서 결과물로 만드는 것은 개발자입니다.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아마 여러 곳에 녹아있지 않을까요?
최초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전혀 따지지 않고 마구 의견을 던졌기 때문에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어요. 물론 추후에라도 재미있는 형태로 다듬어진다면 다 의미가 있는 아이디어가 되겠죠? 분명한 것은 어딘가에 많이 녹아있다는 거예요.
게임 사운드에 대해서는 만족하세요?
전> 작업을 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어울리겠다는 곡을 듣고 리스트는 만들어서 전달하기도 했어요. 이전에 대중가요 말고도 '월드 뮤직' 앨범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오히려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로 나온 결과물에는 대단히 만족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지역 분위기가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해요. 그래픽이나 사운드일 수도 있고 스토리일 수도 있죠.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런 부분을 느껴보는 것도 분명히 좋다고 생각해요. CBT 스크린샷을 보면서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실제로 다양한 부분에서 그런 것들을 녹여내려고 노렸했거든요.
단순히 등대의 위치나 항구의 위치도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지, 전략적인 요소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모두 고려하면서 만들었어요.
■ 송재경 대표에 대한 이야기
송재경 대표와 오래 일을 하셨는데요, 송재경 대표와 비슷한 인물을 작품 속에서 찾는다면요?
전> 마침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12명의 인물을 소개했을 때 송재경 대표가 한 인물을 보면서 자기를 닮은 것 같다며 좋아했어요. (웃음) 아직 등장은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한번 찾아보면 재미있겠네요.
인물의 포트레이트를 그리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요. 비슷한 인물을 미리 말해주면 특징이 잘 반영되거든요. 그런데 그 인물은 송 대표 본인의 사진을 레퍼런스로 삼으면 되겠다고 하더군요. (웃음) 진짜 한 번 찾아보세요.
전민희 작가가 본 송재경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요?
전> 2007년에 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자주 보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회의도 잦았고 거의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형태라서 난상토론이 되기도 했거든요. 외부에서는 '천재 개발자'라는 인상이 강한데, 실제로는 상당히 엉뚱한 면이 있어요. 대화도 활기차고 재미있어요. 유머가 넘치죠.
엉뚱하면서도 로지컬한 부분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엉뚱한 주제, 엉뚱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충분히 논리적인 절차에 의한 도출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탄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도 상당히 인상에 남아요. 드물면서도 뛰어난 사람이죠. 개인적으로 존경하기도 하고요. 성과와 경력이 많으면서 소탈한 면도 있어요.
처음에는 엑스엘게임즈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프로젝트 규모도 잘 알 수 없었는데, 1년쯤 일하면서 확실히 이 프로젝트는 끝까지 갈 것이라는 신뢰가 생겼어요. 중도에 좌절하거나 방향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런 불안은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지만,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작업에 참여한 입장에서도 기대될 정도예요.
영화나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캐릭터 중에 송 대표와 닮은꼴이 있다면?
전> 다른 사람들이 '닥터 하우스'를 흔히 말하던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꽤 닮은 것 같아요.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가끔은 엉뚱하면서도 독설가인 점이요. (웃음) 소설에 등장하는 12명의 인물 중의 한 명이 본인과 닮았다고 하시는데, 닮았다기보다 그냥 취향에 맞으신 거 같아요.
닥터 하우스. 닮았나요?
■ 작품에 대한 이야기
가장 궁금한 것, '전나무와 매'의 다음 편은 언제 나오나요?
전> '전나무와 매'는 시리즈가 아닙니다. 12명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는 단편 모음에 가깝겠네요. 아마도 '전나무와 매' 2권이 아니라, 다른 제목으로 나오게 될 거예요.
언제라고 예고하기는 어렵네요. 하지만, 나온다는 예고는 바뀌지 않아요.
아키에이지 때문에 다른 시리즈가 나오지 않는다고 여기는 분들이 계신데요?
전> <전나무와 매>도 한번 읽어주세요. (웃음)
전나무와 매는 2천 년 전의 이야기인데요, 현재의 이야기는 쓸 계획이 없으세요?
전> 물론 현재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
현재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라면, 퀘스트 내용을 미리 알게 되지 않을까요?
전> 퀘스트와는 다른 덩어리의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고, 현재라고는 해도 100년 전 정도의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어요. 퀘스트를 하면서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미리 알게 돼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이미 작업하고 있는 분량도 있습니다.
그럼 다른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네요?
전>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인물 열전의 이야기를 다룰 거예요. <전나무와 매>와는 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보시면 알겠지만, 12명의 인물은 모두 방향성이 있고 한 곳에서 만나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진이나 키프로사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서 과거사부터 모두 다뤘습니다. 다른 인물의 과거사를 다루기도 하겠지만, 책 한 권 분량이 나올 만큼의 비중은 아니고 일단 빨리 만나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네요.
키프로사처럼 처음부터 중요한 인물, 중반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거의 마지막에 합류하는 인물도 있어요. 아마 비중에 따라 다루는 방법이 다를 거예요.
등장인물 12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전> 쓰고 있는 부분의 중심인물에 가장 관심이 갑니다. 그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해보지 않으면 잘 쓸 수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어느 부분을 쓰느냐에 따라 바뀌죠. 지금은 이번 편의 주인공들이 그러네요. (웃음)
사인회에서 상당히 팬이 많이 왔었습니다. 이전에 진행했던 사인회에서도 그랬나요?
전> 지금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만 3번 정도 한 것 같고, 코엑스나 영풍 문고 등 여러 곳에서 한 적이 있어요. 인원은 코엑스에서 진행한 사인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교보문고에서 사인회를 하면 구조상 꼭 밖으로 줄이 나가요. (웃음) 특히 더운 날에는 기다리느라 고생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이번엔 5년 만의 사인회라서 인사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기다리는 분들이 너무 고생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고생하며 기다려주신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전> 더운 날씨에 정말 고생 많이 하셨고, 어지럽다는 분도 계셨는데 돌아가지 않고 기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인회를 할 때마다 얼굴 없는 독자가 아니라, 한 분 한 분 만나는 것이 실감 나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느낌들을 소중히 간직해서 다음 작품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자주 기회를 만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쉽네요.
팬들과의 소통은 어떤 방법으로 하세요?
전> 메일이 가장 빠릅니다. 모두 답변을 드리지는 못해요. 제가 메일을 쓰면 상당히 심력을 많이 소모해서 5~6통 정도 쓰면 그날은 소설을 못 쓸 정도거든요. (웃음) 하지만, 메일은 모두 신중하게 읽어보고 심각한 메일에는 답장합니다.
신작이 나오면 궁금해서 리뷰를 읽어봐요. 단순한 댓글만 봐도 느끼는 면이 있어서 반영하기도 하죠. 스토리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깨달을 때가 있어서 보는 관점을 달리하기도 해요.
작품에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혹시 사연이라도?
전> 저는 다양한 이야기를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쓴 <세월의 돌>이 안타까운 결말이라서 원망도 많이 듣고 강하게 인상이 남은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를 읽어도 그런 장면에서 많이 인상이 남나봐요.
<전나무와 매>를 읽어보면 연애담과는 다릅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면을 다루고 싶어요.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잘 풀리는 것보다는 어긋나는 것이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그러죠. 그런 부분은 좋아해요. 자기에게 영향을 미쳤던 과거를 곱씹어보고 그런 부분에 따라 주인공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많은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아닐까요?
커플 브레이커라는 별명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전> 네. 들어봤어요. (웃음) 의도적인 것은 아닌데 말이죠. 이미 결혼한 지도 오래됐는데 설마 그러겠어요? (웃음)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인물도 모두 신경 써서 쓰고 있어요. 그래서 다양하게 쓰려고 했는데 유난히 그런 부분이 잘 보이나봐요.
현실에서 2천 년은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거의 천지개벽이 일어날 시간인데 소설에서는 어떤가요?
문명 수준을 보면 2천 년 전이 훨씬 낫습니다. 지금 우리도 '아틸란티스'와 같은 초고대 문명을 연상하는데 <아키에이지>에서도 고대의 대륙에 있었던 문명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현재 문명이 미치지 못하죠. 문명이 쇠락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서 올라가는 과정에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문명이 쇠락하는 계기는 12명의 인물이 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소재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전> 현실에서 얻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판타지 소설의 무대나 인물, 오브젝트 무엇이라도 레퍼런스가 없을 수는 없어요. 인물도 주변의 누구와 닮아있거나, 유명한 인물과 닮기도 합니다. 그 시대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현재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반영되기도 하죠.
다루는 시공간이 넓다 보니 다양성이 상당히 중시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흥미롭게 느낀 한 부분이 있더라도, 넓은 세계관 안에서는 작은 부분이 될 수밖에 없죠. 평소에 관심이 없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많이 알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역사처럼 이전에 몰랐던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이슬람의 관점에서 본 역사라거나 그런 것들이요.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당시는 이슬람이 상당히 번성했던 시대여서 우리가 생각하고 알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서 여행을 하더라고요.
진의 배경도 중앙아시아를 콘셉트로 작업한 것이죠. 아직도 제가 모르는 것은 많고 레퍼런스는 꾸준히 찾아야 합니다.
글에 한글 이름이나 고유어 표현이 많은데요, <WOW> 이후로 게임 용어 번역에서도 한글 이름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 의역도 많고 해석이 있어도 원문을 쓰는 분도 계세요. 순수 한글 주의자는 아니지만, 사용할 때 한글이 가장 귀에 잘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한 한글이 제일 자연스럽잖아요?
그것이 어색하지 않게 잘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 고민이에요.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그런 면을 고려하면서 작업하죠. 그러면서도 더 멋진 표현을 쓰고 싶고 한글로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요.
적재 적소에 고유어가 배치되면 인식하기 좋은데, 너무 남발하면 오히려 특색이 없어질 수도 있어서 그런 부분은 조심하고 있어요.
■ 게임 내용에 대해
퀘스트는 유저가 그냥 스킵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색깔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글로 구성되지만, 글이 표현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설명하거나 직접 보는 '솔즈리드의 문'에서 느끼는 분위기로 누이안 종족의 문화적, 종족적인 특성을 볼 수도 있거든요.
일단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이나 스토리에 관여하고 있지만, 유저들이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스토리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임무도 분명히 있어요.
초반 지역이 특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초반에는 세계관이나 스토리보다도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가 적응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체험하는 것이 우선이죠. 임무 자체가 달라요. 이런 것들은 스토리가 중요한 부분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퀘스트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가깝습니다. 유저들은 게임을 하러 오는 것이지 소설을 읽으러 오는 게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게임보다 우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진 후에는 스토리에 더욱 다이나믹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소설을 읽고 나서 플레이하면 다르게 느끼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새로운 종족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많습니다. 페레도 기존의 판타지에서 볼 수 있는 종족과는 달랐고요. 앞으로 추가될 종족의 콘셉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전> 이미 완성 단계에 가 있는 종족도 많아요. 완성 이후에 추가할 종족도 고려해서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중에 어느 것을 플레이 종족으로 할까 선택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누이안은 얼핏 보기에 휴먼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콘셉트를 가진 종족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이것은 메인 퀘스트를 끝까지 해보면 알 거예요. 엘프도 기존 판타지에서 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죠? 앞으로 나올 종족도 기존에 봤던 것들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이 종족은 이런 특징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통해서 천천히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종족도 실재할 수 있도록 만들려 했습니다. 겉으로 덩치가 크고 굉장히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사실은 섬세하다거나, 고상해 보이지만 난폭하다거나 이런 특색을 두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엘프부터 남다르지 않나요? (웃음)
소설에서 등장한 곳은 게임 안에서도 다 가볼 수 있나요?
전> 장기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아요. 누이아나 하리하라에서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야 그 지역에 가볼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오래돼서 흔적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하실 텐데, <아키에이지>에서는 그때의 사건들이 현재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세 번째 대륙에 갔을 때는 지명으로도 남아 있을 테니 알 수 있을 거예요. 2천 년이나 흘렀으니 당시의 인물들이 다 죽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인물도 있거든요. 2천 년 전의 역사가 플레이에 재현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질문이 끝나자 전민희 작가님은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말을 보탰습니다.
게임의 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출시도 얼마 남지 않은 단계인 것 같습니다. <아키에이지>에서 세계관과 스토리를 담당했다고 하니 텍스트가 있는 부분은 모두 제가 작업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사실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분만 7명 정도 있고, 수많은 퀘스트와 인물 등 다른 작업에 참여하신 분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분들의 역할이 대단하고 작업한 양이 많은데, 나중에 출시했을 때 모두 '전민희' 작가가 작업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되잖아요? 모두 함께 애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3명이 회의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발전했지만, 지금도 돌이켜 보면 인상 깊었던 말이 있어요. 단순한 유저일 때도 게임을 만드는 데에는 제약이 많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송재경 대표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어떻게 될지 제약은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주세요. 게임에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알아서 해내겠습니다."
그래서 받는 요청 없이 그냥 다양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상당히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게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왔을 때 잘된 면이 있다면 최초부터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 개방적이었던 것에서 시작된 것일 거예요. 그래서 작업하면서도 만족스러웠고, 결과물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