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키에이지> OBT 최고의 화제, 서리!
최근 <아키에이지> 최고 인기 화제는 단연 ‘서리’다. 게임 내에서 재판장에 끌려오는 피고(?)의 대부분은 나무나 작물 절도 혐의다. 일반적인 PvP 게임에 흔할 법한 살인죄가 오히려 희귀할 지경이다. 채팅창에서도 서리 당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반대로 서리 무용담을 늘어놓는 서리꾼들의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서리에 대한 사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서리를 하나의 콘텐츠로 인정하고 정당하게 볼 것인지, 도덕성을 물어서 제재가 필요한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세금 안 내고 심은 게 나쁘냐, 그걸 뽑아간 게 나쁘냐 이거다.
5차례에 걸쳐 진행한 CBT에서도 서리라는 행위는 있었으나, 지금처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전례는 없었다. 왜 이리도 OBT에서는 서리라는 주제에 불이 붙는 것일까? 지금부터 서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서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리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남의 과일이나 곡식, 가축 등을 훔치는 장난이다. <아키에이지>에서도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플레이어가 재배하는 작물이나 나무, 가축 등을 훔치는 행위인데, 장난으로 볼지 악질 범죄로 볼지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현실이나 <아키에이지>나 서리가 주인에게 들키면 범죄가 된다는 점은 같다. <아키에이지>에서도 서리 후에 남은 발자국이 신고되면 범죄 점수가 부여되고, 점수가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재판을 통해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왜 서리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주택이나 텃밭 영역에 심은 작물과 가축은 서리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데, 왜 서리의 위협에 노출되는 곳에 작물을 심는 것일까?
■ <아키에이지>의 통나무는 금값, 나무를 향한 끝없는 갈망
<아키에이지> OBT에서 통나무와 목재는 상당히 귀중한 자원이다. 지난 5차 CBT부터 나무가 완전히 자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졌고,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통나무 수도 늘어난 시간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 또한, 묘목 가격이 만만치 않고 목재가 쓰이는 곳은 굉장히 많다.
일단 생산이나 무역에 필요한 아이템에는 대부분 목재가 필요하다. 텃밭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주택, 선박에는 대량으로 필요하고, 활과 지팡이 등 무기 제작에도 꾸준히 목재가 소모된다. 이후 원대륙이 공개되고 공성전이 시작되면 공성 병기에도 상당한 목재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목재의 수요량은 많은데 그것을 충족할만큼 공급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통나무의 가치가 오르고 그만큼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주거 지역은 텃밭 포화 상태. 대부분은 나무를 키우고 있다.
목재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필드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베거나, 직접 나무를 길러서 베는 것이다. 필드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채널이 없는 <아키에이지> 구조상, 서버에 접속해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경쟁자다. 누구에게나 목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드의 나무도 성장 속도는 빠르지 않다. 40분만에 자라는 포도나무가 있지만, 얻을 수 있는 통나무는 1개다. 노동력을 10이나 소모해서 얻는 것 치고는 보람 없는 갯수다. 그나마 수지가 맞는 통나무 4~8개짜리 나무는 짧게 4시간, 긴 것은 이틀만에 완전히 성장한다.
직접 나무를 기르려면 묘목을 사서 땅에다 심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필드에 심으면 묘목 주인 외에 누구라도 묘목을 뽑거나 나무를 벨 수 있다. 그래서 나무를 보호받을 수 있는 공용 수목원이나 개인용 텃밭을 이용한다.
공용 수목원도 이미 빼곡하다. 자리를 찾기도, 내 나무 찾기도 어려운 상황.
하지만 공용 수목원은 1인당 5그루 한정에 심은 시각으로부터 24시간만 보호해준다. 개인용 허수아비 텃밭은 통나무 효율이 좋다는 주목 나무나 은사시 나무 4그루를 겨우 심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호박머리 허수아비 텃밭은 일반 텃밭의 4배 크기로 넉넉한 편이지만, 설치를 위해 목재 100개(통나무 300개)가 필요하다. 통나무를 얻기 위한 나무를 심으려면 어떻게든 통나무를 일정 수량 모아와야 하는 구조다.
물론 느긋하게 통나무를 모으면 며칠을 투자해서 호박머리 허수아비 텃밭을 얻을 수는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통나무의 쓰임새가 여간 많은 것이 아니라 항상 플레이어들은 통나무에 목마르다.
세상의 끝(미공개 지역 경계)에 숨겨진 은사시 나무들.
■ 나무를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끝없는 전쟁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통나무를 얻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던 플레이어들은, 보호받을 수 없다면 감추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필드에 심은 나무가 공공 재화라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장소에 심으면 개인 재화가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또한, 텃밭을 설치하면 매주 일정량 세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필드는 그런 부담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묘목을 비밀 장소에 심고 벌목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필드에서 벨 수 없는 나무 사이에 섞어 심어서 위장하는 방법, 미공개 지역의 경계나 높은 산꼭대기 등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 심는 방법 등 더 확실하게 감추기 위한 도전이 이어졌다.
산속 깊은 곳, 나무 사이에서 몰래 자라고 있는 묘목들.
하지만 이렇게 숨기려는 집단의 반대 편에서는 찾아서 가로채려는 집단(일명 서리꾼)이 생겨났다. 숨겨둔 장소를 알아내기는 어렵겠지만, 발견하기만 하면 공짜 통나무가 생기는 셈이니 보물 찾기나 다름 없다. 꼭꼭 숨길수록 찾아내려는 서리꾼의 추적도 집요해졌다.
아무리 잘 숨겼더라도 귀신같이 알아내서 베어가고, 묘목까지도 뽑아가는 극성 서리꾼 때문에 <아키에이지>의 삼림은 점점 황폐해졌다. 게다가 서리당한 분노를 참지 못한 플레이어들도 ‘당한만큼 갚아주겠다’는 각오로 서리꾼 집단에 투신했다.
결국 지금은 심는 사람보다는 서리꾼 수가 더 많아서 나무 한 그루를 두고 서리꾼끼리 다투는 기묘한 현상마저 보인다.
■ 누가 나쁜 거야? 그들의 변
공용 필드에 밭을 일구는 일명 ‘화전민’과 서리꾼 사이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화전민 입장에서는 ‘내 돈 내고 내가 심은 나무’를 별로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가져가는 서리꾼이 좋게 보일 리 없다. 무엇보다도 재판을 통해 감옥에도 갈 수 있는 ‘공식 범죄자’가 아닌가?
무엇보다 그들은 자라지도 않은 묘목을 뽑아가는 행위에 분노한다. 우스갯소리로 묘목만 전문적으로 뽑아가는 서리꾼을 ‘묘리타(묘목+로리타)’라고 부르며 ‘묘청법(※편집자 주- 묘목 청소년법: 아동 청소년법을 패러디한 조어)’으로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묘목을 뽑고 있는 묘리타 서리꾼. 대처 방법은 없다.
서리꾼에게도 할 말은 있다. 본인의 재산을 지키고 싶으면 시스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곳에 심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용 필드에서 서리의 위험은 항상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심은 것은 그런 위험을 안고도 더 많은 이익을 취하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
- 화전민의 의견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짓는 것이 재미 있어서 즐기고 싶지만, 땅이 부족하다. 일반 필드에 심은 작물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도 열심히 숨길 곳을 찾고 돈을 들여서 작물을 심는다.
그것을 함부로 가져가는 서리꾼의 행위는 분명히 범죄다. 다 자란 나무를 가져간다면 그나마 생활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방금 심은 묘목을 뽑아가는 것은 단순히 범죄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일부 서리꾼들은 소유자 없는 땅에 작물 심고 이득 취하는 화전민이 범죄자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리꾼이 경찰 노릇을 할 권리도 없을 뿐아니라 서리라는 범죄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신고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감옥에 가도 탈출이 많이 어렵지도 않다. 자거나 외출할 때 캐릭터를 접속해두면 어지간한 형량은 코웃음 칠 수준이다. |
- 서리꾼의 의견
그곳에 나무가 있기에 베었다. 이것은 길에서 지갑을 주운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기 땅에 심은 것은 안전하고 다른 곳에 심으면 위험하다는 조건은 누구나 같다. 세금조차 내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작물을 수확하겠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가? 텃밭에서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천천히 생산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폭리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화전민이 숨길 곳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인다고 하지만, 반대로 서리꾼도 그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나무를 위해 모든 맵을 탐사하며 뛰어다닌다.
발견했더라도 나무를 베고 나면 발자국이 남는다. 일정 수준 이상 신고를 당하면 우리는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가야한다. 화전민이 서리라는 리스크를 안고 나무를 심는다면, 서리꾼은 감옥이라는 시스템적인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아키에이지>에는 범죄 숙련도라는 것이 따로 있다. 범죄를 콘텐츠로서 인정한다는 뜻이며 우리는 그 콘텐츠의 일부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감옥에 가게 된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
■ 콘텐츠로서의 서리, 시스템적 진화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리에 대한 논란 양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초반에 서리꾼과 화전민 사이에 ‘누가 나쁜가?’를 두고 대립하던 것에서, 최근에는 ‘서리’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개선안을 제시하는 쪽에 가까워졌다.
대부분 의견의 요지는 ‘심고 훔치고 신고하고 감옥에 간다’는 프로세스가 너무 단순해서 콘텐츠로서의 ‘서리’가 아니라 무분별한 절도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직접 재배와 서리를 통해 얻는 이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계정과 부캐릭터를 사용하면 감옥이라는 리스크도 무시하고 버젓이 본캐릭터에 나무를 공급할 수 있다. 또, 주인이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지켜보는 와중에도 농락하듯이 서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양쪽이 리스크를 안고 진행하는 숨바꼭질이 아니라, 화전민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유저들이 제시하는 개선안 중에는 부캐릭터의 무분별한 서리를 막기 위해, 일정 레벨 혹은 숙련도를 달성해야 다른 사람의 나무를 벨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있다. 또한, 주인 캐릭터 주위의 일정 범위에 있는 작물은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도록 하자는 의견도 그럴 듯하다.
속수무책으로 서리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즉결 처분할 수 있는 현행범 시스템이나, 감옥에 보내더라도 어렵지 않게 탈출하는 것의 대안으로 일정 시간 강제 노역이나 벌금형 등 형벌을 다양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서리는 무조건 최고형’이 최근 트렌드다.
곧 정식 서비스 예정인 <아키에이지>. 이제는 정말 ‘시간이 돈’이 된다. 그래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물을 키워야 하는 게임 특성 상, 서리에 대한 문제는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원대륙이 공개되는 시점에서는 공성을 위한 자원 요구량은 더 많아질 것이고, 원정대 단위의 자원 관리가 필요해질 테니말이다.
PvP와 마찬가지로 ‘서리’라는 시스템에서도 유저 간 경쟁과 대립은 게임에 하나의 자극이 되고 즐길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결을 통해 승부를 냄으로써 경쟁할 수 있는 PvP와 달리, 해결 방법 없이 서로 감정만 소모할 뿐인 대립이 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유저 간의 상호 작용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아키에이지>가 낳은 훌륭한 콘텐츠인 재배와 서리가 건전한 대립을 통한 ‘즐길거리’가 될 수 있도록 진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CBT에서 어떤 시스템적 강제 없이 유저들끼리 훈훈하게 서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던 캠페인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면서 기사를 마친다.
- 우리 <아키에이지>,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CBT 시절에도 서리는 있었다. 아예 텃밭이 없던 시기도 있었고, 텃밭이 생기고 나서도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다보니 안전하게 심을 수 있는 나무를 많지 않았다. OBT와 닮은 모습을 갖춰 가던 CBT4와 CBT5가 특히 그랬다.
그래서 거주지 주변이나 주요 사냥터 근처에 묘목을 심게 됐고, 그것을 노린 서리도 생겨났다. 한정된 CBT 기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원도 많았다. 아무리 심어도 나무는 금세 사라졌다.
누구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너무 황폐하다. 이 땅을 물려줄 후손따위는 없겠지만, 남은 CBT 기간은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고 벤 만큼 나무를 심자고 외쳤다.
처음에는 개인의 작은 움직임이었던 것이 하나의 미담처럼 퍼져나가, 조금씩 동조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꽤 눈에 보이는 캠페인으로까지 발전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서리를 하되, 벤 자리에는 어떤 종류든 나무를 한 그루 심을 것.
통나무가 필요했던 이들에게도 이것은 나쁘지 않았다. 심고 길러서 베는 것이 아니라 베고 나서 심는 형태라서 속성 재배, 즉 통나무 자판기나 마찬가지였던 셈. 물론 베기만 하거나 발자국을 신고하는 짖궂은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 결과 필드에서 소유자가 있는 나무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고, 그것을 베는 것도 그 자리에 묘목을 하나 심어두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서리꾼과 나무 주인이 함께 나무를 베고 함께 묘목을 심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 캠페인을 한 TV CF의 멘트를 따서 ‘우리 <아키에이지>, 푸르게 푸르게’라고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