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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이지 95일의 대장정, 무엇을 남겼나?

CBT4에서 드러난 장단점과 풀어야 할 숙제

 

지난 11일, 95일 동안 진행된 <아키에이지>의 4차 클로즈 베타테스트(이하 CBT4)가 끝났습니다. 전례 없이 길었던 일정만큼 콘텐츠도 쏟아져 나왔죠. 새로운 종족과 지역, 원대륙, 공성전, 해적 등 큼직한 콘텐츠가 새로 등장했고, 기존에 있던 하우징, 제작, 해상전, 퀘스트 등은 더 다듬어졌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CBT4에서 핵심 콘텐츠라 할 수 있는 공성전, 제작, 해상전, 그리고 스토리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감상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난 중간점검에서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여겼던 부분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권정훈 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키에이지> CBT4는 CBT3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단 겉모습부터 확 달라졌죠. 크라이 엔진 2에서 3로 엔진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래픽 퀄리티와 최적화 사이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CBT4 초반에는 최적화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점점 쾌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경의 나뭇잎 하나까지도 정밀하게 표현하려던 데서 힘을 좀 빼고, 질감은 살리면서 어색하지 않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수한 물 질감 표현은 여전하다.

 

겉만이 아니라 속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CBT3까지 등장했던 콘텐츠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다’ 정도로 뼈대만 서 있었다면, CBT4에서는 살이 붙으면서 전체적으로 볼륨감이 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베는 이유가 ‘그런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냥 해보거나, 소수의 유저들은 집과 배를 만드는 데 쓰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CBT4에서는 활, 지팡이 등 무기와 악기, 여러 건축물에 두루 쓰이는 필수재료가 됐습니다. 게다가 나무 종류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통나무의 수나 원목 종류가 달라서 나무 재배가 계획적인 자원관리 방편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원대륙, 공성전, 해양 콘텐츠 등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면서 각 콘텐츠의 볼륨도 계속 키워 나갔기 때문에 95일이라는 장기 테스트를 버텨내고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키에이지>는 개발 중인 게임이죠. 아쉬운 점도 보였습니다. 특히 CBT4에서 새로 시도하는 콘텐츠들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부터 이번 테스트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재미는 있었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공성전

 

 

 

 

공성전은 CBT4의 마지막 6주 동안 집중적으로 점검한 핵심 엔드 콘텐츠입니다. <아키에이지>의 공성전은 공성 측이 수성 측의 방어를 뚫고 수호석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됩니다. 물론 수성 측은 공격을 막아서 수호석을 지켜내야겠죠.

 

공성 측이 수호석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면 성의 주인이 바뀌고, 원래 수성하던 쪽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하게 됩니다. CBT4에서는 2시간 동안 싸우다가 공성전이 끝나는 시점에 수호석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성을 차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수호석을 공격하라!

 

<아키에이지>에서는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시간 못지않게 시작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재미있습니다.

 

수성 측은 수호석을 지키기 위해 지형과 전략에 맞게 성과 구조물을 짓습니다. 공성 측 역시 성의 약한 부분을 노려서 수호석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좋은 지점에 공성 진지를 설치하죠. 성 주위에 나무를 심어서 공성 측의 시야를 가리고 진입을 방해할 수도 있고, 제작대나 주택으로 공성 병기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등장했던 토끼원정대의 미로성.

 

성벽과 방어탑을 원하는 위치에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수호석을 지키기 위해 미로 같은 성을 만들거나, 주위 풍경과 어울리는 멋진 성을 만드는 등 마음대로 가능했으니까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성에 맞추는 전략이 아니라, 전략에 맞게 성과 구조물을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 공성의 재미를 더했죠.

 

실제 전투도 재미있습니다. 무작정 싸우는 필드전에 비해 목적과 승패가 분명한 공성전은 더 필사적이고 긴장감이 넘치게 흘러갑니다. 필드전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집단 전투의 재미에 더해 공성전차, 사다리차 등 공성병기를 운용하는 즐거움도 상당히 큽니다.

 

공성전에서 강력함을 뽐냈던 전차부대.

 

하지만 그런 재미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성전에 참여했던 원정대 단위의 유저들도 승리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자 점점 관심을 두지 않게 됐죠. 3주차 이후에는 아예 수성을 포기하는 원정대도 있었고, CBT4 종료 2주 전부터는 원래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콘셉트였던 해적 팩션이 공성전에 참여해서 모든 영지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마땅한 동기가 없어서 공성전 자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은 점도 몹시 아쉽습니다. 성벽을 겹으로 쌓고 전면에서 힘싸움을 벌이는 단순한 전투만 몇 번 벌어지다가 공성전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사라졌으니까요.

 

어떤 보상과 동기에 의해 유저가 움직이는지, 공성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떤 구조로 성을 짓고 전략을 세우는지 다양한 샘플이 필요할 텐데, 기본적인 시스템 테스트에 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수성 포기로 성벽 없이 진행된 공성전도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공성전보다도 오히려 부수적인 콘텐츠인 '약탈'이 주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공성 측이 성을 점령하면 해당 영지의 모든 저택과 텃밭에 있는 농작물, 가축, 아이템을 마음껏 약탈할 수 있죠. 전세가 공성 측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미리 약탈할 대상물 앞에 대기하는 유저들, 그리고 약탈이 시작되면 아군도 적군도 없이 사이좋게 집을 터는 유쾌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무자비한 약탈자들을 막을 사람도 없습니다. 별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약탈하는 순간 만큼은 정말 짜릿합니다. 특히 원대륙에는 귀한 재료인 ‘아키움’ 나무를 많이 심어 놓기 때문에 약탈할 맛이 나죠. 어떤 유저는 이 순간을 ‘GTAge’라고 표현하며 <아키에이지>의 진정한 자유도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나무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공성전을 테스트 후반부에 공개한 것치고는 미리 준비돼 있었다는 느낌이 덜 합니다. 첫째 주는 치명적인 버그로 공성전이 무산됐고, 공격대장이 튕겼을 때 공격대가 유지되지 않거나 초대 권한이 이양되지 않는 등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가 나중에 처리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공성병기를 차근차근 업데이트한 것에 비해 마지막 주에 등장한 수성병기는 제대로 써 볼 기회가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래도 콘텐츠가 처음 공개된 만큼 부족함도 많았지만, 국가와 정치의 개념이 더해지고 눈에 보이는 보상과 이해관계가 있다면 훌륭한 콘텐츠로 거듭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테스트에서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펼쳐지는 멋진 공성전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 여전히 혼란스러운 제작

 

 

 

 

엑스엘게임즈가 제작은 CBT4의 주요 테스트 콘텐츠가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제작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퀘스트를 하다 보면 꾸준히 장비 아이템을 보상으로 주는데, 30레벨 중반이 되면 퀘스트가 모자랍니다(테스트 막바지에 신규 지역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퀘스트 아이템은 수리가 불가능한 소모품이라 제작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죠.

 

<아키에이지>의 제작식은 상당히 단순합니다. 원하는 아이템 옵션을 정하고, 한 아이템으로 등급을 업그레이드해서 옵션 수치를 올려 나가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지능 옵션이 붙은 지팡이를 원한다면 지능 +10 옵션이 있는 모험가 지팡이에서 기사단→원정대→영주로 등급을 올려서 지능 수치도 +20, +30, +40으로 올리는 거죠. 물론 등급이 오를 때마다 방어구는 방어도, 무기는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등급을 올리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노동력과 시간 소모도 부담스러워서 제작보다 사냥에서 완제품을 얻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굳이 제작을 하는 경우는 네임드 몬스터에게서 희귀한 아이템을 얻어서 등급을 올릴 때 정도였죠.

 

이후 숙련도에 따라 제작에서 아이템 희귀도가 올라가는 업데이트가 있었고, 다시 제작은 활기를 띱니다. 굳이 네임드 몬스터를 잡거나 비싼 값에 희귀한 아이템을 사지 않아도 제작만 하다 보면 희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테스트 종료 2주 전아이템 합성이 업데이트 되면서 장비 아이템은 다시 소모품이 됩니다. 상점에서 아이템을 수리할 수 없는 대신, 제작으로 만든 아이템에 기존 아이템의 옵션을 옮길 수 있게 된 거죠. 아이템의 내구도가 떨어지면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고 합성해서 계속 옵션을 옮겨야 합니다.

 

내구도가 소모된 장비 아이템의 옵션을 옮겨 담는 아이템 합성.

 

아이템 합성이 도입되면서 액세서리 제작 외에는 버림받았던 양식장이 의미를 갖게 되고, 쓰이지 않던 나무 원목이나 농작물이 쓰임새를 찾았다는 점에서는 호평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수준의 아이템을 유지하려면 재료 아이템을 계속 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제작에 재미를 붙이기보다 단순 반복을 통한 제작을 강요한다는 지적도 있었고요.

 

아이템 합성도 시간이 흘러 재료의 공급이 늘어나고 전문 장인들이 생기면 유저들의 평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충분한 테스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서 오히려 불편한 점이 강조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아키에이지>에서 제작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제작은 1차 생산물을 전투나 공성전, 하우징 등 다른 콘텐츠에 활용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작업입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영역에 맞물려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죠. 이 가공물들이 어떤 시장을 형성하는가에 따라 자원의 흐름과 가치, 경제 구조의 윤곽이 결정되겠죠. 추가 테스트를 통해 섬세하게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 바다와 해적의 의미는?

 

<아키에이지>에는 멋진 함선과 날렵한 쾌속정이 있고 바다로 나가면 미지의 섬과 크라켄 같은 몬스터도 있습니다. 해상전은 이미 지난 CBT3에서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죠. 분명히 <아키에이지>의 바다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정작 바다로 나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 무인도를 발견하면서 기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노인과 바다> 혹은 <원피스> 같은 콘셉트라도 잡은 게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즐길 콘텐츠는 아닙니다.

 

경치는 멋지지만, 아직은 허전한 바다.
 

크라켄 레이드는 훌륭한 도전과제고, 보상 아이템도 꽤 탐낼 만합니다. 하지만 역시 소규모로 즐길 수는 없고 언제 아이템을 얻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반복 작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지루합니다.

 

CBT4 기간에 끊임없이 유저들이 외쳤던 것이 “바다를 살려달라”였습니다. 테스트 막바지에 등장한 양식장을 통해 아이템 합성에 쓰이는 재료를 얻게 되면서 유저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반가운 일이었죠. 양식장처럼 지속적으로 바다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준비되면 좋겠네요.

 

바다 살리기 프로젝트 첫 번째, 양식장 건설!

 

이번 CBT4에서는 제3세력 무법자 진영이 추가됐습니다. 흔히 ‘해적이라고 불리는 무리인데, 절도와 살인으로 범죄 점수가 많이 쌓이면 해당 캐릭터의 소속이 무법자로 변합니다. 무법자들은 본래 진영의 원정대에 소속될 수 없고 상점도 이용할 수 없어서 해적섬에 있는 그들만의 마을을 거점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범죄 점수가 높은 유저들은 무법자가 됐지만,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보통 해적이라고 하면 음침한 분위기의 해적선을 끌고 바다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아 악명을 떨치거나,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으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떠올릴 겁니다.

 

같은 해적(유저들)에게 수없이 쓰러졌던 해적선장 모르페우스.

 

아이러니하게도 해적이 명성을 떨쳤던 분야는 레이드와 공성전입니다. 같은 해적 진영으로 설정된 보스 몬스터 ‘해적선장 모르페우스를 처치하거나, 성을 소유할 수 없는 콘셉트임에도 공성전에 참여해 원대륙의 영지 4곳을 통일해 버리는 기행을 선보였죠. 바다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적으니 약탈할 일도 없고, 특별할 것 없는 바다는 해적에게 매력적인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바다를 살리는 일은 다음 테스트에서도 중요한 미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잘 짜여진 퀘스트 라인, 겉도는 스토리

 

<아키에이지>는 전민희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탄탄한 세계관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유저가 많은데, 아쉽게도 퀘스트 라인을 따라가면서 그런 부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선택한 종족이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왜 여행을 떠나 원대륙에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죠.

 

단순히 레벨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면 퀘스트 동선은 깔끔합니다. 노동력을 소모하면 조금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으로 짜놓았죠. 퀘스트에서 메인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흡입력이 떨어지고, 레벨업 수단으로 인식되는 점은 몹시 아쉽습니다.

 

탄탄한 배경 스토리의 실마리가 게임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오히려 퀘스트 동선에서 빠져나오면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꼼꼼한 설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묘한 오브젝트가 알고 보니 2,000년 전 이야기의 단서였다거나, 마을 주변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의 대사가 사건의 실마리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요소들이 퀘스트와 연결되지 않고 숨겨져 있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로요.

 

물론 CBT라서 일부러 숨겨 뒀거나, 찾으며 모험하는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고를 무릅쓰고 이야기의 단서를 찾아다니는 유저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숨겨두는 것은 예쁜 옷을 사놓고 옷장에만 넣어두는 것과 다를 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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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콘텐츠, 이제 조화를 생각할 때 

 

<아키에이지> CBT4에서 공개된 콘텐츠의 양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시작부터 새로운 지역과 종족, 원대륙을 공개했고 매주 꾸준한 업데이트로 계속 콘텐츠를 채워 넣었습니다. 그중에는 크라켄, 공성전 등 큼직한 것도 있어서 게임의 볼륨은 상당히 커졌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많은데 막상 유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잔칫상에 차려 놓은 것은 많은데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모양새 같아요. 전채와 주요리, 후식이 짜임새 있게 갖춰진 것이 아니라 그냥 주요리만 가득한 상이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취향대로 골라 먹어야 하는데 전부 맛보기는 부담스럽죠.

 

콘텐츠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재미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단순히 농작물을 심어서 물을 주고 자라는 것을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기마다 심고 수확하는 것만 반복하는 작업이 됩니다. 재미보다는 자원 수급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죠.

 

CBT4 기간에 유저가 주최해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나룻배에 많은 캐릭터가 동시에 타는 기네스, 날틀로 멀리 날기, 전차 포트리스 등 <아키에이지>의 시스템을 잘 활용한 이벤트였죠. 이런 이벤트는 게임이 지나치게 감정에 의한 PvP 구도로 과열되는 것에 대한 유저들의 자발적인 정화 작용이기도 했습니다.

 

유저에 의해 진행된 이벤트, 날틀 멀리 날기 대회.

 

유저들이 갖고 놀 만한 요소가 많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런 이벤트들은 주최하는 유저가 없으면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일회적인 성격도 강합니다. CBT라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재미있는 것이지, 정식 서비스에서 매일 날틀만 타거나 나룻배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도전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게임이 장수하려면 콘텐츠의 수명도 길어야 하는데, 현재 <아키에이지>에서 수명이 긴 콘텐츠는 공성전을 비롯한 PvP와 캐릭터 육성, 그리고 생산과 제작 정도입니다. 물론 이것들도 충분한 동기가 마련되고 다른 콘텐츠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할 것입니다.

 

CBT4 마무리 간담회를 통해 CBT5 인던 투입을 밝힌 <아키에이지>.

 

엑스엘게임즈는 <아키에이지>의 CBT5를 진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아직 자세한 일정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인스턴스 던전을 추가하고 바다를 살리겠다는 내용을 전했죠. 계속 새로운 것을 넣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어느 시점에서 묶을지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키에이지> 정식 서비스에서는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묶을지, 그리고 어떤 콘텐츠를 업데이트로 추가할지 잘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CBT4는 그런 판단을 위해 유저의 콘텐츠 소모 속도, 성향과 플레이 방향 등을 알아보기에 적절한 기간을 설정했다고 봅니다. 유저 피드백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고, 콘텐츠를 즉각 만들어 넣을 수 있는 개발력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95일 동안 수집한 데이터들이 <아키에이지> CBT5에 어떤 모습으로 반영될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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