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을 알면 그 지방의 기후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특산물은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고. 그 특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이 곧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영웅전>에서 소개된 특산물들을 깊이 살펴보고,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게임의 세계관을 추정해보기로 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아퀼리페르
콜헨의 얼음 딸기주(Iced strawberry brandy) |
■ 얼음 딸기주는?
콜헨의 대표적인 명물은 얼음 딸기주다. 그 딸기주는 오르텔 성의 영주 잉켈스가 콜헨에 오자마자 한 모금을 청할 만큼 명성이 높았고, 괴팍한 노마법사 리엘도 행패를 뚝 그칠 만큼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고 한다. 어느 누군가는 죽는 순간까지 얼음 딸기주를 찾았다고 하니 이쯤 되면 명물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
▲ 얼음 딸기주, <Vindictus>에서는 Iced strawberry brandy.
//www.ginologist.com/Wordpress/
■ 얼음 딸기주가 사랑받는 이유는?
<영웅전>에선 그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음 딸기주를 언급한 NPC들은 한결같이 '맛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NPC들이 맛있다고 말하는 만큼, 실제 딸기주도 맛있는 술일까?
실존하는 딸기주 역시 사람들에게 맛있는 술로 사랑받고 있다. 단맛이 강해 봄철의 식욕증진제로 좋으며, 칵테일 베이스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맛뿐만이 아니라 주재료인 딸기에는 비타민 C와 신경통에 좋은 성분이 풍부해 건강에도 좋다.
▲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딸기.
//www.ifood.tv/blog/some_strawberry_trivia
■ 딸기주를 만드는 재료는?
그럼 이 얼음 딸기주를 만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Vindictus>에선 얼음 딸기주를 Iced strawberry brandy라고 부르기에 그 레시피를 참조해봤다. 명칭을 따르면 얼음 딸기주는 보드카를 베이스로 딸기를 재어둔 뒤 얼음을 띄워 마시는 과실주의 일종이며, 딸기, 설탕, 브랜디 혹은 보드카, 얼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얼음 딸기주에 필요한 재료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간단히 알아봤다.
▲ 딸기에 보드카 혹은 브랜디를 넣고 숙성. 소주도 가능하다.
//www.metalfromfinland.com/finland/alcohol
//highendheathens.com/post/3106505387/learn-to-drink-brandy
1. 딸기
좋은 딸기를 수확하려면 일단 배수가 잘되고 수분을 알맞게 지닌 토지에다 모종을 심어야 한다. 생육에 적당한 온도는 17-20℃이기 때문에 냉랭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가장 품질이 좋은 딸기는 모종을 심은 지 2-3년 뒤에 생산되기 때문에, 모종을 심고 수확하자마자 새로 심는 것보다는 여러 번 수확하는 방법이 좋다.
전통 농법대로라면 9월 하순부터 10월부터 키우기 시작해 이듬해 5월 말부터 여름 내도록 생산할 수 있다.
Iced strawberry brandy는 신선하고 잘 익은 딸기가 주재료이니, 콜헨의 기후는 딸기를 재배하기 알맞을 정도로 선선하지 않을까 추정할 수 있다.
2. 브랜디
브랜디(brandy)는 떫고 신 백포도주를 증류해서 만든다. 수확한 포도는 증류한 다음 2~8년의 숙성을 한다. 도수가 최소 40도다.
3. 보드카
이 술은 곡물을 찌는 과정, 엿기름을 부은 뒤 효모를 섞어 발효하는 과정, 증류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도수는 45~50도가 일반적이다.
4. 얼음
전통방식대로라면 천연얼음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와서 빙실에 저장해야 한다. 잡화점 NPC 아일리에가 '얼음계곡에 마족이 출현해서 얼음딸기주 축제를 못할지도 모른다.'라는 대사를 고려하자면, 따로 저장하지 않고 인근의 얼음계곡에서 채집해 배에 실어 가져오는 모양이다.
혹은 여름에 얼음계곡의 빙하들이 해동되어 무너진다면 유빙들을 건져서 쓸 수 있지 않을까 추정할 수 있지만, 이 가능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다. 마침 딸기의 수확기도 여름이고, 일반적인 주식인 밀의 수확기도 여름이다. 수확 철이 끝나 마음도 풍요롭고 딸기도 잘 여물었는데 얼음이 동동 떠내려온다면, 이를 보고 얼음 띄운 딸기주가 절로 생각나지 않을까?
■ 딸기주를 만드는 과정
다음은 콜헨의 얼음 딸기주에 모티브가 된 Iced strawberry brandy를 만드는 과정으로 추정해본 제조법이다.
(1) 70% 정도 익어 푸르스름한 빛이 남아 있는 딸기를 고른다. 단단하기 때문에 쉽게 으깨지지 않고, 신맛도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달기만 하고 텁텁한 맛이 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2) 질 좋은 딸기를 고른 다음에는 깨끗이 씻고, 설탕과 술과 함께 항아리에 밀봉해서 1개월간 숙성한다. (브랜디, 보드카 대신 술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숙성은 통풍이 잘되고 볕이 안 드는 곳에서 해야 한다.
(3) 채로 딸기를 걸러내고 보관을 한다.
(4) 그냥 마셔도 되고, 단맛이 강하면 물에 타서 마셔도 된다. 탄산음료와 섞어 마셔도 어울린다. 신맛을 더 가미하고 싶으면 레몬을 띄우거나 주스를 섞으면 된다.
■ 딸기주 축제 시기는?
이상으로 얼음 딸기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과정을 알아봤다. 그렇다면 수확기와 주조 시간으로 딸기주 축제를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딸기주를 최적이라는 단단하고 푸르스름한 빛이 남은 딸기는 5월 말에 수확할 수 있다. 5월 말 수확한 딸기를 술에 담근 뒤 1개월간 숙성을 거치면, 7월에 새로 빚은 얼음 딸기주를 맛볼 수 있다. 즉 얼음 딸기주 축제는 7월에 열린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7월에 얼음 딸기주 축제를 열 법한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주식인 빵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밀을 여름에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7월은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이며 가장 곳간이 풍족해지는 절기이므로, 이 시기에 축배를 든다는 것은 한 해 동안의 수고를 기념하고 풍족함을 즐긴다는 의미를 가진다.
덤으로 7월의 날씨는 매우 무덥기 때문에 얼음을 띄운 시원한 음료수가 가장 절실히 떠오르는 때다. 수확을 기념하고 풍요로움을 즐기면서 동시에 갈증까지 시원하게 풀 수 있으니, 이 시기에 얼음 딸기주 축제를 여는 것이 최적이지 않을까?
아율른의 호박
기왕 콜헨의 명물 얼음 딸기주의 레시피와 재료 재배과정을 알아봤으니, <영웅전>에서 아율른의 특산물로 소개되는 호박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오브젝트로서 직접 들어보고 던져보고 휘두를 수 있는데다 땔감으로도 유용한 <영웅전>의 호박은 아율른의 특산물로 소개된다. 호박이 얼마나 많이 열리는지 뱀파이어들의 지배에 놓인 뒤에도 어디에서나 뒹굴고 있는 호박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율른 주민이 떠난 뒤 보살펴줄 사람도 없는데도 잘 자라는 호박을 보며, '이 작물은 그리 사람 손을 타지 않는가?'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호박은 알아서 쑥쑥 크는 작물일까?
■ 호박의 재배 조건과 특성
호박은 어디 심어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심은 뒤에 어느 정도의 시간만 지나면 가뭄에도 강하고, 잡초와 섞여 자라도 별 탈 없이 자란다. 즉 4월 하순∼5월에 걸쳐 심은 뒤, 6∼9월에 무리 없이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다.
▲ 페넬라의 말대로 더위가 가실 쯤에 거둘 수 있다.
재배가 까다롭지 않은 만큼 보관도 쉬운 편이다. 겉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두꺼워 내용물이 쉽게 변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재배가 까다롭지 않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특성이 있기에, 흉년이나 겨울철에 주식 대신 호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황식품으로 분류된다.
*주: 구황식품은 불순한 기상조건에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흉년이 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의미한다. 조∙피∙기장∙메밀∙감자∙고구마 등이 대표적인 예다.
■ 호박의 용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호박을 재배했고, 주로 호박죽으로 끓여 먹었다. 이렇게 죽으로 끓여 먹으면 비타민 B와 C를 풍부히 섭취할 수 있고 위염·위궤양·설사 등 소화기관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건강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주로 파이로 만들어 먹는다. 특히, 북미에서는 추수감사절, 할로윈 데이 등 명절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 후식이든 주식이든 뭐든 OK.
//gardenpal.wordpress.com/2008/11/20/growing-pumpkins/
//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jlove67&logNo=30087544058
한편, 호박은 먹을거리 말고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 할로윈 데이에 속을 파서 등불로 만드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망령들이 길을 헤매지 말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영웅전>에서도 할로윈 이벤트 때 아율른의 뱀파이어들이 이 호박등을 쓰고 등장했다.
■ 호박으로 추정하는 아율른 사람들의 생활
지금까지 알아본 대로라면, 아율른은 구황작물인 호박을 주로 생산하는 마을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딸기를 통해 콜헨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보듯이, 호박을 통해 아율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는 없을까?
게임에서 제시된 단서만으로는 아율른 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측하기 어렵기에, 현실에서 구황작물이 특산물인 나라가 있는지를 조사해봤다. 조사 결과, 과거 아일랜드가 주로 구황작물인 감자를 재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과거 아일랜드가 가난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구황작물을 주로 재배했다는 사실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사실 땅이 좋으면 그보다 상품성이 좋은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굳이 구황작물들을 키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땅이 척박하면 구황작물보다 상품성이 더 높은 작물들을 기를 수 없다. 상품성이 높은 작물들은 일반적으로 구황작물보다 더 많은 양분, 수분, 일조량을 요구하는데다 온도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황작물이 그 지역의 특산물이다.'라고 말하면 '척박한 땅에서 기를 수 있는 작물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지역이다.'라는 말과 같다 보면 된다. 일련의 사실들로부터 유추하면, 아율른도 호박을 키우지 않고서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는 처지일 수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구황작물이 특산물이란 말은
그보다 더 좋은 먹을거리를 키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www.clareroots.com/emigration.htm
만약 10월에 파종해 이듬해 봄에 거둘 수 있는 작물이 있다면 호박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호박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봐선, 겨울이 너무 추워서 이듬해 봄에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할 처지가 못되기 때문에 봄철까지 먹을 호박을 집중생산하게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맺으며…
이상으로 <영웅전>에 소개된 특산물을 현실과 비교해 더욱 자세히 알아봤다. 그리고 특산물들로부터 공개되지 않은 <영웅전>의 설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비록 게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확을 기념하며 얼음 딸기주로 건배를 드는 콜헨 사람들의 활기참을, 척박한 토지에서 호박밭을 일궈가면서도 군락을 이루려는 아율른 주민의 애환을 읽는 것, 이 역시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