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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정인게임장의 폐업, 그리고 어릴 적 아버지의 게임장에 부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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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진(홀리스) 2020-06-18 11:39:08

일전에 정인게임장에 취재를 하러 가면서 어려운 마음이 여럿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벌써 2년 전이다. 정인게임장이 폐업을 한다는 루머. 하지만 2년 뒤, 루머는 결국 현실이 됐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관련기사]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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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에서 짧게 언급했듯, 기자에게 게임장은 곧 '아버지의 일터'와 같았다. 짧게 얘기를 하면, 아버지는 기자가 아주 어릴 때부터(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게임장을 운영하셨다. 전국에 체인점을 낼 정도로 걱정 없이 지냈다. 주에 한 번씩, 퇴근길 동생과 함께 부르셔서 과자를 한가득 사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점점 크면서 횟수는 점점 줄었다. 게임장 영업이 어려워진 탓이다. 이용자의 놀이 형태가 바뀐 것도 있지만, 새로운 게임(아버지는 항상 이를 '기판'이라 부르셨다)이 나올 때마다 교체하는데 드는 수백만 원의 막대한 비용, 그리고 PC방이 성행함으로 인한 수입 감소 등이 있다.

 

 

결국 아버지의 게임장은 전국의 지점을 닫게 됐다. 커다란 규모에 빽빽하게 들어선 수많은 게임 기판들,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많은 이용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더욱더 안타까웠던 것은, 대학교 입학 후 방학이 되어 아버지의 업장을 방문하려 했는데, 기자가 갔던 곳은 이지투디제이와 펌프잇업, 그리고 10개 남짓 되는 아케이드 기판이 들어가는 다소 조그마한 크기의 게임장이었다. 당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꽤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근거 없는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그게 누군가의 원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의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정말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됐다. 군대를 다녀올 때 즈음, 아버지는 게임장을 폐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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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정인게임장 사장을 취재하러 갔을 당시, 사장은 함께 운영하던 숭실 게임랜드를 폐업하면서 일부 기판을 정인게임장으로 가져오려 하는 차였다. 사장은 게임장을 운영한 지 16~7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기자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차였다.

 

사장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이유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에게 부딪히는 현실의 압박이 너무나 거셌던 탓이다. 임대로부터 거듭해 오르는 물가까지. 하지만 이용자에게 받는 이용 요금을 섣불리 올릴 수 없는 상황. 놀이 환경의 변화 등.

 

 

 

정인게임장은 한때 '격투게임의 성지'라 불리며 흥행을 달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장은 그런 타이틀 때문에, 더욱 여기에 매달렸다 말했다. 철저히 무시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을, 정리했다면 2년 전부터 인형뽑기방을 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당시 기사의 제목은, 기자의 귓속을 계속 맴돌던 정인게임장 사장의 말이다.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거, 참 별거 아닌데."라며.

 

정인게임장의 위기설이 나오면서 많은 이용자, 팬들이 우려 혹은 꼭 살아나기 바란다는 응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사장도, 늘 어렵지만 그런 그들의 응원에 부응하려 하루하루 '버텼을' 것이다. 기자가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당시 사장은 게임장 한 라인을 싹 정리하고 자리에 아케이드 기기를 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도 결과가 같으면 두 손 두 발 다 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2시간 남짓 사장과 함께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만남을 종료했다. 사장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잘 가라. 또 놀러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사장이 개인실명 공개를 꺼린 탓에, 연락처는 받지 못했다. 기자도 "언젠가 다시 놀러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16일, 정인게임장은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아마 가뜩이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도중, 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이 제대로 얼어붙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폐업 전 다시 들르려 했던 계획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게이머를 위한 게임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체감형 기기나 인형 뽑기 등 형태를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게이머들에게 소위 '성지'라 불리는 곳 중 많은 곳이 막을 내렸다.

 

연락처라도 여쭤볼 걸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 요즘, 그래도 20년 가까이 게임장을 운영한 사장에게 기사를 빌어 "고생하셨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기자의 아버지에게도 못한 말에 대한 죄송함도 함께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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