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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이버 '제페토'는 메타버스이지 게임이 아니다?… 게임법의 '구멍'일까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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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1-06-03 11:16:21
“좋은 퀄리티의 아이템과 캐릭터들을 내가 꾸밀 수도 있고, 구경할 수도 있다.”
“현질유도가 진짜 심각하다.”
“렉이 많이 걸리고 컨트롤이 가끔 이상하다.”

구글플레이 마켓에 등록된 어떤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이용자 평가다. ‘아이템’, ‘캐릭터’, ‘현질유도’, ‘컨트롤’ 같은 용어들을 보면 영락없이 '게임 앱'에 대한 설명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네이버 산하 개발사 스노우가 만든 앱 <제페토>에 대한 평가들이다. 그런데 개발사에 따르면  <제페토>는 게임이 아니라 '플랫폼'인 모양이다. <제페토>의 공식 소개말에서는 ‘게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가상 세계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제페토>는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등급분류 심사를 받지 않은 상태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은 사전에 게임위 혹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등급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제페토>는 두 과정 모두 거치지 않았고, 구글스토어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앱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페토>의 이런 ‘미묘한 거취’는 그저 단일 앱의 문제에 그치지는 않는다. 메타버스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업계가 <제페토>와 유사한 메타버스 서비스를 대거 개발 중이기에 그렇다. <제페토>에 대한 게임위의 입장은 앞으로 국내 출시되는 모든 ‘메타버스’ 서비스가 참고해야만 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제페토>는 어떤 '앱'인지, 게임위의 입장은 어떤지, 메타버스 트렌드 전반을 향한 제도적 대책은 과연 마련되어 있는지 등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 게임도 하고 돈도 버는 앱 <제페토>

2018년 출시된 제페토는 처음엔 ‘아바타 꾸미기’ 앱으로 시작했다. 유저가 업로드한 사진을 기반으로 아바타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이 핵심이었다. 이후 포스트를 올리고 공유하는 SNS 기능,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유저들과 게임을 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월드’와 같은 콘텐츠를 추가해 현재의 종합적 메타버스 앱으로 거듭났다.

기본 콘텐츠 외에 <제페토>의 ‘경제’ 시스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페토>에는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인앱 재화 ‘코인’과 ‘젬’이 존재한다. 로그인 보상, 퀘스트 완수, 광고시청 등 기타 활동으로 얻는 방법도 있다. 패션 아이템을 직접 제작, 다른 유저들에 판매해 재화를 버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 획득한 재화는 기본적으로 인앱 아이템을 구매할 때 쓰이지만, 현실 경제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제페토> 파트너사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페이팔 계정을 통해 재화를 직접 현금으로 ‘인출’하는 기능까지 제공한다.

인게임 재화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특성(환금성)은 게임위가 등급심사에서 있어 핵심적으로 살피는 사안 중 하나다. 만약 인게임 재화를 ‘확률적’으로 습득 가능한 구조라면 환금성이 곧 ‘사행성’으로 연결돼 등급분류가 아예 기각될 수 있다. 즉, 불법 게임물로 취급돼 국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출처: 제페토 공식 홈페이지)


# 그래서 게임인가요,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페토>에 대한 게임위의 견해는 무엇일까?

우선 게임위는 <제페토>에 대해 ‘게임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더 정확히는 아직 심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심사 필요성에 대한 검토 또한 없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스노우가 게임위에 등급심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초기에 <제페토>의 게임적 성격이 희박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할 만한 정황 같아 보인다. 하지만 2018년 출시 당시 <제페토> 개발팀 김대욱 리드는 언론 인터뷰에서 ‘게임 등 여러 활동이 가능한 아바타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등급분류 신청 의무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개발사의 신청이 없어도 심사는 이뤄질 수 있다. 게임위가 해당 콘텐츠를 게임으로 판단하면, 이를 개발사에 통보해 등급심사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제페토>는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 ‘게임’ 카테고리에 분류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게임위의 통상적인 모니터링 범주를 벗어났다. 결국 ‘심사 대상’으로 파악되지 못한 채 3년이 지난 셈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는 게임위도 <제페토>가 게임인지 아닌지 여부를 당장 이야기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다. 게임위는 “(심사 필요성 판단은) 콘텐츠 전반을 상세히 살펴야 하는 일이기에 지금 당장 검토를 시작한다고 해도 통상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게임으로 시작해 메타버스로 확장한 <로블록스>와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에서 앱 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로 분류된 <로블록스>는 애플이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게임에서 경험으로 카테고리를 변경한 상태다. 

로블록스 역시 유저 제작 콘텐츠를 거래할 수 있으며, 로벅스라는 게임내 화페를 이용한다. 이 로벅스는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해 게임과 플랫폼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로블록스>가 게임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발전했다면 <제페토>는 커뮤니티에서 게임으로 발전하는 메타버스가 되는 셈이다.

<제페토>는 게임위 등급분류를 받지 않았다. (출처: 게임물관리위원회 홈페이지)


# 등급분류 전망은?

보수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제페토>는 게임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제페토>에서는 보편적 형태의 미니게임들이 직접적으로 제공된다.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월드’ 역시 게임성 여부 판단에 있어 간과되기 힘들다. 2008년 싸이월드가 서비스했던 <미니라이프>의 선례 때문이다.

<미니라이프>는 3D로 구현된 가상 주택을 꾸미고 친구와 교류할 수 있는 기능이다. 게임위는 <미니라이프>를 게임의 일종으로 보고 ‘전체 이용가’로 분류했다. ‘집 꾸미기’와 ‘대화’ 콘텐츠만 제공하는 간결한 서비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뭇 엄격한 판단이다. 반면 <제페토>의 ‘월드’는 ‘방탈출’과 같은 훨씬 더 직접적인 게이밍 콘텐츠까지 제공하고 있다.

<제페토> 내에서 제공하는 미니게임

싸이월드가 서비스했던 <미니라이프>

#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한편, <제페토>가 실제 게임으로 인정돼 등급심사를 받는다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향후 출시될 모든 메타버스 서비스에 적용 가능한 전례가 되기 때문. 자연스럽게 현행 게임산업진흥법(게임법)의 구태성 논란이 새로운 각도에서 재점화할 확률이 높다. ‘신산업’이 규제에 가로막혀 발전할 수 없다는 익숙한 형태의 비판이 다시금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제정된 게임법이 너무 낡아 업계의 시장 적응 능력(혹은 자정 능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은 유서가 깊고, 설득력도 강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여야 의원들의 앞다툰 게임법 개정안 발의 역시 '개선 필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또한 ‘가상세계산업 관련법 개정 및 진흥법 제정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메타버스 등 가상세계 진흥을 위해서는 게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진흥원은 “가상세계형 게임이 존재하지만, 점차 가상세계 플랫폼의 형성으로 진화되어 감에 따라 가상세계와 게임을 분리하고 가상세계 내에서의 아이템 가상세계화폐 등의 금전적 가치를 자유롭게 이전하고 실물세계의 화폐와의 환전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가상세계산업 진흥법’ 제정을 통해 '가상세계(메타버스) 플랫폼'의 법적 정의를 분명히 하고 '게임'과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제페토>의 '월드' 콘텐츠. 다양한 '맵'이 마련되어 있고(왼쪽), 맵을 '플레이'하면 가상공간을 누빌 수 있다.

게임법 뿐만이 아니다. 진흥원은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콘텐츠산업진흥법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공간정보산업진흥법 ​국가공간정보에관한법률 ​방송통신기본법 전기통신사업법까지 포함해 총 10 개 대상법률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처럼 '가상세계 산업'은 아우를 수 있는 독립 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법률들에 산재하여 다뤄져 왔다.

그러나 제언이 무색하게도, 최근 발의된 게임법 개정안 중에서도 메타버스에 집중하고 있는 법안은 없다. 진정 흥미로운 것은 콘진원의 제언이 세상에 나온 시점이다. 해당 보고서는 11년 전인 2010년 12월 23일 공개됐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메타버스 시대'에 대비해 제도를 정비할 시간이 적어도 10년 이상 주어졌던 셈이다. 

게임위는 현행 게임법에 의거한 판단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게임위가 <제페토>의 거취를 결정하면, 그 파장에 대한 책임은 사실상 게임위가 아닌 입법기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의원들이 삽시간에 다수의 동의를 끌어낼 법안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부족했던 논의에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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