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트리플A' 게임 중 상당수가 어렵지 않게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다.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러하듯 트리플A 게임은 트리플A라는 사실 자체로 막대한 마케팅 효과를 누린다. 게다가 이러한 게임은 대부분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한다는 사실, 그리고 폭넓게 어필할 대중성을 띤다는 점도 판매량에 도움을 준다.
반면 규모가 작거나 마니악한 게임 중에도 이런 트리플A에 준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는 사례는 늘 있다. 이들은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확실한 매력을 가지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이버펑크 2077>이나 <배틀필드 2042>처럼, 판매량에서 성과를 이룬 반면 전반적으로 혹평당한 사례와 비교해볼 만하다.
최근 들어 100만 장 이상의 높은 판매량 기록을 발표한 게임 중, ‘전형적인 대작’이 아닌 타이틀을 한 번 둘러봤다. 흥행에 도움을 주었을 각 게임만의 특징과 매력도 함께 알아보았다.
2021년 9월 8일 <스타듀 밸리> 개발자 컨선드 에이프(에릭 바론)는 앞선 5년간 1,500만 장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팬들이 <스타듀 밸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향수를 자극하는 픽셀 아트, 촘촘하고 알찬 콘텐츠, 독특한 아이디어, 정겨운 스토리까지 많은 장점이 있다.
<스타듀 밸리>의 성공을 분석할 때 게임 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 게임이 달성한 독특한 ‘지위’다. 아직까지도 <스타듀 밸리>는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꼭 해봐야 할 인디게임'에 꼽힌다. 마케팅이 아닌 입소문을 통해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인디게임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특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높은 흥행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플랫폼에 진출했다는 점 또한 판매량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PC로 출시한 <스타듀 밸리>는 현재 PS4, Xbox One, 닌텐도 스위치, 안드로이드, iOS 등 여러 플랫폼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슬라임 랜처> - 500만 장 이상
2017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슬라임 랜처>도 2022년 1월 14일 500만 장 판매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슬라임 랜처>의 흥행은 <스타듀 밸리>의 성공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두 게임은 스토리 기반의 목가적 분위기를 통해 폭넓은 유저에게 어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슬라임 랜처>는 먼 미래, 먼 우주를 배경으로 슬라임 목장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다. ‘목장일’의 대상이 되는 슬라임들의 귀여움은 유저들이 높이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다.
긍정적 평가에서 많이 눈에 띄는 또 다른 키워드는 ‘편안함’, ‘힐링’ 등이다.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격렬하고 화려한 인게임 요소가 없더라도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게임성이 있다면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흔히 ‘캐주얼’로 분류되는 게임들이 평단과 일부 코어 게이머의 평가와는 별개로 대중적 사랑을 받는 현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판타지 해적 멀티플레이 게임 <씨 오브 시브즈>는 지난해 말인 12월 23일 스팀 플랫폼 기준 500만 장 판매를 돌파했다. MS 산하 래어에서 개발한 <씨 오브 시브즈>는 아래 설명할 <잇 테이크 투>와 마찬가지로 절대 '작은 게임'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소식은 몇몇 유저를 놀라게 했는데, <씨 오브 시브즈>는 현재 전체 가입자 1,800만 명 이상인 Xbox 게임 패스에서 무료로 이용 가능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협동 플레이를 강조하고 보상하는 게임성이 이러한 판매량의 비결 중 하나로 파악된다. <씨 오브 시브즈>는 해상 PVP 전투를 메인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때 승무원 간의 밀도 높은 협력이 요구된다. 함선의 조종 및 수리, 포격과 승선 등 모든 요소에 플레이어 각각이 직접 달라붙어야 하는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스펙’을 올려주는 인게임 요소도 없어, 오로지 팀워크와 실력만으로 승부가 갈린다. 반대로, 그만큼 동료들과 함께 적을 격파했을 때의 성취감은 증폭된다. 여기에 더해 보물 탐사나 항해와 같은 일상적 콘텐츠에서도 협력이 계속 요구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함께할 친구를 찾고, 끌어들이게 되는 구조다.
10월 13일 <잇 테이크 투> 개발사 헤이즈라이트는 300만 장 판매 소식을 전했다. 12월 더 게임 어워드 시상식에서 ‘최고의 게임상’을 받기 이전의 일이다.
<잇 테이크 투>는 사실 ‘작은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많다. 대기업 EA 산하에서 제작되었고, 그 규모와 퀄리티를 보면 적잖은 예산이 투입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잇 테이크 투>는 ‘2인 코옵 게임’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그 성공을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취향이 일치하는 게이머 친구를 두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잇 테이크 투>의 최소사양은 친구’라는 농담에는 뼈가 있는 편이다.
<잇 테이크 투>가 이런 한계를 극복한 방법은 다양성이다. 여러 취향과 실력을 지닌 게이머들이 두루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슈팅, 액션, 레이싱, 퍼즐 등 장르와 메카닉을 넘나드는 스테이지를 폭넓게 마련해 넓은 스펙트럼의 게이머를 포용하고 있다.
고스트 쉽 게임즈가 개발, 커피스테인 게임즈가 배급을 맡은 <딥 락 갤럭틱>은 2021년 11월 10일 300만 장 판매량을 돌파했다.
<딥 락 갤럭틱>은 보석과 맥주를 사랑하고 높은 기술력을 지닌 ‘드워프’ 종족의 클리셰를 SF에 접목한 독특한 설정으로 판타지 팬과 공상과학 팬의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외계 행성에서 토착생물을 물리치며 귀중한 광물자원을 채굴한다는 주요 설정 또한 양쪽 장르 팬을 모두 만족시킬 법한 것이어서, 이러한 수요가 높은 서양권에서 인기가 많다.
절차적 생성 방식을 이용한 게임 설계 또한 게임의 인기 요인이다. 광산의 전체적 형태와 목표물, 등장하는 외계생물의 종류가 다양한 난이도에 맞춰 매번 새롭게 제시되기 때문에, 반복되는 플레이 속에서도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다. 드워프들의 여러 가지 클래스와 장비 업그레이드 등 성장요소 또한 플레이 다양성을 부여해 유저를 붙잡아 두는 요소다.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소식이다. <파밍 시뮬레이터 22>는 2021년 11월 30일 150만 장 판매를 기록했다.
2008년 처음 출시한 <파밍 시뮬레이터> 시리즈는 모바일과 기타 플랫폼에서 번갈아 신작을 내면서 2022년까지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10년 넘게 공식 넘버링 타이틀이 계속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의 인기가 높다.
<파밍 시뮬레이터>의 오랜 흥행에서 주목할 점은 일관성을 통한 충성 팬층 유지다. 특유의 현실적 게임플레이로 인해 팬덤 밖에서는 ‘게임보다 노동처럼 느껴진다’는 평가가 항상 이어지지만 스타일을 지켜나가고 있다. 다만 최신작 <파밍 시뮬레이터 22>는 전작보다 개선점이 적고 버그가 많아 상대적으로 평점은 낮은 편이다.
<인스크립션>은 협동 메카닉이 없고, 마니악한, PC 플랫폼에서만 출시한 게임이다. 하지만 출시 3달 만인 2022년 1월 6일 100만 장 판매를 돌파했다.
<인스크립션>의 판매에 기여한 요소 중 하나로는 개발자의 ‘네임 밸류’를 꼽을 수 있다. 캐나다 개발자 다니엘 뮬린스는 기존 출시한 <포니 아일랜드>, <헥스>에서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고히 했다. 익숙한 게임문법을 뒤틀어 놀라움을 주는 이들 작품은 때로 난해하지만 신선한 충격을 안기면서 평가와 흥행에 성공했다.
대중적 인기를 끄는 여러 장르를 차용했다는 점도 <인스크립션> 성공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인스크립션>은 덱 빌딩, 로그라이크, 호러로 분류되는데, 모두 고유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장르들이다. 다만 이러한 장르 문법을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팬들에게 다소 기대와 다른 게임이 될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