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기획기사
① 게임계의 넷플릭스 노리는 MS, 블리자드 인수로 승리의 마침표 찍다 (바로가기)
② 블리자드 인수한 MS, '반독점법' 돌파 가능할까? (바로가기)
③ MS 인수, 바비 코틱의 구원일까 액블 변화의 희망일까 (현재 기사)
2020년 ‘제니맥스 인수’라는 희대의 빅딜로 주목 받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1월 18일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킹’(ABK) 인수 소식에 글로벌 업계는 충격에 빠진 상태다.
그런데 이번 인수는 도덕성 측면에서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소란스럽다. 2021년부터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관련해 불거져온 거대한 ‘폭로’ 때문이다. 특히, 해당 이슈의 책임을 진 바비 코틱 CEO가 이번 인수를 통해 퇴출 위기를 모면하면서 MS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 때문에 MS의 인수 결정에 반감을 보이거나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상황이다. MS는 과연 이러한 비판을 잘 돌파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내 문화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2021년 6월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이 블리자드를 사내 성차별, 성폭력 문화 방치, 조장 혐의로 고소하면서 폭로는 시작됐다. 남자 직원들이 여성 직원들을 소외시키고 괴롭히는 이른바 프랫 보이(frat-boy) 문화가 오랜 기간 만연했다는 것이 고소의 주된 내용이다.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에 접수된 소장에 따르면 블리자드의 남자 직원들은 여성 직원을 만지고 더듬거나, 언어적 성희롱을 일삼았다. 사내 파티에서 남성 직원들이 한 여성 직원의 신체 부위 사진을 돌려본 이후 해당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연루된 임직원에 대한 처벌, 피해자 보호 등 조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연방 기관인 연방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 준사법기관 증권거래위(SEC),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 등이 해당 의혹과 관련한 각자 사안에 대해 전방위 조사를 시작했다. 괴롭힘과 차별의 정황은 추가로 드러났고, 임원진 퇴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모회사인 액티비전 차례였다. 2021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비 코틱 액티비전 블리자드 CEO가 액티비전 내의 성차별 성폭력 문제를 알고도 묵살해왔다는 심층 보도 기사를 내놓았다.
특히 액티비전 산하 슬레지해머 스튜디오 여성 직원이 상사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 피해를 본 사실을 은폐한 끝에 법원 밖 합의로 무마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코틱 CEO는 직원과 주주들의 전방위적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논란에 글로벌 게이머들이 분노를 표한 것은 물론. 관련사들 역시 액티비전 블리자드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유럽·북미 이통사 T모바일은 ‘<오버워치> 리그’ 스폰서십을 취소했고 코카콜라와 보험사 스테이트 팜 역시 취소를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레고는 최근 <오버워치> 테마로 제작된 신규 상품 출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게임계 안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액티비전 폭로 이후 짐 라이언 PS 대표, 더그 바우저 닌텐도 아메리카 대표, 심지어 이번 계약 당사자인 필 스펜서 MS 게임사업 총괄 부사장까지 ‘관계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각자 직원들에 보낸 내부 서신에서 액티비전의 상황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액티비전 블리자드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렇듯 업계 안팎에서 좁혀오는 위기 속에서 코틱이 ‘자구책’의 일환으로 인수 계약에 서둘렀으리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사퇴 위기에 몰렸던 코틱은 이번 계약 덕분에 계약 마무리까지의 1년 이상 기간 동안 직책을 유지하게 됐다.
바비 코틱 CEO는 해외 매체 벤처비트 인터뷰에서 이번 계약이 개인적 위기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인수에 응한 것은 어디까지나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테크 대기업과 경쟁하게 된 업계 환경변화 속에서, 장기적 관점의 경쟁력 제고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래 액티비전 블리자드 자체적으로 계획을 수립하려던 시점에 필 스펜서 부사장의 제안을 받아 고민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최근 MS가 파격적인 인수 조건을 '다시' 내밀었고, 계약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코틱 CEO는 “처음에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MS가 45% 프리미엄에 달하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다시 해왔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코틱의 이야기와 다소 상충하는 증언도 있다. 18일 블룸버그는 취재원을 인용, MS가 “액티비전의 상황 및 코틱 CEO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코틱이 인수 제안에 응할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코틱이 WSJ 보도로 인해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경부터다. 따라서 블룸버그의 보도 내용대로라면 MS의 인수 제안이 구체화한 것은 최근 1~2달 이내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 전부터 인수를 고민했다는 코틱 발언의 뉘앙스와는 다소 괴리가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도덕성 이슈에 막대한 책임을 안고 있는 코틱 CEO는 인수를 통해 직면한 위기를 면피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MS가 계약의 대가로 코틱 CEO의 ‘엑시트’를 도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그런 만큼 MS가 앞으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내문화 이슈를 묵인하지 않고 ‘교정’에 나설 것인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하여 코틱 CEO의 퇴진을 요구했던 ABK 직원 연합체 ‘더 나은 ABK’(A Better ABK)는 19일 성명을 내고 “회사의 임원진이 변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지난해 추진하던 업계 노동환경 변화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MS의 인수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측이나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직원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는 듯하다. 블룸버그의 제이슨 슈라이어는 소셜 미디어에서 인수에 대한 액티비전 블리자드 내부 분위기를 간략히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일부 직원은 코틱 CEO가 큰 차질 없이 퇴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MS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반면 다른 직원들은 Xbox 산하 스튜디오의 긍정적 기업문화를 보며 경영진 변화에 기대를 거는 중이다.
게임 언론인 칼리프 애덤스는 자기 SNS에서 Xbox가 공개한 MS 게임부서 임원진 리스트를 언급하면서 긍정적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필 스펜서를 포함한 13명의 Xbox 임원진 중 7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해당 임원 중 하이옌 장 COS(Chief of Staff)는 해당 트윗에 직접 나타나 “지금껏 일해본 조직 중 가장 협조와 지지를 많이 해 주는 팀”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Xbox의 사내 문화가 실제로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액티비전 블리자드에도 똑같이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2020년 제니맥스 인수와 비교했을 때 이번에서는 MS의 ‘직접 관리’ 가능성이 더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2020년 인수 당시 필 스펜서는 제니맥스 산하 베데스다 스튜디오의 향후 운영방침에 대해 고유의 기업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인수 계약 내용에 따르면 필 스펜서는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바비 코틱을 대신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EO 자리에 직접 오를 예정이다.
그러면 스펜서 부사장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EO가 된 이후 사내문화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흥미롭게도 인수가 임박한 시점 이뤄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스펜서는 우연히 액티비전 블리자드 논란에 대해 ‘함께 변화를 도모할 의향이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스펜서 부사장은 “논란 이후 액티비전과의 관계에 몇 가지 변화를 줬지만, 이들을 도덕적으로 성토하려 한 것은 아니다. (중략) 어떤 파트너기업이든, 그들로부터 (기업문화와 관련해) 교훈을 얻을 수 있거나, 거꾸로 Xbox의 변화 경험과 결과물을 공유해줄 수 있다면, 그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그러한 방향을 선택하고 싶다”고 전했다.
해당 인터뷰는 이달 초에 이루어졌다. 은연중 스펜서 부사장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향후 변화 방향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직원들의 염원대로 이번 인수 계약이 기업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