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지원에 168억 4,000만 원 예산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를 막론 ‘메타버스’ 개념을 둘러싼 저마다의 인식과 정의가 통일되지 않은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지원 범주와 대상을 둘러싼 얼마간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업계 최일선에서 기업들과 호흡을 맞춰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상황은 어떨까. 콘진원은 3월 18일까지 ‘2022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공고를 자세히 살펴보아도, 콘진원이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를 찾고 있는지 쉽게 알기가 어렵다. 참고할 만한 과거 사례가 많은 기존 지원분야와 달리 아주 새로운 사업이기에 더욱 그렇다.
콘진원에 직접 문의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원사업의 목표와 콘진원이 현재 찾고 있는 프로젝트(기업)의 성격, 더 나아가서는 메타버스를 향한 관점과 미래 접근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공고에 따르면 이번 지원사업은 과제당 최대 3억 원 이내(자부담 10%) 금액이 지원되며, 총 13개 내외 프로젝트가 선정된다. 지원 대상은 중소기업으로, 개인사업자는 지원 불가하다.
지원 조건으로는 국내·외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사전 계약 및 협약이 권장되며, 협약기간 내 콘텐츠 제작이 완료되고 이것이 메타버스 내에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지원 가능 분야는 ‘게임, 애니메이션, K-Pop 등 콘텐츠 분야’로 명시되어 있다.
신청 접수 기간은 3월 18일까지다. 서면평가에서 ▲콘텐츠 제작 콘셉트 및 스토리라인 ▲BM 및 앞으로 운영방안 ▲수행계획서(홍보 및 사업화)를 확인해 1차 선정을 거친 뒤, 발표평가에서 ▲데모콘텐츠 시연(선택) ▲수행계획 발표 등을 통해 최종 대상기업을 결정한다. 데모콘텐츠는 기획·제작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말한다.
2022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의 기본 방향은 되도록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진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진입로를 넓히고 울타리를 넓게 두는 것이다.
현재 메타버스 업계는 전반적으로 영화, 게임, 드라마 등 기존 장르(분야)들이 메타버스 환경 안에서 재정립되는 초기 과정이다. ‘성공사례’라고 볼만한 메타버스 콘텐츠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 지원사업들에서와 같이 대상 프로젝트의 ‘규격’을 다소 확고히 정부가 정해주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보다는 울타리를 넓게 설정해 기업들의 도전의식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시작점’에 걸맞은 새로운 콘텐츠 제작 메커니즘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콘진원 실감콘텐츠진흥단 이현엽 과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콘진원이 직접 내린 결론이라기보다는 산업, 학계, 게임계를 자주 만나 의견을 종합해 나온 결론이다. (메타버스)라는 바뀐 환경 속에서는 바뀐 제작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진흥이라는 목적 뚜렷한 사업의 기본 취지상 최소한의 테두리는 필요했다. 그래서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플랫폼 안에서 어떠한 유형(장르)의 콘텐츠를 추구할 것인지는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장르의 변형이나 융합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콘진원이 여러 장르 기업의 도전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평가에서 중시하는 구체적인 사안은 없을까?
이현엽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서는 기존보다 기업의 ‘BM’과 콘텐츠의 ‘창작 방식’에 더 중점을 둔다. 두 가지 요소 모두에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춘 나름의 고민과 해법이 있는지를 살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환경에서는 수용자와 창작자 간 경계가 기존보다 더욱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기술 특성을 고려할 때, 관련 콘텐츠 역시 수용자와 창작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이 콘진원의 견해다. 따라서 각 프로젝트가 BM 및 콘텐츠 창작 프로세스에 있어 이러한 메타버스의 주된 특성을 고려했는지 확인해볼 계획이다.
더 나아가 메타버스는 앞으로 변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등 여타 첨단 기술과의 연계도 크게 기대되는 분야다. 이현엽 과장은 “기업들이 단기적 계획에 더불어 메타버스 산업의 변화상을 고려한 장기적 계획까지 마련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고에서는 국내·외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계약이나 협약을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려는 기업은 진입할 수 없을까?
우선 기존 유력 메타버스 플랫폼상에 구현된 프로젝트라면 확실한 이점은 있다. 이현엽 과장은 “단기적으로는 유저 베이스가 큰 기존 플랫폼이 유리할 수 있다. 아무래도 유저가 많을수록 콘진원도 성과를 검증하기가 편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수조건은 아니다. 이현엽 과장은 “하지만 그게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곧 자체 플랫폼을 런칭할 기업들이 많이 문의한다. 콘진원 입장은 일단 10월 전까지 오픈되는 플랫폼에 탑재되어야 하며, 이후 결과평가 전까지 실제 유저들이 접근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쪽이 우선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메타버스는 아직 태동기인 만큼 기존과 다른 고객층이나 장르를 타겟팅하는 신규 플랫폼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다. 이현엽 과장은 “예를 들면 국내에도 기존 성공한 <로블록스>, <제페토> 등 플랫폼의 주 사용층보다 더 높은 연령대의 이용자를 특정해서 바라보는 기업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 접목에 대한 견해는 어떨까? 이 과장에 따르면 콘진원은 P2E 게임 등 블록체인 연계 콘텐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지원 사업 안에서는 게임법 등에 의한 현행 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다.
이현엽 과장은 “NFT가 접목된 음악, 아트 등 콘텐츠가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것은 좋게 평가하고 있다. 다만 게임 형태로 구현되는 경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업은 콘진원 입장에서도 꽤 중요한 기점이다. 각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향후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이기 때문.
콘진원이 원하는 건 프로젝트에 대한 실제 메타버스 이용자 반응의 관찰, 분석이다. 이를테면 수용자 호응이 가장 많았던 프로젝트와 그 반대인 프로젝트에 대한 비교 분석이 이뤄질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콘진원이 바라보는 메타버스 콘텐츠의 중요한 특성은 수용자와 창작자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새로 정립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의 콘텐츠 수용 현상도 이전보다 다양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수용자의 행동 변화를 포착하는 것은 콘진원의 향후 메타버스 지원사업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큰 보탬이 될 예정이다. 따라서 2022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은 콘진원으로서는 ‘연구 과정’의 일환이기도 한 셈이다. 이현엽 과장은 “새로운 수용자 행동에 맞는 메타버스 콘텐츠란 과연 무엇일지 기업과 콘진원이 함께 알아보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