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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게임] 견습 기사 이야기: 이야기책, 게임이 되다

종이책의 물성을 재해석한 독특한 게임 플레이

쿠타르크(쿠타르크) 2024-09-25 17:41:53
쿠타르크 (쿠타르크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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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게임] 견습 기사 이야기: 이야기책, 게임이 되다

종이책의 물성을 재해석한 독특한 게임 플레이

아이 동 자에 이야기 화 자를 조합한 동화란 어린이들이 마땅히 지니고 있을 만한 어린 마음을 바탕으로 만든, 그러니까 순수하게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뜻하는 단어다. 여러 인디 게임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한 편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어필하는 게임들을 종종 플레이하게 된다.

보통은 중세나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메르헨 풍의 화사한 분위기와 스토리를 어필하는 경우가 많고, 이른바 잔혹 동화라고 해서 잔인함을 부각시켜 공포를 유발하는 사례도 포함시킬 만하다. 이렇듯 동화를 표방한 게임이 많은 건 아무래도 동화라는 소재가 어린이 뿐만 아니라 동심을 그리워하는 성인들에게도 제법 어필할 수 있는 점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여기서 동화라는 소재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 동화책 같은 게임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도록 하자. 진짜 책을 무대로 글자와 문장이 존재하고, 이야기를 직접 읽어주는 이야기꾼이 존재하고, 페이지를 넘겨 장면이 넘어가는, 진짜 책을 보는 듯한 게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불과 지난 주에 이 질문에 대한 정답에 가장 근접한 게임 <견습 기사 모험기>(The Plucky Squire)가 등장했다. 

이제 이 게임이 얼마나 책에 근접하고, 그것이 어떤 재미를 선사하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책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한결같은 견습 기사의 모험 일대기. 견습 기사 모험기(The Plucky Squire)



<견습 기사 모험기>는 이야기책의 결말을 바꿔 책 안팎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사악한 마법사 험그럼프의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주인공 견습 기사의 여정을 담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밝은 색감의 명랑하고 발랄한 이야기책 속 분위기와 책이라는 물건의 특징을 세밀하게 반영한 특유의 연출, 그리고 이야기책 안과 바깥을 수시로 드나드는 독특한 게임 플레이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적절한 의역이 들어간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가 뛰어난 데다가 이야기책의 내용을 실감 나게 읽어주는 나레이터의 더빙이 굉장히 찰져 게임의 흥을 제대로 돋운다. 

다만 사운드와 배경 음악은 대체로 게임에 잘 어우러지긴 하나 게임을 끈 이후에도 생각이 날 만큼 특출나진 않다.

밖에서 보는 이야기책의 풍경. 안에서 보던 것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더빙이 대단히 찰지다. 더빙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

<견습 기사 모험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단연 책과 종이라는 소재를 여러 방면으로 반영했다는 점에 있다. 스토리를 서술할 때마다 등장하는 글자와 문장의 크기 및 위치의 변화,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이루어지는 장소 및 장면의 전환, 책 뿐만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크고 작은 종이 조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차원 이동, 그리고 책의 양 면을 기울이거나 펼치거나 접는 매커니즘을 적극 활용한다.

즉, 책의 특성을 반영한 모든 요소가 대단히 신선하고 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찰지게 전달하는 나레이터의 존재 덕분에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되며, 책을 펼쳤을 때 가운데 움푹 들어간 지점에서 화면의 굴곡이 발생하는 것 같은 세밀한 묘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진짜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어 이것만으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잘 보면 책 가운데 부분이 미묘하게 접혀있다. 이렇듯 사소한 디테일 하나도 세밀하게 살린 모습이다.

단순히 이야기책 같은 게임을 넘어 진짜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야기책 속의 2D 영역과 이야기책 바깥의 3D 영역을 넘나드는 게임 플레이는 확실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야기책 안의 존재인 견습 기사가 이야기책 밖의 현실로 튀어나오고 현실 영역의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거나 특정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이야기책과는 또 다른 종이 안으로 뛰어든다. 이는 이야기책 안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책을 이야기책 바깥에서 찾는 것과도 같아 서로 동떨어진 두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게임의 핵심 악역인 험그럼프 역시 현실 영역으로 튀어나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상황을 악화시키는가 하면 견습 기사 이외의 캐릭터들이 이야기책 바깥의 영역을 미약하게나마 인지하는 등, 2D와 3D를 오가는 게임 플레이가 스토리상에 있어서도 좋은 연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책 안팎을 드나드는 게임 플레이 뿐만 아니라 이야기책 안에서 전개되는 게임의 양상도 충분히 흥미롭다. 용사의 모험물이라는 왕도적인 흐름을 보이는 스토리는 큰 반전은 없어도 정석을 잘 따라가 무난한 편이고, 칼을 휘둘러 몬스터를 처치하는 전투는 조금 단조롭고 쉽긴 해도 나쁘진 않다. 여기에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미니 게임은 다른 유명한 고전게임에 대한 패러디나 오마쥬가 깨알 같이 담겨있어 원작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꽤나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디볼버 디지털 게임 중에 은근히 펀치 아웃 패러디 담긴 게임이 많은 것 같다.


전투 난이도가 다소 낮다. 아무리 못해도 전투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

이렇듯 책 안팎을 넘나드는 게임 플레이가 흥미롭고 전반적인 게임의 짜임새도 괜찮은 편이지만, 그 이상으로 보다 다양한 발상의 게임 플레이나 폭넓은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를 기대했더라면 실망할 여지도 없잖아 있긴 하다. 

첫 엔딩 감상을 기준으로 한 대략적인 플레이 타임은 8시간에서 9시간 정도로 잡히는데, 이는 아주 짧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꽤 긴 플레이 타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그만큼 스케일이 작은은 게임이기도 하고, 멀티 엔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 일부 수집 요소나 도전 과제를 제외하면 2회차 플레이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미니 게임을 통한 패러디 및 오마쥬 대상도 대여섯개 정도로 많다고 하긴 좀 애매한 감이 있다.

이야기책 속 캐릭터가 책 바깥으로 나오는 광경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데다가 현실 세상이 꽤나 사실적으로 구현돼있긴 하지만, 막상 현실의 영역으로 나와도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피해 다니며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임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종이를 매개로 한 차원 이동 정도를 제외하면 현실 영역에서의 참신함은 그다지 돋보이지 못하며, 전반적으로 게임의 초점이 이야기책에만 집중돼있는 탓인지 현실 영역에 대한 서술은 다소 부족하다. 

이야기책 안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야기책 바깥의 이야기를 기대했더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단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호불호의 차이로 보는 편이 적절할 듯하다.

분명히 영역은 달라졌는데 뭐가 크게 달라졌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개인적인 아쉬움이긴 하지만, 좀 더 다양하거나 뭐라도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이 게임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다. 대체로 편의성이 좋지 못한 데다가 크고 작은 버그가 많다는 점이 다. 버그의 경우 주로 이야기책에서 막 벗어난 3D 현실 세계에서 주로 생기는데, 특히 이야기책 바깥에서 이야기책에 상호 작용을 하려고 할 때 갑작스레 진행이 멈추는 상황이 이따금씩 발생한다. 게임을 껐다가 다시 실행하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버그로 인한 찝찝함까지 완전히 해소되진 못한다.

여기에 한 차례 마친 장은 챕터 셀렉트를 통해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데, 상인 NPC가 등장하지 않아 미처 구매하지 못한 일부 그림 두루마리나 업그레이드를 다시 살 방법이 없고 그림 두루마리나 글리치버드 같은 수집 요소가 제대로 카운트되지 않다보니 챕터 셀렉트의 의미가 퇴색되버린다. 그 밖에 미니 게임은 넘길 수 있지만 정작 스토리 스킵이 불가능한 점도 다소 거슬린다. 아이템 수집 및 도전과제 해금을 위한 2회차 플레이를 위한 편의성은 다소 떨어지는 셈이다.

주로 책 바깥에서 버그가 자주 발생한다. 게임을 껐다 키면 해결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찝찝하다.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상점 주인. 도전과제 놓치기 싫으면 제 때 제 때 전부 구매해야 한다.

<견습 기사 모험기>는 이야기책 속의 캐릭터가 책 바깥의 영역으로 넘나든다는 발상을 생동감 있게 구현해낸 독특한 게임 플레이, 종이라는 물건의 질감과 특성을 다방면으로 구현해낸 세밀한 묘사, 그리고 나름의 짜임새를 지닌 게임 디자인 등으로 무난함 이상의 평가를 받을 만한 괜찮은 게임이다. 여기에 특유의 글자 및 문장 연출과 더불어 견습 기사의 여정을 실감 나게 전달하는 나레이터의 존재 덕분에 진짜 이야기책을 감상하는 듯한 몰입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또한 돋보인다. 

물론 생각보다 작은 스케일로 인한 짧은 플레이 타임과 잦은 버그, 2회차 플레이에 대한 편의성 부족이라는 단점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게임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치나 근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화 같은 느낌의 게임을 넘어 동화책 같은 느낌의 게임을 찾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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