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실수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그러나 결과를 되돌릴 수 있다면?
죽음을 되돌릴 수 있다면?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시간을 왜곡할 수 있다면?
만약……
그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Xbox Live Arcade로 출시되어 1UP(A+), 유로게이머(10), 엣지(9.5), 게임스팟(9.5), Xbox 공식 매거진(9), IGN(8.8) 등 해외 유명 게임매체들 사이에서 화려한 점수로 극찬을 받은 <브레이드>가 4월11일 PC로 출시됐습니다. 스크린샷으로만 보면 보잘 것 없는 평면 배경에 게임방식은 <슈퍼마리오>와 비슷해 보이는 이 게임. 무엇이 대단하기에 그렇게 열광을 했을까요? /디스이즈게임 필진 bender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이 만점에 가까운 호평을 받고 있다고??
<브레이드>의 첫 등장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디게임페스티벌(IGF)에서 혁신적인 게임디자인 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그 뒤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2008년 8월6일 Xbox 버전이 나왔습니다.
출시 직후 각종 해외 웹진과 잡지에서 끊임없는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어찌 보면 단순한 횡스크롤 액션에 시간 조종이 가능한 퍼즐 게임이지만 다른 게임에는 없는 <브레이드>만의 특별한 매력 덕분입니다.
따로 조작법을 학습할 필요 없이 무척 간단합니다. 키보드 ‘방향키’와 점프로 쓰이는 ‘스페이스바’, 그리고 시간을 되감거나 빨리 돌리는 ‘쉬프트’가 전부입니다. ESC 키를 눌러 도움말을 볼 수도 있지만 <브레이드>는 초반 스테이지 속에 튜토리얼이 녹아들어 있어 조작법을 익히기 쉽습니다.
게임 상에서도 자연스러운 튜토리얼이 있고 도움말도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게임 방식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적이 지나가면 점프로 처리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조종하거나 느리게 만들고 퍼즐 조각을 수집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쉬프트(Shift) 키를 누르면 최대 8배까지 시간을 되돌리거나 앞으로 감을 수 있습니다.
<브레이드>에는 “게임오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갈림길에 선 순간, 시간은 멈추게 되고 ‘쉬프트’를 눌러 죽음에 이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게임오버가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무슨 게임이 떠오르십니까? <동킹콩>에 대한 오마주.
<브레이드>가 시간을 활용한 최초의 게임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페르시아왕자:시간의 모래>, <타임쉬프트> 등 여러 게임에서 등장했지만 액션으로서의 도구에 불과했죠. <브레이드>는 퍼즐게임으로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약이 없는 시간 조종, 심지어 제작진 크레딧도 시간 조종으로 봐야합니다.
<브레이드>의 핵심 컨텐츠는 세밀하게 고안된 퍼즐입니다. 퍼즐 조각을 모으기 위해 처음에는 간단한 점프와 기본적인 시간 조종을 배우고, 본격적인 퍼즐을 풀게 됩니다. 시간 조종이 익숙해질 때 새로운 방법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그것을 이용해 퍼즐을 해결합니다.
스테이지 전체를 방향키로 시간을 조절하기도 하며, 초록색으로 빛나는 물체나 장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던가, 시간을 돌리면 분신이 생성되기도 하고, 반지를 이용해 일부분만 느리게 하기도 하죠.
왼쪽 위부터 시계순서로 시간 조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일부분을 느리게, 분신 생성, 스테이지 전체가 시간 조종되는 이미지.
<브레이드>의 난이도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며 간혹 스테이지 시작 할 때 작은 그림들이 큰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다만, 짧다면 매우 짧은 분량입니다. 게임의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면 한 시간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깰 수 있을 정도의 양이므로 절대로(!) 공략을 보지 말고 막히는 고비가 찾아오면 다음 스테이지를 먼저 깨거나, 잠시 다른 일을 하면서 충분히 휴식을 한 뒤 다시 도전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직접 하나하나 해내는 즐거움과 고생 끝에 결말을 보는 환희는 이루어 말할 수 없더군요. 그러나 막힌다고 바로 공략을 보고 진행하면 엔딩까지 하루도 못 가서 별다른 감흥 없는 <브레이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작 전 작은 그림 하나가 스테이지 전체를 관통하는 큰 도움말이 됩니다.
<브레이드> 제작진은 많은 개발비를 아트 디자이너 고용에 썼다고 밝힐 정도로 신경을 쓴 부분이 바로 배경(그림)입니다. 간단한 그래픽임에도 살아 숨쉬는 한 폭의 수채화를 만난 느낌이 들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고흐의 작품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브레이드>의 아트 디자이너 데이비드 헬멘(David Hellman)은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그려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브레이드>의 음악은 대부분 저작권을 사와 해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질이 떨어지기는커녕 훌륭한 완성도를 들려 줍니다.
<브레이드>를 깨고 나서도 한동안 귓가에 맴도는 선율이 머리에서 떠날 줄 모르더군요. 때로는 몽환적으로, 때로는 밝은 분위기로, 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분위기를 적절히 표현합니다.
초기 구상 당시 프로그래머의 막연한 생각(위), 데이비드 헬멘의 손을 거친 결과(아래).
<브레이드>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인 팀은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팀은 이미 무엇인가 공주에게 실수했고, 그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팀은 공주를 무사히 구할 수 있을까요?
스토리는 매우 특이하게 진행됩니다. 스테이지를 시작하기 전, 책 몇 권을 들춰 보면서 글을 읽는 게 고작이죠. 그렇지만 그 내용은 단순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하고 끝없는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사실 눈치 빠른 분이시라면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엔딩을 어느 정도 예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첫 엔딩 후 보는 진(眞) 엔딩은 누구도 추측할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엔딩을 보고 무관할 것 같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모이지만 다소 난해합니다. 웹에서 검색해 해설을 읽어도 여전히 혼란스럽거나, 또는 여운이 남아서 더 알고 싶다면 책 2권을 추천합니다.
<브레이드>의 게임 스토리에 참고가 되고 영향을 준 소설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탈노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Invisible Cities)’와 앨런 라이트맨의 ‘아인슈타인의 꿈’(Einstein's Dreams)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Jonathan Blow)는 ‘보이지 않은 도시들’은 역할 모델이 되고, 닮고 싶었지만 ‘아인슈타인의 꿈’은 좋아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소설은 뚜렷한 줄거리가 있고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브레이드>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소설 자체로도 대단히 빼어난 작품들입니다.
잠시 리뷰가 바깥으로 샜지만 이처럼 <브레이드>의 스토리는 생각 없이 즐기고 지나가는 일회성이 아닌, 무궁무진하게 탐구하게 되는 출중한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결점으로 플레이 타임이 짧고 한번 진행하고 나서 다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팀(steam)으로 결제하면 도전과제가 있지만, 너무나 형식적이고 마지막 도전과제를 제외하고 모든 도전과제는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끝납니다.
물론 최대한 빨리 미션을 성공해야 하는 ‘스피드 런’ 모드가 있지만 똑같은 스테이지에 시간표시만 되었지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마저도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진엔딩을 보려고 별을 모으는 과정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혼자 공략할 순 없고 공략집의 도움을 빌려 겨우겨우 모아갈 수 있습니다. 공략 동영상을 보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공략이 대부분이면서 이미 방법을 알고 있지만 몸이 안 따라주는, 까다로운 퍼즐이 상당수입니다.
모아야 하는 이 별자리는 안드로메다 자리. 별 수집 난이도 역시 안드로메다급!
8 GB가 넘는 듀얼레이어 DVD도 모자라서 DVD 2장까지 출시되는 요즘, 겨우 155 MB의 <브레이드>가 게이머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최근 들어 게임산업은 대형 회사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소위 대작이라고 불리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억 단위의 개발비는 가볍게 넘어가고, 실사와 구별이 안 가는 그래픽, 영화 같은 스토리를 자랑하는 틈 속에서 예전의 향수를 여우비처럼 촉촉하게 내려 주는 <브레이드>, 어떤가요?
길을 잃은 게 어디 자네뿐이 겠는가......
총점: ★★★★☆ 9/10 소소한 단점이 아쉽긴 하지만 온몸을 자극하는 퍼즐, 최고의 이야기를 들려준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 뱀다리: 휴대용 게임기를 만드는 게임파크홀딩스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형 앱스토어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곳에 우리나라 “인디게임 및 아이디어 공모전”과 힘을 합쳐 국산 인디게임을 지원한다고 하더군요. 국내 게임 개발자 두 명이 만든 <헤비 매크>가 앱스토어에서 돌풍을 일으켰듯 우리나라에서도 제 2의 브레이드, 제 3의 브레이드가 속속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