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의 2차 클로즈 베타테스트가 끝났다. 이번 테스트에서 <영웅전>은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장점인 액션과 전략, 스토리 등은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어 보일만큼 깔끔했다. <영웅전> 특유의 액션은 여전히 처절했고 새로운 스킬과 보조무기, 함정은 전략성을 한층 높여 주었다. 다양한 보스가 나오면서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공략방법을 연구할 필요성도 생겼다. 스토리 역시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유저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어려웠고 유저 간의 커뮤니티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반 이후에는 초보자를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일종의 ‘문화’까지도 생겨났다. 강렬한 쾌감을 동반한 하드코어 액션을 추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라이트 유저들의 접근을 막는 하드코어한 접근성도 함께 보여주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더욱 강화된 액션과 그래픽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영웅전>의 액션은 온라인게임의 한계에서 벗어난 듯하다. 굳이 유저의 취향을 따지지 않더라도 적의 공격에 넝마가 된 갑옷을 입은 채 바위를 힘겹게 던져 몬스터를 기절시키고, 창과 사슬을 이용해 보스의 사지를 묶고 때리는 액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살기 위해’ 싸운다.
공격 당한 몬스터나 플레이어가 바닥에 나뒹굴고 체력이 떨어진 보스가 제자리에서 숨을 고른다. 피투성이가 되어 헐떡거리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목숨 걸고 싸운다’는 처절함이 느껴진다.
캐릭터의 움직임도 매우 자연스러워서 반복된 전투에서도 큰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소스엔진의 위용을 보여주듯 사실적으로 묘사된 물리법칙과 배경 그래픽은 처절함을 더해 준다.
랜덤으로만 고를 수 있었던 캐릭터 외형에도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추가됐다. 최근 온라인게임처럼 얼굴의 부위를 일일이 만지는 방식이 아니라 몇 가지 부위(?)를 선택한 후에 메이크업과 페인팅으로 ‘분위기’를 연출한다. 눈, 코, 입의 세세한 높낮이 하나하나에 매달리기보다 유저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화장이나 연출 등에 신경을 쓴 것이다.
덕분에 뛰어난 미적 감각이 없어도 원하는 이미지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셈이랄까.
깔끔하다. 쉽고 편하다. 그러면서도 표현할 것은 다 하는 커스터마이징.
■ 한층 강화된 전략과 컨텐츠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폭도 풍부해졌다.
우선 함정이 강화됐다. 신규 맵인 얼음계곡 이후에는 함정 하나하나가 엄청난 위력을 지닌 데다 같은 함정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예를 들어 얼음계곡에서 자주 보이는 나무다리는 양쪽의 기둥을 부수면 다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영웅전>의 낙하 대미지는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몬스터를 끌어들인 후 일거에 소탕할 수도 있다.
반대로 플레이어가 다리 위에 있을 때는 역시 몬스터가 다리를 공격하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싸워야 한다. 이 밖에도 경사로를 굴러오는 거대한 돌을 피하거나 좁은 얼음다리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함정에 적을 밀어 넣고 해체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몬스터의 공격에 당해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
보스 몬스터의 종류도 대폭 늘어났다. 물약을 마시고 전방에 산성물질을 내뱉는 보스가 있는가 하면 자동반격 상태에 들어가는 보스, 처음 봐서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는 거대한 곰과 촉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보스마다 패턴과 약점도 천차만별. 자동반격을 하는 코볼트 족장은 주변의 사물을 최대한 집어 던져야 공격기회를 만들 수 있고, 거대 북극곰은 얼굴에 창을 던지면 움직임이 멈춘다. 재빠른 이쿨크는 사슬로 묶어 놓지 않으면 섬광탄을 쓰고 다른 맵으로 도망을 가기도 한다. 1차 테스트에서 ‘갈고리’ 하나만 잘 던지면 끝났던 보스 공략은 맛보기였다.
다양한 보조무기와 특히 ‘지형지물의 이용’이 늘었다.
■ 불편함과 재미의 애매모호한 경계
조작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활용한 속칭 ‘FPS 방식의 조작’이 추가됐다. W, A, S, D 버튼으로 이동하고 마우스로 시점전환과 공격, 구르기, 잡기 등의 액션을 취하는 방식이다. 조작의 접근성과 다양성은 한층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조작방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영웅전>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엄청나게’ 높다. 자신의 레벨과 장비에 맞는 던전을 선택해도 보스의 공격 두세 방에 나가떨어지기 일쑤고, 마을에서는 NPC에게 일일이 말을 걸고 다니지 않으면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퀘스트와 스킬, 타이틀이 수두룩하다.
숨겨진 요소들을 찾아 다니는 재미를 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메인스토리’를 찾지 못 하고 헤매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유저의 성향에 따라 좋음과 좋지 않음(호불호)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부분이다.
게임을 하면서 마족지령서 퀘스트를 어떻게 받느냐는 질문만 수십 번을 봤다.
■ 지나친 난이도를 강요하는 달성률
2차 테스트에서 거의 필수가 된 ‘기사의 맹세’도 게임의 난이도를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다. 기사의 맹세란 스테이지에 도전 할 때 일정한 조건을 거는 대신 클리어 후의 보상과 스테이지 달성률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스매시를 사용하지 않는 기사의 맹세에서는 잡기만 써서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고, 물약을 사용하지 않는 맹세에서는 깃털만 9개를 가져가는 등 유저 스스로 맹세를 교묘하게(?) 지키면서 다양한 공략을 찾아 나가는 즐거움과 도전욕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는 기사의 맹세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문제는 게임의 초반부를 지나면서 기사의 맹세가 퀘스트를 보다 즐겁게 진행하기 위한 추가적인 요소가 아닌 필수로 자리잡는다는 데 있다. 기사의 맹세를 통해 달성도를 올리지 않으면 다음 퀘스트로 진행할 수 없는 탓이다. 물론 기사의 맹세를 선택했을 때의 난이도는 매우 급격히 올라간다.
함정이 강해졌고 보스의 공격 한 방에 치명타를 입는 <영웅전>에서 아무도 행동불능에 빠지지 않고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식의 기사의 맹세를 ‘무조건’ 해야 한다는 건 조금 과한 처사가 아닐까. 정녕 모두가 ‘컨트롤의 달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잊지 못 할 ‘마족지령서’ 행동불능 기사의 맹세. 여기서 누군가 하나는 꼭 죽는다.
<영웅전>에서는 퀘스트 클리어 보상에 비해 보조무기나 소모품의 가격이 매우 비싸다. 한두 번만 퀘스트에 실패해도 재정적인 부담을 느낄 정도. 결국 유저들은 ‘최대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동료’만 원하게 되고, 이는 가뜩이나 버거워 하는 초보 유저의 접근을 막는 꼴이 됐다.
메인 퀘스트를 위한 달성률은 조금 여유롭게 풀어 두는 대신 일정량의 달성률을 채우면 추가 보상이나 퀘스트를 즐길 수 있는 방식이 더 낫지 않았을까.
■ 수집·제작의 즐거움 vs 부족한 인벤토리
1차 테스트에서 맛보기에 그쳤던 수집과 제작은 본격적인 모습을 갖췄다. 특히 퀘스트와 제작용 재료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재료를 갖고도 어디에 사용할지, 무엇을 먼저 만들지 고민하는 아기자기한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용도를 모르던 물건의 쓰임새를 발견하는 것도 <영웅전>의 즐거움 중 하나. 수집 가능한 타이틀도 늘어났다. ‘여신을 알게 된’처럼 스토리와 연관성이 짙어 보이는 것부터 산업스파이, 근성의 맨손 격투가처럼 잔재미를 살리면서 재치 있는 타이틀도 있었다.
하지만 재료의 종류에 비해 인벤토리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물건을 맡겨 놓을 창고나 보조 인벤토리도 없었고, 초반에는 용도가 없어 보이던 아이템이 후반에 중요하게 쓰이는 일이 자주 생기는 탓에 아이템을 마구 팔아 버릴 수도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정리를 포기한 채 인벤토리가 가득 차 우편으로 날아오는 아이템을 하나씩 클릭해서 확인하는 수고를 겪었을 정도다. 부분유료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수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인벤토리의 공간을 조금만 더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 마리 토끼만 확실히 쫓는 <영웅전>
이번 테스트로 <영웅전>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액션 게임에 목마른 유저를 확실히 노리는 대신, 게임을 자주 접하지 못 하는 속칭 라이트유저는 과감히 포기한 느낌이다. FPS 방식의 친숙한 조작법을 추가한 것과 퀘스트의 경험치 편차가 크지 않아서 높은 레벨 유저도 낮은 레벨 퀘스트를 반복해서 즐길 수 있는 게 배려의 전부.
설상가상으로 테스트 도중에 부활 시 체력을 반으로 줄이고, 유저들의 밥줄(?)이던 창의 대미지를 낮추는 패치가 나왔다. 앞으로도 <영웅전>이 라이트 유저를 위해 난이도를 낮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신 <영웅전>은 ‘하드코어 액션을 원하는 유저’라는 토끼를 확실히 잡았다. <영웅전>의 테스터 게시판에는 더욱 어려운 난이도와 더욱 강력하고 다양한 패턴의 몬스터를 요구하는 유저들이 있을 정도였다. 유저들이 꼽은 <영웅전>의 장점 역시 ‘도전욕을 자극하는 난이도’와 ‘극단적인 액션’이었다.
NPC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작은 사건이 점점 큰 사건으로 번지는 스토리라인도 매력적이었다. 심지어는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같은 퀘스트를 20여 번이나 솔로 플레이했다는 유저도 만났을 정도다. 세 가지 모두 국내 온라인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들이다.
솔직히 <영웅전>과 비슷한 느낌의 게임은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난이도 부분을 잠시 미루어 놓더라도 <영웅전>에는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위에 말한 인벤토리는 물론, 온라인게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커뮤니티도 부실했다. 테스트 내내 시달렸던 잦은 서버문제도 관건이다.
3일차 이후에 개선되긴 했지만, 보스전이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웅전>은 그만큼 튕김과 랙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통합 서버 방식의 시도가 부디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한 하드코어 액션. <영웅전>은 단순한 ‘그래픽 좋게 남 따라하기’가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액션의 즐거움을 충분히 살렸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영웅전> 이후 ‘콘솔 게임 수준의 액션’이라는 수식어는 섣불리 사용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노선은 확실해졌다. <영웅전>이 대중성까지 겸비한 모습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따라올 유저들만 확실히 붙잡고 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보너스. (남성 유저의) 영혼을 울리는 발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