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 스튜디오의 폐쇄와 함께 ‘공중에 붕 떠 버렸던’ <미소스>가 한빛소프트의 손에 의해 돌아왔다.
한빛소프트가 <미소스>의 지적재산권을 확보했다고 밝힌 지 약 9개월만의 일이다. 당시 개발사의 폐쇄로 <미소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한빛소프트는 “<미소스>를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구현할 것이며 게임의 장점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의지를 야무지게 밝혔다.
하지만 오랫만에 모습을 비춘 <미소스>는 기대 보다 실망이 앞섰다. 한빛소프트가 새로 선보이는 <미소스>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치더라도 북미지역에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던 ‘오버월드’가 별다른 콘텐츠 추가 없이 각종 버그가 더해 국내에서도 적용됐다는 점에서 테스트 의도가 궁금했다.
다만 <디아블로>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던전플레이만큼은 여전히 일품이었다.하지만 아쉬움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최선보다는 최신을 택한 한빛소프트
체험기를 시작하기 전에 북미에서 테스트하던 시기의 <미소스>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간다.
<미소스>는 원래 전형적인 MORPG 방식의 게임이다. 마을에서 파티를 만든 후 정해진 출구로 나가면 해당 지역의 전체지도가 표시된다. 그 중 원하는 던전을 선택하면 거리에 따라 자동으로 중간 맵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마을 바로 옆에 있는 광산을 갈 경우에는 하나의 맵만 지나면 바로 던전이 나오지만 맵 구석에 있는 용의 동굴을 선택하면 5~6개의 중간 맵을 지나가야 하는 식이다.
그렇게 정해진 중간 맵을 돌파하면 간단한 임시거처와 함께 본격적인 던전이 나온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마을에 귀환, 퀘스트 보상을 받고 장비를 정리한다. 만약 운이 좋다면 새로운 지역의 위치가 담긴 에픽 지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미소스>의 플레이방식이었다. 아마 북미테스트를 경험했던 국내 유저들이 기억하는 <미소스>의 모습도 이와 같을 것이다.
추억 속의 <미소스>는 대부분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플래그십 스튜디오는 폐쇄되기 약 한 달 전 ‘오버월드’ 패치를 공개, <미소스>의 게임방식을 크게 바꿔버렸다. 모든 유저가 공통으로 사냥하는 일반필드를 추가했고 호평을 받았던 기존의 던전 이동방식을 삭제했다. 대신 유저가 일반필드 곳곳에 있는 던전을 직접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반발은 엄청났다. <미소스>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게임 방식을 좋아했던 테스터들은 끝없이 비판을 가했다.
‘필드그래픽이 허접스럽다’, ‘게임이 조악해 보인다’며 새로운 필드방식을 부정하는 테스터가 대다수였다. 실제로 오버월드 패치 이후 <미소스>는 테스터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전락했다. 다행히(?) 플래그십 스튜디오가 폐쇄되면서 더 이상의 패치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국내 유저들에게 최신 패치를 선보이고 싶었던 욕심이었을까? 한빛소프트가 테스트를 시작한 것도 하필이면 이 ‘일반필드가 추가된 오버월드’ 버전의 <미소스>다. 그것도 과거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한 느낌이다.
이게 가장 최신버전이다 -_-;
■ 득보다 해가 많은 일반필드
<미소스>의 일반필드는 요즈음 3D 온라인게임에 비해 부족함이 많다. 한마디로 허접스럽다.
우선 원색에 가까운 바닥이나 질감이 전혀 없는 텍스쳐, 성의 없어 보이는 오브젝트들을 보면 빈말로라도 ‘그래픽이 좋다’는 말을 하기 힘들다. 광원효과나 그림자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데다가 지형지물의 높낮이도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다. 난데없이 캐릭터가 울타리를 뚫고 지나가거나 앞이 뻔히 뚫려있는데 지나갈 수 없어 플레이에 답답함을 준다.
던전과 필드그래픽의 비교장면. 같은 숲인데도 퀄리티의 차이가 심하다.
맵 전체가 초록 평원인 탓에 새로운 지역을 찾아간다는 기분도 느낄 수 없다. 필드에 나오는 몬스터의 구성도 단순하다. 4~5 종류의 몬스터가 색깔과 이름도 안 바뀐 채 레벨만 바뀌어 등장한다. 몬스터도 길 좌우로만 놓여있어 퀘스트를 위해서나 지름길로 갈 때가 아니면 만날 일도 거의 없다.
참고로 <미소스>의 몬스터 중 플레이어보다 빠른 몬스터는 손에 꼽힐 정도다. 그나마 던전은 길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몬스터와 싸워야 하지만 넓디 넓은 일반필드에서는 그럴 걱정도 없다. 실제로 새로운 지역을 찾아갈 때는 모니터를 보지 않고 마우스만 클릭해도 HP의 손상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반필드에서 몬스터를 잡아 레벨 업을 할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던전에 비해 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1/10도 안 되는 데다가 곳곳에 흩어져있는 탓에 일일이 찾아 다니다 보면 이동 시간이 오히려 더 많다.
어차피 던전을 무한하게 돌 수 있기 때문에 필드 10분을 도느니 1~2분짜리 짧은 던전 하나를 깨는 게 몇 배는 더 낫다.
퀘스트를 빼면 정말 무의미한 존재다. 무섭지도 않지, 위협도 안되지, 분위기도 못 살리지, 사냥에 도움도 안되지.
결국 유저들이 필드에서 주로 즐기는 컨텐츠는 퀘스트다. 그런데 이조차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차피 보스몬스터가 나오는 주요 퀘스트는 모두 던전에서 진행된다. 필드의 퀘스트는 ‘어디의 누구를 찾아가라’, ‘무슨 물건 몇 개를 모아와라’ 등의 상투적인 방식이다.
MMORPG의 ‘뺑뺑이 퀘스트’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몬스터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탓에 이런 ‘뺑뺑이 퀘스트’는 그저 플레이시간 늘리기용 퀘스트로 전락할 뿐이다.
결국 <미소스>에서 필드는 유저의 무의미한 이동시간을 늘려주는 역할을 소화해준다. 그나마 일반필드에서 이동에 지체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유저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게 굳이 내세울 장점이다.
■ 대량학살의 던전과 컨트롤이 필요한 보스전
반면 <미소스>의 던전과 전투만큼은 ‘여전히’ 일품이다.
<미소스>의 던전은 ‘쏟아지는 몬스터를 강한 화력으로 쓸어 담는’ <디아블로> 식의 플레이를 지향한다. 던전에 진입한 순간부터 화면 곳곳에서 몬스터가 수 십 마리씩 몰려온다. 플레이어는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몰려있는 몬스터를 ‘학살’하면 된다.
이 정도 시체는 기본이다.
보스와 중간보스를 제외하고는 몬스터의 체력이 매우 낮고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기술도 거의 없다. 때문에 정말로 ‘상쾌한 학살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룬을 사서 입장하는 룬게이트 던전은 학살의 백미. 대부분의 룬게이트 던전이 커다란 방에 백 여 마리의 몬스터가 우글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화면 곳곳에서 수 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등장하는 몬스터를 다양한 광역공격 기술로 해치우다 보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게 절로 느껴질 정도.
말 그대로 쓸어 담는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보스는 체력과 공격력이 매우 높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이동속도를 저하시키거나 졸개를 소환하고 스스로 버프를 거는 등 다양한 공격패턴을 갖고 있다. 보스의 패턴을 읽고 빈틈을 찾아 공격하는 전략과 빈틈을 잽싸게 노릴 수 있는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듯 <미소스>의 던전에서는 단순한 학살의 즐거움과 전략적인 보스전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보스전까지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5~10분 내외로 매우 짧다. 유저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수준이란 뜻.
특히 각종 광원효과와 세밀한 텍스쳐, 길 반대편이 보일 듯 말 듯한 적절한 시야 제한 등은 던전의 분위기와 완성도를 한층 높여준다.
던전만큼은 최고다.
■ 다양한 캐릭터의 성장방식
다양한 캐릭터성장 방식도 재미에 한 몫을 거든다.
<미소스>에 등장하는 직업은 ‘피의 기사’와 ‘화염의 지배자’, 그리고 ‘기계 전문가’의 세 가지다. 얼핏 보면 ‘전사’, ‘마법사’, ‘궁수’의 구조일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같은 직업이라도 어떤 계열의 어떤 스킬을 찍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의 기사는 스킬 트리에 따라 소환수를 부릴 수도, 전형적인 무기에 의존한 전사로 키울 수도, 혈액을 폭발시키며 독을 뿌리는 마법사로 키울 수도 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기계 전문가는 각종 위험한 액체들을 뿌리고 다니는 연금술사로, 화염의 지배자는 불과 전혀 관련 없는 소환사나 창을 들고 적을 때리는 마법전사로도 키울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 성장을 외치는 게임은 많았지만 <미소스>처럼 직업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의 게임은 몇 없었다.
스킬 포인트가 넉넉하지 않아 같은 스킬 계열을 택하더라도 어떤 스킬을 주력으로 투자했느냐에 따라 플레이방식이 한 번 더 갈라진다. 여담이지만 해외테스트에서는 이런 <미소스>의 특징 덕분에 같은 직업을 4~5번씩 즐기는 유저도 있었을 정도다.
■ 다음테스트에서는 ‘발전’을 볼 수 있기를
솔직히 <미소스>는 신작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된 게임이다. 플래그십 스튜디오에서 <미소스>의 개발을 공개한 것이 2006년이다. 국내 유저들이 참가한 전세계 테스트도 7월에 시작했으니 적게 잡아도 2년 이상 지난 게임인 셈이다.
그러나 <디아블로>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호쾌한 전투와 던전의 독특한 분위기, 개성 있는 직업과 스킬시스템 등은 <미소스>를 지금도 충분히 ‘먹힐만한 게임’의 느낌을 던져준다.
솔직히 던전만 놓고 보면 명작이다. 업적처럼 파고들 부분도 많다.
개발사인 한빛소프트는 9개월간 <미소스>의 예전 버전을 다시 살리는데 성공했다. 충분한 성과다. 북미버전에 비해 높아진 PC사양과 신종 버그의 출현은 차차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북미테스트 중에도 엄청난 비판을 받은 ‘오버월드’를 그대로 가져온 점과 한빛소프트에서 직접 만든 컨텐츠를 테스트 기간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두 가지 모두 '한빛소프트가 만드는' <미소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이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1차 CBT의 목적이 <미소스>를 되살리는 데 있었다면 앞으로는 거기에 ‘한빛소프트 스스로도 살을 붙여나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국내 유저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번 테스트에서 나온 의견들도 충분히 수렴돼야 할 것이다.
다음 테스트에서는 북미테스트의 연장선이 아닌 플래그십 스튜디오의 딱지를 뗄 수 있는 한빛소프트만의 <미소스>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