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5일)로부터 꼭 1년 전, <포켓몬스터> 팬들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 포켓몬 스킨을 입힌 듯한 신작, <포켓몬 유나이트>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사하라 츠네카즈 포켓몬 주식회사 대표가 "대형 프로젝트를 기대해 달라"라는 발언을 한 뒤 등장한 타이틀이었기에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포켓몬 유나이트>가 CBT를 통해 유저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게임,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랜 시간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즐긴 입장에서 반감을 갖고 시작했지만, 특별한 단점이나 불편함을 느낄 새 없이 즐겁게 플레이했을 정도였으니까. 미리 만나본 <포켓몬 유나이트>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기사에 활용된 <포켓몬 유나이트>는 24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일본 테스트 버전으로,
최종 버전과 다를 수 있습니다.
<포켓몬 유나이트>는 5:5 팀 배틀로, 제각기 다른 스킬을 사용하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해 상대와 맞붙는 형태를 띤다. MOBA 팬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구조다. 다만, <포켓몬 유나이트>는 그 어떤 게임도 넘볼 수 없는 엄청난 강점을 갖고 있다.
바로 '포켓몬'이라는 IP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모두 원작의 포켓몬과 똑같은 형태를 띤다. 이를테면 전기쥐로 불리는 피카츄는 전기공을 던지며 궁극기로 백만 볼트를 사용한다. 기를 활용한 격투 컨셉의 루카리오 역시 강력한 근접 공격과 기동력을 자랑하는 원작 컨셉 그대로 등장한다.
더 큰 강점은 이러한 몬스터들을 유저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블루, 레드를 시작으로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타이틀을 출시해왔다. 하지만 <포켓몬 유나이트>처럼 몬스터를 직접 움직여 전투를 할 수 있는 게임은 거의 없었다. IP에 관심이 있는 유저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포켓몬 유나이트>의 맵은 정중앙을 기준으로 아군, 적군 지역으로 구분된다. 라인은 탑과 바텀으로 나뉘며 가운데에 정글이 배치되는 형태다.
한 가지 독특한 건 게임의 규칙이다. <포켓몬 유나이트>는 상대 건물을 부수는 것 대신, '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유저들은 10분의 시간 동안 야생 동물이나 적 유저를 잡아 공을 모은 뒤 상대 진영에 위치한 '골'에 넣어야 한다. 각 골은 일정 포인트가 채워지면 소멸하는 만큼, 게임은 유저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전투를 유도한다.
다만, 개발진은 여기에 약간의 변수를 더했다. 공을 넣을 때 차징 시간을 둠으로써 언제든 상대의 기습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 순간적으로 대미지를 집중 시켜 상대 득점을 끊고, 역습을 노릴 수 있는 구조다. 또한, 소멸하지 않은 상대 골 근처에서는 이동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환경을 조성해 수비하는 입장에서 이점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부분도 눈에 띈다.
'익숙함'을 가진 게임이 지닌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MOBA의 강자로 꼽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라이엇 게임즈의 오리지널 IP에 해당한다. 스킬은 물론, 배경 이야기조차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오랜 시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한 유저라 해도 캐릭터 이야기는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낯선 캐릭터와 이야기들은 일종의 진입 장벽이 되곤 한다.
그래서 <포켓몬 유나이트>는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걸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던 <리그 오브 레전드>와 달리 <포켓몬 유나이트>는 원작에 익숙한 팬들에겐 큰 진입 장벽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익숙함'을 갖고 있다. 파이리는 불, 이상해꽃은 식물 컨셉의 스킬을 사용하며 잠만보는 탱커 역할을 수행할 거라는 걸 일일이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포켓몬'은 전 세계 최고의 미디어믹스 자리에 올랐을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는 콘텐츠다. 이를 고스란히 가져온 <포켓몬 유나이트> 역시 부가 효과를 누릴 수밖에 없다. IP 팬들에겐 반드시 플레이해야 할 타이틀로 인식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포켓몬을 내세운 게임'이라는 어필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켓몬 유나이트>는 이러한 익숙함 위에 한 가지 요소를 더했다. 더 많은 유저가 손쉽게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닌텐도 기기 없이는 좀처럼 즐길 수 없었던 <포켓몬스터> IP를 모바일로 푼 건 차치하더라도, 게임 시간을 10분으로 줄이는 등 플레이 난이도를 낮춘 점이 이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게임 중 활용되는 '카이팅'이다.
카이팅은 원거리 캐릭터가 계속해서 움직이며 상대 스킬을 피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하는 걸 말한다. 평타와 평타 사이에 끝없이 무빙을 넣는 게 포인트인 만큼, 상당히 어려운 기술로 꼽힌다. 반면, <포켓몬 유나이트>의 카이팅은 꽤 심플하다. 좌측 컨트롤러로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우측의 기본 공격을 연타하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포켓몬 유나이트>의 스킬은 모두 논코스트로, 소모되는 비용 없이 사용 가능하다. 쿨타임만 적당히 계산하면 마음껏 전투를 펼칠 수 있는 셈이다. 스킬 또한 대부분 타겟팅으로 구성됐다. 논타겟 스킬이 존재하긴 하나, 타 게임에 비해 활용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다. 물론 상위 구간에 진입하면 고차원의 플레이가 펼쳐지겠지만, 첫인상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끼긴 어려운 구조다.
짧은 시간 직접 플레이해본 <포켓몬 유나이트>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익숙함'이라 볼 수 있다. MOBA의 익숙함 위에 너무나 친숙한 IP를 끼얹은 <포켓몬 유나이트>는 익숙함이 주는 강력함을 마음껏 뿜어내며 기자의 시간을 하염없이 가져갔다. 가끔 기사를 쓰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였으니까.
지금까지의 <포켓몬 유나이트>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게임처럼 보인다. 현 빌드를 유지, 보수해 정식 버전을 선보일 수 있다면 출시 당시 들었던 엄청난 비판과 조롱을 한순간에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익숙함을 무기로 칼을 갈고 있는 <포켓몬 유나이트>가 향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