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개발사인 플래그십 스튜디오가 문을 닫은 후 <헬게이트: 런던>의 상황은 ‘점입가경’이었다. 기존에 약속했던 업데이트 일정은 1년 가까이 미뤄졌고, 대부분의 업데이트가 ‘짜깁기’나 ‘시스템 및 밸런스 변경’ 수준에 그쳤다. 유저들도 빠져나갔다.
개발을 이어 받은 한빛소프트가 <헬게이트: 런던>의 소스를 분석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릴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가뜩이나 콘텐츠 부족을 지적 받았던 <헬게이트: 런던>의 유저들로서는 속이 탈 만했다.
한빛소프트는 특단의 대책으로 ‘부분유료화’ 전환과 ‘서버 초기화’까지 진행하면서 유저들을 끌어 모았지만 제대로 된 신규 콘텐츠가 없는 게임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한빛소프트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헬게이트: 도쿄>였다. 일본이라는 새로운 무대 속에서 한빛소프트의 손으로 만든 새로운 콘텐츠를 공개함으로써 스스로도 <헬게이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한 것이다.
결과는 확실했다. <헬게이트: 도쿄>는 기존 <헬게이트>의 게임성을 해치지 않은 채 새로운 콘텐츠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아직 신규 콘텐츠의 양이 부족했고, 추가된 콘텐츠의 완전히 새롭다기보다는 기존 콘텐츠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도쿄에서 열린 새로운 헬게이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기존의 재미는 그대로, 위화감 없는 업데이트
<헬게이트: 도쿄>는 거의 1년 만에 등장한 <헬게이트>의 ‘진짜’ 신규 콘텐츠다. 개발사인 한빛소프트는 플래그십 스튜디오의 폐쇄 이후 곧바로 <헬게이트>의 개발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업데이트의 대부분은 이미 플래그십 스튜디오에서 준비를 마친 내용이었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어비스 업데이트 역시 이미 2년 전에 플래그십 스튜디오를 통해 공개된 것들이다. 결국 이번 <헬게이트: 도쿄>가 사실상 ‘순수하게 한빛소프트에서 개발한 첫 대규모 업데이트’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한빛소프트표 <헬게이트>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헬게이트: 도쿄>에는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 MORPG 방식인 <헬게이트>의 조작방식은 물론이고, 잠깐의 방심도 죽음으로 이어지는 긴장감, 끝없이 몰려오는 악마 대군의 박력 등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래픽이나 레벨 디자인도 무난한 수준이고, 런던과 도쿄의 위화감도 없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콘텐츠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새로 추가된 스토리도 런던을 구출한 플레이어에게 자연스럽게 도쿄로 갈 이유를 마련해 주며 <도쿄> 액트1의 결말도 ‘적절한 떡밥’과 함께 끝난다. 효율이 떨어지긴 하지만 새로 추가된 스킬과 아이템도 기존 <헬게이트>와 잘 어울린다. <헬게이트>가 기존에 갖고 있던 장점을 파악하고 살려 나간 느낌이다.
특유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헬게이트: 도쿄> 액트1에 추가된 두 번의 보스전이다. <도쿄>에서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형식의 ‘공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보스인 식귀 쿠로돈은 무적 상태에 들어갔을 때 주변에 보이는 횃불을 꺼야 하고, 두 번째 보스(액트1 최종)는 일정한 시간마다 고치로 변한다. 고치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주변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면서 소환된 졸개들을 처치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단순하지만 기존의 정면에서 치고 받는 싸움이 아닌 ‘전략을 짜야 하는 보스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보스 공략이 한빛소프트에서 순수하게 추가한 콘텐츠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보스전은 조금은 신선했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할 만한 부분.
■ 쉽게 소모되는 콘텐츠, 여전한 단점들
문제는 단점 또한 그대로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의 볼륨이다. <헬게이트>는 서비스 시작 시점부터 콘텐츠 부족에 시달렸다. 전체 플레이 시간이 워낙 짧은 탓도 있지만 지하철 역과 하수도만 이어지는 단조로운 맵 구조와 반복해서 쏟아지는 몬스터 조합도 한몫했다.
<헬게이트: 도쿄>에 업데이트된 맵은 총 25개, 그 중 마을을 제외하면 21개 정도의 맵이 남는다. 모두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은 8시간 남짓. 그것도 ‘레벨 50 캐릭터를 처음 조작해 본’ 필자가 부활 아이템을 쓰면서 솔로잉으로만 클리어한 시간이다.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이 풀 파티로 진행할 경우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실제로 콘텐츠가 추가된 첫날부터 최종 보스 ‘노가다’를 하는 유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액트2 업데이트가 오는 6월로 예정돼 있으니 유저들은 그때까지 다시 클리어한 스테이지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도 짧아도 너무 짧다.
‘지독한 맵과 몬스터 재활용’도 여전하다. <헬게이트: 도쿄>에 등장하는 맵의 배경은 하수도, 폐허, 신사, 에도성, 이(異)세계의 4종류 정도다. 몬스터의 구성도 단순하고 새로 추가된 몬스터도 보스 몬스터를 포함해 7종에 그친다. 조금 솔직히 말해서 기존에 나왔던 몬스터와 스킨만 다른 느낌도 든다.
어디를 가도 ‘그 맵이 그 맵이고, 그 몬스터가 그 몬스터인 상황’ 덕분에 플레이 30분이 지나고 나서는 계속 데자뷰 현상을 느낄 정도였다. 해상도를 아무리 올려도 화면 절반을 차지하는 인터페이스나 몬스터가 맵 곳곳에 끼고, 심지어 지하에서 공격하는 버그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나마 맵의 난이도가 오른 덕분에 노말 모드에서도 ‘가끔씩 파티를 맺을 필요’가 생겼다는 점 정도가 나아진 부분이다.
사실 소비형 콘텐츠로 유저들의 소비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다. 개발진도 인터뷰에서 “어떻게 순환형 콘텐츠로 만들까를 고민한다”고 밝혔듯이 <헬게이트>에는 순환형 구조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5월 중으로 다양한 규칙을 갖춘 5:5 단체전과 보상 아이템이 추가된다고 하니 기다려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익숙해진 이 맵도 다시 등장한다.
참고로, <헬게이트: 도쿄>는 ‘만렙 확장형’ 콘텐츠다. 신규 유저들이 바로 즐길 수 없다는 뜻이다. 50레벨을 찍고 <도쿄>로 넘어가는 것이 안정적인 만큼, 신규 유저들이 <도쿄> 액트1을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런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아 둬야 한다. 대신, 도쿄를 둘러볼 수 있는 맛보기 퀘스트는 제공된다.
■ 보다 확실한 도쿄의 느낌이 필요하다
이름을 도쿄로 바꾼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기존의 <헬게이트>와 다를 바 없는 게임 무대도 아쉬운 부분이다.
<헬게이트: 도쿄>의 무대는 당연히 일본이다. 한빛소프트 역시 <도쿄> 편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무대에서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헬게이트: 도쿄>에서는 일본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기존의 몬스터와 구분하기도 어려운 데다 맵에 놓인 오브젝트는 지게차나 탱크 등 일반적인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뿐이다. 게다가 맵의 절반은 지하도나 전혀 다른 이(異)세계가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의 에도성과 요수관 등의 몇 개 맵을 제외하고는 <헬게이트: 브라질>이나 <헬게이트: 콩고>로 이름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한빛소프트 측에서는 위성지도까지 활용해서 일본의 실제 거리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하지만 건물의 ‘배치’만 보고 일본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헬게이트>의 배경이 미래이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과 똑같은 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에 있다는 느낌이 뚜렷하게 들기를 바랐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여기를 보고 일본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나마 뒤에 나오는 맵보다는 나은 편이다.
배경만 잘 다듬어도 그 나라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헬게이트: 도쿄> 액트1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너진 도쿄 타워나 사원 맵, 일본어 이름을 가진 NPC 정도가 고작이다. 대부분의 건물은 간판조차 안 붙어 있고, 그나마 붙어 있는 간판도 일본어가 거꾸로 적혀 있거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이 무대라고 해서 꼭 칼을 든 사무라이 몬스터나 닌자가 나오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건물마다 일본어가 적힌 간판을 반복해서 배치하거나 도로 표지판, 옥외 광고 등 간단한 장치로도 기존의 런던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유저는 <도쿄>의 액트1이 끝나가는 에도성에 진입할 때에야 ‘아, 여기가 일본이 무대구나’하고 느끼게 됐다. 늦어도 너무 늦다. 가뜩이나 콘텐츠가 반복되는 게 문제인 게임에서 굳이 새로운 콘텐츠마저 ‘이전과 비슷해 보이게’ 만들어야 했는지 아쉽다.
액트1의 마지막 맵은 확실히 일본 느낌이다.
■ 확장을 했으니, 이제 진화를 기대한다
<헬게이트: 도쿄>를 통해 한빛소프트는 스스로도 <헬게이트>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스토리나 게임성도 자연스러웠고, 새롭게 추가된 보스전이나 맵도 ‘즐길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보스전과 액트1 마지막의 에도성 부분은 기존의 <헬게이트>에서 보기 힘든 신선함을 갖고 있었다.
라스트 보스에서 허공에 떠 있는 사원과 그 사원을 가득 메운 나방처럼 약간의 연출미(?)를 추구한 점도 눈길이 간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볼 만한 부분이다. 워낙 기본기가 있는 게임인 만큼 플레이 자체가 ‘여전히’ 재미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번 업데이트는 어디까지나 한빛소프트도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부족한 콘텐츠과 맵 반복이라는, 매번 지적되는 단점은 여전히 풀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이제 겨우 액트1이 공개된 만큼 속단은 이르다. 액트1으로 ‘가능성’은 보여준 만큼 이후의 액트2와 액트3에서는 단순한 확장에서 벗어나 기존의 <헬게이트>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추가 콘텐츠와 더욱 발전된 보스 몬스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