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프리뷰/리뷰

SF 호러가 '현실감'을 주는 방법…칼리스토 프로토콜

차세대 기술을 활용한 몰입적 경험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10-28 12:48:07
클래식 IP 재창작은 이제 웬만한 개발사는 모두 한 번쯤 만져보는 카드가 됐다. 잊을 만하면 굵직한 고전 명작의 리메이크, 리마스터, 정식 후속작, 정신적 계승작이 하나씩 발표된다. 스팀 이용자 평균 연령을 38세로 추산한 독일의 충격적(?) 시장 통계는 아무래도 정확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뉴트로’ 트렌드가 흥하면서 고전 명작을 개발했던 스타 개발자들의 이름값도 동반 상승했다. 이들이 진두지휘하는 신규 프로젝트에도 이목이 쏠린다. <데드스페이스> 글렌 스코필드 사단의 신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에 업계 관심이 집중되는 것 역시 맥락상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출시가 임박한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사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PS5 콘솔로 게임 중반부 50여 분을 플레이하며 주요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데드스페이스>의 장점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독자적 깊이가 함께 엿보인다. 함께 알아보자.

※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스크린샷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형제 같은 두 작품, 하지만…

2008년 출시한 <데드스페이스>는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 타이틀이다. <데드스페이스>가 보여준 메카닉적 깊이와 밀도 높은 공포는 동일장르의 후배 게임들이 참고하는 좋은 표본이 됐다.

덕분에 계보를 잇는 좋은 서바이벌 호러가 이후 많이 출시했지만, SF라는 서브 장르로 한정해보면 직접 어깨를 마주 댈 만한 타이틀은 거의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출시하면 두 게임을 서로 비교하려 벼르는 유저 또한 많다. 마침 '저의'가 의심될 만큼 비슷한 시기에 EA의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가 출시 예정이기도 하다.

두 게임은 '폐쇄된 공간에서 괴생명체에 맞서는 삼인칭 서바이벌 호러'라는 개관을 완벽히 공유한다. 그만큼 교집합이 크지만 사실 글렌 스코필드 자신은 <칼리스토 프로토콜>과 <데드스페이스>를 분리하여 바라보고 평가하길 바라는 입장이다.

과거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두 게임 모두 내가 제작했기 때문에 같은 DNA를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스토리 전개 방식이나 고어 표현, 캐릭터 상호작용 등 핵심이 되는 여러 부분에서 별개 카테고리로 구분되어야 할 만한 독립적 게임이라 강조한 바 있다.

글렌 스코필드 (사진: 크래프톤)


# 새 부대에 담긴 술

9세대 콘솔(PS5, Xbox 시리즈 X)의 시대가 출시 2년째에 접어든 현시점까지도 제대로 막을 올리지 못했다는 견해가 있다. 탁월한 하드웨어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타이틀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반면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양대 콘솔의 하드웨어 잠재력을 끌어낼 만한 현실적 비디오/오디오 연출로 감각적인 공포 묘사를 시도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게임 전반의 연출 방향성에도 닿아 있다. 스코필드는 인터뷰에서 “SF 호러 고유의 매력은 어디에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을 설정할 때는 새로우면서도 유저들이 (그 존재를) 믿을 수 있는 곳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부합하여 게임은 ‘우주 교도소’라는 이질적 공간을 배경 삼으면서도 시청각적 현실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3D 오디오의 선명한 공간감은 주인공 제이콥이 처한 극한 상황에 유저들을 성공적으로 밀어 넣는다. 좁은 통로에 기어드는 등의 장면에서 그 효과는 특히 두드러지는데 주인공 움직임에 맞춰 반향되는 사운드 피드백은 마치 -제이콥이 아닌-유저 본인이 통로를 기는 듯한 감각적 착각을 자아낸다.

탁월한 환경 묘사는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간혹 상하좌우 들려오는 음향이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를 알려 준다. 적이 앞에 도사린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야 하는 상황, 혹은 그런 적을 되려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전개되면서 유저의 투쟁 도피 반응을 자극한다.



# 이름 값 못 하는 몬스터, 그래도 무섭다

이번 작품의 몬스터 명칭 ‘바이오파지’(Biophage)는 '다른 유기체를 섭취해 살아가는 유기체'라는 의미의 실제 생물학 용어다. 그러나 데모 플레이 분량에서는 이름에 어울리는 습성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바이오파지들은 때리고, 밟고, 침 뱉는(?), 좀 더 전통적 형태의 폭력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디자인은 <데드스페이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디호러(왜곡된 인체 묘사로 공포를 유발하는 호러 장르의 하위 갈래) 요소를 활용했다. 생기 없는 회백색 피부​, 뒤틀린 신체, 특정 부위의 극단적 변형 등을 통해 공포와 거부감을 유도한다.

‘촉수’는 바이오파지의 매력을 한층 강화하는 기믹이다. 전투 중 바이오파지의 몸에서는 랜덤하게 촉수가 돌출한다. 이때 촉수를 빠르게 공격하지 않으면 바이오파지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더 크고 강한 개체로 변신한다. 비교적 약해 보이는 개체들 앞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한편 ‘사지 절단’을 주요 피쳐로 내세웠던 <데드스페이스>의 네크로모프와 달리 바이오파지는 더 세밀한 부위별 피격 애니메이션과 고어 연출을 보여준다. 이는 ‘사지 절단을 통한 빠른 처치’의 기믹이 반복되었던 네크로모프와의 전투와 비교해 현실성과 자유도를 높여주는 변화다.

그런데 고어한 죽음에 노출된 것은 바이오파지뿐만이 아니다. <데드스페이스> 시리즈에서 유명했던 주인공의 ‘데스 씬’ 연출은 <칼리스토 프로토콜>에도 있다. 제작진이 실제 사고 영상까지 참고해가며 만들었다는 다양한 데스 씬은 온갖 창의적 방식으로 죽임 당하는 제이콥의 모습을 담아낸다.

호불호가 크게 갈릴 영역이지만, 그저 제작진의 가학적 면모로 취급하기는 힘들다. 잔혹한 데스 씬은 감상한 유저들로 하여금 그만큼 제이콥의 죽음을 더 두려워하고 기피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제3의 관찰자 입장이기에 희석될 수밖에 없는 공포의 농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 거리두기 좀 합시다

주인공 제이콥은 화물선 기사이자 블랙아이언 교도소의 수감자다. 원인 모를 괴물 사태가 벌어진 교도소에서 무기 지식도, 전투 기술도 없는 제이콥은 그저 살아남으려 분투한다. 손에 넣을 수 있는 화력 또한 열악하다. 간수들이 사용하던 기절봉(stun stick)이나 권총처럼 제압보다 호신에 어울리는 무기들로 적을 상대해야 한다(적어도 체험 분량에서는 그렇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강력한 중력 무기 그립(GRP) 정도다.

이번 게임의 전투에서는 시스템 상 육탄전이 강조된다. 전기가 흐르는 기절봉은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비상 수단이 아니라,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주무기에 가깝다. 탄약 공급마저 제한적이기에 사용이 더욱 권장(강제)되는 측면이 있다.

저리 좀 가시라구요

이렇게 괴물과 직접 신체를 맞대는 상황은 원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때는 느끼기 힘든 특유의 위기감과 액션성을 선사한다. 모션 캡쳐로 만든 현실적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리얼한 '격투 씬' 연출에 큰 도움을 준다. 적들 대다수를 인간형으로 디자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회피, 막기, 약점 공격, 무기 연계 등 전투 메카닉은 다양하다. 제이콥이 견딜 수 있는 최대 피격 횟수가 4~5번 정도로 적은 편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원활히 진행하고 싶다면 이러한 메카닉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한편 전투와 전투 사이 적당한 간격으로 체력 회복 아이템이 배치되어 있고, 세이브포인트 역시 너그럽게 분포하기 때문에 게임플레이 진행 자체가 막혀 버릴 우려는 크지 않다.

피하기와 막기는 적 공격 타이밍에 맞춰 양옆 혹은 후방 커맨드를 입력하면 발동하는데, 그 판정이 상당히 너그럽다. 정식 출시에서 좀 더 엄격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전반적 게임플레이 난도와 전투 흥미를 떨어뜨릴 가능성까지 엿보인다.

스코필드는 영화 <부산행> 등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적 있다.

그립은 사물을 집어 날려 대미지를 주거나, 아예 적을 직접 붙잡아 던질 수도 있는 강력한 도구다. 적을 끌어온 다음 근접 공격을 추가하는 식의 연계도 가능하다. 그립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전투의 어려움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대신 ‘배터리’라는 자원을 사용하도록 설정해 남용을 막은 모습이다.

교도소 구석구석 놓인 업그레이드 스테이션에서 무기와 방어구 등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아이템 루팅으로 획득한 ‘칼리스토 크레딧’이 사용된다. 업그레이드 중에는 총기 대미지 등 여러 수치를 강화하는 유형이 많지만 공격 기술을 추가하는 등의 메카닉적인 업그레이드도 존재해 전투에 다양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 느리고 신중하게, 혹은 빠르고 장대하게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데드스페이스>와 비교해 가장 많은 변화가 느껴지는 내러티브 전달 방식이다. 큰 이야기 갈래를 고민 없이 따라가면 되었던 <데드스페이스>와 달리 <칼리스토 프로토콜>에서는 추론과 관찰을 통해 유저 스스로 돌파구를 찾도록 유도한다.

제이콥의 혼잣말, 맵에 숨은 시각적 힌트, 텍스트 및 오디오 로그 등을 참고해 다음 할 일을 알아내는 이런 진행 방식은 고전적인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에 가깝다. 일개 죄수로서 사건의 큰 그림을 알지 못한 채 주먹구구와 임기응변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제이콥의 상황에도 잘 어울려, 탈출 테마의 몰입감도 높인다.

다소 선형적인 게임 전개를 이용한 '함정 카드'도 여러 곳에 마련되어 있다. 문 개방 스위치를 누르는 타이밍에 맞춰 적이 나온다거나, 배경인 줄 알았던 시신이 움직이는 식의 다소 뻔한-그렇지만 거의 항상 먹히는-호러 요소가 틈틈이 배치되어 지루할 새가 없게끔 한다.


한편 이렇듯 내러티브적 퍼즐을 다양하게 준비한 것에 비해, 전반적인 활동은 ▲통로 찾기 ▲이동 ▲전투 ▲퍼즐 ▲통로 찾기의 사이클로 반복되는 것에서 큰 아쉬움이 따른다. 다만 반복성은 전체 게임 분량을 확인하기 전에는 판단을 보류할 문제이기는 하다. 체험 구간에서의 경험과 다른 구간에서의 경험은 판이할 수 있다. 또한, 장소마다의 분위기, 구조, 이벤트 모두 서로 다르게 마련되면서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도 상당 부분 경감된다.

이처럼 신중한 호흡의 플레이에 대조를 이루는 스펙터클한 액션 연출도 함께 준비되어 있다. 체험 막바지에서 하수구를 따라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며 장애물을 피해 생존하는 구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언차티드> 시리즈, <툼 레이더> 시리즈 등 트리플 A 액션 게임에서 꾸준히 답습된 유형의 시퀀스지만, 잘 조성된 분위기와 퀄리티 덕에 그 박진감과 몰입감 모두 남다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