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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사람이 차를 운반하는 생존게임…퍼시픽 드라이브

‘질주’나 ‘자유도’는 부족해도 독창성 넘치는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2-27 18:46:54
‘생존’ 장르는 터전과 먹거리를 확보하는 원초적 콘텐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 만큼 보편적 인기가 있지만 차별화된 테마가 요구된다. 이를 제대로 해내면서 대박을 낸 사례가 <서브노티카>, <발헤임> 등 타이틀이다. 외계 수중탐사, 바이킹 판타지와 같은 매력적 테마를 이용해 생존 메카닉의 단계적 성취감을 극대화하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22일 출시한 <퍼시픽 드라이브>는 생존 문법에 ‘차량’이라는 대중적 요소를 결합하는 신선한 시도다. 생존 게임이 빠른 탈것을 중심 소재로 삼는 경우는 드문 편이고, 그래서 <퍼시픽 드라이브>는 기대를 모았다.

다만 실제로 플레이해 본 <퍼시픽 드라이브>는 다수가 예상했을 전개 방식을 크게 비껴가고 있어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드라이브의 상쾌함이나 생존의 만족감을 대신해 게임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차량을 이끌고 험지를 돌파하는 극기의 체험이다.


게임명: <퍼시픽 드라이브>

장르: 생존, 어드벤처, 드라이빙

개발사/배급사: 아이언우드 스튜디오 / 케플러 인터랙티브

플랫폼: PC(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PS5

가격: 스팀 정가 32,000원

한국어 지원:



# ‘올림픽 반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

<퍼시픽 드라이브>는 미국 워싱턴 주 서쪽의 실존 지명인 올림픽 반도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이다. 인게임 설정에 따르면 올림픽 반도에는 1940년대 후반부터 기상천외한 최첨단 기술들이 집약되었다. 민간에는 그중 일부가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발생시켰다는 소문도 확산한다.

1955년 미국 정부는 반도 일부에 장벽을 세운 뒤 ‘올림픽 통제 구역’을 설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기현상 억제에 실패한 것인지 구역의 경계는 점차 확장되어 나간다. 결국 30여 년 후에 정부는 구역으로 이어지는 접근로를 모두 봉쇄해 버린 뒤, 통제를 포기하고 전격 철수하고 만다.

이후의 어느날, 올림픽 통제 구역 근처를 운전하던 주인공이 미지의 힘에 의해 구역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면서 게임은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근처의 버려진 차를 수리한 주인공은 차량 무전기를 통해 ‘토비아스’와 ‘프랜시스’라는 두 인물과 접촉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주인공을 구역의 터줏대감 ‘오필리아 터너’ 박사에게 연결해 준다.

노령의 터너 박사는 기현상으로 가득 찬 ‘올림픽 통제 구역’의 탄생에 모종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이다. 터너 박사는 무전으로 주인공에게 구역 내에서의 생존법을 가르치는 한편, 주인공을 통해 올림픽 구역 밖으로의 탈출 방법을 찾아낼 계획 또한 세우게 된다.

주인공은 미지의 힘에 의해 통제 구역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 으스스한 초자연 미스터리

게임의 무대는 크게 터너 박사의 정비소와 주행 구역으로 나뉜다. 정비소와 그 인근 지역은 ‘안정적’이어서 형태가 유지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원을 보관하거나, 차량을 정비하거나, 시설물을 건설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한편 나들목(주행 구역)은 물리적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는 ‘불안정’ 상태의 땅이다.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은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일종의 인스턴스 던전 성격을 띤다. 그 안에서 유저는 다양한 ‘이상 현상’과 구조물, 에너지원 등을 만나게 된다.

박사는 주인공을 여러 나들목으로 파견하면서 특정한 목표를 수행하도록 지시한다. 목표는 어떤 물품의 탐색이나 특정 이상 현상의 돌파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통제 구역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박사의 큰그림이다.

다만 박사는 통제 구역이 형성된 원인이나 초자연 현상의 원리, 박사가 지시하는 과업들의 구체적인 목표, 그것을 요구하는 이유 등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저 역시 (적어도 초반에는) 세계관에 대한 뚜렷한 이해 없이 목표를 일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록물, 그리고 ‘토비아스’와 ‘프랜시스’의 잡담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이상 현상’은 일종의 초자연 현상이며, 올림픽 통제 구역 안에서만 통하는 기이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일종의 기계 생명 같은 모습을 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바닥을 가로지르는 톱날, 수 미터씩 솟아오르는 지면, 차량을 끌고 가는 소용돌이 등 그 유형이 다양하다. 전부 위협을 주는 것만은 아니며, 차량을 수리해 주는 등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다.

플레이어는 이상 현상과 구역 곳곳에 깔린 방사능에 대응하여 자원 및 에너지원을 모아 다음 지역으로 향해야 한다. 자원은 차량 부품, 소모품, 개인 장비, 정비소 시설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한편 에너지원은 나들목마다 소량으로 존재하는데, 일정량 이상 모으면 정비소로 순간이동할 수 있다. 남은 에너지는 제작법 획득에 쓰인다.

차를 멋대로 움직여 버리는 이상 현상이 많다.


# ‘드라이빙’ 없는 <퍼시픽 드라이브>

<퍼시픽 드라이브>의 호불호가 갈릴 만한 첫 번째 지점은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운전’이다.

상당수 드라이빙 게임에서 운전은 한 세션에 최소 수 분 단위로 지속되곤 한다. 빠른 속도로 코스를 주파하는 드라이빙 특유의 속도감, 경쾌함을 느끼려면 이 정도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반면 <퍼시픽 드라이브>의 운전은 한 번에 수십 초를 넘기지 못한다. 우선 구역간 이동을 로딩으로 대체하고 있어서 ‘장거리 주행’은 기회 자체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구역별 면적 또한 좁고, 와중에 차를 멈추거나 서행해야 할 이유 또한 무수히 많다. 이상 현상과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험지를 통과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지도에서 다음 목표물을 찾기 위해, 차량을 고치기 위해, 그 외 여러 이유로 유저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게 된다.

여러 이유로 차를 멈추게 된다


# 운전자가 차량을 운반하는 게임

그래서 <퍼시픽 드라이브>의 운전은 ‘질주’가 아닌 ‘운반’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데, 이때 ‘운반’의 대상은 운전자나 화물이 아니라 차량 그 자체다.

설정상 <퍼시픽 드라이브>의 차량은 사실 진짜 차가 아니다. 올림픽 반도의 기현상 ‘렘넌트’의 일종으로서, 우연히 차량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렘넌트에 결속된 인간은 렘넌트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되고 종국에는 정신이 나가버리고 만다. 이 때문에 무전기 너머의 인물들은 주인공을 더욱더 빨리 안전지대로 안내해 렘넌트로부터 해방하고자 한다.

이런 설정에 어울리게도, <퍼시픽 드라이브>는 차량을 ‘모시는’ 형태로 플레이된다. 차량은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부위별 대미지를 입으며, 이것은 기능 고장이나 방호력 상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장 수리’도 가능하지만 시간이나 자원이 많이 들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 결국 안전 운전을 통해 큰 고장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유저는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A에서 B로 차량을 ‘운반’하는 형국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차량을 이용한 생존’이 아닌, ‘차량의 생존’이 핵심 콘텐츠인 셈이다.

제작진이 게임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가 ‘인간과 도구의 주객전도’라면 손뼉을 칠 만큼 어울리는 구조다. ‘첨단 기술에 의해 통제 불능이 된 미지의 지역’, ‘인간을 홀려 제정신을 유지 못 하게 하는 사물’ 등을 소재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로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시간 관계상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차량은 계속 고쳐드려야 한다


# 리얼하고 피곤한 차량 관리

이처럼 게임은 유저와 차량의 관계를 가능한 한 디테일하고 다층적으로 묘사하는 데 애쓰고 있다.

먼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와 유사하게 유저는 차량의 내부 컨트롤을 일일이 조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차량을 세울 땐 감속 뒤 변속기를 ‘주차’에 두고 시동을 직접 꺼야 한다. 비가 오면 직접 와이퍼를 작동시켜야 하며, 전조등을 깜빡하고 켜 둔 채 내리면 차량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다.

‘ARC 장치’라고 불리는 조수석의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이런 감성을 자극한다. 지도가 운전자의 HUD에 직접 뜨지 않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자주 확인해 가며 주행해야만 한다. 다만 ARC 장치에서 설정한 웨이포인트만큼은 HUD 상에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나름의 편의를 도모할 수는 있다.

차량의 고장 유형은 기본적인 내구성 하락 외에도 펑크, 헐거움, 파손 등으로 다양하며 각각은 실제 주행에 유의미하고 현실적인 영향을 준다. 수리에 필요한 도구와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차량이 특정 상황에서 원인 불명의 기이한 오작동을 일으키는-후진할 때마다 후드가 열리고, 변속기를 ‘주차’에 두면 오른쪽 앞문이 열리는 등의-차주들의 악몽과 같은 상황까지 구현해 몰입감을 한층 더 키운다.

사소한 충격에도(때로는 별 충격이 없이도) 계기판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고물차를 그럴듯한 성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은, 그런 면에서 큰 만족감을 준다. 점차 내구성, 출력, 적재량 등을 강화하면서 차량은 더욱더 많은 상황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다만 주변 환경도 점차 거칠어지기 때문에 고생의 농도는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되도록 리얼한 조작을 추구한다


# 생존 팬과 레이싱 팬을 위한 결론

기술적 한계 때문인지, 혹은 주제 의식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퍼시픽 드라이브>는 ‘운전 게임’에서 흔히 기대하는 속도감과 경쾌함을 희생하고 차량의 관리와 운영에 집중하는 특이한 접근을 보여주는 생존 게임이다.

위험하고 불가사의한 세계를 차량 하나에 의지해 돌파하는 경험은 분명 유니크하다. 스산한 환경 묘사, 기묘한 ‘이상 현상’ 연출, 궁금증을 유발하는 스토리라인은 그런 몰입을 훌륭히 보조한다. 물리 시스템은 유저를 온갖 상황에 몰입시키고 남을 만큼 충실하게 구현됐다.

자칫 복잡해지기 쉬운 정비·운전 메커니즘을 직관성 높은 UI로 풀어낸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메커니즘과 스토리 양면에서 느껴지는 ‘주도성’의 결여는 이 게임을 누구에게나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건에 휘말려, 알지 못하는 인물들에 의해, 알지 못하는 목표를 위해, 일방적 지시에 따라, 온갖 과제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극도의 단방향성은 실제 유저들의 경험과도 많은 부분 일치한다.

유저에게 무수한 업그레이드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구역별 방문 순서나 구역 내에서의 탐사 루트 등은 얼마든지 자의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허락되는 자유도는 그 정도에 그칠 뿐, 결국 유저는 깔린 노선을 따라 좁은 폭 안에서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유니크하고 기묘한 생존기를 체험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접근법이 남다를 뿐이다.

이러한 기획은 생존 장르 전반이 표방하고 있는 주도적이고 분방한 재미와는 특히 정면으로 배치되는 종류다. 그러한 기대를 안고 진입한 장르 팬이라면 당황이나 실망을 갖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 드라이빙(레이싱) 게임 팬들이 추구하는 보편적 재미에도 별로 부합하지 못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덮쳐 오는 이상 현상들을 비집고 돌파구를 찾게 되는 일부 상황에서는 유사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탁월한 조작감이 종종 아깝게 느껴질 만큼 정적인 타이틀이다.

지난 2012년 게임잼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FPS <리시버>는 사격보다는 총기의 조작 자체에 집중한 독창적 기획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또한 일반적 FPS를 기대했던 유저에게는 당황을 안길 만했지만, 워낙 정체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실제 유저의 오해를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퍼시픽 드라이브>는 제목과 기획에서 풍기는 인상이 실제 게임과 다소 일치하지 않는 탓에 구매 전 주의가 꼭 필요한 타이틀이다. <퍼시픽 드라이브>는 차량의 ‘질주’보다는 ‘운행 및 관리’에 중점을 둔, 스토리 위주의 자유도 낮은 생존 게임이란 점을 알아두도록 하자.

다른 데서 보기 힘든 분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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