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XCOM: Enemy Unknown, 이하 엑스컴)은 93년에 발매된 고전명작 <엑스컴: UFO 디펜스>(X-COM: UFO Defense)를 리메이크한 게임입니다. 유럽에서 사용했던 부제인 ‘에너미 언노운(Enemy Unknown)’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원작을 계승했다는 점을 강조했죠.
과거 <엑스컴> 시리즈는 턴 방식을 기반으로 한 심오한 전투와 그 전투 후에 얻는 외계인 시체 등을 해부, 연구해서 새로운 장비를 얻는 등 파격적인 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요, <문명> 시리즈를 개발한 파이락시스가 리메이크한 <엑스컴>은 어떤 게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nodkane
■ 간단하지만 심오한 턴 방식 전투
<엑스컴>에서는 유저가 직접 지구 방위군이라 할 수 있는 단체인 XCOM(이하 엑스컴)의 지휘관이 되어 이 단체가 벌이는 활동을 직접 제어합니다.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인을 막아내고, 최종적으로 외계인 지휘관을 격퇴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엑스컴>의 게임 플레이는 크게 ‘전투’와 ‘연구’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중 ‘전투’는 턴 기반입니다. 턴 방식 전투는 쉽게 말해서 플레이어의 턴이 진행되는 동안 엑스컴 대원들이 이동이나 공격 행동을 하고, 다시 외계인의 턴이 진행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전투는 엑스컴 대원이 이동을 하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적을 발견하면 공격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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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엄폐 상황에 따라서 공격 성공 확률이 결정됩니다.
적이 시야에 나타날 때까지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장 화면에 외계인이 없다고 해도 무작정 달리며 탐색할 수 없습니다. 엄폐물을 활용해 조금씩 주변의 상황을 살피면서 신중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대원을 보게 되거든요.
당장 적을 만나도 그냥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대원마다 두 개의 행동 포인트가 있고, 이 포인트를 사용해 공격할지, 이동할지는 유저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최대 두 번의 행동을 할 수 있어서 더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고 다음에 공격할지, 아니면 그냥 공격을 감행할지, 수류탄을 던질지, 다른 아이템을 사용할지 결정해야 하죠.
이러한 ‘선택’을 한 다음, 바로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턴 방식을 사용한 게임의 매력입니다. 적을 마주치고, 교전하는 순간마다 유저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다음 외계인 턴에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경계 명령을 내린 상태에서는 시야에 지나가는 적이 발견되면 자동으로 사격을 합니다.
잘 이용하면 외계인 턴에서도 상대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전투를 진행하는 맵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건물 내, 시가지, 우주선 안, 숲 등의 배경이 있는데요, 종류에 따라서 엄폐할 수 있는 곳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동일한 맵이 반복해서 나오는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외계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처음에는 전형적인(?) 외계인 생김새를 하고 있는 ‘섹토이드’만 나오는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새로운 종류의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성향이나 능력을 가진 녀석인지 알 수 없고, 직접 상대한 뒤 시체나 포로를 연구해야 비로소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모 연예인을 닮은 느낌이 드는 씬맨은 높은 곳을 점프하거나 독을 이용해 공격합니다.
외계인들은 각자의 특징이 있어서 다른 형태의 전략을 짜야 합니다. ‘플로터’는 공중에 떠 있는 외계인인데, 공중에 있을 때에는 엑스컴 대원들의 명중률이 낮아지고 맵의 어디든 한 번에 이동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크리살리드’는 한 번에 멀리 이동할 수 있고 강력한 근접공격을 합니다.
임무를 시작하고 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떤 외계인과 만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짜고 대응해야 합니다. 처음 나오는 외계인을 상대할 때는 외계인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더욱 긴장감이 넘칩니다.
한편, 이렇게 전투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대원들은 진급을 하게 되는데, 각자 병과에 맞는 스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급을 할 때 두 개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선택한 스킬에 따라 대원들의 전투 패턴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중화기병은 대위가 되면 수류탄 휴대 수량 증가와 로켓 대미지 범위 증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자신의 성향이나 자주 사용하는 전략에 맞춰서 고르면 됩니다. 대원을 어떻게 육성했는지, 어떤 대원들을 조합했는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의 폭도 다양해집니다.
잘 키운 병사는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키운 병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는 살려낼 수 없습니다. 죽으면 그 병사는 추모비에 등록돼 그 활약을 기리는 것으로 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긴장은 극에 달하고 한 턴, 한 턴 신중하게 움직이게 되죠.
물론 세이브 기능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유저는 한 턴이 끝날 때마다 저장하면 보다 쉽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만, 번거롭고 재미도 반감되죠. 진정한 스릴을 느끼는 유저라면 처음 시작할 때 어려운 난이도와 함께 ‘철인 모드’를 활성화하면 됩니다. 자동으로 저장되고 대원이 죽으면 저장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매 순간 긴장감이 넘칩니다.
아아… 그는 좋은 대령이였습니다….
■ 다소 밋밋해서 아쉬운 외계인 연구
이렇게 치열한 전투가 끝나면 전투를 어떻게 진행했느냐에 따라 외계인의 시체나 외계인 포로, 무기 파편 등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이용해서 기지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죠. 외계인을 해부하거나 파괴된 장비를 연구해서 더 강한 무기, 더 좋은 갑옷을 만드는 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장비뿐만 아니라 외계인이 상공에 나타났을 때 요격할 수 있는 전투기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연구를 완료하면 요격기 전투 상황 화면에서 조준하거나 회피하는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활용되는 재료는 전투를 어떻게 진행했는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양이나 종류가 달라집니다. 외계인을 생포할 수 있는 ‘아크 방사기’는 외계인에게 붙을수록 기절시켜 생포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갑니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살아있는 외계인 앞에서 턴이 종료되죠. 과연 다음 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외계인을 생포하면 시체를 해부할 때 보다 더 가치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구도 전투의 전략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얻은 재료들은 회색 시장에 판매할 수 있어서 자금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초반에는 다소 생소한 턴 방식 전투와 빈약한 장비로 전투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전투에 익숙해지고 연구를 통해서 나오는 장비를 장착하고 싸우면 난이도가 많이 하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유저의 숙련도와 편차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게임은 쉬워지는 편입니다.
연구의 진행도 예약을 걸어두면 시간이 흘러서 완성되는 형태인데, 연구 부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생기더군요. 그저 과정 없이 결과만 받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요, 외계인을 직접 해부를 한다거나 파괴된 장비를 조립하는 등의 미니게임 형태가 들어갔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 간단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기지 관리
지구 방위군이라 할 수 있는 단체인 엑스컴의 기지는 지하에 자리 잡고 있고, 마치 개미집처럼 땅굴을 파서 필요한 시설을 건설하는 방식입니다. 각 시설 부분을 확대해 보면 마치 일하는 개미들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사로잡힌 외계인을 관찰하는 연구원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건물들을 지을 때는 시설의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요, 시설들은 연관되는 건물이나 같은 건물을 일렬로 배치해서 지으면 시설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발전기를 서로 붙여 지으면 전기가 더 많이 생산되는 보너스를 주는 식입니다.
<엑스컴>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상황실에서는 세계 각 지역이 외계인의 위협을 느끼는 척도인 ‘패닉’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각 국가들은 엑스컴에 지원금을 보내고 보호를 받는 일종의 투자를 하는데요, 자신들의 국가를 관리해주지 않으면 엑스컴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고 결과적으로 들어오는 지원금도 줄어들게 됩니다. 많은 국가가 탈퇴하게 되면 게임은 외계인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니 각 국가의 위협 수준을 항상 잘 관리해주어야 합니다.
패닉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위성을 띄워서 외계인의 활동을 감시하고, 동시에 납치나 민간인 구조 등의 주요 이벤트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주면 됩니다.
가끔 높으신 분들이 직통으로 미션을 제시하곤 합니다.
이들이 주는 과제를 해결하면 패닉 수준을 효과적으로 낮춰줄 수 있습니다.
납치 이벤트는 세 개의 국가가 동시에 발생하게 되고 유저는 그중 하나만 골라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는 연구에 필요한 연구원과 장비를 만들 때 필요한 기술자, 아니면 돈을 보상으로 주는데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움과 동시에 국가 패닉의 수치도 고려해서 미션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 받지 못한 곳은 패닉의 수준이 올라가서 엑스컴 프로젝트를 탈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외계인이 좋아하는 민간인 납치 이벤트. 저들도 외계인 고문 같은 걸 좋아하나 봅니다.
■ 대전 형태의 멀티플레이
이 게임은 대전 형태의 멀티플레이를 지원합니다. 정해진 포인트 안에서 자신만의 부대를 짜고 상대와 싸우는 방식인데요, 아무 장비도 장착하지 않은 병사는 포인트는 적지만 갑옷, 무기, 능력을 많이 장착한 병사는 포인트가 높습니다.
포인트에 따라서 만능인 병사 한두 명을 데리고 갈 수도, 조합이 적절한 다섯 명을 데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싱글플레이에서 진행했던 자신만의 전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적절한 포인트 관리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흥미롭게도 멀티플레이에서는 인간과 외계인을 섞어서 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싱글플레이를 하는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외계인을 조종하면서 공격하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한 턴마다의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데 시간을 짧게 설정 할수록 긴박한 턴 방식 전투의 묘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간 제한이 있는 장기나 체스처럼 빠른 판단력과 손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손이 느린 사람은 대원의 수가 적은 부대를 운용하는 것도 하나의 요령입니다.
제일 짧은 45초로 설정하면 그야말로 정신없는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조종하는 외계인에게 죽는 것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지요.
현재 멀티플레이는 대전 형태 하나만 있어서 다양성이 아쉽지만, 사실 턴 방식 게임에 최적화된 멀티플레이가 대전인 것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상상한 유저들에게는 일종의 허탈감으로 남을 수도 있겠습니다.
■ 쉽게 잘 만든 턴 방식 게임, 하지만 깊이가 아쉽다
<엑스컴>은 <문명> 시리즈를 개발한 파이락시스에서 만들어서인지 다소 마니아 성격이 강한 턴 방식 게임을 쉽고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선택이 중요한 턴 방식 게임의 묘미를 잘 살려서 전투 중에도, 기지 관리에서도 선택이 요구됩니다.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원작에 비해서 간략해졌지만 순간적인 선택을 중요하게 만들어 놔서 ‘역시 <문명>의 개발사’라는 감탄이 나옵니다.
리메이크이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작과의 비교인데요, 전체적으로 깊이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평가들이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줄었고, 싱글플레이의 볼륨도 작을뿐더러 클리어해도 나오는 것은 더 어려운 난이도, 더 어려운 적뿐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앞으로 나올 다운로드 콘텐츠(DLC)에서는 원작에 있던 적 기지로 쳐들어가는 등의 요소나 더 많은 연구 같은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