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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생존이란 무엇인가? 툼 레이더 리부트

정우철(음마교주) 2013-03-20 13:03:22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리부트입니다. 잘못된, 혹은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의미가 변해버린, 또는 시작과 끝이 달라지면서 아예 처음을 다시 그리는 것이죠.

 

영화를 예로 들어보면 <배트맨 비긴즈> <엑스맨 퍼스트클래스>을 비롯해 슈퍼맨의 이야기인 <맨 오브 스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게임 <툼 레이더> 역시 그동안 수많은 시리즈가 나왔음에도 최신작에 넘버링을 붙이지 않고 단순한 게임명을 사용한 이유는 리부트이기 때문입니다.

 

탄생의 기원을 아예 재정립하는 리부트의 특성상 지금까지 즐겨왔던 <툼 레이더> 시리즈와 우리가 보고 익히 알고 있던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가 아닌 20살의 아직 어린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즉 이 게임의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은 <툼 레이더>를 백지에서부터 다시 그린다고 볼 수 있죠.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처음을 알리는 감정의 변화와 여전사의 탄생

 

대부분 리부트 콘셉의 영화나 게임을 보면 캐릭터 탄생의 기원이 등장합니다. 다만 전설이나 만화 같은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보다는 더욱 현실적인 인과관계가 연속되면서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감정이 변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천재적이지만 아직 세상을 잘 모르던 20살의 라라 크로프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쌍권총을 들고 아크로바틱하게 적들을 무관심하게 사살하고, 또 괴물 같은 적들을 아무런 공포심 없이 대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라라 크로프트의 트레이드마크인 쌍권총은 무기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작하면 상처입은 라라 크로프트와 죽음의 공포만 있습니다.

 

살기위해서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라라에게서 이질감을 느낌니다.

 

 

배가 난파당해서 외딴 섬에 표류하고, 자신의 목숨을 잃을뻔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느끼는 점은 그녀도 역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생존을 위해서 사슴을 사냥할 때 자신의 목숨을 위해 다른 생명을 앗아가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던 가냘픈 소녀의 모습입니다.

 

수동적인 모습에서 점차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볼거리입니다. 라라 크로프트는 처음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녀 혼자가 아닌 정신적인 지주이자 스승인 로스라는 캐릭터 때문이죠.

 

 하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친 몸을 이끌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높은 철탑에 오릅니다. 심지어 이런 대사도 내뱉죠. “내가 왜 지금 여기서 이걸 하고 있지?”라고요.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첫 살인을 하게 되면서 여전사로의 각성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한마디로 처절합니다. 끝없는 시련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만 하는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아프다라는 감정입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 상처입고 아픔을 느끼는 장면은 플레이어에게도 전달됩니다.

 

 

■ 모험이 아닌 생존을 선택한 <툼 레이더>

 

저에게 <툼 레이더>의 기억은 1996년부터 시작합니다. 난이도 높은 조작과 퍼즐. 사실적인 3D 그래픽과 이를 활용한 배경. 그리고 시원시원한 액션은 말 그대로 액션 어드벤쳐장르의 한 획을 그은 게임입니다.

 

게임명에서 알 수 있듯, 라라 크로프트는 완벽한 장비와 몸을 이용해 전설 속의 무덤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도굴꾼이었습니다. 게임의 콘셉트 역시 모험이 치중했죠. 영화배우인 스티븐 시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는 단 한 대도 맞지 않습니다. 딱 한 번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온 것이 이슈가 될 정도였죠.

 

<툼 레이더: 언더월드>처럼 쌍권총으로 당당히 공룡과 맞서는 라라는 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툼 레이더> 시리즈가 그랬습니다. <툼 레이더: 마지막 계시록>에서 뜬금없이 죽더니만, 6번째 시리즈였던 <툼 레이더: 어둠의 천사>에서는 뜬금없이 다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개연성은 사라지고 캐릭터의 개성도 죽어갔습니다.

 

리부트를 한 이유, 누군가 죽여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툼레이더>는 모험을 빼고 그 자리에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생존이라는 콘셉트를 넣었습니다. 제작진은 라라 크로프트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던져주고, 플레이어는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라라 크로프트가 전사로 탈바꿈하게 된 결정적 계기. 바로 문제의 장면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어린 소녀를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의 시련 과정을 통해서 라라 크로프트는 성장을 합니다. 스승으로부터 배워왔지만 한 번도 써먹지 않았던 다양한 서바이벌 스킬을 목숨을 걸고 처음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모험이 사라진 자리를 생존이 채워 넣고, 모자람을 탐험이라는 요소로 메우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덕분에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긴장감은 유지됩니다. 순간의 실수가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의 순간도 너무나 리얼한 만큼 스스로 죽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모험은 사라지고, 생존과 탐험의 요소가 채워집니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말이죠.

 

 

■ 성장과 정체성의 확립 그리고 게임의 시스템

 

이 과정은 게임의 시스템으로도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생존, 사냥꾼 스킬과 장비의 업그레이드로 구분되는 성장 시스템은 경험치를 통해서 이어집니다. 즉 얼마나 잘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통해서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입니다.

 

생존과 전투 중 어떤 스킬을 먼저 성장시킬 것인가 여부에 따라서 게임의 진행방식이 달라집니다. 또한 어떤 장비를 업그레이드 시킬지도 생존 방식과 직결됩니다. 다만, 어떻게 성장을 시켜도 결국 라라 크로프트가 여전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장을 계속하면서 어느덧 겉 모습에서도 연약함을 버리고 강인함을 느끼게 됩니다.

 

 

스토리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라라는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초반 상처 입고 목숨의 위협을 받던 모습에서 오히려 적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적들의 대사도 라라를 잡기 위해 위협하던 것에서 그녀를 두려워하고 피하는 말을 하게 되죠.

 

이때부터 라라의 목적은 생존에서 동료를 구하고, 또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표정도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점차 결연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라라의 리부트는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한 차례 암시됐던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쌍권총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전사의 탄생을 마무리하죠. 번데기에서 변태를 마치고 완전한 성장을 끝냈음을 의미합니다. 모험의 끝인 보물을 찾는 것이 아닌, 생존의 끝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합니다.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표정. 이 장면이 뜻하는 바는 '리부트'입니다.

 

 

■ 또 다른 <툼 레이더>의 탄생과 그 이후

 

게임의 전반적인 연출은 새롭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언차티드>에서 볼 수 있었던 액션과 시네마틱 연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시스템적인 부분은 <배트맨 아캄어사일럼>과 비슷하고요. 즉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툼 레이더>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느껴집니다. 기존 <툼 레이더>의 모험과 액션, 머리아픈 퍼즐이 아닌, 스토리를 기막힌 연계장치로 풀어나간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더 대중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퍼즐 앞에는 힌트가 눈에 보입니다. 활이 필요하면 화살을 얻을 수 있는 식으로 말입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액션도 마찬가지입니다. 뛸 수 있겠다 싶으면 뛰면 되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싶으면 들어가면 됩니다.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퍼즐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생존과 직결되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플레이 시간은 짧은 편입니다. 대략 10시간 내외면 엔딩을 볼 수 있고,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는 전투도 없습니다.

 

보통이라면 짧은 플레이타임을 아쉽게 생각하겠지만, 계속된 긴장감을 짧은 플레이타임에 계속 이어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짜릿하게 느껴집니다. 리부트의 특징상 라라의 액션보다는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성장이 중심이 되었으니까요.

 

 그녀의 성장이 끝날때까지 쌍권총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 한자루의 권총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몇 있습니다. 굳이 라라 크로프트를 탄생시키는데 일본의 외딴섬과 신화를 차용했어야 할까라는 것이죠. 스퀘어에닉스가 일본회사라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더욱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쨌든 <툼 레이더>는 라라 크로프트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시리즈를 시작하는 원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라는 점에서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게임이라는 콘텐츠라는 점에서는 멀티플레이 등 단점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툼 레이더>가 기존 시리즈의 리부트였고, 그 목적을 120%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게임을 즐길 이유는 충분합니다. 보다 젊어지고, 예쁘게 변신한 라라 크로프트를 보는 것은 보너스입니다.

 

'생존' <툼 레이더> 리부트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전사가 아닌 생존자의 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