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무수한 네온 사인이 밤거리를 밝히고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던 호황기의 일본.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던 유흥가에서 활동하는 두 청년이 있습니다. 싸움 실력은 좋지만 요령이 없어 도쿄의 유흥가 카무로쵸에서 빚 수금이나 하는 우직한 야쿠자, 키류 카즈마 20세.
이에 반해 탁월한 수완으로 오사카의 유흥가 쇼텐보리에서 캬바레를 운영하며 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그러나 실상은 조직의 감시 속에 갇혀있는 전 야쿠자, 마지마 고로 24세.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전혀 달라보이는 이 두 건달(고쿠도)이 돈과 욕망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게임, 바로 <용과 같이 0: 약속의 장소(龍が如く0 誓いの場所)> 입니다.
이 게임은 용과 같이 시리즈의 10주년 작품으로, 2005년 PS2로 발매된 시리즈 첫 작품 <용과 같이>의 프리퀄입니다. 일본 유흥가를 배경으로 거친 폭력과 캬바레, 도박과 같은 남자의 로망을 집대성, 여기에 건달들의 의리와 복수극을 잘 버무려 일본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SEGA의 간판 시리즈죠. 1편의 내용은 2007년 B급 향기가 강한 실사 영화로 나오기도 했었고, 국내에도 <용이 간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정식 넘버링으로는 2012년 <용과 같이 5: 꿈, 이루는자>까지 나왔는데, 이 외에도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용과 같이 OF THE END>이라든지, 시리즈 인물들을 막부 말의 역사적 인물에 대입시킨 <용과 같이 유신> 등 괴상한 외전들도 내왔습니다. 국내에서도 계속 발매 되었고 팬층도 어느 정도 있지만,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 탓인지 아직까지 한국어로 출시된 적은 없고 대신 꾸준히 대사집을 내주고 있습니다.
오사카 쇼텐보리에서 캬바레를 운영하던 마지마 고로(아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주인공, ‘도지마의 용’ 키류 카즈마입니다. 야쿠자이면서도 강한 정의감과 의리를 갖고 여러 조직들의 음모 속에서 살아남아 전설의 야쿠자로 거듭나는 인물이죠. 그리고 키류의 적과 동지로써 시리즈 전체에 출연, 난폭하면서도 코믹하고 따뜻한 일면으로 인기가 높은 ‘시마노의 광견’이 이번에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마지마 고로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인물 두 명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이 <용과같이 제로>에서는 기존 시리즈나 스토리를 모른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제한된 자유도를 다양한 즐길거리로 메운 액션 어드벤처
먼저 공격받지 않는 이상 싸울 수 없도록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아래)
게임의 기본 방식은 근접전투를 기반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로, 메인 퀘스트를 따라 스토리를 진행하면서도 도중에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이드 퀘스트나 다양한 미니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롭게 라는 개념이 <GTA>처럼 오픈월드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데, 건달은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주인공들의 신념이 담긴 것인지 NPC에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못합니다.
대신 무작위로 등장하는 건달이나 폭주족, 검은 양복 아저씨들이 거슬린다는 등의 이유로 주인공을 공격하죠. 여기에 NPC 어깨를 너무 치고 가거나 술에 취하면 공격 당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등의 요소는 있지만, 돌아다닐 거리도 좁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액션 어드벤처들에 비해 좀 시스템이 낡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직접 플레이 해보면 이런 답답함은, 거리 안에 빼곡히 들어있는 사이드 퀘스트와 즐길거리 덕분에 느낄 겨를도 없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NPC들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클로즈업 되는데, 이들에게 말을 걸면 사이드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이드 퀘스트 방식은 전투, 물건이나 사람찾기, 올바른 선택지 고르기 등으로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 소재가 사이비 종교에서 딸 구하기, 소매치기 당한 게임 한정판 돌려받기, SM클럽 여왕의 말투 고치기 등, 작품 배경에 맞춰 현실감 있으면서도 특이한 소재들로 계속 흥미를 끕니다. 애니메이션 “은혼”의 해결사 에피소드들 같다고 하면 좀 감이 올까요?
여기에 유흥가 거리를 배경으로 한만큼, 낚시, 스포츠, 도박부터 시작해서 80년대 오락실 게임, 디스코, 가라오케, 유흥업소까지 정말 다양한 즐길거리가 존재합니다. 다 합치면 20가지는 넘을 텐데, 그 각자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퀄리티를 갖고 있습니다.
리듬게임으로 구현한 디스코만 봐도, 하츠네 미쿠의 SEGA답게 버튼 액션에 스텝을 통한 추가 득점을 넣어 기존 리듬게임과는 다른 감각으로 즐길 수도 있게 해놓았고요.
미녀들이 섹시한 복장으로 싸우는 캣파이트에서 배팅을 할 수도 있다(아래)
특히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요소라면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밤문화인데, 실제 AV배우를 활용하여 본격적으로 구현해놓았습니다. 이들은 비디오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짧은 그라비아 영상이나, 섹시 화보가 출력된 전화카드로 등장하여 수집욕을 불태우고, 일부는 3D 캐릭터로써 게임 내 호스티스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캣파이트라는 섹시한 복장의 미녀들의 싸움을 구경하며 배팅하는 시스템도 있는데, 이 역시 상당히 공을 들인 컷씬과 미니게임 요소를 결합하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직접 캬바클럽을 운영하며 호구들 등골을 빼먹을 수 있다(아래)
여기에 야쿠자라는 소재답게 독특한 돈벌이 시스템도 포함시켰습니다. 키류는 ‘카무로쵸 머니 아일랜드’에서 가게를 사서 관리하면서 수금하여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마지마는 ‘쇼텐보리 물장사 아일랜드’에서 캬바클럽을 운영하며 팬을 늘리면서 캬바클럽 영향력을 넓히면서 돈을 법니다. 둘 다 경영이라기보다 단순한 미니게임 수준이지만, 워낙 특이한 경험이다 보니 점차 늘어나는 자신의 영향력을 보고 뿌듯해하면서 계속 건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서브퀘스트로 인연 포인트를 높인 캐릭터들은 이 돈벌이 시스템의 조력자로 고용할 수 있어서 서로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에, 결국 스토리 진행을 등한시하고 서브퀘스트와 미니게임에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리뷰 사진의 절반 가까이를 여기에 쏟을 정도로 말이죠.
시대상을 반영한 밀도 있는 스토리
이 시리즈를 즐기는 많은 분들이 메인 퀘스트는 접어두고 옆길로 새게 되지만, 메인 스토리도 결코 허술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 이렇게 컷신이 긴 게임은 간만일 정도로 메인 스토리 진행과 연출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게임 전반에 198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잘 반영하였고 덕분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은 그전까지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외화가 엔화의 평가절상을 통해 막대한 자금으로 전환되고, 동시에 저금리 정책으로 시장내부에 자금이 포화상태에 이르던 때입니다. 투자대상을 못 찾은 엄청난 수의 유동성 자금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으로 향하고, 이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에 거품이 끼면서 급격하게 가치가 상승, 그리고 그 늘어난 자산가치로 내부 소비가 급증한 시대, 바로 ‘버블경제’로 잘 알려진 시기이죠.
실제 배우들을 스캔하여 표현한 인상적인 연기가(아래) 스토리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스토리 전반에서도 이런 시대에 맞추어 ‘한 평의 땅’이라는 부동산을 둘러싼 야쿠자들의 음모, 권모술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흔한 조폭물처럼 의리와 복수의 단면적인 전개에 갇히기지 않고, 작은 사건이 이해관계에 따라 복수의 조직이 얽히면서 점차 커져나가는 밀도 있는 전개를 택하였습니다.
그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또 여러 반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스토리 진행이 꽤 흥미진진합니다. 여기에 다른 그래픽은 포기하더라도 얼굴 표정만큼은 착실하게 실제 배우들의 얼굴을 스캔해서 게임 내에 세밀하게 담아내었고, 야쿠자 특유의 과격한 연출이 아우러져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를 확 높여줍니다.
여기에 삐삐 숫자로 메시지를 전하는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있다(아래)
그 시대적인 모습은 게임 내 배경에도 잘 스며들어 있는데, 주요 활동무대인 도쿄의 카무로쵸와 오사카의 쇼텐보리는 각각 현실의 카부키쵸와 도톤보리를 모델로 한 거리로, 화려한 네온 사인, 호객 행위에 유명 가게들까지 재현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무전기만한 휴대폰이라든지 삐삐의 숫자로 메세지를 전달한다든지 우리네의 옛 모습과 겹치는 면도 있어 일종의 향수도 불러 일으키고요.
시스템도 황금 만능주의에 맞춘 것인지 게임 내에 경험치 시스템을 없애고 대신 성장 요소부터 아이템까지 모두 돈으로 해결이 되도록 하였는데, 덕분에 돈의 수급이 잘 되어 미니 게임을 즐길 때 제약이 많이 줄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손맛이 있는 전투방식
브레이크 댄스를 통해 공격하는 마지마의 ‘댄서’ 스타일(아래)
여기에 폭력적인 전투 시스템으로 게임에 자극적인 맛을 더합니다. 기본 조작은 □ 약공격에 △ 강공격을 섞어서 콤보를 구성하고, X로 회피, L1으로 가드라는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각 캐릭터마다 3가지 특화된 공격스타일이 존재합니다.
키류의 경우에는 속도와 위력 밸런스가 있는 ‘양아치’, 속도는 느리지만 주변의 물건을 마구 집어 공격하는 파워형 ‘파괴자’, 위력은 약하지만 연타와 회피에 특화된 복싱 스타일의 ‘러시’가 있고, 마지마의 경우에는 뒤잡기에 특화된 ‘싸움꾼’, 무기를 든 공격에 특화된 ‘슬러거’, 카포에라로 자유로운 자세 변형이 가능한 ‘댄서’가 있습니다.
이들 세 가지 공격스타일은 지정된 방향키를 눌러 전투 중 태세변환과 같이 사용할 수 있고, 각 스타일마다 투자한 능력치에 따라 각각 다른 스킬 및 콤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타일마다 장단점이 뚜렷하여 적의 공격 패턴에 맞추어 스타일을 변형해가며 싸우는, 전략적인 요소로 작용하죠.
이 게임은 연출 덕분인지 더 잔인해 보인다(아래)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특정 조건에서 기어 게이지를 소모하여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액션. 적이 쓰러져 있으면 발로 차버리고, 벽 근처에 있으면 벽에 찍어버리고, 물건을 들고 있으면 그 물건으로 날려버린다는 등의 특수 액션을 취할 수 있는데, 이 연출과 타격감이 정말......아주 사람을 죽일 기세로 사정없이 날려버리는데, 여기에 효과음에 패드의 진동까지 더해지니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비슷하게 길거리 전투를 메인 컨텐츠로 삼았던 액션 어드벤처로 <슬리핑 독스>가 있지만, 폭력성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렬합니다. 웃긴 것은 이렇게 때려도 상대방이 죽지 않는다는 점인데, 뭐 칼로 베거나 산탄총을 쏴도 마찬가지이니 그냥 일본 미디어 전반에 깔린 터부의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하겠네요
PS VITA 연동과 멀티 요소
무료 어플을 통해 VITA에 데이터를 연동하여 미니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아래)
이런 게임 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에도 충분히 신경을 썼는데, 휴대용 게임기인 PS VITA와 다양한 연동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PS4 리모트 컨트롤을 지원하여 스트리밍으로 PS VITA로도 본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료 어플을 통해 PS VITA에서 데이터를 연동하면 마작이나 화투, 투기장 등 미니게임으로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단, 어플에 포함된 미니게임들이 많다보니 무료 어플 자체가 3.4GB 정도로 PS VITA용 소프트웨어 치고는 용량이 큰 편이라 좀 부담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본 게임 세이브 데이터가 없어도 미니게임과 전투 시스템이 포함된 투기장까지 PS VITA로 따로 즐길 수 있기에, 일종의 체험판처럼 미리 게임을 해보는 용도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본 게임에 궁극투기라는 별도의 챌린지 모드도 존재하고, 로컬이나 네트워크 멀티로 볼링, 당구, 디스코, 마작, 포커 등 미니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단, 멀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있으나 마나 지만요.
총평
노래 하나에도 아주 전력을 다하는 병맛 같은 설정들이 단점을 잘 보완해준다(아래)
<용과 같이 제로: 약속의 장소>라는 게임은 1980년대 일본의 유흥가를 게임 속에 녹여내면서 현실감 있는 소재로, 두 건달이 야쿠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잘 표현한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최근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발전에 비해, 텍스트 진행이 많고 컷씬이 긴 것, 게임 내의 자유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좀 답답하고 옛날게임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를 게임 안에 가득 메운 다양한 즐길거리를 통해서 해소해줍니다.
특히나 폭력과 밤문화라는 소재로 짜릿한 자극을 주면서도, 중간중간에 터져 나오는 B급 센스로 이를 중화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전략적인 세 가지 스타일의 전투방식이나, PS VITA와의 연동 등 외적 요소도 꼼꼼히 챙긴 수작인데, <GTA>처럼 악당을 주인공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야쿠자 세계에 권선징악을 도입하고 있기에 야쿠자 미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작품입니다.
이런 소재에서 갈리는 취향 외에도, 많은 한자와 은어 덕분에 일본어가 익숙한 사람도 제대로 진행하기 힘든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장벽만 넘어설 수 있다면, 이 <용과 같이 제로>는 기존의 액션 어드벤처들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이고, 어느덧 미니게임에 빠져 50시간 이상 플레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