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터틀에서 개발한 모바일게임 <내꿈은 정규직>이 화제다. <내꿈은 정규직>은 한국의 청년 구직 시장을 주제로 한 <살아남아라! 개복치> 류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은 온갖 황당한 ‘권고사직’과 깨알 같은 현실 풍자로 SNS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면 첫 면접에서 주인공이 하는 ‘순진한’ 생각이나 땅콩 회항 패러디 등 온갖 블랙유머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이 게임의 백미는 이러한 블랙유머들 가운데 은근히 숨어있는 냉혹한 현실 묘사였다. <내꿈을 정규직>을 하며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상’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한국 취업 시장과 개복치류 게임의 그럴싸한 만남
<내꿈은 정규직>은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살아남아라! 개복치>와 유사한 방식의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은 간단하다. 유저는 인턴으로 회사에 입사해 상사들이 시키는 일을 처리하고 이렇게 얻은 돈과 경험치로 스펙을 올리고 승진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터치 한 번으로 끝난다. 상사가 일을 시키거나 이벤트가 발생하면 화면에 표시되고 이를 터치하면 알아서 처리된다. 유저가 하는 것은 일을 받는 것과 간혹 캐릭터의 체력을 불태워 업무 속도를 높이는 것뿐. 주인공 신분 상 늦게 반응했을 때의 페널티가 해고(…)라는 가혹한 것임을 제외하면 게임 방식은 기존에 모바일로 나온 타이쿤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복치류 게임답게(?), 혹은 한국의 가혹한 구직 시장을 소재로 한 만큼 잦은 게임오버는 기본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온갖 이유로 권고사직이나 계약종료를 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베드 엔딩은 하나하나 겪을 때마다 승진확률을 올려주거나 베드 엔딩을 맞이할 확률을 줄여준다. 개복치류 게임에서는 흔한 방식이지만 한국의 취업 시장이 소재다 보니 굉장히 그럴싸한 모습이 그려졌다.
■ 땅콩 회항부터 대통령 풍자까지, 곳곳에 숨어 있는 블랙 유머
<내꿈은 정규직>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청년 구직 시장, 나아가 한국 시장 자체를 풍자하는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의 특성은 오프닝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게임이 시작되면 첫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이 보인다. 주인공은 자신의 스펙에 대한 자부심과 취업 후의 인생계획을 되뇌며 회사에 들어간다. 20대 이상의 유저들은 아마 이 부분부터 웃음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주인공의 자신감이 씨가 된 듯 첫 면접은 실패하게 된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련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면접을 반복할 때의 멘트가 하나하나 깨알 같다. 면접 전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이용한 자조나 이색 면접에 대한 불만 등을 시니컬하게 꼬집는다. 주인공 말에 따르면 희망연봉은 말할 때라도 희망을 가지라고 희망연봉이고 이색면접은 이색적으로 구직자를 괴롭히는 면접이다.
이렇게 수많은 면접을 실패한 후에야 겨우겨우 인턴으로 입사할 수 있다. 인턴 입사에 성공해도 블랙유머는 계속된다. 상사가 탕비실에서 땅콩을 가져오라고 하면 꼭 ‘뜯어서’ 가져다 줘야 하고 승진을 위해서는 ‘돼지를 구울 때는 돼지코에 콘센트를 꽂으면 된다’는 시답잖은 상사의 유머에도 웃어줘야 한다. (참고로 두 번째 유머(?)는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출입기자들에게 했던 유머다)
수시로 등장하는 얼토당토않은 퇴사사유도 웃음거리다. 정규직 전환 실패나 승진 실패로 인한 정상적인 퇴사 사유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야근하느라 졸아서 해고, 상사가 쏜다는데 감히(?) 탕수육을 시켜서 해고, 여직원과 ‘썸’타서 해고, 심지어 하루 이상 게임을 실행시키지 않아 무단결근(…)으로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황당한 사유지만 게임의 소재가 소재인 만큼 과장으로는 받아들여져도 판타지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살아남아라! 개복치>의 돌연사가 황당한 이유로 웃음을 이끌었다면 <내꿈은 정규직>의 권고사직(?)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 만들어내는 쓴웃음인 셈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퇴사 사유인 만큼 이러한 이벤트를 겪고 나면 자연히 그동안의 노고도 보답 받지 못한 채 해고돼 면접 단계로 튕겨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이벤트에 웃을 수 있는 것은 도감과 내성(?) 시스템 덕분이었다. 게임은 베드 엔딩을 하나하나 모아갈수록 캐릭터의 승진 확률이 올라가고, 베드 엔딩을 겪을 때마다 해당 베드 엔딩이 다시 뜰 확률을 줄여준다.
덕분에 게임 중 황당한 이유로 해고 당하더라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게, 새로운 베드 엔딩을 기대할 수 있었다. 심지어 1%의 승진확률도 소중한 후반부에는 도감을 채우려고 일부러 베드 엔딩을 모으러 다닐 정도였다.
■ 블랙유머 속에 숨어있는 사회초년생의 아픔
처음에는 이처럼 황당한 블랙유머에 깔깔대며 웃었지만 게임에 익숙해지자 그 안에 은근히 숨어 있는 ‘가시’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 관련 이벤트였다.
게임을 하다보면 간혹 어머니가 ‘친구는 아들이 선물을 사줬다’는 이야기, 혹은 ‘이번 명절에 집에 내려오니’ 등의 이야기를 건넨다.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에게 선물도 사주고 싶고 명절에도 내려가고 싶지만, 이를 승낙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입 시절에는 10원도 아까운 법. 십중팔구는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지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고 승진확률도 (금액에 비하면) 겨우 1%만 떨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돈이 없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의 마음까지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슬픈 것은 나중에는 이를 자연히 합리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이벤트를 거절한 결과는 승진확률 -1% 뿐. 페널티가 이것뿐이니 나의 심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입 시절에는 애초에 승진확률이 높다 보니 ‘돈보다는 -1%가 감수할 만 하지’라고 합리화하고, 승진확률이 박한 후반부에는 ‘돈도 없는데 왜 이런 이벤트가 나와 승진 확률 깎냐’고 짜증냈다. 점점 (비록 가상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보다 승진확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섬뜩하지 않은가?
■ 인간은 어떻게 현실에 순응해 가는가
이러한 ‘가시’는 뒤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내꿈은 정규직>의 목표는 온갖 불합리를 견디고 주인공을 사장의 자리까지 승진시키는 것. 하지만 승진을 할수록 점점 승진확률이 떨어지다 보니 자연히 유저의 목표도 승진 확률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처음 인턴에서 계약직으로 승급할 확률은 50%, 계약직이 정규직이 되려면 40%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 이러한 승진 확률은 대리나 과장 등으로 올라갈 때마다 더더욱 낮아진다. 물론 게임머니로 스펙을 올리거나 베드 엔딩을 모아 승진 확률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효력이 떨어지게 된다. 승진하며 낮아지는 승진확률이 업적 등을 통한 증가치 보다 크기 때문이다.
결국 유저는 유저는 자연히 업무 중 발생하는 부조리 이벤트를 기다리고, 이에 순응해 승진 확률을 올리게 된다. 낮은 직급일 때는 웃어 넘기던 블랙유머가 나중에는 없어서는 안될 승진의 필수 코스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플레이하는 이의 마음도 이를 점점 당연시 여기게 된다.
이것의 절정은 본격적인 관리 업무가 시작되는 과장부터다. 이쯤 되면 승진에 필요한 경험치도 몇 배로 뛰고 승진도 3 ~ 4번은 들이 받아야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정도 직급이 높아진 만큼 상사들이 주는 부조리 이벤트도 줄어든다. 주인공보다 높은 사람이 줄어드니까.
대신 주인공에게 주어진 것은 반대로 이벤트를 부조리 이벤트로 만들 수 있는 선택지다. 업무를 하다 보면 부하 직원이 (주인공의 과거처럼) 졸거나 업무에 실수하는 등의 이벤트가 발생한다. 여기서 유저는 부하직원을 윽박지를 수도 있고 보듬어 줄 수도 있다. 시스템은 윽박지르면 좋은 지도라며 승진 확률이 올라가고 보듬어주면 아이들을 감독 못한다고 승진 확률이 낮아진다. 여기서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지일까?
내가 과거 그런 부조리를 비웃었던 것을 기억해 부하직원을 보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승진이 2 ~ 3번 미끄러져 해고당해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윽박지른다는 선택지로 손이 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유는 많았다. 지루한 경험치 습득 과정을 다시 겪기 싫으니까, 그동안 고생한 것이 수포가 되니까, 주인공을 사장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등등.
그러다가 며칠 게임을 쉬고 다시 접속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승진을 위해 게임 속에서라도 불합리하고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현실이라고 이러한 전철을 밟는 사람이 없을까?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굳어진 시스템과 개개인의 절박함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을까?
■ 한국 취업시장과 개복치류 모바일게임 그린 냉혹한 사회상
사실 처음 <내꿈은 정규직>을 접했을 때 이 게임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았다. 한국 사회를 꼬집은 풍자는 재미있었지만, 시스템 자체에는 흠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게임 특성 상 업무소홀로 해고되지 않으려면 눈에 불을 켜고 일과 이벤트를 터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문제였다. 처음에야 깨알 같은 이벤트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뒤로 갈수록 긴 경험치 습득 구간과 점점 뜸해지는 이벤트는 게임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게임 속 일이 정말 일 같이(?) 느껴졌다면 말을 다한 셈이리라.
그래서 이 과정을 줄이려고, 최대한 빨리 승진하기 위해 NPC에게 딸랑(…)거리기도 했고 부하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점점 승진확률이 올라갔고 나름 관리직 비슷한 직책까지도 올라가 봤다. 갈수록 재미보다는 오기의 비중이 커졌다. 그러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그동안 비웃었던 것과 뭐가 다른 것이지?'
<내꿈은 정규직>은 ‘재미’만 보면 만점을 주긴 힘든 작품이다. 초반에는 온갖 블랙유머로 유저의 배꼽을 훔쳐가지만, 뒤로 갈수록 늦어지는 템포와 점점 반복되는 이벤트가 이러한 장점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틀 덕분에 (적어도 나는)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말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 블랙유머가 아닌, 후반의 사회 묘사 때문이라도 플레이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