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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시각장애인을 위한, 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A BLIND LEGEND

소리만으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게임 리뷰

이영록(테스커) 2015-10-28 16:00:59


 

지난 10월 6일,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A BLIND LEGEND>라는 무료 모바일 게임이 앱스토어와 구글스토어에 출시됐습니다. DOWiNO라는 개발사가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해 1년 이상의 개발 기간을 거친 후 탄생했는데요. 게임 메뉴부터 소개 등 게임의 모든 것이 소리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소리만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해봤는데요. 의외로 시각장애인이 아닌 유저들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이영록 기자


 

■ 스토리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레이크는 시각장애인이며 동시에 수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10살배기 딸과 함께 시골의 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마을로 들이닥친 미친 왕의 군대에 의해 아내, 캐롤라인이 납치당한다. 마을을 짓밟는 군대로부터 일단 몸을 피한 주인공은 다시 아내를 구하기 위해 눈 역할을 대신해주는 딸, 루이스와 함께 미친 왕이 사는 높은 성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 <A BLIND LEGEND> 트레일러 영상

 

 

■ 소리만으로 느끼는 <A BLIND LEGNED>는 어떤 게임?

 

<A BLIND LEGEND>는 가상 패드를 제외하면 게임상에서 어떠한 인터페이스도 찾아볼 수 없고 화면엔 먹구름만 잔뜩 껴있습니다. UI가 없는 대신 메뉴부터 게임 진행 방법까지 모든 게 음성으로 진행되는데요. 게임은 단순히 입력 방식 몇 가지를 알려주고, 유저는 이에 상황에 따라 슬라이드, 또는 더블 탭 등을 간단히 입력하면 되는 구조입니다.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내를 찾아 나서는 길을 인도하는 것은 딸이 담당합니다. 기본적인 방향 지시나 돌발적인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처음 대면하는 상황에서 유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래이터가 대신합니다.



몇 가지​ 단순한 조작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이동 할 때는 입체음향효과가 적용돼있어 딸이 앞서 걷는 소리만 듣고도 위치 파악을 할 수 있지만, 다행히 단순히 'OVER HERE(여기야!)'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LEFT(왼쪽)', 'RIGHT(오른쪽)'같은 구체적인 방향도 지시해줍니다. 게다가 방향을 잘 못찾으면 지겨울 정도로 자기 위치를 반복해서 알려주는 딸 덕택에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딸을 따라 걷다 보면 새소리, 발소리, 물소리 등 음성과 조화를 이루는 사실적인 환경음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몰입을 돕더군요. 하지만 몰입을 돕는 환경음은 특정 상황에서 장애물로 변했습니다.

 

  ▲ 게임 시작과 로딩 시 로고를 제외하면 항상 이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폭포 근처에 숨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렁찬 폭포 소리 속에서 딸의 목소리를 잡아내야 했습니다. 폭포 소리에 묻혀 어느 방향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 딸의 다급한 목소리와 가까워지는 추격대의 말발굽 소리가 몸을 긴장시켰죠. 

이 긴장감은 전투에서 한층 더 강해집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두근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오고 적은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옵니다. 주인공은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하는 타이밍에 맞춰 적이 위치한 방향으로 슬라이드 해 카운터 공격을 성공시켜야 하는데요. 수시로 공격 위치를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공격 타이밍을 바꾸는 적을 상대하다 보면 눈이 먼 주인공을 상대로 빈틈을 찾으려 유심히 살피고 있는 적의 교활한 모습이 상상되죠. 

 

 ▲ 볼 수 있는 효과라곤 칼 궤적과 가상 패드, 그리고 화면이 붉어지는 게 전부입니다.

 

이 외에도 말을 타고 달리며 딸의 목소리를 듣고 즉각 반응해 해당 방향으로 슬라이드해 공격을 피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는데요. 소리만으로 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입하게 됐고, 소리를 놓치면 게임오버로 이어지니 자연스럽게 게임에 집중하게 됐죠. 그래픽 게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몰입감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리만으로 진행되기에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금세 피로해진다는 점이 단점이 있었죠. <A BLIND LEGEND>에서도 그 점을 알고 있는지 각각의 상황들을 에피소드 형태로 분리해뒀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장시간 플레이는 힘들다고 느껴졌습니다.


 

■ 눈을 감는 순간 <A BLIND LEGEND>는 다른 게임이 된다.

 

<A BLIND LEGEND>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래픽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투 중 슬라이드를 하면 칼의 궤적이 나타나고, 피격 시에는 화면이 붉어집니다. 또 이동 시에는 가상 패드가 나타나죠.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게임 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각으로 신경을 분산시켜 소리를 듣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죠. 그걸 깨닫고 난 뒤에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주인공에 더 몰입해 즐기기 위해서라도 눈을 감고 진행했습니다.

 

▲ 눈을 감는 순간, 유저는 ‘에드워드 블레이크’가 됩니다.

 

<A BLIND LEGEND>​는 눈을 감는 순간 다른 게임이 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발소리와 빗소리 등은 많은 것을 그려냅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가상현실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 들죠. 눈을 감는 순간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주변을 소리로 느끼고 게임에 몰입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몰입하고 나면 도중에 게임을 중간에 쉬기가 싫어지더군요. 스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임이다 보니, 그만두면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 제 머릿속에서는 ‘라스트오브어스’의 두 주인공과 비슷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 영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다.

 

아쉽게도 <A BLIND LEGEND>는 프랑스어와 영어만 지원됩니다. 그나마 익숙한 영어를 선택해 진행하면 스토리부터 메뉴 설명, 기본적인 조작 등 모든 것이 영어 음성으로 진행되죠. 하지만 그리 높은 수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기자의 영어 수준도 높지 않거든요.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영어는 기본 조작과 관련된 슬라이드(긋기), 더블 탭, 핀치(손가락 모으기), 스트레치(손가락 벌리기)와 레프트(왼쪽), 라이트(오른쪽), 업(위쪽)가 전부입니다. 이 중에서도 핀치와 스트렛치는 잘 쓰이지 않으니 다 해봐야 다섯 단어만 알고 있으면 되죠. 

 

하나 더 추가하자면 비하인드(뒤) 정도가 전부입니다. 완전한 스토리 파악은 힘들겠지만, 중등 영어 단어 지식만 있다면 게임은 원활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원어민(?)들이 말하는 음성이 녹음돼 있으니, 영어 듣기 실력이 늘어날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겠네요.

 ▲ 중학생 정도의 영어 단어만 알고 있어도 게임 진행에 무리가 없습니다.

 

 

■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풍부한 음향 효과와 배우들의 연기가 게임에 몰입을 도와 시각장애인이 아닌 필자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려웠던 구간에서 자꾸 게임오버 돼 기본으로 주어지는 5개의 목숨을 다 썼을 때는 스토리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 ‘라이프’를 과금할 정도였죠.

 

영어를 잘한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으나 기초 단어 수준으로도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무료이니 손해 볼 것도 없죠. 비슷비슷한 게임에 질려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싶은 게이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