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넥스트플로어 아니랄까봐...'
<크리스탈하츠>에 대한 인상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자간담회에서 티저 영상과 설명을 보고 들었을 때도 모든 스토리를 마치고 아레나 1%까지 찍은 지금도 소감은 똑같다.
(개발사가 다른 곳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탈하츠>는 정말 넥스트플로어다운 게임이다. 장점도, 단점도,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와 불안감까지 하나 같이 <드래곤플라이트>나 <엘브리사>, <나이츠 오브 클랜> 등의 전작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게임이냐고? 좋게 말하면 '오랜만에 보는 게임다운 게임'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임은 재미있는데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더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게임이 더 나아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준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크리스탈하츠>의 기본은 과거에 인기를 몰았던 <배틀하트>의 전투방식 + <세븐나이츠>의 성장과 진행이다. <배틀하트>가 어떤 게임인지 모른다면 그냥 <세븐나이츠>에서 전투 중에는 캐릭터를 일일이 <스타크래프트>처럼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각성이나 진화, 합성, 속성 같은 뻔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크리스탈하츠>의 주요 특징만 언급하면 아래와 같다.
1.전투에서 일일이 영웅을 조작할 수 있다. 난이도도 높다.
2.전투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원을 열쇠로 통일했다. 그리고 언제나 부족하다.
3.아이템의 성능이 강하고 조합도 다양하다.
4.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의외로 강력하거나 그 반대인 영웅이 많다.
5.자잘한 버그나 이해하기 어려운 밸런스 문제가 아직은 많은 편이다.
영웅이나 스킬을 터치하는 순간 모든 행동이 슬로우모션마냥 느려진다. 이후 원하는 적을 터치하거나 드래그해서 이동 위치를 정해주면 된다.
■ 모처럼 찾아 온 '게임같은 모바일게임'
칭찬부터 하자. 일단 <크리스탈하츠>는 요즘 모바일게임으로는 보기 드문 '게임다운 게임'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모처럼 성장이 아닌 조작에서의 재미와 만족감을 주는 게임이다.
<크리스탈하츠>에서는 단순히 스킬 타이밍을 재거나 타겟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이동과 아군의 회복, 광역스킬 범위 지정 등을 모두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다. 적의 어그로를 끄는 스킬이나, 바라보는 방향에 따른 공격범위, 탱커, 딜러, 힐러 등 포지션에 따른 어그로 순위 등도 정해져있어서 빠듯하게 조작하면 제법 그럴듯한 파티플레이 모양새도 나온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이런 조작을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일단 각 지역의 보스와 중간 보스는 다른 적에 비해 월등히 강력하고, 패턴을 모르면 공략부터가 어렵다. 각 영웅의 머리 위에 폭탄을 띄워서 서로 떨어지게 하거나, 소환수와 체력을 공유해 방어력이 가장 낮은 적부터 찾아내 처치하는 보스도 있다. 둘 다 플레이 첫날부터 만나는 보스다.
<크리스탈하츠>에도 자동전투가 있지만 패턴에 대응을 못 하다 보니 직접 조작할 때에 비해 몇 단계 낮은 스테이지로 사냥터가 제한된다. 자연히 자동전투와 직접 조작했을 때의 아이템과 경험치 보상 차이도 벌어진다.
자연스럽게 유저의 플레이도 '쉬운 곳에서 합성 재료가 될 영웅은 자동조작으로 키우고, 아이템 파밍과 아레나, 특수 던전, 챕터 돌파 등의 주력 콘텐츠는 직접 조작으로 해결하는' 모양이 된다.
'직접 조작이 가능하다'는 특징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조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계속 만들어주고 직접 조작을 했을 때의 보상과 만족감도 확실하게 주는 셈이다. 한 마디로 조작의 비중이 남다르다. 여기에 준비 중인 레이드 등의 콘텐츠가 추가된다면 직접 조작이 주는 재미는 이후에도 <크리스탈하츠>의 최대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닥에 독장판이 예쁘게 깔리도록 유도해야 하는 2막 7챕터의 중간보스. 자동전투를 맡기면 그냥 독밭에서 헤엄치며 죽는 파티원을 볼 수 있다.
■ 이번에는 무엇을 먹었을까? 파밍의 재미를 살린 아이템
모바일 RPG에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게 반복이다. 결국에는 영웅의 성장과 수집, 조합을 위해 같은 던전을 많게는 수천 번씩 반복해야 하는 건 <크리스탈하츠>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이템의 랜덤옵션을 통해서 성장과 반복의 재미를 잘 살렸다.
<크리스탈하츠>는 아이템의 능력치가 굉장히 크다. 후반으로 가면 아이템 부위 하나에 30% 공격력은 우습게 붙는다. 여기에 아이템마다 최대 5개의 옵션이 붙고, 영웅은 그런 아이템을 최대 6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각 아이템은 세트효과를 갖고 있고, 세트효과는 최대 3종류까지 중복적용도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체력으로 6부위를 맞춰서 세트효과로만 75% 체력 증가가 붙고, 여기에 액세서리로 체력이 또 100% 정도 뻥튀기 된 탱커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체력만 이 정도고 다른 옵션은 별개다.
덕분에 <크리스탈하츠>에서는 아이템 파밍이 게임의 큰 축을 맡는다. 아이템 능력치가 무작위로 붙는 데다가 아이템과 함께 성장하는 주능력과 부능력도 무작위로 결정된다. 일단 아이템으로 인한 능력치 상승이 눈에 띌 만큼 확실하다 보니 원하는 아이템을 파밍하고 세팅하는 맛이 있다.
필요한 아이템의 개수도 생각보다 매우 많다. 주력 멤버인 4명만 해도 6개씩 24개의 아이템을 착용하는 데다가 육성할 멤버에게 장착시킬 아이템이나 다른 아이템의 성장을 위한 아이템까지 감안하면 끝도 없다. 원하는 옵션의 아이템이 곧바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크리스탈하츠>에서는 영웅을 성장시키기 위한 반복보다는 아이템을 위한 반복에 영웅을 '얹는다'고 느낄 정도다. 조작에 대해 언급하면서 말했던 '어떻게든 최대한 높은 던전을 가게 된다'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예측이 가능한 지루한 반복보다 랜덤한 보상(아이템)이 가미된 반복은 확실히 덜 지루할 수밖에 없다.
전투로 고급 소환권을 얻을 수 있는 특이한 게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주일 정도 플레이하면서 약 5개 정도를 얻었다.
■ 2성짜리 딜러가 핵심 영웅? 정말 다양한 영웅의 쓰임새
영웅도 다양하다. 그냥 종류가 많다는 게 아니라 영웅마다 기능이나 쓰임새가 확실하다.
모바일RPG를 조금만 해봐도 개발사에서 '우리 게임은 초반 영웅도 애정을 갖고 꾸준히 성장시키면... 어쩌고' 하는 말처럼 거짓된 게 없다는 걸 알 거다. 하지만 <크리스탈하츠>는 좀 다르다. 3성은 물론이고 2성 영웅 중에도 쓸만한 게 많다. 영웅을 단순히 상위하위 호환으로 만들기보다 각각의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모험모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딜러인 '스켈레톤 궁수'는 2성 영웅이다. 하지만 적의 체력을 5% 단위로 깎는 맹독스킬을 15초마다 사용할 수 있어서 많은 유저들이 주력으로 사용한다. 1성 영웅인 슬라임을 6성까지 키워서 자폭덱을 운영하는 유저나, 2성 카벙글의 방어력 저하스킬을 이용해 황금던전을 3층까지 클리어하는 등 독특한 파티를 활용하는 유저도 있다.
그 누가 알았으랴. 이런 아이가 시험의 탑의 운명을 책임질 핵심인재였을 줄...
이 밖에도 다른 파티원에게 어그로를 몰아주고 무적보호막을 함께 걸어주는 타락 고블린이나 광역 버프 해제효과를 갖춘 나가 주술사처럼 사용법이 연구 중인 영웅도 많다. 개발팀에서 첫 설계부터 다양한 전투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걸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아이템이나 조작을 요구하는 전투와 조합되면 '자신만의 판'을 짜는 재미가 있다. 굳이 뽑기로만 나오는 4~5성 영웅만이 아니더라도 그 대체 영웅이 어느 정도 있다는 점도 매력적. 실제로 스토리 모드를 모두 깬 필자의 파티는 정작 2성과 3성 영웅을 끝까지 육성한 조합이었다.
그냥 대미지 %로만 모든 밸런스를 맞추는 개발사에서는 보고 배웠으면 할 정도로 바람직한 요소다. 조작과 함께 <크리스탈하츠>의 최대 재미 중 하나.
■ 실종된 3인방. 열쇠, 밸런스, 목적성
딱 여기까지면 정말 좋았을 텐데, 조작의 재미와 영웅의 다양함을 강조하려다 보니 생긴 부작용도 많다. 일단 3가지가 시급하다. 부족한 열쇠와 어긋난 밸런스, 그리고 부실한 콘텐츠다.
영웅과 스킬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밸런스를 맞추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크리스탈하츠>의 밸런스는 '모바일게임임을 고려하더라도' 그냥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문제가 많다. 상태이상에 의미를 많이 두다 보니 맹독을 거는 영웅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딜러가 됐고, 반대로 5성인데도 '이걸 쓰라고 만든 걸까' 싶은 영웅도 많다.
밸런스는 게임의 목적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크리스탈하츠>의 목적은 현재 아레나, 스토리, 시련의 탑 공략 정도로 정리된다. 이 중 스토리와 시련의 탑은 일회성 콘텐츠이고, 결국 어느 정도 육성을 마친 유저는 아레나를 목표로 향하게 되는데, 정작 아레나에서는 영웅의 밸런스가 발목을 잡는다.
다양한 영웅으로 공략이 가능하던 모험모드와 달리 단기전투 위주의 아레나에서는 이상할 정도의 화력과 생존력을 가진 일부 5성 영웅 1~2명이 있느냐 없느냐로 승패가 절반 이상 정해진다. 그렇다고 이벤트기간에 4성 확률이 4.8%인 게임에서 5성이 뜨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 사실상의 벽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콘텐츠를 돌아가며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탈하츠>의 콘텐츠는 전용티켓을 사용하는 황금던전과 아레나를 제외하면 모두 '열쇠'를 사용한다. 각성재료를 주는 일일던전, 성장재료를 얻는 게릴라던전, 고난도 전투에 도전하는 시험의 탑까지 모두 열쇠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열쇠가 결코 넉넉하지 못하다.
하루에 고정으로 얻는 열쇠는 5분에 한 개씩 288개(24시간), 업적으로 받는 20개가 전부다. 여기에 친구에게 얻는 하트와 아레나 보상, 게릴라 이벤트 등으로 받는 열쇠까지 포함하면 정말 빠듯하게 모으면 약 500개 남짓한 열쇠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각 스테이지에 요구되는 열쇠는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7개, 스테이지 클리어시간은 1~3분 남짓이다. 대충 계산해도 1~2시간 내외로 하루 종일 접속하며 열쇠를 모아도 3~4시간 플레이하기가 어렵다. 시간으로 들으면 넉넉해 보이지만 자동전투로 나가는 시간도 있고 실제로는 저만큼 열쇠를 모으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모험모드면 모험모드, 각성이면 각성처럼 딱 필요한 곳만 돌게 되는 식이다. 밸런스가 무너져 신분제 사회가 된 아레나와 꼭 필요한 곳만 돌게 되는 스테이지와 특수 던전. (사실 그렇게 부족한 편이 아님에도) <크리스탈하츠>의 콘텐츠가 유난히 부족해보이는 이유다.
자동전투보다는 유저가 직접 조작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것을 감안해서 책정한 열쇠 개수(와 열쇠에 집중한 콘텐츠 구조)인 듯 하지만 지금으로는 그냥 '불편하다'는 느낌이 더 크다.
■ 충분한 '게임으로의 재미', 부족한 '모바일 RPG의 노하우'
결론을 내리자면 <크리스탈하츠>는 약 2년 전 <세븐나이츠>를 보는 듯한 게임이다. 기본은 잘 갖춰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실하고, 덧붙일 부분도 많다. 개발사에서 가진 계획도 많을 거고. 물론 그 당시 <세븐나이츠>와 비교하면 콘텐츠 자체는 더 많은 편이다.
다만 지금은 2년 전보다 유저들의 눈높이가 훨씬 혹독하다. 유저들은 이미 <세븐나이츠>와 <서머너즈 워>, <별이 되어라> 등에서 각양각색의 콘텐츠를 경험했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언제든 돌아갈 준비도 돼 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최소한 콘텐츠의 목적성에 한해서는 이렇게 아이템을 얻고 영웅을 키워서 '무엇을 하겠구나'는 목표가 시급해 보인다. 지금의 <크리스탈하츠>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어딘가 만들다 만 느낌이 든다.
성장과 경쟁, 이를 통한 매출에만 초점을 맞추던 모바일RPG 사이에서 오랜만에 '조작의 재미'를 살렸다는 점만으로도 <크리스탈하츠>에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조작이 재미있다는 건 근본적으로 다른 거니까.
그만큼 <크리스탈하츠>에는 조작의 재미를 살리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이 많이 묻어난다. 앞서 <크리스탈하츠>를 '넥스트플로어답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레이드나 길드 등의 콘텐츠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넥스트플로어는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전략을 보여줬다. 퍼블리셔보다는 개발자로, 개발자보다는 한 명의 유저에 더 가까운 생각으로 게임을 서비스한다는 뜻인데, 지금의 <크리스탈하츠>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거다.
체험기를 시작할 때 썼던 말이 같은 말이어도 좋은 의미로만 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누가 넥스트플로어 아니랄까봐...'
덧붙임. 참고로 <크리스탈하츠>의 개발사는 DMK팩토리다. 퍼블리셔인 넥스트플로어에만 집중하느라 체험기에서는 계속 생략된 점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