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개발되던 PC MMORPG가 엎어졌다. 그리고 게임은 2년 후, '스테이지 방식의 모바일 RPG'로 다시 태어났다. 29일 출시된 <붉은보석2: 홍염의 모험가들>(이하 붉은보석2)의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좋은 결과를 만든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공개된 게임은 흔한 수집형 모바일 RPG 같았다.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 모험은 성과를 얻었다. 출시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게임은 구글 게임 매출 12위, 애플 8위를 기록 중이다. 과연 <붉은보석2>는 갑작스런 모험 속에서 어떤 무기를 움켜쥐었을까? 그리고 이 무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날을 세울 수 있을까? 2주 간 플레이하며 느낀 점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터치'만으로 만든 조작의 재미
<붉은보석2>를 플레이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조작감이다. 사실 처음에 <붉은보석2>의 조작법을 접하면 '이게 과연 조작하는 재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된다. 게임은 가상패드가 아니라, '터치' 방식의 조작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방향을 터치하면 주인공과 동료들이 그곳으로 이동한다. 특정 방향을 빠르게 2번 두드리면 그곳으로 회피한다. 적을 공격하는 것은 자동이다. 생각해봐라. 플레이 내내 손가락으로 화면 한 귀퉁이를 누르고 있는 것을. 이 조작 때문에 화면 일부분을 항상 가려가며.
아무리 봐도 가상패드처럼 직접, 계속 조작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똑같이 계속 터치해도, 가상패드는 화면 하단만 가리지 않는가?) 실제로 게임은 1레벨부터 자동이동, 자동스킬(어차피 자동공격은 기본이니)을 지원하며 AI에게 전투를 맡기라고 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동전투 속에서 '조작'의 재미가 생긴다.
<붉은보석2>의 전투는 '무쌍' 시리즈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일행이 일당백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쌍' 시리즈처럼 일당백을 '해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게임은 초반부터 던전 구간마다 몬스터가 10~20마리씩 등장한다. 초반에야 무쌍이 가능하지, 정예 몬스터 섞여 나오기 시작하는 중반만 되도 몬스터들에게 둘러 쌓여 '집단 구타' 당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반면 주인공은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스킬이 적다. 위력이 좋으면 범위가 좁고, 범위가 넓으면 발동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적은 수시로 아군을 포위하려 하고, 아군이 가진 화력은 활용하기 까다롭다 보니 수시로 좋은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터치 방식의 조작은 이런 난전에서 빛을 발한다. 가상패드라면 손가락을 화면에 문지르며 캐릭터를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회피 스킬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왼손으로 회피 방향을 설정하고 오른손으로 회피 버튼을 눌러야 한다.
<붉은보석2>는 간단하다. 화면을 보다가 적절한 자리가 보이면 그곳을 2번 터치하면 된다. 화면이 보스, 혹은 정예 몬스터의 '장판'으로 뒤덮여도 피해야 할 곳을 톡톡 누르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 나면 몬스터들은 동료들에게 정신 팔려 예쁘게 '광역기 각'을 만들어줬거나, 후딜레이 때문에 무방비하게 서있다. 이 뒤부터 까다롭게만 보였던 스킬들이 힘 쓸 시간이다.
이동이나 일반 공격같은 잡다한 행동은 AI에게 맡겨 놓고, 포지셔닝이나 광역기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는데 특화된 조작이다. 그리고 <붉은보석2>의 스테이지는 많고 강한 몬스터로 이 이 조작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도발, 도발! 매즈, 매즈! 무빙, 무빙! 모바일 속 파티 플레이
<붉은보석2>의 조작과 몬스터 웨이브(?)는 조작감뿐만 아니라, '파티 플레이' 느낌을 강조한다.
게임은 파티 플레이를 유독 강조한 모바일 RPG다. 최종 콘텐츠인 '실시간 레이드'는 말할 것도 없고,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테이지 모드 또한 AI 동료 2명과 합을 맞추고 파티를 이뤄야 한다.
게임 속 던전은 딜러만 우르르 몰려가 깨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간 시너지를 고려해야만 적정 레벨 스테이지를 돌파할 수 있게끔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궁수라면 파티에 탱커 캐릭터를 넣어 적의 시선을 붙잡거나, 빙결과 같은 무력화 능력을 가진 이를 넣어 적의 접근을 막아야 원활히 클리어할 수 있는 식이다.
물론 캐릭터 간 '시너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석은 없다. 어떤 이는 탱•딜•힐과 같은 전통적인 파티 구성을 선호하고, 어떤 이는 딜러 1명에 순수 힐러, 디버퍼 겸 힐러를 넣어 안정성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나는 힐러 1명에 근접 디버퍼 2명을 편성해 탱커 없이도 맞을 일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즐겨 썼다. 그리고 이렇게 고민한 내용은 어떤 식으로든 들어 맞는다.
이런 빡빡한 플레이를 AI들과 함께, 몬스터가 수십 단위로 쏟아지는 던전 안에서 해야한다. 유저가 직접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 캐릭터 하나뿐. 그리고 게임의 던전 디자인은, 혹은 눈 앞의 적만 보는 AI 캐릭터 때문에 계획은 항상 어그러진다. 고레벨 스테이지로 갈수록 더더욱.
원거리 딜러를 조종한다면 AI 탱커가 놓친 적들이 자기에게 몰려오고, 탱커 캐릭터를 조종한다면 적 한 무리를 한쪽으로 유인하자 마자, 아군 후방에 새로운 몬스터 무리가 생성되는 식이다. <붉은보석2> '파티 플레이'의 느낌과 재미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캐릭터 3명이 자기 역할을 해야만 깰 수 있는 던전. 스테미너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자기가 살아남고, AI 동료들이 살게끔 해야 한다. 원거리 딜러를 조종한다면 몰려드는 적을 어떻게든 피하고 발을 묶고 탱커 쪽으로 유인해야 하고, 탱커로 플레이 중이라면 새로 등장한 적을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끌어 모아야 한다.
이렇게 죽자 살자 움직이고 스킬 쓰다 보면 AI들도 다시 제 역할을 하고, 적들은 예쁘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역전 타이밍이다. 딜러들의 스킬이 쏟아지고 몬스터 무리는 정리된다. 이것을 만든 주역은 '유저'다. 마치 온라인 MMORPG 파티 플레이 중, 몬스터 애드 등으로 인한 위기를 '내' 슈퍼 플레이(?)로 극복한 것 같은 느낌이다.
# 요소 하나 하나는 다 좋았는데….
허나 이 강점들은 오래 빛을 내지 못했다. 게임의 템포가, 혹은 보상 시스템이 강점에 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RPG의 기본적인 재미는 여전했지만, <붉은보석2>만의 빛은 옅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5지역부터 급격히 높아지는 '성장의 벽'이다. <붉은보석2>는 4지역부터 본격적으로 난이도 높은 스테이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새로운 스테이지를 뚫을 때 조작을 해줘야 안정적인 클리어가 가능해지고, 이 조작 때문에 본격적으로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5지역부터는 조작 뿐만 아니라, 레벨이나 공격력같은 '숫자'까지 갖춰져야만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전 지역처럼 몇 시간 해서 갖출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일 단위' 반복 사냥이 필요한 압도적인 숫자다.
설상가상으로 주인공 캐릭터는 5지역 입성 전후로 마지막 전직을 끝마친다. 마지막 스킬을 배웠기 때문에 이후 캐릭터가 성장해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설사 반복 사냥 중 좋은 장비를 얻어도 파티가 3인 1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다. 이 뒤로는 조금씩 오르는 '숫자'만 있을 뿐이다.
물론 며칠 노력해 숫자를 맞추면 다음 지역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경험과 조작의 재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스테이지 뚫는 과정이 끝나면 또 다시 (효율에 따라) 일 단위로 자동사냥이 이어지게 된다. 컨트롤이 줄고 자동사냥이 계속되니 앞서 얘기한 조작의 재미도, 파티 플레이의 재미도 자연히 옅어졌다.
조작의 재미를 막 느끼기 시작한 순간, 게임이 일 단위로 자동전투 돌리는 평범한(?) 모바일 RPG로 바뀌는 셈이다. 이것이 <붉은보석2> 론칭 버전 콘텐츠 기준, 캐릭터 최고레벨 기준 1/3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나타났다.
레벨업 하느라 3일 가까이 살았던 5-1, 5-4 스테이지. 그런데 여기가 겨우 (론칭 버전) 전체 맵의 1/3에 불과하다.
성장과 별개로, 조작•협동의 재미를 살려줄 '실시간 레이드'는 콘텐츠 외적인 문제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실시간 레이드는 AI 동료와 함께 하는 여타 콘텐츠와 달리, 유저 5명이 실시간으로 협동해 돌파하는 일종의 '정예 던전'이다. 스테이지와 달리, 탱•딜•힐•디버프 같은 역할 분담과 보스 광역기 회피 등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PC MMORPG의 던전 플레이와 유사한 문법이 특징이다. 플레이 조건도 스테미너가 아니라 '입장권'이라 스테이지 반복 자동 사냥과 공존할 수 있는 콘텐츠다.
문제는 실시간 레이드 자체의 '안정성'이었다. 실시간 레이드는 업데이트 됐을 때부터 계속 '네트워크 오류'를 발생시켰다. 오류가 난 유저는 입장권만 날린 채 던전에서 튕겼고, 나머지 인원은 부족한 조합으로 보스를 상대해야 했다.
참고로 레이드의 실질적인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설' 아이템은 이외에도 장비 분해나 반복 사냥 등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었다. 레이드는 자연히 <붉은보석2>의 최종 콘텐츠가 아닌, 퀘스트를 깨기 위해 거쳐가는 콘텐츠로 위상이 바뀌었다. 유저들은 뒤로 갈수록 플레이 대부분을 자동 사냥 반복으로 채우게 됐다. <붉은보석2>만의 빛은 옅어졌다.
# 운영의 묘로 끌어올린 템포, 이 뒤가 중요하다
뒤로 갈수록 특징이 바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붉은보석2>는 평균 이상의 재미를 제공하는 게임이다. 게임은 앞서 이야기한 조작과 파티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 조합과 이를 통한 경험의 변화 같은 전통적인 수집형 RPG의 재미 또한 존재한다. 이는 애플 매출 8위, 구글 12위라는 성적이 증명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아쉬운 소리를 한 것은 충분히 개성과 사업성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게임이 초반부터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무너트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콘텐츠의 반도 소진되지 않은 시점에서, 반복으로 콘텐츠 소비 템포를 늦추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지금까지는 출석 보상, 무료 캐쉬, 그리고 퀘스트 보상 등으로 유물 등급(2번째로 좋은 등급) 캐릭터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덕에 새 캐릭터를 키우고 파티 구성을 고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중반부에 늘어진 템포를 운영으로 끌어 올린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다. 현재 <붉은보석2>의 중후반부 콘텐츠는 몬스터들의 강력함 때문에 무력화 스킬 위주 파티만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출석, 전설 지급 이벤트가 끝나면 대부분의 유저들이 이런 파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워너비 캐릭터는 이미 얻었고, 성장만 바라보기엔 먼 길이 남은 상황. <붉은보석2>는 이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지금처럼 운영의 묘를 보여줄까? 아니면 새 콘텐츠나 (안정적인) 신규 레이드, 패치로 다시 한 번 개성이라는 칼날을 세울까? 어느 쪽이든 '고민하며 오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