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테스트 시작과 함께 <아이온>의 핵심 컨텐츠인 어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아이온>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이 이어질 때마다 ‘모든 것은 어비스가 나오면 해결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쏟아냈던 엔씨소프트였던 만큼 기대가 되는 것도 당연할 터. 하지만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일까? 정작 실제로 체험해 본 어비스는 <아이온>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꿈의 필드’가 되기엔 부족했다. /디스이즈게임 한낮
본격적인 전쟁의 서곡. 어비스의 등장!
시즌3 테스트에서 첫선을 보인 어비스는 <아이온>의 마족과 천족 사이의 전쟁이 ‘제대로’ 벌어지는 곳이다. 어비스는 상층, 심층, 하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9개의 요새를 갖추고 있다. <아이온>의 최종목표가 어비스의 모든 요새를 점령하는 것이니 지금으로서는 ‘어비스 = <아이온>의 종착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비스는 레벨 25에 몇 가지 간단한 시험을 통과한 캐릭터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요새나 사냥터를 사이에 둔 PvP와 레벨업을 목적으로 하는 PvE 컨텐츠가 공존하고 있다. 몬스터의 보상이 높은 만큼 언제나 상대편 종족에게 기습을 당할 수 있는 일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높은 위험에 따른 높은 보상)’ 방식의 필드이기도 하다.
또한 맵 전체에 걸쳐서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필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전투를 즐길 수도 있다.
보상은 좋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여기까지가 엔씨소프트에서 밝힌, 그리고 유저들이 기대했던 어비스의 모습이다.
독창적인 구성과 자연스러운 PvP
구성면에서 봤을 때 <아이온>의 어비스는 매우 ‘독창적’이고 ‘효율적’이다. 어비스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하다. 비행이 자유로운 만큼 장소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어 일반 필드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던 ‘3차원 플레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귀찮은 몬스터를 피해 대륙 아래로 지나가거나 상대종족 머리 위의 바위에 숨어서 장거리 공격을 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이동하려면 한참 걸렸을 거리를 단숨에 가로질러 가는 것도 가능하다.
위와 같은 방법이 아니면 깰 수 없는 퀘스트들도 도처에 배치되어 있어서 이를 해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온>의 특징인 ‘비행’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담을 넘고 지정된 곳을 통과하고 곳곳에 숨겨진 NPC를 찾아낸다.
비행의 ‘활용’만은 만점.
종족에 상관없이 각 대륙마다 몬스터와 퀘스트의 레벨 대가 정해져 있고 대륙 이동이 쉽지 않은 탓에 비슷한 레벨은 유저들은 좋든 싫든 비슷한 장소에서 게임을 즐기게 되고, 이는 곧 자연스러운 종족간 PvP로 이어진다. 맵의 모든 구간이 비행 장소인데다가 공간 이동사를 통해 대부분의 지역을 오갈 수 있다 보니 전장까지 투입되는 시간도 매우 짧은 편이다. ‘대놓고 싸우기에’ 더 이상의 조건이 없는 셈이다.
극심한 비행제약. 추락하는 데바에겐 비행시간이 없다?
문제는 유저들의 발목을 붙잡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제약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단 1분으로 고정된 비행시간이다.
언젠가 개발팀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어비스의 넓이는 일반 필드의 몇배에 달한다. 그 중 대부분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고 대륙과 대륙 간의 거리도 상당히 멀다 보니 땅을 걷는 시간보다는 하늘을 나는 시간이 몇배는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비행시간은 단 1분.
즉, 먼 거리의 대륙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1분간 비행하고 중간의 가까운 대륙에서 내려서 2분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비행을 시작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인지한 탓인지 비행시간을 아껴주는 ‘활강’ 시스템도 생겼고 대부분의 대륙은 공간이동사와 층간 이동사를 통해 단숨에 옮겨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이동은 자기 종족의 요새에 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며, 활강은 오직 ‘내려가는 것’만 가능하다.
결국 장거리 이동을 위해서는 1분 날고 2분 쉬고를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모든 대륙이 공중에 위치하다 보니 잠시의 실수로 추락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단순히 추락에 의한 사망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아이온>에서는 추락사를 할 때도 꼬박꼬박 경험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비행이 가능한 지역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온>에서는 1분 비행 후 2분의 재충전시간이 필요하고 비행을 했거나 활강이 발동될 때마다 10초의 비행 쿨타임이 생긴다.
반면 고도에 상관없이 ‘5초만 떨어지면 무조건 사망처리’가 되기 때문에 비행 후 착지를 잘못했다거나 계단식 지형에서 미끄러져서 자동으로 활강 → 계단 모서리 부분에 착지 → 다시 미끄러졌을 때는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온>은 배경이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어서 다음 대륙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원근감을 느끼기도 어려운 편이다.
배경은 고정이다. 저 대륙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쉽게 감이 오는가?
그나마 자신의 실수로 죽는 것이라면 억울하지는 않겠지만 비행 도중 전투라도 벌어지면 이동속도 저하 스킬 만으로도 황천을 오가게 된다. 여기에 지상에 있는 몬스터는 사정거리 내에 유저가 들어오면 ‘비행시간을 15초씩 깎아버리는 스킬’을 연사 한다.
필자의 경우 추락사로 죽은 횟수가 상대종족에게 맞아 죽은 횟수보다 10배 이상 많을 정도였다. 아직 적응을 못한 탓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저렙 유저에겐 단순히 ‘죽기 쉬운’ 일반 필드
난이도(라고 부르기도 이상하지만)가 이 정도로 높다면 보상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어비스라고 특별히 눈에 띌 만큼 높은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당초 레벨 20 이후 컨텐츠가 부족하다고 말했을 때 엔씨소프트에서는 ‘어비스를 통해 많은 퀘스트와 레벨 업 컨텐츠가 준비돼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재 어비스에 도입된 퀘스트는 레벨 34인 필자를 기준으로 약 35개. 필자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퀘스트를 포함해도 50개를 넘지 못할 듯하다. 레벨 25부터 들어오는 지역인 것을 감안하면 레벨당 약 3~5개 정도의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결정적으로 퀘스트 보상이 약하다. 레벨 33 퀘스트의 보상으로 가장 많이 얻은 경험치가 대략 10만이었다. 레벨 34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가 약 1,100만이니까 어비스 퀘스트 하나를 해결해도 1%의 경험치를 얻는 셈이다.
결론은 퀘스트를 다 해도 5%의 경험치를 얻으면 다행이다.
부가적으로 얻는 어비스 포인트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레벨 30의 몬스터 한 마리를 잡으면 8, 어비스 퀘스트를 해결하면 100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데, 30 레벨을 위한 전승아이템 하나를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7만 포인트다. 방어구만 맞추려고 해도 22만 정도의 어비스 포인트가 소모된다. 심지어 희귀아이템으로 맞추려 해도 한 부위(?)에 2만 이상의 포인트를 내야한다.
전문적으로 PvP를 노리는 유저가 아니라면 습득하기 전에 다음 아이템의 요구 레벨에 먼저 도달할 포인트 요구량이다.
그나마 일반 필드에 비해 경험치를 많이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족한 퀘스트와 불편한 이동, 위험까지 감수하고도 남을 양은 아니다. 남는 것은 요새전뿐인데 각 요새를 지키는 NPC들이 ‘최소 40 레벨 정예’인 까닭에 낮은 레벨의 유저는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저레벨 유저에게 어비스는 ‘그저 눈요기 삼아 찾아오는 곳’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로 어비스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지금도 레벨 25~28 유저의 대다수는 어비스가 아닌 모르헤임에 있었다.
이왕 출입 레벨을 25로 맞춰놨으면 ‘저 레벨 유저만으로도 침공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요새’나 어비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컨텐츠를 한두 개 정도 마련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새전은 상위 5%만 즐기는 컨텐츠?
레벨 문제로 아직 진행된 적은 없지만 ‘레기온 단위로 이득을 얻고 지정된 시간에만 진행되는’ 요새전 역시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다.
요새야 말로 어비스 업데이트에서 제일 난감한 부분이다.
종족 전쟁이 모토인 <아이온>에서 특정 레기온이 이득을 독점한다면 레기온에 들지 않은 유저나 다른 레기온의 경우 요새를 지켜야 할 직접적인 이유가 사라진다.
게다가 자기 종족의 요새가 늘어나면 오히려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이니 일반 유저들은 차라리 ‘자기 편에 요새가 하나도 없는 쪽’이 나은 것이다. 이득이라 해봐야 요새를 얻은 종족은 해당 지역으로 조금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요새를 점령할수록 요새를 얻은 레기온만 이득을 보고(세금) 다른 유저들은 오히려 피해를 보는(물가) 요상한 시스템 속에서 누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같은 종족의 요새를 지켜줄지는 의문이다.
요새전도 2시간의 제한된 시간 동안 이뤄지는 만큼 세력이 약한 레기온으로 기습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가다 보면 숫자가 적은 레기온과 레기온이 없는 유저들은 아예 요새를 구경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 요새전이 없는 시간에는 단순한 ‘일반 필드’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죽어라 지켜봐야 오히려 물가가 오를 뿐이고, 이득은 정작 요새를 가진 레기온에서 다 가져간다. 뭡니까 이거?
결국 지금의 어비스 요새전은 기존의 <리니지>시리즈에서 보여준 ‘상위 5%만을 위한 공성전’을 그대로 구현한 셈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2시간 단위로 전투가능과 불가능이 교차하는 기존의 기획이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조용한 어비스, 시끄러워질 수 있을까?
아직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컨텐츠에 대해 너무 악평만 늘어놓은 듯하지만 실제로 지금 어비스의 분위기는 ‘이게 전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썰렁하다.
대부분의 유저는 새로운 맵을 구경하는 심정으로 퀘스트 몇 가지를 수행한 채 일반 필드에서 레벨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레벨 30 중반의 유저들 역시 ‘레벨업 할 장소가 마땅찮아서 어비스에 눌러앉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씩 벌어지는 전쟁 역시 오히려 시즌2에서 보여준 시공의 균열을 이용한 전쟁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일단 이동부터가 불편하고 위험(…)하니 말이다.
차라리 일반 맵 하나를 추가시키고 시공의 균열을 24시간 열어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껏 관심을 끌었던 요새전과 관련된 컨텐츠 역시 일반적인 유저들이 즐기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그것 조차도 레벨업 속도가 끔찍하게 더딘 시즌3 테스트 기간 내로 끝낼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필자가 FFT(프렌즈&패밀리 테스트)까지 총 4 번의 테스트를 겪으며 느끼고, 또 언제나 말해온 사항이지만 개발사에게 유저는 ‘물리치고 괴롭혀야 할 적’이 아니다. 게임을 무작정 쉽게 만드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금의 <아이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곳에서 난이도를 올리고 유저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비행을 모토로 한다는 어비스에서 비행시간이 1분으로 고정돼 있었으며, 몬스터마다 사정거리에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비행게이지를 1/4씩 깎는 스킬을 써서 플레이어를 단번에 죽이는 것은 어떤 목적으로 도입한 시스템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개 당시만해도 공중전투와 데바니온 미스트 등을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으로 유저들을 들뜨게 만들었던 요새전은 정작 특정 레기온이 아니면 참가하기도 어려울 법한 구조로 설계돼 있었고 어비스에서 나온다는 컨텐츠 역시 유저들의 기대치에는 한참 못 미쳤다.
필자의 예상과 판단이 틀렸기를 바란다.
물론 지금 필자의 판단은 매우 이른 것이다. 필자 역시 갓 레벨 35를 넘은 유저일 뿐이고 요새전은커녕 어비스의 아티팩트 하나 점령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비스의 반응은 필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날 수도 있고, 비행의 불편함 역시 금새 적응될지도 모른다.
어비스에 국한된 글이라서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아이온>은 시즌2 테스트에서 지적된 직업별 밸런스와 단조로운 스킬을 개선하기 위해 시즌3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스킬을 수정·추가 했을 만큼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비스 역시 유저들의 지속적인 피드백만 있다면 충분히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비스 체험 3일째에 필자가 느끼는 평가는 ‘아직 멀었다’였다. 최소한 요새전을 제외한 문제만이라도 고쳐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동안 <아이온>은 유저들의 불만이 이어질 때마다 ‘모든 것은 어비스를 위함이다’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 그리고 유저들 역시 어비스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보다 멋지고 뛰어난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졸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