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소리를 듣는 게임 개발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중의 한 명인 ‘윌 라이트’(Will Wright)가 최근 신작 패키지 게임을 선보여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 게임은 바로 <스포어>(Spore). 발매 전부터 최고의 기대작 대접을 받았고, 출시 이후에는 15일만에 1백만 장이 넘게 판매된 바로 그 게임이다. 과연 <스포어>는 그 이름값 그대로 ‘최고의 게임’ 이었을까? 지금부터 살펴보자. /디스이즈게임 필진 Bstorm
대체 어떤 게임인가? |
<스포어>는 제목만 들으면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기존의 게임과는 다를 것 같은 느낌 역시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생소한 소재다. (※ 참고로 ‘Spore’는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포자, 홀씨, 종자 같은 뜻이다.)
<스포어>는 유저가 하나의 생명체를 세포 단계에서부터 생물(크리처), 부족, 문명, 그리고 우주개발 단계까지 성장시키고, 그 진화를 컨트롤(?)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단순하게 설명만 들으면 어째 범우주적(?) 스케일의 <심즈> 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정말 게임에서 구현하는 게 가능한 거야?”라고 혀를 찰만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스포어>는 생물의 성장과 진화과정을 5단계로 압축하고, 최대한 간단하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포장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쉬운지 간단한 예를 들자면, 고스톱 외에 게임이라고는 문외한인 필자의 어머니도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금새 게임에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마 신이 있어서 이 게임을 해봤다면 윌 라이트에게 “창조와 진화가 그렇게 간단하게 보이더냐?”라고 말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광활한 스케일의 게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속을 살펴보면 굉장히 간단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Xbox360용 게임 처럼 다양한 달성목표가 준비 되어 있다.
세포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5단계
다시 말하지만 <스포어>는 ‘세포단계’, ‘크리처 단계’, ‘부족 단계’, ‘문명 단계’, ‘우주 단계’의 5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크리처를 진화시키는 게임이다. 각각의 파트는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유저들은 순서대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플레이 하면 된다.
첫 플레이에서는 반드시 ‘세포 단계’부터 시작해서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지만, 만약 특정 단계를 클리어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면, 이후에는 전 단계를 건너 뛰고 바로 원하는 단계부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눈 2개와 촉수(?) 1개로 시작하는 세포단계. 정말 간단한 진행방식을 보여준다.
1단계인 ‘세포’ 단계는 정말 간단한 진행을 보여준다. 유저들은 바다에 널려 있는 ‘먹을 것’을 마우스 클릭으로 집어 먹으면서 자신의 크리처를 성장 시킬 수 있는데, 일정량 이상 먹으면 몸집이 커져서 자연스럽게 다음의 ‘크리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식물성 먹이를 그냥 집어 먹든, 아니면 다른 세포를 공격해 죽이고 그 고기를 먹든, 그것은 철저히 유저의 자유다. 세포의 조종은 마우스 하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고, 아무리 오래 걸려도 플레이 타임은 30분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짧다.
본격적으로 육상 생활을 하는 ‘크리처’ 단계.
세포를 일정수준 이상 성장시키면 ‘다리가 달린’ 크리처 단계에 돌입한다. (다리가 2개가 되었든 4개가 되었든, 10개가 되었든 그 것은 어디까지나 유저의 마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른 종(種)의 크리처들과 경쟁을 해서 자신의 크리처를 진화시켜야 한다.
유저들은 흡사 로봇의 부품을 얻듯 크리처의 기관(눈, 날개, 입, 손 등)을 다른 크리처들로부터 얻어야 한다. 서로 친구가 되어 평화적으로 얻거나, 혹은 죽여서 얻거나, 아니면 그냥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기관을 우연찮게 얻거나,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이렇게 각종 기관을 붙여 크리처를 진화시키다 보면 세 번째 ‘부족’ 단계에 들어선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 되어 버리는 3단계 ‘부족’ 단계와 4단계 '문명' 단계.
부족단계에 들어서면 게임이 갑자기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형태로 바뀐다. 유저들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듯 건물을 짓고, 자신의 크리처를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부족을 복종시키거나 친구가 되는 방식으로 열심히 세력을 확장시키다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네 번째 ‘문명’ 단계는 부족 단계의 확장 버전이다. 크리처는 직접 싸우지 않으며, 유저들은 대신 ‘지상 유닛’, ‘공중 유닛’ 같은 병기를 사용해서 다른 문명과 경쟁하게 된다. 물론 폭력적인 것이 싫다면 돈으로 다른 문명의 도시를 구입하거나 종교의 힘으로 장악하면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이런 식으로 행성의 모든 세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마지막 ‘우주’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무대는 우주로….
<스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우주 단계에 들어서면 게임은 다시 ‘어드벤처’ 게임으로 변한다. 유저들은 우주선의 선장이 되어 이 행성 저 행성을 떠돌아 다니면서 은하계 중심을 향해 모험을 떠나야 한다.
우주에는 외계문명이 존재한다. 이들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그들의 도움을 들어줘 아군으로 만들든, 아니면 한바탕 즐거운 싸움 놀이(?)를 즐기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유저들 몫. 우주는 광활하고 각종 다양한 퀘스트와 이벤트는 무수히 많이 기다리고 있다.
스포어를 빛나게 하는 크리처 생성기와 에디터
<스포어>에서 가장 빛나는 점을 꼽으라면 역시 ‘에디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스포어>는 세포 단계에서부터 강력한 기능의 에디터를 지원하며, 유저들은 무한한 개성의 크리처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
에디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라도 클릭 몇 번의 간단한 조작으로 얼마든지 자신만의 크리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획기적이다. EA가 <스포어>의 정식 출시에 앞서 에디터만 별도로 저가에 판매를 했을 정도니까 더 이상 칭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단한 조작으로 다양한 크리처를 만들 수 있다.
각종 탈것과 건물도 클릭 몇 번이면 디자인 할 수 있다.
<스포어>는 크리처 뿐 아니라, 부족 단계와 문명 단계에 등장하는 크리처의 복장과 건물들. 그리고 우주 단계에 등장하는 우주선까지. 거의 모든 것들을 유저가 직접 만들고, 꾸밀 수 있다. 유저의 취향에 따라서는 본 게임보다 에디터 기능을 사용하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만약 일일이 모든 것을 에디팅 하기가 귀찮고 싫다면 미리 만들어진 샘플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결정적으로 <스포어>가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창작물을 인터넷(스포어피디아)를 통해 다른 유저와 공유하거나, 반대로 다른 유저의 창작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가히 ‘UCC 게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크리처를 다른 유저와 공유할 수 있는 ‘스포어피디아’. 만약 직접 크리처를 만드는 것이 귀찮다면 이를 통해 클릭 몇 번으로 마음에 드는 크리처를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자신의 크리처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유저의 게임 속에 랜덤으로 우정 출연(?) 할 수 있다. 스포어피디아를 통하면 자신의 크리처가 다른 유저의 게임 속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부담없이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게임 |
<스포어>는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생소한 진행과, 독특한 요소들로 중무장 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깊이’가 굉장히 얕고 그 밑바닥이 순식간에 드러난다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오래 즐기기 힘들다고 할까?
그나마 즐길 거리가 많은 우주 단계.
나머지 단계는 미니 게임 이상의 게임성을 찾기가 힘들다.
우선 5가지 단계는 저마다 독립된 게임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을 차근차근 살펴 보면 하나 하나가 미니게임 수준의 컨텐츠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세포 단계는 정말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플레이 한다고 해도 30분이면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짧다. 부족 단계와 문명 단계 역시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간단하고, 물량공세 한번이면 너무나도 손 쉽게 클리어 할 수 있다.
그나마 ‘크리처’ 단계와 ‘우주’ 단계는 제법 진행방식이 독특하고 이것저것 실험해볼 거리가 많은 편이지만, 그래 봐야 요령을 한 번 익히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할 수 있다.
게임 초반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크리처 꾸미기’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그저 ‘외형을 꾸미는 것’ 이외에 어떠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
가령 초반에 자신의 크리처에 날개를 달아준다면 부족 단계나 문명 단계에서 무언가 공중 유닛 생산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냥 외형상으로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이 전부일 뿐으로, 이후 게임 진행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반에 플레이한 성향(가령 공격적으로 다른 크리처를 정복했느냐, 아니면 평화적으로 대했느냐)가 후반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느냐 하면 이 역시 아니다. 그저 몇 가지 스킬이 달라지는 정도로 그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
때문에 한 번 게임을 플레이 하면 다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게 너무나도 귀찮아진다. 플레이 타임도 짧은 데 두 번 이상 게임을 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한 번 클리어 하면 이후 또 다시 즐기고 싶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게임 마니아’인 필자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열광적으로 즐기는 것 보다는 가볍게 즐기는 소위 ‘라이트 유저’ 들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스포어>라는 게임은 분명 복잡하지 않고 쉽다. 유저가 직접 꾸밀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잠깐 잠깐 가볍게 즐기기에 적합한 레고블록 장난감 같은 게임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범우주적 규모의 <심즈> 같은 거대한 시뮬레이션, 또 다른 천재 개발자인 시드마이어의 <문명> 같은 게임을 원했던 유저, 올해가 끝날 때까지 푹 빠져서 즐기고 싶었던 유저에게 <스포어>는 ‘1개의 잘 만든 에디터와, 재미있는 미니게임 5개의 합본팩’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