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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NDC 16] “개발자로서 로망이 있나요?” 1인 개발자 한대훈 대표의 개발 일지

송예원(꼼신) 2016-04-27 21:39:07

"게임 개발에 로망이 있나요?"

 

<스매싱 더 배틀>의 개발자 한대훈 스튜디오HG 대표가 개발자들에게 물었다. 한대훈,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의 '한군'으로 알려진 그는 최근 1인 개발자로 유명하다. 아트 디자이너였던 그는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게임을 만들었고, 론칭도 했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VR 버전으로 말이다. 

 

그는 지난 1년을 '고통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27일 NDC 16에서 한대훈 대표가 공개한 지난 1년간의 개발일지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 CHAPTER1. 개발의 시작

 

이야기의 시작은 퇴사다. 시작이 되려면 파괴가 있어야 한다.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쉬다 보니 생산적이 일을 하고 싶어졌다. 퇴직금 포함 3개월의 여유가 생겼다. 개발기간 3개월? 결심했다. '모바일로 웨이브방식의 심플한 액션게임을 만들자. 그리고 폼나게 무료로 풀어야지!'

 

액션 장르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아티스트라서 캐릭터가 돋보이는 게 좋았다. 또 누군가를 때리고 쏘는 액션 그 자체가 유저에게 큰 재미를 준다고 생각했다. 

 

아티스트라 프로그램을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튜토리얼 책만 믿고 시작했다. (정말 완벽한 책자였다.) 시작하자마자 튜토리얼 책으로는 정상적인 액션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쯤 됐을 땐 이미 뒤돌아갈 수 없었다. 주변에 너무 자랑을 많이 해서.

 

취미로 하는 게임 개발은 조별과제처럼 되기 쉽다. 처음에는 신나게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일단 혼자 시작했다. 더불어 40대에 대한 고민도 프로그래밍을 배워가며 혼자 게임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도 안 써주면 혼자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개발 스킬 제테크랄까.

 


 


 

​ CHAPTER2. 게임 콘셉트 설정

 

게임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삐뚤어진 게임'이다. 

 

대세를 벗어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판타지가 대세라고 하니까 SF를 만들고 싶었다. 자동전투가 대세라고 하니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섹시한 게임이 대세야? 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결심했다. '대기업에 못하는 수준까지 섹슈얼해져야지!' (덕분에 초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코딩을 공부하면서 90% 이상 직접 구현했다. 유니티 엔진을 사용하면서도 애셋 스토어를 안 쓴, 아니 '못쓴' 이유는 단순했다. 내 코드도 제대로 못 짜는데 남의 코드를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맨땅의 헤딩 격으로 두 달 만에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막상 기본 전투 구현을 마치고 나니 본격적으로 게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좋은 액션게임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 게임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레퍼런스가 많은 건 오히려 독이 됐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뭐지?' 

 

콘셉트1) 이야기가 있는 게임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리스트로 작성해봤다. <바이오쇼크>, <배요네타>, <캐서린>, <시티헌터>, <드래곤볼>… 공통점은 바로 '이야기'였다.

 

플레이 후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는 스토리가 첫 번째 콘셉트였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강제 진압 현장을 보게 됐다. 이러한 현실의 사건이 스토리의 큰 뼈대가 돼주었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회의 숨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콘셉트2) 컨트롤 게임이면 컨트롤이 필요한 디자인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이라는 게임을 보며 근접 전투가 가능한 슈팅게임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게 '액션+탄막슈팅'을 찾게 됐다. 빗발치는 적의 공격 속에서 근접 액션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과거 아케이드게임과 같은 기믹을 넣었다. 조작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말이다. 

 

콘셉트3) 수많은 적과 싸우는 전투

 

만들어 놓고 보니 장점이 있었다. 적의 수가 많다 보니 화면이 꽉 차보이는 비주얼적인 효과가 있었다. 한 번에 한 번만 휘둘러도 여러명을 때려 잡을 수 있어 평타만 사용해도 호쾌한 플레이도 가능해졌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문제도 있었다. 적이 모이지 않아 한 마리씩 때려야 했다. AI를 만들어봤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바보 같았다. 

 

그래서 넣은 것이 바로 '마그넷'이라는 스킬이었다. 쉽게 말해 자석으로 적을 끌어 모으는 방식이다. 마그넷과 각 캐릭터가 가진 스킬을 조합한 '스킬연계'는 <스매싱 더 배틀> 전투의 핵심이 됐다. 

 


 


   

■ CHAPTER 3. 시련

 

AI뿐이랴. 여느 게임이 그러하듯 시련이 찾아왔다. 

 

첫 번째 시련은 버그다. 작업기간이 늘어날 수록 버그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3개월 정도는 날려도 괜찮았다. 그런데 개발기간이 6~7개월을 넘어가자 슬슬 버그가 무서워졌다. AI쪽 버그는 출시를 못할만한 민감한 문제를 일으켰기에 그 공포감은 어마어마했다. 

 

두 번째 시련은 돈이었다. 초기 3개월에서 1년으로 개발 기간이 늘었다. 퇴직금 기반의 예산은 바닥났고, 자금적으로 여유가 많이 사라졌다. 집안일을 더더욱 열심히 하게 됐다.

 

세번째 시련은 수익창출에 대한 고민이다. 늘어난 개발기간으로 수익을 안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 호기롭게 말했던 무료 배포는 어불성설. 결국 유료게임으로 변경했다. 사실 혼자서 모바일 액션게임의 기본적인 BM을 흉내내는 게 무리였다. 자동전투+아이템파밍+육성? 에휴...

 


SNS에 모든 개발 정보를 공유했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지금에서는 홍보가 아니었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그건 아니었다. 나 자신에 대한 배수의 진이었으니까. 무엇보다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게임에 실패해도 의미는 있었어" 일종의 정신승리랄까. 

 

CHAPTER 4. 창업

 

자금도 바닥난 마당에 왜 끝까지 1인 개발을 고집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솔직히 창업의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로 계약서 시도도 해봤다. 

 

UI가 붙고, 한 텀정도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무사히 게임의 기본형태가 나왔을 무렵 친구가 속삭였다. "이걸 프로토타입 삼아 투자 받자!" 맞다. 자금도 바닥났고 혼자 버티기 힘들었다. 앞에서 언급한 시련들로 멘탈이 많이 망가져있는 상태였다. 친구들과 창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투자자를 만났다. 

 

흔한 투자자의 피드백.jpg

  

하지만 피드백은 냉혹했다. 차별화를 두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모두 나쁜 피드백을 받은 것이다. 고민 끝에 새로운 빌드를 만들었다. 컨트롤 대신 자동전투도 넣었고, 선정적인 부분은 절제했다. 판타지… 뭐 이건 어쩔 수 없었고. 

 

결과는? "게임에 특징이 없네요", "다른 게임과 똑같네요" 말 그대로 망연자실이었다. 물론 이해는 갔다. 큰 돈을 투자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화가 났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소년만화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들었다.

 

창업은 그렇게 엎어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게임은 내가 그리던 모습 그대로 완성을 반드시 해내리라고.

 

투자자 피드백을 받은 빌드의 모습.jpg (그 빌드는모두 폐기했다)
 

 

■ CHAPTER5 아트디렉팅

 

그림쟁이 출신이지만 게임을 만들다보니 오히려 그래픽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손이 빠르기로 이름났지만, 그래픽에는 거의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투자한 시간의 비중을 따지면 20%정도? 그러던 와중에 그래픽도 고민하는 계기가 있었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BUSAN INDIE CONNECT FESTIVAL, 이하 BIC)의 초대였다. 

 

혼자서 만들기만 했던 내게 BIC는 좋은 홍보의 기회였다. 일반인들에게 피드백을 얻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참가를 결심했다. 문제는 전시 레퍼런스 폰이 갤럭시 노트2였다. 아무리 그래픽에 신경을 못쓰고 있다 하더라도 50프레임 이하로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일반 개발자라면 코딩으로 극복하겠지. 하지만 내 능력 밖이었다. 그래서 그래픽, 있는 기술이나 잘 쓰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기본은 '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SPECUALAR'와 'MATCAP'을 활용해 어떻게든 빛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빛을 넣으면 그 부분이 적당히 반짝거리며 예뻐 보인다. 물론 일반 유저들은 쉽게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모바일에서는 작게 보인다. 고퀄리티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기술이다. 이는 원화를 만들 때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였다. MATCAP을 활용해 캐릭터 끝부분만 하이라이트를 넣어 빛이 들어온 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화면이 역동적이기 보이게 하기위해 포인트 라이트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아무리 격전이 일어나도 50프레임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아무것도 안 쓰면 된다. 대신 텍스쳐는 예쁘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이다. 

 


 

UI의 경우 최대한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도록 제작하고 연출했다. 대표적으로 메인 화면이다. 메인 화면부터 바스트 모핑이 넣었는데, 호든 불호든 타이틀 화면에서부터 어떤 반응이든 일어나길 원했다.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놀라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반응이 바로 나온다. 

 

주요 캐릭터는 전부 안경을 넣었다. 혹자는 안경성애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솔직히 난 2D는 안경 쓴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좋아하는 게임 <배요네타>의 오마주다. <배요네타>의 모든 캐릭터는 안경을 쓰고 있다. 디렉터가 지우라고 해도 AD의 고집으로 그렇게 설정됐다. 그런 독특한 정신을 게임에 넣고 싶었다. 

 


 

고전게임의 보너스 요소를 넣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게임 내 콘셉트 아트나, 비밀 같은 것. 이른바 '오마케' 말이다. 하지만 그려놓은 콘셉트 아트가 없었다. 그리는 것들이 모두 인게임에 활용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팬 아트였다. 게임도 안 나왔는데 무턱대고 팬 아트를 받은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 

 

그런데 한 분이 지르셨다. 엄청난 고퀄리티의 아트를 보내줬다. 오히려 그려주려던 사람들이 떠날까 걱정들 정도로. 다행히 오히려 고퀄리티의 그림들이 계속 왔다. 무슨 경쟁처럼 됐다. 어떤 분은 새로 그리겠다고도 했다.(기쁘기도 했지만.... 멈췄으면 좋겠다) 팬 아트 영역을 넘어선 게 아닌가 생각된다. 국내외 아티스트의 37개 작품을 모았다. 정말 감사하다.

 

문제의 첫 팬 아트

  


그리고
 


마침내!


■ CHAPTER 6. 오큘러스의 시작

 

이렇게 줄곧 모바일에 집중해 왔지만 정작 게임 출시는 오큘러스 플랫폼에서 시작됐다. 계기는 단순하다. BIC에서 만난 한 오큘러스 담당자의 제안, "VR게임으로 안 만들어보실래요?" 

 

그냥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VR 데모를 만들었던 거다. UI도 제대로 작동 안하는 데모였다. 만들면서 VR 3인칭 액션 아케이드 게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히려 <스매싱더 배틀>이라는 게임의 완성판을 본 기분이 들었다. 캐릭터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큰 축복이었다. 

 

더구나 가상패드가 아닌 '컨트롤러'가 있었다. 컨트롤을 내세운 게임인 만큼 모바일 환경에서 가상패드로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조작은 정말 <스매싱 더 배틀>에 맞는 플랫폼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가장 중요한건 VR 개발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있었다. 모바일 버전은 완성을 목표로 그냥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VR만들면서 너무 재미있었다. 그냥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꼭 완성판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 CHAPTER 7. VR 버전 출시 준비

 

3월 28일 오큘러스 스토어가 론칭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리아에서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본사에서 반응이 좋으니 론칭 타이틀에 도전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게임을 만들며 많은 칭찬을 들어서 무덤덤해졌는데, 이 이야기는 어째서인지 귀가 솔깃해졌다. 

 

사실 그 때 당시만해도 게임은 아직 아쉬움이 많은 상태였다. 기획했던 보스전은 구현도 안됐고, 보너스 스테이지도 없었다. 추가 게임 모드도 기획해 놓은 게 있었는데 시작도 못했다. 

 

3월 28일, 혼자 개발을 시작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개발자로서 플랫폼 론칭 타이틀이라는 점이 어떤 도전과제처럼 받아들여졌다. 홍보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큘러스 버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완성을 위해서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고 취해야 할 것들을 정한 후 폴리싱을 시작했다. 

 


 

VR 버전 폴리싱 포인트는 UI/UX와 멀미현상이었다. 

 

오큘러스에서는 X-Box 패드를 기본으로 모든 UI가 작동하도록 조작 네비게이션을 만들어야 했다. NGUI를 사용했는데, NGUI는 패드 조작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재작업이 필요했다. UI를 3D 공간에 올려야 한는데, UI 카메라와 게임 카메라를 따로 사용하면 초점이 안 맞는 문제가 발생했다. 카메라를 하나로 해서 그 안에 UI를 올리도록 수정했다. 

 

많은 개발자 강연에서 3인칭으로 만들면 멀미를 줄일 수 있다고 했는데 경험상 의문점이 있었다. <럭키스 테일>은 3인칭이어도 멀미가 심했고, <불릿트레인>은 1인칭인데도 멀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VR 게임의 멀미를 잡기 위해서는 카메라뿐만 아니라 연출과 게임 디자인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택한 방법은 포지셔널 트래킹이다. 쉽게 말해 뒤로 움직이는 값들이 실제 세팅 값보다 더 많이 움직이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캐릭터가 훅 가까워 보이게끔 과장된 움직임을 적용해 헤드 자체를 많이 움직이지 않고 조작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게임 카메라가 캐릭터를 직선으로 따라가도록 설정했다. 이게 조금 지연되면 멀미가 나기 십상이다. 

 


 

개발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큘러스 '론칭 타이틀'로 진입하기 위한 심사과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가 알파 버전 마감일까지 3주가 남은 시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노출'이었다. 최근 북미쪽에서는 민감한 이슈이기도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로컬라이즈였다. 사실 당시 스토리는 에피소드 1까지만 작업이 된 상태였는데, 3주 만에 에피소드2를 스토리를 작성하고, 코딩작업&번역용 문서를 작성해서 번역가를 섭외하고, 작업하고, 데이터 적용까지 마쳐야만 하는 상황. 미친듯한 일정을 기어코 해냈다. 그러나 오큘러스의 피드백,

 

 

다소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이 문제는 다행히 오큘러스 론칭 타이틀이어서 해결됐다. 오큘러스는 게임의 품질을 중요하게 여겼고, 직접 로컬라이징 작업을 맡아준 것이다. 영어, 독일어 등 완벽하게 지원해줬다. 무난히 3개월의 Q/A에 들어갔고, 못고치는 버그가 조마조마했던 우려와 달리 본사의 반응은 좋았다. 

 

개발자로서 가진 꿈 중 하나가 게임 전시회에 내가 만든 게임이 걸리고 그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오큘러스 미디어 데이에 초청되고, GDC 전시까지 확정됐다. 꿈을 이룬 것이다. 개발을 하면서 무너졌던 멘탈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3월 28일 드디어 <스매싱 더 배틀>이 출시됐다. 

 


 

 

​ CHAPTER 8. 게임 출시

 

온라인게임이 아닌 싱글게임이고, 오큘러스 Q/A도 '빡세게'해서 인지 큰 문제 없이 게임이 문제 없이 서비스되고 있다. 솔직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만약 대형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팀장이 VR 게임을 만들자고 한다? 적극적으로 뜯어 말려야 한다. 그나마 1인 개발이기 때문에 버티는 것 같다. 

 

오큘러스 Q/A 통과를 위한 3개월 간 미친 스케줄을 보냈고, 당연하지만 번아웃 상태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달성했다는 사실과, 스스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만족한다. 

 


 

 

​ CHAPTER 9. 1인 개발 그리고 로망

 

1인 개발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만드는 동안 즐거우셨나요?" 그렇다고 답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개발기간이 늘어나며 생기는 부담감은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첫 프로그래밍인 만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실패했을 경우 쏟아질 악담도 두려웠다. 혼자 개발했던 건 언제든지 포기하기 위함도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해야 하는 게 게임 개발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PS 버전이 출시가 발표된 SCEK 컨퍼런스 날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멘붕'이 왔다. 많은 업체에서 게임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기사화 됐다. 그 때 깨달았다. '그렇지.. 보도자료도 내가 보내야 하는 거였지' 그때 느낀 공포는 내가 사랑하는 내 게임이 소리소문도 없이 묻힐 것 같은 기분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개발해 왔다. 

 

흔한 1인 개발자의 속마음.jpg
  

하지만 개발자로서 쉽게 겪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한 것은 분명하다. 첫 프로그래밍으로 게임을 출시했다. VR 원년의 론칭 타이틀도 됐다. 또 다시 아티스트로 돌아왔다. 

 

사실 경력이 쌓일 수록 점점 더 아트에서 멀어지고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 왔다. 어설프레나마 테크니컬 아티스트란 직함이 붙었지만 '내가 진짜 TA인가?' 라는 고민이 있었다. 코딩을 배우면 아트에서 멀어질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프로그래밍을 배움으로써 다시 아티스트가 됐다. 

 

안심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 모두 만족한다. 돈을 많이 버냐고,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로망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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