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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16] "이것은 재미있어선 안 되는 게임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 개발기

NDC 16 <디스 워 오브 마인> 관련 강연 정리

김승현(다미롱) 2016-04-28 22:09:20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게임이었다. 각국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 출시된 이 게임은, 기존의 전쟁 게임과 달리 '민간인'의 시점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그려 평단을 매혹시켰다.

 

특히 게임이 유저에게 계속 물은 '도덕과 생존'에 대한 딜레마는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개발사 11 비트 스튜디오는 이런 구조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NDC 16에서 있었던 강연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유고슬라비아 내전 생존자의 수기로부터 비롯됐다. 이 처절함에 마음이 사로잡힌 '그레체고로츠' 대표는 스튜디오의 기획자들을 모아놓고 이를 주제로 게임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전쟁 속 민간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게임이었다.

 

기획자들은 대표가 가져온 소재에 매혹됐다. 어떤 기획자들은 하고 있던 프로젝트도 중단하고 여기에 합류할 정도였다. 그 때 느낀 감정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섣불리 게임의 기믹을 떠올리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복잡한 게임일수록, 메시지의 전달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먼저 게임의 핵심 메시지와 콘셉트부터 명확화하기로 결정했다. 개발 내내 기준 삼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개발자들은 '전쟁터'라는 배경과 '민간인'이라는 소재에 집중했다. 전쟁터는 살아남기 위한 모든 것이 부족한 장소다. 그리고 민간인은 전쟁터에선 한 없이 연약하기만 한 이들이다.

 

생존, 이를 위한 도덕적 딜레마, 이 속에서 생기는 감정적인 동요, 전쟁의 참혹함….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전해야 할 핵심적인 메시지가 이 때 정해졌다.

 

이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많은 기획이 잘려 나갔다. 다른 게임에 있는 복잡한 장비 창이나 성장 요소 등은 '유저가 다른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라는 이유만으로 사라지고, 또 간략화 되었다. 어떤 부분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게임'의 문법을 일부러 어기기도 하였다.

 


 

 

■ "이 이야기는 재미 있어선 안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미'였다. 일반적으로 재미는 게임의 가장 큰 가치로 취급 받는다. 그래픽이 나쁘거나 버그가 많은 게임이 성공할 순 있어도, 재미가 없는 게임은 성공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재미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전쟁의 참혹함', '생존과 도덕의 딜레마'는 결코 즐길 수 없는 소재였다. 개발진은 고민 끝에 '재미'를 포기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즐거움'을 포기한 셈이다. 11 비트 스튜디오의 '도브스키' 리드 디자이너는 이를 영화나 소설에 빗대어 설명했다. 

 

"사실 평소 우리가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들은 모두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시장에는 비극적인 영화나 소설도 충분히 많이 있고, 우리는 이를 보고 감정적인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충분히 가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게임이라고 왜 이게 안될까요?"

 

 

즐거움을 포기하니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 영구적인 죽음이 대표적이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유저의 선택에 따라 캐릭터가 죽을 수 있는 게임이다. 캐릭터의 죽음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개발진은 처음에 이 장치가 유저에게 너무 많은 상실감을 주진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위해 게임의 즐거움까지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영구적인 죽음' 또한 그대로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상실, 죽음이 주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유저에게 더 큰 인상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딱 전쟁만 그리자. 우리는 몰랐던 전쟁을….

 

게임의 메시지가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유저들이 게임 속 세계와 캐릭터들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개발진은 <디스 워 오브 마인>을 개발하며 현실성에 최대한 신경썼다.

 

게임 속 캐릭터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이것들은 개발진을 아무런 보정이나 연출 없이 찍은 사진이다. 때문에 어떤 사진은 깎지 않은 수염이 그대로 노출돼기도 하고, 어떤 사진은 아예 눈이 감겨 있기도 하다. 아티스트 '쉐믹 마르사유'는 이런 예를 보여주며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보여줘 유저들이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랬다"고 설명했다. 

 


 

또한 개발진은 실감나는 전쟁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2차대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 다녔다. 폭격으로 수도와 전기가 끊어진 도시, 낮에는 저격수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는 폐허 등등 <디스 워 오브 마인>의 묘사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나왔다.

 

개발진이 특히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일반인들과 생존자들이 전쟁에 대해 가지는 '시간 관념' 차이였다. 우리는 보통 전쟁을 단편적인 사건이나 장면으로 기억을 한다. 우리가 전쟁을 접하는 영화나 소설, 게임 등이 전쟁의 단면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전쟁은 다르다. 생존자들은 실제로 전쟁터 속에서 몇 개월, 몇 년을 보낸 사람들이다. 개발진이 만난 한 소녀는 지금도 폭탄 소리만 들어도 그게 어떤 폭탄인지, 도시 어디쯤에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시간들이 전쟁 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이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살리기 위해, 전쟁 전부터 전쟁이 끝났을 때까지의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 했다. 

 

예를 들어 모든 캐릭터는 '바이오'를 통해 전쟁 전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 어떤 생각을 꿈꿨는지 나타나고, 바이오 같은 별도 메뉴가 아니더라도 게임 중 수시로 대화나 독백으로 자신의 현 상황을 이야기한다. 또한 엔딩에서는 캐릭터가 그간 행한 일에 따라, 이후 그거 거기서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 유저의 선택을 판단하지 말아라

 

개발진은 이렇게 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어 낸 뒤, 유저에게 던질 질문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네가 하는 결정 중 의미 없는 결정은 없다. 너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유저는 <디스 워 오브 마인>을 하며 수시로 결정을 요구 받는다. 아이들이 병든 엄마를 위해 약품을 나눠달라고 하는 식의 직접적인 결정도 있고, 아지트에 식량이 떨어졌을 때 어디서 어떤 식으로 조달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간접적인 결정도 있다.

 

이 결정들의 특징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걸맞은 대가와 손해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약품을 줬다면 도덕적인 만족감은 얻을 수 있지만, 이 때문에 동료의 병을 치료 못할 수도 있다. 식량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느냐를 결정할 때도, 노부부의 집을 습격하면 안전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얻을 것이고, 부랑자 거처를 뒤지면 캐릭터가 역으로 습격 당할 수 있다.

 


 

개발진은 이런 구조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저의 선택지를 단순화시키는데 집중했다. 유저는 그 덕에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과 손해를 볼 수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야기할 결과도….

 

여기서 개발진이 특히 신경 쓴 것은, 유저의 결정을 '판단'하지 않고 그 결과를 알리는 데만 집중한 것이다. 결과를 판단하는 순간, 그것은 교육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유저에게 공감이 아니라 주입(즉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유저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보여준다면, 그리고 동료나 주변인물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처럼 극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현실처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유저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비로소 자신이 만든 결과를 마주하며 다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결과가 가진 '무게'입니다. 전쟁 속 민간인들이 느꼈을 삶의 무게죠. 이것 때문에 재미가 없어져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 불편함이 우리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니까요. 우리는 게임이 이런 것을 전해도 좋을, 충분히 성숙한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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