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이라면 '불모지'에 가까운 여건. 연간 20조 원을 넘긴 한국 게임시장이라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콘솔게임이 설 자리는 좁다. 그럼에도 그는 게임패드를 잡았을 때의 감각이 살아있는 게임을 개발해서 히트하고 싶었다. <임진록 2+ 조선의 반격>, <거상온라인>, <썬>, <뮤 레전드> 등 굵직한 게임을 만들어왔던 그는 <리틀 데빌 인사이드>의 APD(보조프로듀서)를 거쳐 2021년 7명의 공동창립자들과 '트라이펄게임즈'를 설립했다.
넥슨, 엔씨, 웹젠, 위메이드 등 한국의 주요 게임사에서 경력을 쌓아온 일곱 개발자들은 콘솔과 PC에 대응하는 풀(Full) 3D 액션게임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국내 모바일게임 사용자와 신규 설치가 점차 하락세를 기록하는데, 콘솔게임 시장 규모는 매년 상승하는 모습이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담금질을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맛있게 매운 한국산 콘솔게임" <베다>(V.E.D.A).
'다크소울' 시리즈, <엘든 링> 등 소울라이크 게임이 스팀을 비롯한 마켓에서 반향을 이끄는 모습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작년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3관왕을 했고, 대만의 인디 개발자들이 만든 <티메시아>가 50만 장, 콜드 시메트리(Cold Symmetry)의 <모탈 셸>이 70만 장 이상 판매한 데 주목했다. 두 게임 모두 10여 명 규모의 개발팀이 만들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었다.
두 게임의 높은 판매량을 바탕으로 트라이펄게임즈는 "소울라이크 유저들은 같은 장르 구매에 적극적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즉, 게임만 잘 만들어서 띄우면 글로벌에서 처음 발견되는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수십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베다>의 목표 판매량을 100만 장으로 잡았다.
하지만 소울라이크 게임에는 필연적인 문제가 있었다. 클리어했을 때 성취감은 이루 말할 길 없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 어려움이 너무나 강력해서 많은 유저들이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PSN 유저들에게 기록된 <다크소울 3>의 평균 엔딩 도달율은 23.3%. 작년 출시작 <엘든 링>은 19.8%였다. 게임을 구매해도 엔딩을 보는 유저는 열 명 중 두 사람 꼴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23 플레이엑스포에서 시연된 또 다른 한국형 소울라이크 <더 렐릭>
트라이펄게임즈의 해결책은 '소울라이트'였다.
그러나 '소울라이트'라는 표현은, 얼핏 형용 모순처럼 들린다. 높은 수위의 난이도를 추구하는 소울라이크가 가벼워진다면, 그것은 여타 ARPG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된다. 정만손 대표와 트라이펄게임즈의 목표는 '소울라이크 장르의 입문작 포지션'이다. '소울라이크에 매력을 느껴 해봤으나 너무 어려워서 엔딩을 보지 못하는 유저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를 위해 아이템 파밍, 성장 요소 등을 대거 반영했다.
'공격-방어or패턴 회피'의 기본 구조를 가져가면서, 스태미나 시스템을 통해서 게이지 관리의 묘미를 더했다. <하데스>에서 보여진 입장 전 체크 구간(로비)을 도입해 디자인상 '저장이 되는 부분'을 명확히 가져간다. 언급한 <하데스>에서처럼, <베다>의 '로비'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정비하는 장소다. 1층부터 10층까지 올라가며 가상 전투 공간을 공략한다는 콘셉트.
트라이펄게임즈 정만손 대표
현재 <베다>의 제작은 35% 정도 완료됐다. 2023년 4분기 중 얼리억세스로 출시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스마일게이트 등 국내외 내로라하는 퍼블리셔들과 이미 미팅을 진행했다. <베다>는 플레이엑스포에서도 전시되었는데, 가장 많은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후문. 이들은 아직 퍼블리셔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트라이펄게임즈는 향후 <베다>의 세계관과 어셋을 오픈월드 게임 '프로젝트 B'로 발전시킬 전략을 가지고 있다. 게임이 보여주고자 하는 액션의 핵심을 <베다>를 통해 보여준 뒤, 그 재미가 입증되면 더 다양한 콘텐츠와 전투 기믹이 도입되는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리얼 엔진 5로 게임을 개발 중인데, 새 엔진의 오픈월드 절차생성 툴이 개발에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