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처음으로 LCK에 합류한 '팀 다이나믹스'는, 승격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4승 9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선수가 바로 '리치' 이재원인데요. 그는 자신의 시그니쳐 픽 '아트록스'를 활용해 팀을 승격시키는가 하면, LCK에서도 빼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리치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그가 <히어로즈 오브 스톰>(이하 히오스) e스포츠를 평정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오스>를 통해 e스포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그는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야말로 <히오스>의 전설로 꼽히죠. 과연 리치는 왜 정상의 자리를 벗어나 <리그 오브 레전드>로 오게 된 걸까요? 과연 그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걸까요?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히오스>를 시작한 이재원은 베타 테스트 시절부터 은신 암살자 영웅 '노바'를 활용해 자신의 실력을 뽐냈습니다. 당시 그는 지금의 '리치'가 아닌 '오레오맨'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죠. 기량을 인정받은 이재원은 2015년 개최된 '히어로즈 빅 리그'를 통해 <히오스> e스포츠에 발을 들여놓게 됐고, 'BJ익곰'팀 소속으로 전승 우승이라는 대업도 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재원은 <히오스> 프로 시절 내내 인성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빠른 대전과 랭크 게임에서 보여준 부적절한 언행이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재원이 특정 성향을 가진 정치 사이트 유저였다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그는 반강제로 팀을 떠나게 됩니다. 이재원은 반성의 의미로 <히오스> e스포츠를 완전히 떠나려 했지만, 주장 'Kinnu' 김병관의 간곡한 설득으로 WCS(World Cybership Champion)까지는 팀에 잔류하게 됩니다.
이후 이재원은 16년 1월, 국내 <히오스> 최강 팀 'MVP 블랙'에 입단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닉네임도 지금의 '리치'로 변경했죠.
그리고 리치는 성숙해진 모습과 함께 자신의 재능을 다시 한번 꽃피웠습니다. 2016년 MVP 블랙은 <히오스> 슈퍼 리그와 파워 리그를 연달아 우승한 뒤, <히오스> 글로벌 챔피언십(이하 HGC) 스프링까지 무실세트로 우승하며 역사를 써 내려갑니다. 하지만 MVP 블랙은 그해 후반기 슈퍼 리그와 글로벌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결국 리치 역시 6개월간 휴식을 선언합니다.
6개월의 짧은 휴식기를 거친 이재원은 다시 MVP 블랙으로 돌아왔는데요. 그는 HGC 한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블리즈컨에서 열린 HGC 글로벌 파이널까지 거머쥐며 또 한번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MVP 블랙은 젠지 이스포츠에 인수된 뒤에도 2018년 5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세계 최강팀의 위용을 자랑했죠.
리치의 <히오스> 커리어를 대표하는 명장면도 바로 이 시기에 나왔습니다. 'HGC 2018 미드 시즌 난투' 디그니타스와의 결승전 경기, 게임은 상대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젠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상대 핵을 점사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미 리치를 제외한 젠지 선수 전원이 사망한 상황인 만큼, 많은 이는 디그니타스의 우승을 직감하고 있었죠. 이때 리치가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그는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할 정도의 적은 HP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질풍참' 스킬을 사용해 상대 핵을 파괴했죠. 결과는 4 대 3, 젠지의 드라마틱한 우승이었습니다.
풀 세트 접전 끝에 패배할 수 있었던 순간, 승패를 가른 리치의 질풍참 (출처: Heros Esports)
이토록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 리치였지만, <히오스> 생활의 마무리는 썩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2018년 말,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히오스> 리그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은 관계자와 팬들이 느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물론 많은 이가 <히오스> 리그의 불안정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리그가 사라질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프로 구단조차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은 배가 됐습니다. 리치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리치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종목 전환을 통해 <리그 오브 레전드>에 도전장을 던진 그는, 젠지 <리그 오브 레전드> 팀 테스트를 통과하며 아카데미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후 리치는 빠르게 1군으로 승격되며 재능을 인정받았죠.
낯선 종목과 새로운 환경.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리치는 젠지의 미드라이너로 활동했지만, 경기력은 썩 좋지 않았는데요. 특히 근접 챔피언만 다룰 수 있다는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남에 따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데뷔전에서 '아트록스'를 활용하며 그리핀을 꺾은 장면은 인상적이었지만, 이 외에는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말았죠.
모든 걸 내려놓을 수도 있는 시기,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택했습니다. 2019년 <히오스> 시절을 포함, 오랜 기간 몸담은 젠지를 벗어나 챌린저스에서 활동하던 '팀 다이나믹스'로 이적한 것입니다. 포지션도 미드에서 탑으로 바꾼 그야말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팀원들과 합을 맞추며 다이나믹스를 LCK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리치의 프로 생활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악마의 재능'이라 불렸던 프로 데뷔 초창기. 세계 최고의 팀과 함께하며 재능을 꽃피웠던 'MVP Black' 시절. 세계 최강의 히오스 선수로 군림했던 젠지 시절과 리그의 갑작스러운 중단, <리그 오브 레전드>로의 도전과 포지션 변경까지.
그의 프로 인생은 항상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세계 페이커'라는 별명답게 <히오스> e스포츠의 정점에 올랐던 선수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 시작은 아름답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판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그 비판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달라진 모습을 증명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해왔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팬들로부터 '히오쑤왕', '투록쑤왕', '리치 왕의 분노' 등 애정 섞인 별명도 듣고 있죠.
그의 소속팀 다이나믹스 역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LCK 승격 후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중이죠. 1라운드에서는 최강 팀으로 꼽히는 T1을 격파하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리치의 새로운 도전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요? e스포츠 팬이라면 그의 도전을 주의 깊게 지켜보셔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