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중국 상하이입니다. 날씨는 건강에 참 좋다는 섭씨 38도, 햇살도 쨍쨍해서 살 태우기에도 적절합니다. 이런 쾌청한 날씨 속에서 직접 ‘기자’가 아닌 ‘관람객’의 자세로 차이나조이 2013을 체험해 봤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 이 말은 철저히 현장에 동화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지인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통역도 없이 체험한 차이나조이. 게임쇼에서 기자의 유일한 특권인 줄 안 서기를 과감해 포기했습니다. 더운 여름, 더욱 더워 보이는 체험기와 함께 이열치열의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상하이(중국)=디스이즈게임 심창훈 기자
25일 오전 9시, 차이나조이 2013 개막 당일 행사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숙소에서 나와 중국의 지하철을 체험해 봤습니다. 상하이라는 도시 하나에만 무려 10호선까지 있습니다. 출발지인 인민광장(人民廣場)에서 목적지인 상하이 엑스포 센터까지는 30 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습니다. 출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차이나조이 때문인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요, 출근길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 역은 저리 가라 수준입니다.
도착역인 화목로(花木路)에 와 보니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어디론가 향합니다. 상하이에 처음이라 길을 잘 모르는 심트롤, 어린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곳이 저의 목적지일 터! 저도 무리에 합류해서 이동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따라가니 차이나조이 행사장(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이 나옵니다.
드디어 행사장 도착! 한데, 인파가 심상치 않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본 첫 풍경은 매표소에서부터 늘어선 엄청난 줄입니다. 다행히 입장권은 미리 구해 뒀으므로, 바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줄에 설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에만 들어가면 무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차이나조이를 우습게 봤던 것 같습니다.
입장 대기 줄은 차이나조이라는 거대한 인스턴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 퀘스트 정도에 불과한 곳이었기 때문이죠. 전 그곳에서 세 번의 ‘고난’을 맞이했습니다.
첫 번째! ‘열탕의 길’. 놀이공원에 가면 가끔 뙤약볕 아래에서 줄을 설 때가 있죠. 그때의 피로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섭씨 38도의 날씨 속에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줄을 서 있자니, 집에서 먹다 남겼던 1,500 원짜리 팥빙수가 머릿속을 맴돌더군요.(이럴 줄 알았으면 다 먹고 올 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지스타’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으므로 참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30분쯤 살을 태우고 나니, 드디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특이한 것은 입장할 때 티켓팅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 왜 그랬는지 알게 됐습니다. 자만했습니다. 설마 이럴 줄은….
두 번째, ‘양심의 길’. 건물로 들어서니 부산 벡스코 전시장(지스타가 열리는 곳)의 2/3 정도 되는 크기의 홀로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곳 내부를 한 바퀴 휘감을 정도의 행렬이 또 있었다는 겁니다.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몇몇 중국 관람객들이 막아둔 펜스를 뚫고 새 길을 만들더군요. 역시 이런 곳에서 발동하는 중국인의 패시브 스킬!
사람들이 몰려가니, 저도 양심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길을 따라가면 더 빨리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아니야, 그래도 남의 나라에 와서 공중도덕을 지켜야 해!’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새 저는 사람들의 등쌀에 떠밀려 새 길로 들어가고 있더군요.
아, 정말 양심을 지키고 싶었는데, 아쉬운 상황이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계속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바람에 양심의 가책은 덜했습니다. 어쨌든 두 번째, 양심의 길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하지만 찜찜하게 통과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인파의 길’. 건물 하나를 통과하면 검표소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산이었죠. 이런 크기의 건물을 정확히 다섯 번 더 통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줄을 서는 것은 아니었고, 군중들이 그렇게 떼 지어 걸어가는 모습은 장관이더군요. 아프리카 초원에서 들소 떼가 먹이를 찾아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건물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드디어 검표소가 보이더군요. 물론 그곳에서부터는 ‘줄 아닌 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개찰구가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듭니다. 이렇게 약 1시간 만에 차이나조이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물론 운이 상당히 좋기도 했습니다)
이제 진정한 차이나조이 관람이 시작됩니다. 처음 들어선 행사장은 올해 신설된 ‘애니메이션관’이었습니다. 대규모 코스프레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각종 애니메이션과 게임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유명 만화인 <원피스>는 아예 전용 상점이 있더군요. 정식으로 수입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피규어나 기타 상품들의 퀄리티는 상당했습니다.
코스프레 행사장에서는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코스튬플레이어들이 솜씨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의상만 뽐내는 것이 아니라, 춤을 곁들인 쇼를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코스프레 공연은 차이나조이 행사기간 동안 매일 다른 팀들이 선보인다고 합니다.
사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유명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 상품이 몰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상품 대부분은 원작자나 게임 개발사에 허락은 구하고 만들었는지 의심이 가더군요. 물론, 직접 물건을 수입해서 파는 경우도 있어 보이긴 했습니다.(이것도 확신은 못 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귀여운 챔피언 ‘람머스’와 ‘티모’. 이들을 상품화한 모자는 구하기 힘든 축에 속하는 속칭 ‘레어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단돈 60 위안(약 12,000 원)이면 살 수 있더군요. 물론, 퀄리티는 진품보다 못하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일까요? 행사장에선 람머스 모자를 쓰고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당하게 게임사의 이름을 내걸고 팔던 물건도 있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명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를 다이캐스팅 열쇠고리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런 상품은 게임사에서도 판매한 적이 없었던, 아니 생산한 적도 없었던 물건들입니다. 씁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품질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마우스 패드, 티셔츠, 실제 사이즈의 무기(심지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지노스’까지!) 등 많은 상품이 눈에 들어왔었는데요, <원피스> 전용관이나 몇몇 피규어 판매처, 코스프레 행사 말고는 모조품 혹은 원작자에게 허가받지 않은 상품들로만 가득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올해는 쇼걸보다 게임에 집중한다고 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처음 차이나조이에 온 입장에서는 신작 체험보다 쇼걸들을 내세운 홍보행사가 더 눈에 띄더군요.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부스 근처는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는데요, 저도 쇼걸이 주는 경품이나 하나 받아볼까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긴 힘들었습니다.
게임에 눈길을 돌려보니 반가운 얼굴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 & 소울>이나 <길드워 2>를 비롯해 아이덴티티게임즈의 <드래곤네스트>와 <던전스트라이커>, 조이시티의 <프리스타일 2> 등 다양한 한국게임들이 행사장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국산 모바일게임 <헬로히어로>도 크게 홍보하는 중이었습니다. 건물 천장에 대형 현수막은 물론이고, 대형 스크린에서도 게임 플레이 장면을 보여주더군요.
지나친 근육미를 자랑하는 여성 캐릭터, 토마토 얼굴을 한 캐릭터 등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 캐릭터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콘셉트더군요. 심지어 쇼걸 중 한 명에게 근육 의상을 입히고 춤까지 추게 하더군요.
행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고, 본 행사에서 느낀 점을 전하고자 합니다. 일단 행사장 크기도 크기지만, 지나치게 심각할 정도로 불편한 동선이 불만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기나긴 입장 구간은 행사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만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출구가 단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지하철역이 있는 입구 쪽으로는 나갈 수 없고, 그 넓은 전시장 바깥으로 나가서 돌아가야 입구 쪽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행사장 출구에서 2 km를 걸어야만 했습니다.(38도의 날씨는 장난이 아니죠)
현지인들이야 지하철 말고도 다른 이동수단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외지인이나 관광객은 꼼짝없이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더군요.(택시도 있지만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는 태워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행사장 내부에는 ‘의자’가 없습니다. 그 넓은 행사장에서 잠시 쉬어갈 만한 장소는 없고, 심지어 행사를 돕는 관계자나 쇼걸도 아무 데나 앉아서 밥을 먹거나 쉬더군요. 물론 관람객들도 그냥 행사장 한편에 앉아서 끼니를 해결합니다. 지스타도 쉴 공간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바깥에 나가서 쉬다가 돌아오는 게 가능하죠. 차이나조이는 한 번 퇴장하면 표가 있어도 다시 입장할 수 없습니다.
역대 최대의 규모, 해마다 잠재력을 인정받는 차이나조이. 순전히 ‘게임’만 놓고 보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국제적인 행사’인 것을 감안하면 (순수하게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절대 퇴장하는 데만 2 km를 걷고, 쉴 곳이 마땅치 않아서 투정부리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멋진 쇼를 보더라도 부수적인 게 엉망이면 좋았던 감정도 퇴색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