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까지 와서 웬 컴퓨터박물관?”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죠. 사실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어요. 컴퓨터 업무에 치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산 좋고 물 좋은 제주도까지 가서 컴퓨터 박물관이라니요!
그런데 말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박물관의 모습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볼것도, 체험할 것도 너무나 많았죠. 오랜만에 만난 '슈퍼패미콤'은 10년 만에 동창을 만난 것 처럼 반가웠고, 매일 기사로만 접했던 애플Ⅰ을 봤을 때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던 묘한 감동도 있더라고요. (뻥!) 커플 옆에서 <퐁>을 혼자 플레이할 때는 조금 서러웠지만요.
무엇보다 게임은 나쁜 거라고 가르칠 것 같은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비행기를 타고 바다건너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참고로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 (함께 놀아 줄 애인도 친구도 없어서 서러웠던)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사진으로만 봤던 넥슨컴퓨터박물관. 제주 공항에서 택시타고 바로 이동하면 약 20분 거리더라고요. 저는 제주시 연동에 있는 숙소에 들러 짐을 맡기고 움직였는데, 그래도 30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여행 첫 날 혹은 마지막 날 부담없이 찾아가기 딱 좋아 보였습니다.
물품 보관함은 키보드 모양! 짐이 많아도 걱정이 없어요. 1층 데스크 옆에는 물품 보관함이 있거든요. 워낙 독특하다보니 요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저는 부끄러워서(....)
팔찌만 있으면 하루종일 입장가능합니다. 입장료를 내면 직원이 종이 팔찌를 매줍니다. (친절해라♡) 매일 색이 다른데, 박물관에서 놀다가 외출하더라도 팔찌만 보여주면 하루종일 언제든 입장할 수 있죠. 제주도민은 할인까지 되다보니 주말이면 PC방 대신 아이들을 데려오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입구에 표 검사를 하는 직원은 없지만, 각 층에 체험을 도와주는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몰래 들어갔다가는 바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일부러 몰래 들어오는 사람들은 없지만, 간혹 1층이 아닌 지하로 들어와 무료 박물관인 줄 알고 그냥 들어오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하네요.
1층 웰컴스테이지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사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박물관 중에서 가장 교육적인(...) 곳이죠. 애플I부터 다양한 과거 컴퓨터가 전시돼 있고, 그래픽, 사운드카드, CPU 등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교과서를 실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엥겔바트 마우스 복각품이에요. 최초의 컴퓨터용 마우스죠. 요 작은 녀석을 보니 이곳이 박물관이구나, 싶더라고요. 아쉽게도 직접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요.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지난 2013년 7월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2012년 엥겔바트 마우스 복각을 준비하며 엥겔바트와의 만남을 시도했는데요, 그 때 당시에는 이미 치매와 신부전증 합병증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해요. 대신 마우스 제작에 도움을 주었던 빌 잉글리시와 접촉에 성공해 설계도를 구할 수 있었죠.
그 옆에는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전시돼 있습니다. 특히 게이밍 마우스도 꽤 있었는데요, 지나가는 남학생들이 꼭 한마디 씩 하더라고요. "엄마 나 이거 사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애플I 입니다. 전세계 50대 밖에 남아있지 않고, 구동돼는 녀석은 6대 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죠. 경매가만 약 4억 3천만 원. 하지만 최근에 경매에 올라온 제품이 9억 원을 넘었던 걸 감안하면 아주 좋은 가격에 가져온 거죠!
사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엥겔바트 마우스처럼 애플I의 복각도 시도했었는데요,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워즈니악으로부터 "불가능하다"라는 진단을 들어야만 했어요. 당시 부품이 지금은 구할 수 없기 때문이죠. 덕분에 복각품 대신 진품을 보게 됐으니 좋은 게 좋은 거 겠죠?
SOEmote는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해 음성 채팅을 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에버퀘스트 2>에서 2012년 부터 상용화 됐는데, 얼굴 움직임을 인식해 게임 속 캐릭터로 출력하더라고요. 눈도 따라서 깜빡 거리고 말할 때는 입모양도 변해서 아이들이 엄청 신기해 하더라고요. 주말에는 줄 서서 체험을 해야할 정도로 인기! 다만 안경을 썼을 경우에는 잘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물관을 왔는데 방명록 정도는 남겨야죠! 레이저 키보드를 사용한 디지털 방명록 입니다. 휴대용으로 하나 살까말까 늘 고민했었는데, 안 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키감이 없어서 오타가…. '디스잊지게'
한쪽에는 저장장치들이 쭉 놓여있습니다. 제가 처음 사용했던 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였는데요, 불과 몇년 사이에 플로피 디스크는 고사하고 CD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됐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요즘에는 USB도 안 쓰고 클라우드를 이용하기도 하죠.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 랍 팔도 블리자드 COO, 정상원 넥슨 부사장, 김진만 <메이플스토리2> 디렉터의 공통점은? 바로 인생 최초의 컴퓨터가 애플II라는 것이죠! 넥슨컴퓨터박물관의 연재 '내 인생의 컴퓨터'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애플II입니다. 윗 분들과 같은 또래의 외국인 관람객들도 가장 반가워 하는 소장품 중 하나라고 해요.
"한국 컴퓨터는 없어?"라고 물으실 수 있는데, 있습니다. 1988년 대우에서 출시한 X-IIs와 1983년 삼성에서 출시한 SPC-1000A 입니다. 테이프 저장장치가 인상적이죠?
재미있는 점은 외국 컴퓨터보다 한국 컴퓨터를 구하기가 훨씬 힘들다고 합니다. 중고 매물들은 수출돼 오히려 해외 경매사이트에서 역수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3년전 이사하면서 내다 버린 486 컴퓨터가 생각나서 아쉬웠어요. 기증했으면 박물관에 이름이라도 올렸을텐데!
<바람의 나라> 초기 버전입니다. 뭐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보니 그러~~~~엏게 신기하진 않았는데요,
이 녀석들을 보니 신기하더라고요! 오픈 당시 <바람의 나라> 서버입니다. 딱 요만큼으로 운영을 시작했다고 해요. 동시 접속자 수십만 명을 기록하는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최초의 스마트폰은 애플이 아니라 IBM이었다는 사실. 모델명이 무려 '시몬' 퍼스널 커뮤니케이터. 괜히 반갑더라고요. :)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쪽 벽면에는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한 기업 및 단체들의 현판이 붙어 있어요. 넥슨부터 엔씨소프트, 블리자드, KOG 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죠? 재밌는 게 무슨 미션도 아닌데, 많은 해당 회사 직원들이 인증샷을 찍어간다고 하더라고요.
2층 오픈 스테이지는 아케이드부터 콘솔, PC 게임을 연도순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라가>부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아타리, 플레이스테이션1 등 옛날 옛적 게임기가 모여있죠.
와 이렇게 연도 순으로 정리된 걸 보니까 느낌이 묘하더라고요. 전시만 돼 있는 게 아니라 플레이도 해 볼 수 있어요. 옛날 게임들은 단순하다 보니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좋았어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슈퍼패미컴을 만지고 있는 꼬마를 보는데 재밌었어요. 아이를 데려온 부모님들이 본인이 즐겼던 게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같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의외로 엄마들도 같이 게임하면서 즐거워했고요.
뭐, 커플들은 생략. -_-
게임 잡지들도 있습니다. 잡지의 경우 대부분이 기부받은 거라고 해요. 너무 깨끗하고 보관이 잘돼 있더라고요. 수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척 기부한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스타크래프트> 베타버전 체험기라니! <파이널판타지 7> PC용 스크린샷도 공개된다네요.
웨어러블이 전시된 곳의 인기 작품은 역시 VR. 오큘러스 리프트입니다. 현재 박물관에 전신된 모델은 DK1인데요, DK2를 구입하기는 했지만 워낙 고가인데다 콘텐츠가 없어서 전시를 미루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행사에서 많이 접했던 기자와 달리 관람객들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굉장히 신기해 하더라고요. 한가한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열까지!
3층 히든 스테이지는 키보드와마우스를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무엇보다 오픈 수장고가 있습니다. 아래층에 전시되지 못한 소장품들이 모인 곳인데요, 대부분 기증품들이 많아요.
기증품의 경우 이렇게 보라색 네임택이 붙습니다. 개인 기증의 경우에도 모두 이름이 기재되는데요, 의미 있는 소장품만 있으면 이름을 남길텐데 말이죠.
교육용 게임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메타자교사>가 있죠. 짧은 글은 소싯 적 1,000는 기본으로 넘었었는데, 손가락도 늙었는지 기껏해야 650타를 간신히 넘더라고요. 아, 세월이여.
체험 프로그램도 직접 해봤습니다! 과학자라면 역시 하얀 가운을 입어줘야죠. 사이즈가 매우 작아 보이지만, 의외로 성인용도 준비돼 있습니다.
오늘 만들어볼 작품은 광마우스입니다. 준비물은 1만 원 짜리 키트면 땡! 저런 조립품은 대체 어디서 판매하는 걸까요? 알고보니 가내 수공업으로 일반 마우스를 뜯어서 준비하는 거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직원분들이 일일이 직접 뜯었지만 지금은 어머님들이 부업으로 하고 계신다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쓰고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
가운을 입고, 마우스를 조립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어서 굉장히 단순해요. 양면 테이프를 뜯어 붙이기만 하면 끝. 뭐 어려운 일이라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집중을 했는지….
조립이 끝나면 꾸미기를 해줍니다. 직원분 만든 샘플은 무려 아이언맨.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인 어른은 "나의 꼬진(?) 손은 절대 불가능해!: 라고 좌절할 수 밖에 없었죠. 헐크랑 아메리카 캡틴도 만들 예정이라고 하니 조만간 전시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하 1층 스페셜스테이지에는 <펌프잇업>부터 <킹 오브 파이터즈 94>, <마루치 아라치>(Psycho Soldier), <쌍용권>(Double Dragon) 등 다양한 아케이드 게임이 마련돼 있습니다. 팔찌만 있으면 다 공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느긋하게 게임 좀 즐겼을텐데 개인적으로 다음 일정이 있어서 <퐁>만 좀 만져보다가 나와야 했어요. 너무너무 아쉽더라고요.
지하 카페 인트에서는 요 키보드 와플도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점심에 전복+성게 물회 정식을 배가 터지게 먹는 바람에 사진만 찍고 와야했죠. 역시 시간이 아쉬웠어요ㅠ_ㅠ
이렇게 사진 찍고 체험까지 참여하며 소요된 시간은 총 2시간. 입장료가 절대 아깝지 않더라고요. 게임까지 제대로 플레이했으면 4~5시간은 훌쩍 지날 것 같았습니다.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그대. 넥슨컴퓨터박물관을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