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 커뮤니티가 오는 9월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컨퍼런스를 연다.
그 행사 이름은 ‘제 1회 블록버스터 게임코디 게릴라 컨퍼런스 위드 여자 개발자 모임터’다. 이름만 무려 29자다. 홍보가 중요한 컨퍼런스인데 이름을 외우는 것 조차도 쉽지 않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2개의 커뮤니티가 함께 개최한 공동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 커뮤니티는 ‘세미콜론에 혼을 담고 주석에 로맨스를 담는다’는 게임개발자 커뮤니티인 게임코디(www.gamecodi.com)와 ‘아름다운 개발자’(Beautiful Developer)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여자개발자모임터(café.naver.com/womendevel)다. 이들의 범상치 않은 캐치프레이즈를 볼 때 이번 컨퍼런스가 은근히 기대된다.
세미나 이름도 ‘블록버스터’를 내세우고 있다. 장소도 무려 5시간 대관비용만 200만원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매우 비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다. 후원업체도 없는데 참가비용은 고작 5천원에 불과하다. 대관료만 회수하더라도 이번 행사가 성공하려면 400명이 와야 한다.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이 행사 여는 것 자체가 손해다.
하지만 게임코디의 운영자인 이주행 씨는 “그래도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뭔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맙다”고 쿨한 멘트를 날렸다. 비용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 그에게서 왠지 모를 ‘허세’가 묻어난다. 허풍일 수도 있겠다.
■ “원래 계획은 더 원대했어요. 다들 뜯어 말렸습니다.”
컨퍼런스 개최는 개발자 커뮤니티의 꿈이기도 하다. 유명 인사의 훌륭한 세션과 남들 보기에도 그럴싸한 장소와의 결합은 커뮤니티의 힘 그리고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게임코디를 4년간 운영한 이주행 씨도 컨퍼런스 개최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었다.
개발자의 노는 곳을 지향하는 게임코디에도 비정기적인 강연들이 여러 차례 열렸다. 회원 중 한 명이 강연 내용을 정한 다음,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는 일종의 번개와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게임 개발사 회의실, 카페 등 공간이 허용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열었다.
장소는 열악했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SQL DB 강연일 때는 70명이 참관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하지만 강연을 혼자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강연에 열겠다는 회원들이 장소와 홍보에 어려움을 겪자, 이주행 씨는 게임코디의 이름으로 행사를 열기로 결심했다. 대규모와 고비용의 훌륭한 강연을 수시로 열어 직장인들도 부담 없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그러던 찰나, 그는 ‘여자개발자모임터’(이하, 여개모) 운영자를 만났다.
그는 “지난 5월에 열린 SDEC 행사(왼쪽 사진)에서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부스에 참여했었는데요 그곳에서 여개모 운영자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후, 제가 컨퍼런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조심스럽게 함께 열 것을 물어 봤더니 흔쾌히 응해주시더라구요”고 여개모와의 인연을 말했다.
또 “커뮤니티의 공동 행사인데 커뮤니티 명칭이 없으면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구요. 그렇다고 어느 한 곳만 넣을 수 없어 커뮤니티 2곳의 이름을 모두 넣게 됐습니다”고 무려 29자의 행사 이름의 비밀을 밝혔다.
이렇게 그는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와 여성 중심의 커뮤니티와의 조인트를 시도한다. 게임코디에서 정모를 열어봤자 ‘남자밖에 없잖아요’라는 한 회원의 푸념이 떠올랐던 그에게 이번 여개모와의 컨퍼런스 개최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가 꿈꿨던 행사는 화려했다. 스탭들은 멋지게 무전기도 차고 돌아다니는 한편,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찬 강연자와 참관객들은 음료와 함께 식사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 물론 입장료는 무료다.
물론 광고를 위한 행사라기 보다 정말 개발자들이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을 담고 싶었다. 여기에 약간의 이주행스러운 허세가 들어갔을 뿐이었다.
자선행사와도 같은 컨퍼런스를 꿈꾸는 이주행 씨의 의도를 알아챈 착한 회원들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면서 그를 뜯어말리기 시작했고 그의 꿈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점심 대접은 사라졌고 5천원의 참가비도 받는 등 행사는 조금씩 현실화됐다. 그래도 계산기를 두드러 봤는데 마이너스다.
당초 후원업체를 통해 컨퍼런스룸 대여비용이라도 지원받게 된다면 어느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선뜻 후원하겠다는 나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나마 대표이사가 게임코디의 수년간 회원인 이노지에스와 게임코디 회원들의 자발적인 도움만 있었을 뿐이다.
그는 “다행히 지금 비용도 마이너스인데 회원들이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이 일어났을 것 같아요”라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는 게임코디만의 ‘허세’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도 장소는 그의 고집대로 코엑스 컨퍼런스룸이다.
■ “2개 세션에 총 6개의 강연을 준비했어요.”
게임코디와 여개모의 회원수를 합치면 5천 명이 넘는다. 2개 커뮤니티를 합치더라도 요즈음 잘나가는 게임개발자 커뮤니티의 1/5도 안되는 초라한 숫자다. 하지만 컨퍼런스는 알차게 준비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총 2개의 세션에서 6개의 강연으로 준비돼 있다.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만큼 SQL, DDOS, Cocos2,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등 강연주제도 일반인들이 접하기에는 쉽지 않은 주제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주제도 있다. ‘일본 게임업계 이야기’와 ‘IT분야에서 끊임없는 자기계발’ 등의 재미있는 강연도 준비돼 있다. 게임코디는 게임개발자로 한정돼 있지만 여자개발모임터는 다양한 개발자가 있으므로 분야에 상관없이 개발자에게 공통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준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강연자의 모집이 쉬워 이주행 씨는 참관객 모집에만 집중하면 됐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거다.
“게임코디에 강연자 4명, 그리고 여개모에서 2명이 강연자로 참석하는데요. 게임코디의 경우, 이번에 강연해주시는 분들은 행사 공지에 앞서 미리 강연을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덕분에 강연자 섭외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참관객입니다. 2개의 컨퍼런스룸에서 총 300명이 들을 수 있도록 의자를 준비해놨는데요. 아직 모집인원조차 다 차지 않았습니다. 인원이 조금 와서 손실이 생기면 제가 몸으로 때우면 되는데 참관객이 적으면 힘들게 발표를 준비한 강연자들에게 미안할까봐 걱정입니다.”
그래서 그가 꺼내든 카드는 경품이다. 플레이스테이션3 1대와 개발 서적 27권을 경품으로 내걸었다. 소박하지만 큰 경품이다. 그 경품들은 행사를 마치는 대로 바로 지급할 계획이다.
■ 이주행만의 허세가 묻어나는 곳. 게임코디
게임코디가 오픈한 날이 2007년 10월 7일로 다음 달이면 만 4년이 된다.
이주행 씨는 사이트 오픈한 날에 사이트를 닫을 계획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코디는 다른 개발자커뮤니티와 달리 실무자들이 놀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므로 오픈한 날인 만큼 여기서 놀지 말고 일하라는 거다.
여타의 다른 게임개발자 커뮤니티가 진지한 만큼 여기에서는 마음 편히 놀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사이트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일만큼을 일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이트 운영도 제 마음이다. 회원이 2시간 이상 접속해 있으면 차단된다. 그리고 이 곳에 회원 가입하려면 시험도 봐야 한다. 심지어 시험이 업데이트되는 날이면 시험 수준을 보기 위해 회원가입하는 개발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의 허세스러움은 사이트 곳곳에서도 묻어난다.
이주행 씨는 “제가 이번 컨퍼런스에 ‘제 1회’란 말을 붙였는데요. ‘제 2회’도 열 수 있겠죠? 그냥 잘 될 것 같아요. 기자님도 시간되면 오세요. 제가 예쁜 목걸이 하나 걸어드릴께요”라고 마지막까지 허세를 잊지 않았다.
쇼핑몰 운영할 때 속옷 모델을 직접한 이주행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