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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

블리자드노스의 한인개발자 강형원을 만나다

해외 한국인 개발자 인터뷰 ①

이재진(다크지니) 2005-05-31 10:57:54

 

 

디스이즈게임에서는 E3 2005 현장에서 만난 해외 한국인 개발자 인터뷰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세계적인 게임개발사에서 일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떤 준비와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는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블리자드 노스의 아티스트 강형원(35)입니다. /운영자 주

 

 

새로운 게임과 비즈니스의 기회로 가득찬 E3쇼 현장. 까마득히 몰려드는 인파 속에선 바로 앞의 일행도 놓칠 만큼 정신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빡빡한 취재 일정, 새로운 게임소식과 세계 게임업계의 흐름을 하나라도 더 담아야 한다. 1 1초가 안타까운 치열한 현장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난 건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강형원(35). 영어 이름 제프 강(JEFF KANG). 현재 블리자드 노스(Blizzard North)에서 배경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개발자다.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채고는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수많은 궁금증이 밀려왔다. 어떻게 해서 블리자드 노스에 몸 담게 됐을까? 그 곳의 근무 환경은 어떨까?

 

곧바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E3 2005가 폐막하기 3시간 전인 셋째 날 오후 1. 현장은 아쉬움과 흥겨움의 막바지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강형원 씨와 마주 앉아 늦은 점심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먼저 미국에 와서 게임회사에 입사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 2000 8월에 미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스쿨에서 컴퓨터 아트를 전공해서 대학원을 수료했죠. 그리고 2004 1월에 남코홈텍(남코의 미국법인)에 입사했습니다.”

 

 

강 씨가 게임개발에서 맡은 직책은 배경 아티스트. 그 밖에 캐릭터와 비주얼 컨셉트도 담당해 왔다. 처음에 남코에서 한 작업은 비디오 게임기용 액션물인 데드 투 라이트 2’(Dead to Rights 2)였다. 그는 이 게임의 메인 캐릭터와 배경 아트 작업을 맡았다.

 

그리고 올해 1, 지난 1년간 일했던 남코홈텍을 떠나 블리자드 노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에서 역시 배경 아티스트로 활약 중이다. 그런데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차세대 게임이라고 해두면 안 될까요? 미공개 프로젝트라서 아무래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 모습에 기자의 본능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해외 게임개발사에서는 정보유출이 해당 직원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원래 게임을 좋아했을까? “중·고등학교 때 오락실 마니아였죠. 그리고는 커서 PC게임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특히 1인칭 슈팅 게임(FPS) 장르를 좋아했어요.” 비디오게임은 미국에 와서 처음 접해봤다. 그런데도 남코에 선뜻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락실에서 즐겨했던 철권의 기억 때문이었다.

 

 

남코에서 작업 했었던 X박스용 메카닉 게임의 모델링. 강형원 씨는 여기서 메인 메카닉과 탑승 유니트의 컨셉트 아트부터 모델링, 텍스처링을 혼자서 해냈다.

 

 

메카닉 뒤의 해치가 열리면 게이머가 탑승할 수 있는 시스템. 이 이미지는 모두 게임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강 씨는 처음부터 게임회사에서 일할 계획은 아니었다.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게 된 경우였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는 미국 게임회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 유학을 오는 한국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미국 학교에서도 게임회사에 많은 투자도 하고, 게임인력 양성에도 적극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가 나온 아카데미 오브 아트스쿨(현재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로 바뀌었다)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개발자들에게는 일종의 관문같은 곳. 그만큼 저명한 교육기관이다. 아트웍 수준은 미국에서 전체 2위를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현재 미국 및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게임개발자들은 대부분 아티스트다. 한국인 특유의 예술적인 감각을 살려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서 컨셉트 아티스트로 활약한 할리우드의 한국인 이상준 씨의 경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게임회사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채보다는 추천’(refer)을 선호한다. 강 씨를 게임업계로 이끈 사람도 다음 인터뷰의 주인공인 한국인 개발자 김형규 씨였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형규 형을 알았어요. 그리고 졸업 하기 두 달 전에 연락이 돼서 형규 형을 통해 남코에 포트폴리오를 보낼 수 있었죠.”

 

같은 한국인 개발자 선배의 인맥을 통해서 강 씨는 졸업과 동시에 남코에서 게임개발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이 있었던 덕분에 문화가 다른 외국 개발자들과의 생활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근무 여건은 남코도 좋았지만 블리자드 노스는 끝내주죠라고 말할 정도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불평이 많은 편인데, 블리자드 노스에서는 진짜 불평이 있을 수가 없어요. 100명 내외의 직원들끼리 외국인 회사 답지 않게 정말 가족적이거든요.” 특히 프로듀서나 직급이 높은 개발자들이 일반 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강 씨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 직원들마다 독방을 쓰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블리자드 노스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주 5일 시스템. 아침 10에 나와서 저녁7 정도까지 일한다. 강 씨는 보통 저녁 8 30 정도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게임의 출시가 임박해지면 중대한 모드’(Crunch Mode)라고 해서 주 7, 야근도 불사하면서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매달린다. 미국 게임회사에서는 공식 용어처럼 돼 버린 크런치 모드는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 정도 지속된다.

 

 

 

 

 

강 씨는 현재의 일에 굉장히 만족한다고 답했다. 일단 사람들이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만드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는 설명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게임을 재미있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내가 작업한 것이 게임 화면에 나올 때는 정말 짜릿하죠.”

 

그래서 그는 아티스트라는 일을 앞으로 계속 할 계획이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도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한국의 게임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아직은 여건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강 씨가 굳이 미국까지 와서 유학을 했던 것도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전문인력에 대해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국내 게임개발사도 근무 환경은 몰라보게 향상됐지만 아직도 아티스트, 배경 원화가 등의 세부적인 직급에 대해서는 전문 파트로서의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만큼 해외 게임개발사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강 씨는 이런 선택을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고 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영어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트폴리오지만, 그 다음 절차가 인터뷰인데 영어를 사용하거든요. 그 뒤에 입사를 하더라도 영어를 잘 해야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미국의 게임업계에 한인 개발자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력과 매너가 우선시 되는 문화권에서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먼저 게임업계에 투신한 한국인들의 도움도 컸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한국인 특유의 결속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강 씨도 자신이 도움을 받은 만큼 후배 개발자들이 미국 게임산업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리자드 노스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쳐 보여야 하는 일도 남아있다.

 

그가 만들고 있는 블리자드의 차기작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