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 2005 현장에서 만난 해외 한국인 개발자 인터뷰 시리즈, 두번째 주인공은 미국 게임회사 남코홈텍의 한국인 아티스트
블리자드 노스의
테크니컬 아티스트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봤다. “단순히 비주얼 컨셉트를 잡는 것보다 그 장면의 게임 속 연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머들이 코딩해 놓은 것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의 말에 따르면 테크니컬 아티스트는 직접 코딩을 하지 않을 뿐, 프로그래밍 언어를 읽고 고칠 수 있는 고급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비디오 게임기에서는 제한된 메모리와 시스템의 한도 내에서 장면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테크니컬 아티스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 씨는 94년 말에 미국에 건너와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트'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졸업도 하기 전에 SNK 영상팀에 취직, 플레이스테이션용 ‘사무라이 쇼다운’의 인트로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 뒤 미드웨이(Midway)로 옮겨서 ‘건틀렛’과 ‘닥터 뮤토’라는 게임의 특수효과과 캐릭터 셋업을 담당했다.
김형규 씨가 처음으로 작업한 PS판 사무라이 쇼다운 인트로 무비의 한 장면
미드웨이 '건틀렛' 개발팀의 단체 사진. 뒷 줄 오른쪽 끝이 김형규 씨다
4년간 정들었던 미드웨이를 떠나 남코홈텍으로 옮긴 것이 2003년 3월이었다. 처음에는
90년대 중반부터 해외 개발사에 다닌 그로선 상당히 외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영어를 익히는 문제와 생소한 팀 문화가 가장 힘들었죠. 한국은 회식문화가 발달해 있는데 여기는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요소가 많아요. 특히 서로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정치적인 다툼도 심합니다.”
하지만 SNK 시절, 김형규 씨 주위에는 많은 한국인 개발자들이 있었다. SNK-블리자드를 거쳐 현재 한빛소프트에 있는 이장욱 씨, 현 강원대 교수인 윤영두 씨, 현 디즈니 아티스트인 정병건 씨(포토샵 마스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 소니게임 아티스트인 주원용 씨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출신의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SNK 시절 후 미드웨이에서 일했던 4년 동안은 한국인 동료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남코에 입사한 지 1년 후, 그의 추천으로
데드 투 라이트2의 한 장면. 이런 장면에서 쓰이는 파편의 개수와 전체적인 비주얼의 연출을 총괄하는 것이 테크니컬 아티스트 김형규 씨의 역할이다.
흥미로운 것은
“꼭 대단한 배경이나 경력이 필요하지 않아요. 미국 게임업계는 철저하게 포트폴리오로 흘러가거든요.” 그 밖에 중요한 것은 역시 실무경험이다. 특히 얼마나 훌륭한 팀웍을 가졌느냐는 미국 게임회사에서 주의깊게 따지는 요소 중 하나다.
남코에서 그의 일과는
초과 근무에 대한 개념이 철저한 미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수당’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얼마 전 EA가 직원들에게 집단소송을 당했던 이유가 바로 크런치 모드의 수당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EA가 주는 것으로 해서 문제는 해결이 된 바 있다.
김형규 씨가 작업한 데드 투 라이트2의 게임잡지 표지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인 영화산업에 비해서 게임산업은 고용도 안정적이고 퀄리티를 계속 높여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기 쉬운 것도 그에겐 커다란 매력이었다. 특히 차세대 게임기 같은 기술의 발전은 테크니컬 아티스트인
“X박스 360과 플레이스테이션 3로 작업을 해보면 예전에 비해서 정말 ‘운동장’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엔 텍스처 한장의 사이즈도 4x4였는데 이제는 1024x1024도 쉽게 쓸 수 있으니까요.”
남코 데드 투 라이트2 개발팀 기념사진. 해외 게임개발사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맨 아래 하단에는 전 개발자들의 이름을 넣었다.
미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일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하기 나름’이다. 덕분에 연령 제한도, 학력 제한도 없다.
“솔직히 여기서 더 경험을 많이 쌓은 다음 한국에 돌아가서 후진 양성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외주 개발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많고요. 그래도 아직은 미국 게임회사에서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게임이라고는 어렸을 때 다녔던 오락실이 전부였던 그에게 게임산업은 어느새 꿈을 이뤄가는 터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