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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

해외게임사는 나이,학벌보다 실력이다

해외 한국인 개발자 인터뷰 ②

이재진(다크지니) 2005-06-02 13:32:28

 

 

E3 2005 현장에서 만난 해외 한국인 개발자 인터뷰 시리즈, 두번째 주인공은 미국 게임회사 남코홈텍의 한국인 아티스트 김형규(37)입니다. 그가 말하는 '테크니컬 아티스트'의 세계, 그리고 한국인 개발자로서의 삶을 들어 봅니다. /운영자 주

 

 

블리자드 노스의 형원 씨는 인터뷰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바로 E3 2005 현장에 다른 한국인 개발자들도 와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장소에는 씨를 남코로 이끌어준 반가운 얼굴, 김형규(37)도 함께 나왔다.

 

김형규, 영어 이름 형 김(Hyung Kim). 현재 남코홈텍에서 테크니컬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테크니컬 아티스트는 게임 속 특수효과와 파편(Particle) 효과, 캐릭터 설정에 관여하는 아티스트 속 또 다른 전문분야다.

 

테크니컬 아티스트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봤다. 단순히 비주얼 컨셉트를 잡는 것보다 그 장면의 게임 속 연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머들이 코딩해 놓은 것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의 말에 따르면 테크니컬 아티스트는 직접 코딩을 하지 않을 뿐, 프로그래밍 언어를 읽고 고칠 수 있는 고급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비디오 게임기에서는 제한된 메모리와 시스템의 한도 내에서 장면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테크니컬 아티스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 씨는 94년 말에 미국에 건너와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트'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졸업도 하기 전에 SNK 영상팀에 취직, 플레이스테이션용 사무라이 쇼다운의 인트로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 뒤 미드웨이(Midway)로 옮겨서 건틀렛닥터 뮤토라는 게임의 특수효과과 캐릭터 셋업을 담당했다.

 

 

김형규 씨가 처음으로 작업한 PS판 사무라이 쇼다운 인트로 무비의 한 장면

 

미드웨이 '건틀렛' 개발팀의 단체 사진. 뒷 줄 오른쪽 끝이 김형규 씨다

 

 

4년간 정들었던 미드웨이를 떠나 남코홈텍으로 옮긴 것이 2003 3월이었다. 처음에는 강형원 씨와 함께 데드 투 라이트 2’를 개발했고, 현재는 차세대 게임을 위한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해외 개발사에 다닌 그로선 상당히 외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영어를 익히는 문제와 생소한 팀 문화가 가장 힘들었죠. 한국은 회식문화가 발달해 있는데 여기는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요소가 많아요. 특히 서로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정치적인 다툼도 심합니다.”

 

하지만 SNK 시절, 김형규 씨 주위에는 많은 한국인 개발자들이 있었다. SNK-블리자드를 거쳐 현재 한빛소프트에 있는 이장욱 씨, 현 강원대 교수인 윤영두 씨, 현 디즈니 아티스트인 정병건 씨(포토샵 마스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 소니게임 아티스트인 주원용 씨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출신의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SNK 시절 후 미드웨이에서 일했던 4년 동안은 한국인 동료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남코에 입사한 지 1년 후, 그의 추천으로 강형원 씨가 들어오면서 향후 소개할 한국인 개발자 커뮤니티의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씨처럼 김형규 씨 역시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공부했다. “94년부터 공부할 당시에 SGI(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이 대세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학교가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SGI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역시 SNK에 다니고 있었던 미국인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게임업계에 투신한 경우였다.

 

 

데드 투 라이트2의 한 장면. 이런 장면에서 쓰이는 파편의 개수와 전체적인 비주얼의 연출을 총괄하는 것이 테크니컬 아티스트 김형규 씨의 역할이다.

 

 

흥미로운 것은 강형원, 김형규 씨 모두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해 본 경력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미술계통의 공부를 했고 그것이 좋은 포트폴리오로 이어져서 취업을 하게 된 경우였다.

 

꼭 대단한 배경이나 경력이 필요하지 않아요. 미국 게임업계는 철저하게 포트폴리오로 흘러가거든요.” 그 밖에 중요한 것은 역시 실무경험이다. 특히 얼마나 훌륭한 팀웍을 가졌느냐는 미국 게임회사에서 주의깊게 따지는 요소 중 하나다.

 

남코에서 그의 일과는 아침 9 30에 출근해서 저녁 6 30에 퇴근하는 것으로 짜여진다. 그러나 게임개발자라는 특성상 꼭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미국 게임회사의 출시전 마감모드인 크런치 모드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고 다들 노력한다.

 

초과 근무에 대한 개념이 철저한 미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수당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얼마 전 EA가 직원들에게 집단소송을 당했던 이유가 바로 크런치 모드의 수당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EA가 주는 것으로 해서 문제는 해결이 된 바 있다.

 

 

김형규 씨가 작업한 데드 투 라이트2의 게임잡지 표지

 

 

김형규 씨는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는 자신의 일에 굉장히 만족스러워 했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게임 속 엔진을 통해서 돌아가는 아트를 창작하는 일이잖아요. 뿌듯하죠. 하드웨어적인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내는 작업은 재미가 아주 짜릿합니다.”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인 영화산업에 비해서 게임산업은 고용도 안정적이고 퀄리티를 계속 높여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기 쉬운 것도 그에겐 커다란 매력이었다. 특히 차세대 게임기 같은 기술의 발전은 테크니컬 아티스트인 김형규 씨에겐 최고의 뉴스였다.

 

“X박스 360과 플레이스테이션 3로 작업을 해보면 예전에 비해서 정말 운동장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엔 텍스처 한장의 사이즈도 4x4였는데 이제는 1024x1024도 쉽게 쓸 수 있으니까요.”

 

 

남코 데드 투 라이트2 개발팀 기념사진. 해외 게임개발사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맨 아래 하단에는 전 개발자들의 이름을 넣었다.

 

 

미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일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하기 나름이다. 덕분에 연령 제한도, 학력 제한도 없다. 김형규 씨 역시 현재의 일과 직장에 만족하며 계속 다닐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여기서 더 경험을 많이 쌓은 다음 한국에 돌아가서 후진 양성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외주 개발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많고요. 그래도 아직은 미국 게임회사에서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게임이라고는 어렸을 때 다녔던 오락실이 전부였던 그에게 게임산업은 어느새 꿈을 이뤄가는 터전이 됐다. 김형규 씨가 세계적인 게임회사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을 고국의 후배들에게 물려줄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