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목숨건 사람들, '게목사'

디스이즈게임의 해외 개발자 인터뷰 시리즈 마지막 편, 그 주인공은 한 개인이 아닙니다. 바로 머나먼 미국 땅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개발자들의 모임, ‘게임에 목숨 건 사람들’입니다. 자칭 ‘게목사’라고 부르는 이들 모임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운영자 주

블리자드 노스의 강형원 씨, 그리고 남코 홈텍의 김형규 씨는 기자에게 한국인 개발자들의 특별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름을 묻는 질문에 머쓱한 답변이 돌아왔다.

“원래는 편하고 재미있게 부르려고 지은 이름인데, 어쨌든 다들 좋다고 해서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네요.” 게임에 목숨 건 사람들, 이른바 ‘게목사’는 북미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게임 개발자, 그리고 지망생들의 순수한 모임이다. 막상 듣고 보니 희한하기도 했지만 기억에는 또렷하게 남는 묘한 이름이었다.

게목사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결성된 모임이었다. 남코 홈텍에서 강형원 씨와 김형규 씨가 함께 일하던 시절, 이들은 한국인 개발자들의 결속을 다질 수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사실 제가 학교(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 다닐 때만 해도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적었어요. 저도 영화보다는 게임이 안정적인 것 같아서 선택을 했었거든요.” 강형원 씨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게임학과는 없었고, 그나마 개설 돼 있었던 게임수업도 실속이 없었다.

강형원 씨의 고민을 듣게 된 김형규 씨는 곧바로 “우리가 게임산업에 있을 때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주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즉석에서 의기투합한 두 사람, 게목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게목사를 탄생시킨 주인공 김형규 씨(왼쪽)와 강형원 씨

게목사(//cafe.naver.com/AAUgame)는 생겨난 지 8개월이 됐으며 37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회원수가 생각보다 적었다. “진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거든요. 미적지근한 사람은 사절입니다.”

김형규 씨의 말처럼 게목사는 소수정예, 진짜 게임에 목숨을 건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공개형 커뮤니티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도 매달 3명 정도씩 게임에 관심이 있는 게임업체 종사자, 또는 학생들이 꾸준히 가입을 하고 있다.

주로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출신 회원이 많지만, 꼭 특정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제약은 없다. 가입에도 제한은 없다. 단, 업계 종사자건 학생이건 자신의 작품을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게목사는 여름과 겨울에 자체적으로 ‘경쟁시즌’(Competition)을 열어서 방학 중 시간이 있을 때 작품 하나를 끝낼 수 있게끔 유도를 하고 있다. 학생 회원도 많은 만큼 학기 중에는 자신이 작업한 것을 올려서 선배 아티스트들의 냉정한 평가도 받는다. 평가 후 수정본을 다시 올리는 것은 당연한 절차.

이런 작품 공개 및 평가 과정은 게목사의 유일한 규칙이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한 차례의 유예 기간을 둔 후, 두 번째는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런 규칙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게목사에 흥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도전을 못하고 있다.

작품 공개는 현업 아티스트에게도 엄중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물론 비밀유지가 필요한 직업의 특성상 취소된 프로젝트나 개인 포트폴리오만을 올린다. 게목사는 작품 공개와 평가뿐만 아니라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일자리를 알아보는 회원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오픈 8개월 만에 5명의 회원이 EA, 액티비전, 미드웨이 등 세계적인 게임개발사에 취업을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코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로 지내 온 강형원 씨와 김형규 씨

실제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김형규 씨는 매달 마지막 날에 공지를 통해서 회원들의 활동 성적표(통계)와 모임의 이런저런 소식을 묶어서 전달한다. 이 때 그 달의 우수회원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을 전달하는 작은 이벤트도 마련된다. 상품은 물론 게목사라는 이름과 취지에 걸맞게 게임 패키지와 게임 티셔츠 등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게목사는 실력증진만을 위한 모임일까?

“아닙니다. 분명 작업 및 공부를 게을리 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모임이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모든 회원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함께 모여서 친목의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김형규 씨는 명절이 되면 떡국이나 갈비 같은 한국음식을 마련해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직접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아르바이트와 유학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빠듯한 생활에 지친 후배들을 위한 배려다.

현재 게목사에는 인턴쉽을 포함해 16명 정도의 게임업계 실무자가 활동하고 있다. 일단 김형규(남코), 강형원(블리자드), 이상협(EA), 이재한(EA)의 4명이 운영위원이다. 그밖에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중인 회원들은 다음과 같다.

강윤극(Sony Imageworks), 김성래(Ohphanage), 김영철(인턴), 김용현(EA 인턴), 금 정(EA), 손지원(Infinity Ward , Activision), 이주한(Zenpaly 인턴), 이진우(EA), 오준헌(Omation Studio), 전재훈(Collective), 정태준(EA), 최승영(Dreamworks). 이렇게 11명이 현업 아티스트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자칫 짜여진 일정에 얽매일 수 있는 E3쇼 현장에서 만난 강형원, 김형규 씨는 따뜻하고 유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만든 게목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 넉넉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가꾸기도 바쁠 타지에서 한국인이라는 울타리로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게목사가 북미지역 한국인 개발자를 키워내는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게목사 피크닉 기념 사진